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위원장 김용준)는 6개 부처 신임 장관에 대한 인선내용을 발표하면서 이름의 한자를 明記(명기)[또는 倂記(병기)]하지 않았다.

인수위 보도자료에서 한자 찾아보기 어려워

발표된 6명은 尹炳世(윤병세, 외교부), 黃敎安(황교안, 법무부), 金秉寬(김병관, 국방부), 徐南洙(서남수, 교육부), 劉正福(유정복, 안전행정부), 柳震龍(유진용, 문화체육관광부)이다. 인수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이들 여섯 명의 한자 本名 대신 한글 표기만 적혀 있다. 그동안 인수위가 발표했던 많은 자료에서 한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6명의 한자 이름을 표기한 국내 언론 역시 거의 없다. 한자 이름을 확인하려면, 일본이나 중국 매체를 봐야 할 정도다. 실제로 구글(Google)에서 위 인사들의 한자 이름을 입력하면, 국내 매체로는 <조선닷컴>에서만 검색되는 것으로 나온다.

소위 ‘메이저 신문’이라 불리는 朝中東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 한자를 쓰는 경우는, 동음이의어를 표기할 때나 일본·중국 인사들의 이름을 표기할 때다. 예를 들어 일본 아베 총리를 표기할 때 한글로 ‘아베 신조’라고 쓰고, 괄호 안에 ‘安倍晋三’이라고 한자를 倂記(병기)해준다. 반면, 국내 인사들의 이름은 한글로만 적는다. 이를 두고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 朝中東

2월15일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1면을 보면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조선일보> 1면 톱기사 “정부, 中에 ‘對北원칙 수정’ 공식 요구해야”에는 習近平(습근평,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이 나온다. 신문은 한글로 ‘시진핑’이라고 쓴 다음 ‘習近平’이라고 한자 이름을 병기했다. 이 기사 우측에 고노 요헤이(前 일본 중의원 의장)의 이름도 한글로 ‘고노 요헤이’라고 쓴 뒤 ‘河野洋平’이라고 병기했다. 그런데 바로 하단의 “朴 당선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진전 힘든상황’”이라는 기사에는 朴槿惠(박근혜) 당선자의 이름을 한글로만 표기해 놓았다.

<동아일보> 1면 톱기사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 역시 한글로만 써 놓았다. 李 대통령과의 인터뷰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은 이 신문은, 기사 제목에서만 한자를 썼을 뿐 본문에는 한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특히 ‘成敗(성패)’, ‘新舊(신구)’ 등 한자가 필요한 단어도 한글로만 표기했다.

<중앙일보>는 다른 두 신문보다 한자 사용 빈도가 훨씬 적었다. 1면 톱기사의 제목(‘햇볕·제재 오락가락 정책, 북한 핵 의지 오판한 20년’)부터가 순 한글이다. 기사 본문에 나온 ‘김황식’ 국무총리의 이름도 한글로만 표기했다. 한자를 표기할 필요가 있는 ‘軍縮(군축)’이란 단어도 한글로만 되어 있다.

“한글專用, ‘單純文盲(단순문맹)’ 퇴치엔 기여했으나 ‘實質文盲(실질문맹)’ 양산”

2012년 10월,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이하 추진회, 회장 李漢東 前 국무총리)는 국어기본법의 한글專用(전용) 정책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추진회는 청구 취지에서 “오늘날의 한국어는 고유어와 漢字語(한자어)로 구성되어 있고, 고유어는 25.5%에 그치는 반면 한자어는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자 사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말의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漢字라는 글자로 적고 그 한자로 적힌 한자어를 한국어의 發音(발음)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언어의 목적은 意味(의미)의 전달에 있으며, 말을 표기하는 글자와 그것을 소리로 나타내는 발음은 그 수단입니다. 인간 사고의 가능성은 사고의 도구인 언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사고도 멈춥니다. 인간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도구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며, 도구의 다양성과 정교함에 의하여 사고의 폭과 깊이가 결정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인은 도구의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사고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추진회는 “한글전용정책은 ‘單純文盲(단순문맹)’을 퇴치하는 데에는 기여하였으나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의미를 더 이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實質文盲(실질문맹)’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법 前文을 보면, “文化(문화)의 모든 領域(영역)에 있어서 各人(각인)의 機會(기회)를 균등히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한글 專用은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문화적 중립성을 요청하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위배된다. 이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제9조를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글 專用은 ‘관습헌법’ 위반

추진회는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國字(국자)로 한다’는 규범은 일종의 慣習(관습)헌법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 근거로 2004년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違憲(위헌)심판 판결을 예로 들었다. 당시 憲裁(헌재)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로 한다’라는 不文의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憲裁는 관습헌법이 성립되기 위한 요건으로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헌법적 관행의 존재)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하며(명료성)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는 것을 들었다. 이를 근거로 우리 민족이 수천 년간 사용해온 한자 역시 관습헌법 사항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우리 사회에서 한자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초중고교 교육과정에 한자는 선택과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대학입시에서도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 체계적으로 한자를 학습할 기회는 사실상 드물다. 


한글 專用은 ‘고급문서 해독 불가’ 초래

한글 專用(전용)은 대졸자들의 ‘고급문서 해독 불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閔賢植(민현식) 교수는 2009년 발표한 <국어 능력 실태와 문법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논문에서 “한글 덕분에 단순 문맹률은 낮으나, 規範(규범) 교육이 부실하여 실질 문맹률인 문식성(文識性, literacy) 평가에서 문식성이 낮고, 高학력자일수록 문식성이 낮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는 “1990년부터 중학교에서 한자가 선택 교과로 格下(격하)돼 한국인의 한자 및 한자어 이해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한글전용으로 인해 한자어의 어원 의식 상실로 한글 세대에게는 한자어의 동음이의어가 多義語(다의어)로 인식되는 다의어化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또 2003년 발표된 <한국 성인의 문해(文解)실태와 OECD 국제비교 조사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大卒 이상의 학력을 가진 국민 100명당 두 세 명만이 고급문서 문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논문은 한국인이 文解力(문해력)이 낮았으며, 특히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서 문해력’이 낮다고 밝혔다. 논문을 작성한 이희수 교수(중앙대)는 “한자교육이 강화되면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어력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며 “문해력은 국가수준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한글專用 정책 再考해야

앞서 보았듯이, 의미(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발음 부호(한글)만 가르치면 일종의 ‘반신불수’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며, 이는 국민 교양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한글 專用의 가장 심각한 弊害(폐해)다. 일각에서는 정부는 물론, 여론을 先導(선도)하는 언론이 한자·한글 混用(혼용)에 앞장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만약 추진회의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질 경우, 한글 專用 정책은 汎(범)정부 차원에서 再考(재고)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는 새로 출범을 앞두고 있는 ‘朴槿惠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가장 큰 실수는 한글專用 정책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