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의 한 CJ 빌딩 안엔 故(고) 李秉喆(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요약하여 새겨놓았다.

人材第一(인재제일)
事業報國(사업보국)
合理經營(합리경영)

이 3大 원칙엔 李秉喆의 위대한 안목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말이다.

1. 기업경영의 원리를 사람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재육성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일자리는 모자라고 사람은 남아돌던 시대에 인재발탁과 교육을 중시한 偉人(위인)이다.

2. 국가건설期의 한국에서 기업의 존재목적이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게 기업인의 애국이다. 그는 안중근, 유관순에 못지 않는 위대한 애국자였다.

3. 경제는 과학이다. 집념, 뚝심, 배짱 같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합리성이 成敗(성패)의 관건이다.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뚝심은 蠻勇(만용)이다.

鄭周永(정주영)을 흔히 배짱과 도전의 경영인으로 평한다.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李明博은 鄭회장이 작고한 직후, 2001년 5월호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俗說(속설)과 다른 평가를 하였다. 기자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돌파력, 이것이 鄭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후에 대통령이 되는 이명박 씨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게 잘못됐습니다. 사람들은 鄭회장을 가리켜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기업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鄭회장에 대한 왜곡된 편견입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한두 번이야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30년 동안 그랬겠어요. 그는 우리나라가 농경시대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고 개화하는 데 主役(주역)을 맡았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것을 체질 속에 익힌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 짓는 경험 조금 가지고 산업사회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그 어떤 벤처기업인보다 더 벤처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젊음, 그의 판단력, 그의 무서운 결단력과 용기, 이런 덕목들은 육체적으로 쇠잔해지지 않았다면, 21세기의 정보화시대에도 똑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시대가 낳은 요행의 산물도 아니었고, 그냥 밀어붙이는 우직한 용기 하나 가지고 일어난 사람은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李秉喆 회장은 매우 치밀한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鄭周永 회장은 무모한 모험가로 흔히 대비되곤 합니다. 만약 李秉喆 회장이 치밀하기만 하고 결단력과 모험심이 없었거나, 鄭周永 회장이 무모한 모험심만 있고 치밀하지 못했다면 두 사람 다 오늘의 삼성과 現代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국가 경제 발전에 끼친 공로도 별것 아니었을 것입니다.
鄭회장의 「신화」에 빠질 수 없는 몇 대목이 모두 도박과 같은 모험과 배짱, 그리고 밀어붙이기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돈 500원짜리에 찍힌 거북선 그림을 가지고 영국 로이드은행 사람들을 설득시켜 거액의 차관을 빌어왔다거나, 서산간척지 공사의 최종 물막이공사 때 낡은 유조선을 들이대어 성공시킨 일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으로 신화를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 이면에는 무서울 만큼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바로 보지 않고 신화 같은 얘기에만 매달리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차관을 빌거나 공사를 따거나, 또는 공사를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정주영 또한 이병철처럼 합리경영으로 성공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합리경영이란 게 관료적 무사안일이 아니고, 과학적 타당성을 확실히 한 바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모험을 하는 태도이다. 예컨대 철구조물을 바지선으로 중동까지 끌고 간 것도 다 계산이 있었다.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소요되는 철구조물을 울산에서 제작하여 바지선으로 중동까지 끌고 간 일은 밖에서 보기에는 분명 모험이었고, 바보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그토록 위험한 수송작전을 감행하면서 鄭회장의 현대건설은 위험에 따른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鄭회장을 비롯한 현대건설 사람들이 모두 미쳤기 때문이었을까요? 반대입니다.
당시 우리는 보험에 들지 않아도 된다는 치밀한 계산과 구상을 했습니다. 울산에서 바지선으로 끌고간 철구조물들은 그 부피가 산 같았습니다. 남지나해와 인도양 등 험한 바다 위로 거대한 산을 끌고 가면서,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수십 번에 걸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바보짓인데 보험조차 들지 않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철구조물은 거대하지만 직경 1m가 넘는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양쪽 끝부분은 모두 막혀 있으므로 배가 침몰하여 물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鄭회장의 참모들은 계산했습니다. 필리핀 앞바다는 계절풍이 불면 아주 위험한데 수송작전은 계절풍을 피해서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태풍에 의한 조난을 각오해야 할 텐데 그 경우 철구조물이 海流(해류)를 타고 어디까지 흘러가서 멈출 것인가를 계산해 보니 대만해협으로 떠내려갈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요. 그렇다면 비싼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는 조난당해도 건져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시간도 덜 소요되어 중동 공사를 차질 없이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최종 판단과 각오는 鄭회장의 몫이었지요."

1992년 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신문이 <정주영 회장은 하루 네 시간씩만 자고도 정력적으로 뛴다>는 요지의 보도를 하였다. 한 측근이 그 신문을 鄭 회장에게 보여주었다. 鄭 회장이 기사를 읽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여섯 시간은 자야 일이 되는 사람이에요.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잔다는 자는 病者(병자)가 아니면 사기꾼입니다. 그런 자와는 절대로 동업하면 안 됩니다."
鄭회장은 모자라는 잠은 車中에서 보충하였다고 한다. 차만 타면 1분 안에 단잠에 들었다. 한 측근이 그 비결을 물었더니 鄭회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차창 밖 경치는 매일 보는 건데 그걸 왜 또 봐요? 눈을 감고 잠이나 자 두는 게 낫지."
흔히 나폴레옹이 하루에 네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평소에는 하루 8시간씩 충분히 잠을 잤다. 일찍 일어나면 측근들로부터 정보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명령을 구술하곤 했다. 그는 하루 평균 15통의 명령을 구술했다. 아침에 집중적으로 일을 했다. 다만 전투중일 때는 잠을 줄였다고 한다.
잠 안 자면서 일한다는 사람처럼 미련한 인간은 없다. 밤에는 잠을 안 자고 일하지만 모자라는 잠을 낮에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잠이 모자라면 心身(심신)이 피로하여 정상적인 思考(사고)와 업무를 할 수가 없다. 알고보면, 鄭周永이나 李秉喆의 생애엔 神話(신화)가 없다. 일하는 재미, 애국심과 합리성이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다른 듯하지만 공통점이 더 많다. 모든 성공의 일반적 조건은 인간에 대한 이해, 애국심이나 호기심 같은 열정, 합리성, 그리고 運(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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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극단 창단 50주년 기념 역사 기록극
정진수/ 작, 연출

「한강의 기적」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

때: 2013년 2월 13일 ~ 24(평일/ 7시 30분, 토/3시, 6시 일/3시)

곳: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한국공연예술센터 내)


<작품의 의도>

5.16 50주년이 되는 2011년을 맞아 박정희대통령 집권 18년간의 업적을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보고자 지난 해에 초연되었다. 비록 민주화에 역행한 그의 쿠데타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부정적 측면을 도외시 할 수 없으나 아시아에서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를 최단기간 내에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내었다는 것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위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한강의 기적은 흔히 말해져 오듯이 개발독재 시대에 박정희 개인의 리더쉽에 의해서만 이룩된 것이 아니라 이병철과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탁월한 기업가들의 창의적 발상과 헌신적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룩될 수 없었으며 여기에 우리 국민들의 근면과 열정이라는 저력이 또한 투여되었기에 가능했다.

흔히 개발독재 체제였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거나 이와 반대로 민주체제였다 해도 경제발전은 가능했을 것이라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으나 이 같은 일반론으로는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 독재건 민주건 체제의 문제에 앞서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특출한 개인이 존재했기에 기적은 일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엘리뜨 군인과 유능한 일군의 관료와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받은 근면한 국민들의 저력이 한데 모여 기적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77년 마침내 수출 100억불과 국민소득 1천불이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가 달성되었기에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벗어난” 우리 국민들의 민주화의 욕구가 화산처럼 분출되었으며 마침내 대한민국은 반세기도 채 안되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 유일의 국가로 등장하였으며 이 위업은 더구나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서 세계 최악의 유일 독재 체제인 북한의 끊임없는 안보 위협 속에서 이룩해 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의가 심대하다고 하겠다.

2011년 5.16 50주년을 기념하여 작년에 초연되었던 이 작품을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민중극단은 2010년 6. 25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연한 <6.25 전쟁과 이승만>에 이어서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 잡으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국민 대중에게 자긍심을 고취함과 동시에 건실하고 진취적인 국가관을 심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하여 이 공연을 2013년 올해 초 박근혜 새정부의 출범에 맞추어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의 첫 작품으로 재공연을 기획하였다.


<공연에 대하여>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이하는 민중극단은 지지난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극단 실험극장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창단된 동인제극단으로 지난 50년간 150여편을 공연하여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을 해오고 있는 극단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등 대중적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들 뿐 아니라 역사와 정치, 사회 문제를 파고든 작품들도 많다. 국내 최초로 브레히트를 소개한 <서푼짜리 오페라>를 위시하여 러시아 원전 사고를 다룬 <아, 체르노빌> 등 수많은 번역극 뿐 아니라 창작극들로서도 이현화의 <카덴자>, 이근삼의 <게사니>, 김의경의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이강백의 <칠산리>, 정진수의<아, 선각자여>와 작년에 공연된 역시 정진수의 <6.25전쟁과 이승만> 등이 대표적 예들이다.

이번 <한강의 기적> 또한 우리나라의 최근세사를 다룬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기록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장기간에 걸쳐 보다 많은 전국의 관객들에게 우리 역사를 바르게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자 기획하였으며 민중의 중진 단원들이 정예 앙상블을 구축하였으며 기록극답게 영상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사실감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번 재공연에는 초연 때의 출연진을 배가하여 모두 10명이 출연하도록 규모를 키워 보다 박진감을 살릴 수 있도록 보강하였고 서울 공연에 이어 전국 지방 주요도시를 순회하는 계획을 함께 세웠다.

<재공연 기획 의도>

-박근혜 새 정부가 오는 2월 25일 출범하기에 앞서 당선인은 인수위 개회 첫날 전체 인수위원 회의에서 당부의 말씀을 통해서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의 주요 국정 목표로 복지와 더불어 현재 세계의 경제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구축을 다짐했으며 모두가 다시 ‘잘 살아보세’의 꿈을 재현할 것을 호소했다. 이 공연은 바로 이와 같은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역사 기록극의 형식에 담아 많은 국민들에게 전파하고자 기획되었다.

<출연진>

박정희/ 박기산
이병철/ 이병술
정주영/ 조현건
해설 1/ 정한용
해설 2/ 장기용
김용완/ 박봉서
송요찬/ 최상규
김정렴/ 정병호
오원철/ 이덕근
손병두/ 장도순




‣민중극단 창단 50주년 기념 역사 기록극
「한강의 기적」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


정진수 작/연출




장 면/ (전 10 장)
1. 프롤로그
2. 투자명령
3. 통화개혁
4. 외자도입
5. 근대화의 길
6. 녹색혁명
7. 국방이냐 건설이냐
8. 유신시대
9. 수출 100억불
10. 에필로그


자막/ 1장: 프롤로그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배음으로 들리며)
배1-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전쟁과 혁명의 세기로 알려진 지난 20세기 초인 1910년대에 우리나라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 첫 해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이 암담하기만 했던 1910년대에 세 명의 아이가 차례로 태어났습니다.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바로 그 첫 해에 경상남도 의령에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병철이 그 첫째이고, 1915년 1차 세계대전이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던 그 해에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정주영이며 이태 뒤인 1917년, 20세기를 뒤흔든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발발한 해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역시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박정희란 아이가 혁명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습니다.
배2- 이 연극은 이 세 명의 아이들이 장성하여 때로 협력하고 때로 갈등하며 그 고난의
시기로부터 어떻게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한데로 끌어모아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나
라를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케 했는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흔히들 이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가 비약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의 개발독재 때문이라고도 하고 정반대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경제발전은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반론으로는 기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독재국가도 가난한 민주국가도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배1- 한강의 기적은 독재냐 민주냐 하는 체제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특출한 개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엘리뜨 군인과 유능한 관료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교육받은 국민들의 저력이 결집되었기 때문에 기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배2- 지금부터 보시게 될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수로 퇴장)


자막/ 2장: 투자명령. 1961년 6월 27일, 서울 퇴계로 참의원회관 내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사무실

(서울, 퇴계로 참의원 회관 내)
배1- 시간을 거슬러 지금부터 꼭 반세기 전 1961년 5월 16일 새벽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이 한강다리를 건너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부정축재 혐의로 기업인 열두 명을 구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축재 제1호로 지목된 이병철은 마침 동경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이병철은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6월 26일 자진해서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하네다 공항에서 귀국 행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그런데 그가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중앙정보부 이병희 서울 분실장에 의해 안내된 곳은 기업인들이 수감되어 있는 마포 형무소가 아니라 명동의 메트로호텔이었습니다. 이튿날, 불안한 밤을 지새운 그는 다시 퇴계로의 참의원 회관에 마련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사무실로 안내되었습니다.
(무대 밝아지면 군복에 권총을 찬 배2, 문을 열어 이를 안내한다)
배2- 이 사장님, 들어오시죠.
이- 여기가 어데죠? 왜 날 다른 기업인들이 갇혀있는 형무소로 데려가지 않는 거요?
배2- 먼저 만나실 분이 계십니다. 잠간만 기다리시죠.
(배1, 옆방의 문을 열면 군복 차림의 박 뒤따라, 등장)
박- (들어오며) 오시면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습니까? 나 박정희올씨다.
이- 아, 지는 이병철이라캅니다.
박- 이사장님은 잘 압니다. 앉으시죠. (먼저 앉는다. 배1 따라앉으며 기록할 준비를 한다. 배2는 입구 가까이 서 있다) 아시겠지만 우린 지금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구속했습니다. 이 분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사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이- ...글쎄요. 지 얘기를 들으시면 기분이 나쁘실텐데요.
박- 어떤 얘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기탄없이 솔직한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이- 이번에 부정축재자로 지목된 기업인들에게는 실상...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더.
박- ...탈세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거요?
이- 설사 죄가 된다케도 바로 작년 4. 19혁명 직후에 똑같은 죄목으로 저만해도 50억환이 넘는 추징금을 납부했는데 또다시 죄를 묻는 것도 납득할 수 없거니와 그때도 얘기했지만 이 세제 자체가 50년대 전시 비상체제하에 만들어진 것 아입니까. 법인세, 사업소득세, 물품세, 영업세 등 2중, 3중으로 세금을 물리도록 한 세제 자체에 모순이 있으며...
배1- 이보시오, 이 사장! (자리를 차고 일어선다)
박- 앉아. (배1, 앉는다) 미안합니다. 계속하시죠.
이- ...이것들을 다 합치면 세율이 수입의 120%가 넘는데 제대로 세금을 다 내고 살아날 기업이 있다면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십니더. 처벌에 앞서 먼저 세법부터 고쳐야 한다코 생각합니더.
박-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사람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이사장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78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도 꼴찝니다. 그런데 끼니를 거르는 기업인들은 없지 않소?
이- 마, 기업인들이 다 잘했다카는 건 아입니더. 지가 뭘 알겄습니까만도 이번에 1등에서 13등까지만 추려서 기업인들을 구속했다카는데 이건 잘못된 일입니더. 13등 아래로 떨어진 기업인들은 역량과 지혜가 모자라서 그리 된 거이지 결코 양보해서 그리 된 건아이지요. 기런데 사업 한답시고 원조 받은 돈 다 까묵고 은행융자 받아서 탕진한 사람들은 놔뚜고 더 열심히 기업을 운영한 사람들만 잡아넣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대이.
박- (자리에서 일어서며)...속 시원한 얘기 잘 들었소. 그러면 이사장 생각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요 며칠 사이에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들을 두루 만나봤지만 신통한 결론이 없었소.
이- 지는 그냥 기업하는 사람으로서의 짧은 소견이지만 기업인의 본분은 첫째도 둘째도 이윤을 많이 내야 한다고 봅니더.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세금도 내고 주식배당도 하고 이자도 물고 그리고도 남는 돈을 재투자해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 아이겠십니꺼. 정치나 경제도 다 같다고 생각합니더. 정부가 회사라면 세금 걷어서 국토방위도 하고 국민 교육도 시키고 도로, 항만 시설도 하고 공무원 봉급도 주는 거이 정부 경영아이겠십니꺼. 그러니 세금 내는 기업인들 다 처벌하면 경제할 사람이 없어지니 세수가 줄어들고 국가 운영이 타격받지 않겠십니꺼.
박- 그런데 이들 기업인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납득하겠소?
이- 국민을 납득시키는 거이 정치 아이겠습니꺼?
박- 나 역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벌금도 물리지 않고 무조건 기업인들을 풀어줄 수도 없지 않소?
이- 또다시 벌금을 물리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거입니더. 그건 혁명정부가 원하는 방향은 아이지 않습니까?
박- 그럼 이사장께서는 보다 좋은 방안이 있습니까?
이- 창졸간이라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서도 기업인들에게 벌금 대신에 공장을 짓게 하고 그 주식을 정부에 납부토록 하는 방안이 어떻겠습니꺼? 그라믄 기업인들에게는 시간을 벌게 하고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될 것 아이겠십니꺼.
박- 그것도 한 방법이겠군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곧 다시 만나서 더 긴 시간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킨 것은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충정 때문입니다. 이제 기업인들도 국가 경제 발전에 동참해주셔야 합니다.
이- 성의를 다 해 협조하겠십니더.
박-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그런데 거처가 어디십니까?
배2- 우선 명동의 메트로호텔에 모셨습니다.
박- (배우1을 돌아보며) 그래? 아니 그냥 댁으로 돌아가시도록 하지.
이- 지 혼자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십니더. 지금 형무소에 갇혀 있는 분들은 모두 지와 친분이 두터운 분들이신데 지만 집으로 간다면 나중에 그 분들을 뵐 면목이 없게 됩니더.
박-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우리가 의논해서 조속히 처리할테니 오늘은 그냥 호텔로 돌아가 계시죠.
이- 그럼 이만 실례하겠십니더.
(이, 퇴장. 배2, 문을 열어주고 함께 퇴장)
배1- 각하, 이병철사장을 그냥 풀어주시면 안됩니다. 어떻하든 처벌은 해야 합니다.
박- 임자, 진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은 빽써서 출세한 놈들, 병역기피자, 졸업장 위조해 먹는 놈들에다 깡패짓하고 휘발유 빼먹는 놈들, 이런 놈들부터 쓸어버려야 해. 그런데 기업인들까지 다 잡아가두면 이 나라 경제는 누가 맡아서 하냐 말야. 이들 기업인들의 경험과 지혜를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드럼통을 두드려서 뭐라도 만들어 본 사람들 아닌가. 그만치 정신 차리게 했으면 이제부터 국가경제 부흥에 앞장서게 해야지.
배1- 그렇다고 그냥 저들을 풀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박- 투자명령을 내려서 기업인들로 하여금 공장을 지어서 국가에 헌납토록 하면 되.
배1- 투자...명령요? 그런 법규가 있습니까?
박- 없나?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되. 조국근대화의 대열에서 기업인들을 빼놔서 되겠어?
배1- 그런데 각하, 그 근대화가 뭘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박- 나도 잘 몰라. 이론은 복잡해. 쉽게 말하면 농업사회를 뜯어고쳐서 공업화를 추진한다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이미 백년전에 산업혁명을 이룩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우린 과감하게 순서를 바꾸어서 공업화를 먼저 하고 대기업에서부터 출발하여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야 해. 우리나라 인구가 3천만인데 농사만 지어서 어떻게 먹여살리냐구. 공장을 많이 지어서 농업인구를 공장으로 끌어들여야지. 농업 인구가 줄면 1인당 경작 면적이 늘어나서 농업도 발전할 수 있어.
배1- 허지만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는데 어떻게 공장을 만들어 가동시킵니까?
박- 원자재는 외국에서 수입하고 기술은 도둑질이라도 해서 열심히 배워야지.
배1- 돈은요? 자본이 있어야 공장을 지을 것 아닙니까?
박- 돈. 그래 돈이 문제야. 언제까지 미국 원조만 받아서 나라 살림을 꾸려가냐 말야.
배1- 저희들한테 상의도 하지 않고 혁명을 일으켰다고 그나마 줄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 그러니 말야. 임자가 아이디어를 좀 내보라구. 당장 돈이 있어야 뭘 하든 할 것 아냐.
배1- 각하,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박- 그게 뭐야?
배1- 통화개혁을 해야 합니다.
박- 통화개혁? 화폐개혁말야?
배1- 우선 숨겨진 내자를 동원해서라도 다급한 경제개발 자금은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박- 그거 섣불리 건드렸다가 혼란만 자초하지 않을까?
배1- 한다면 극비리에 최단기간에 추진해야 합니다.
박- 글쎄, 신중하게 한번 연구해 봐. 그보다 말야,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 일본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지 않으냐 말야.
배1- 일본요? 지금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있는데 어떻게 일본과 국교를 맺을 수 있습니까?
박- 이봐, 지금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되있어? 똥오줌도 못가리고 있는 주제에.
(전화벨 울린다)
배1- 유원식입니다.
소리- 나 김종필인데 각하 바꿔줘.
배1- 잠간만요. 각하, 정보붑니다.
박- 아, 나야..
소리- 각하, 방금 전원 구속시켰습니다.
박- 마흔 세 명 다 잡아넣었다구?
소리- 네. 장도영은 어떻게 할까요?
박- 장도영은 놔둬. 그냥 자택 연금만 시켜두라니까.
소리- 알겠습니다. 발표문도 만들어놨습니다.
박- 알았어. 곧 갈게. 따라와. (배1과 함께 퇴장. 배1)

자막/ 3장: 통화개혁

배2- 이로부터 나흘 뒤인 7월 3일 장도영 이하 44인의 혁명정부 요인들을 박정희 암살기도와 반혁명음모 혐의로 체포, 구금하였으며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송요찬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 개편을 단행하였습니다.
한편 구속되었던 기업인들은 전원 석방되었으며 이병철을 필두로 한 13인의 경제인들은 자발적으로 경제재건촉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혁명정부의 경제 건설에 적극 동참키로 결의했으며 향후 활동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이병철은 7월 17일 한남동 모처에서 송요찬 내각수반을 만났습니다.
(서울, 한남동 음식점. 이, 서류묶음을 들고 하수에서 등장. 배2, 입구에서 맞이 한다)
배2- 들어오시죠.
송- 아, 이 사장님, 어서 앉으시죠.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이- 마, 수고랄 게 있십니꺼? 우리 경제인들도 마땅히 경제부흥에 동참해야지예. 이번에 풀려난 우리 열세사람이 앞장서서 경제재건촉진위원회를 결성키로 했십니더.
송- 잘 하셨습니다.
이- 그란데 논의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업인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와 모두 20명으로 불어났십니더. 그래서 단체 이름도 한국경제인협회로 내걸기로 했십니더.
송- 아, 예, 가급적 많은 경제인들이 참여할수록 좋지요.
배2- (합석하며) 창립총회 날짜는 정하셨습니까?
이- 내달 중에 하기로 하고 아직 날자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배2- 정해지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이- 아, 예, 물론이죠. 아시겠지만 이번 모임은 처음이 아입니더. 올 봄 장면 정권 말에도 경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한국경제협의회를 결성하고 태백산 종합개발계획도 세우고 긴급 구호양식도 모으고 시국안정자금도 만들려고 안 했십니꺼.
송- 네. 그런 적이 있었죠.
이- 따라서 이번 모임이 세간에서 잘못 알고 있듯이 마치 경제인들이 혁명정부의 강압에
의해서 만든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은 심히 유감입니더.
배2- 이보시오, 이 사장님, 오해라면 우리 군인들이 몇 배는 더 받고 있습니다. 오직 정권욕에 눈이 멀어 혁명을 일으켰다는 소린 아마도 죽을때까지, 아니 영원히 들을 것 같습니다.
이- 그래서 말이지예, 우리 경제인들의 활동에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해달라는 거입니더.
송- 좋습니다. 보장하겠습니다. 그러면 각 기업의 투자는 누가 결정하죠?
이- 정부는 원칙만 제시하고 부문별 투자 주체는 개별 기업에 맡겨주시소.
송- 알겠습니다. 정부에서는 이 사장님의 건의를 참고해서 종합경제재건계획을 수립하여 비료, 시멘트, 제철 등 일곱 개 기간산업 건설계획을 최고회의에 제출했습니다. 어느 기업이 어떤 산업을 맡느냐는 업종 선정은 경제인협회에서 잘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감사합니더. 그라고 이건 저희 경제인협회에서 마 여러차례 논의해서 만든 울산공업센터 조성에 관한 건의서인데 의장 각하께 잘 좀 말씀드려 주시소.
(건의서를 배2에게 건넨다. 배1, 이를 배1에게 건넨다)
송- 그 일로 여러번 울산을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굳이 지역적으로 가장 낙후된 울산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죠?
이- 많십니더. 말씀하신대로 낙후된 지역이다 보이 무엇보다 용지 매입 비용이 저렴할 뿐 아이라 수심이 깊어갔고 4만톤급 선박까지 접안할 수 있는 항만 조건도 갖추었이며 시내를 관통하는 태화강에서 풍부한 공업용수를 조달할 수 있고 또 경부철도가 지나는데다가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보상의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아입니꺼.
송- 말씀들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공업센터라는 것이 여러 공장이 한 지역에 한꺼번에 들어서는 공업단지라고 하는데 이 단지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말이죠.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지역 편중이다 특혜다란 말도 나오고 있어서 말입니다.
이- 예. 우리나라엔 처음 도입되는 방식입니더. 서로 연관성이 있는 공장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물류비를 포함하여 비용 절감 뿐 아니라 여러모로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더.
송- 이해는 갑니다만...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자금 조달인데... 아시다시피 현재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고작 1억 3천만불인데 이것 가지고는 제철공장 하나도 제대로 지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맞십니더. 방법은 외자도입밖엔 없십니더.
송- ...외자도입이 뭡니까?
배2- 차관말입니까?
이- 예, 맞십니더. 쉽게 말하면 외국에서 돈을 꾸어오는 깁니더.
배2- 우리나라는 여태껏 미국 원조 받아서 살아온 나라인데 누가 우리한테 돈을 꿔주겠습니까?
이- 쉬운 일은 아입니더. 그러나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고 장래성 있는 사업계획을 맹글어 갖고 잘 설득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울산공업센터 조성 방안이 나온깁니더. 향후 10년간 적어도 20억 불의 투자액이 필요한데 10억 불은 세계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의 공공차관으로 마 조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고 한 3억 불 정도는 해외 민간 차관으로 조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십니더.
송- 그래요? 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도 6, 7억 불이 부족하지 않나요?
이- 마, 그건...대단히 정치적인 문제입니다만 앞으로 한일회담이 잘 풀리면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충당이 될 수 있지 않겠십니꺼? 이번에 각하께서 미국을 처음 방문하시는 걸로 아는데 먼저 일본에 들러서 이케다 수상을 만나시면 한일간에 물꼬가 트지 않겠십니까? 대일 관계라면 지도 막후에서 웬만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만서도.
송- ...하여튼 의장 각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외자 도입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그래서 저희들끼리 의논한 결과 당장 외자도입 교섭을 위해 조별로 나누어서 해외로 차관 교섭을 떠나기로 했십니더. 미주 쪽은 지가 인솔 책임을 맡고 구라파 쪽은 이정림 사장이 단장을 맡기로 했십니더. 내 달 경제인협회 창립 총회를 마친 뒤 곧 떠나도록 하겠십니더.
송- 계속 수고 많이 해주십시오.
이- 정부에서 장단을 잘 좀 맞춰주셔야 소리가 잘 나올깁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 안캅니까.
송- (웃으며) 잘 알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일어나실까요?
(송, 하수로 퇴장. 이, 뒤따르자 배2가 막아서며)
배2- 저, 이회장님.
이- 예.
배2- 요즘 의장 각하를 자주 뵙는 걸로 아는데 앞으로는 저희 중앙정보부에도 미리 귀띰이라도 좀 해주시죠.
이- 무슨 말씀인지?
배2- 이번 경제협의회 건만 해도 각하께서 물으시는데 저희가 뭘 알아야 대답을 할 것 아닙니까.
이- 아, 예. 저희도 워낙 서둘러 준비하다보니...앞으론 자주 의논드리죠.
배2- 부탁합니다. 그럼 살펴 가시죠.
(이, 퇴장. 배2, 안경을 쓴 뒤 관객을 향해)
배1- 8월 16일 창립총회에서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병철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장파이던 현대건설의 정주영을 비롯하여 여기서 제외된 경제인들이 반발하고 나서 별도의 경제단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재계 원로들이 중재에 나서 마침내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한국경제인협회로 통합키로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줄여서 전경련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배2- 해가 바뀌면서 1월 1일을 기하여 정부는 연호를 단기 4295년에서 서기 1962년으로 바꾸고 이어서 울산공업단지 조성을 포함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숨가쁜 근대화의 물기둥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한달여만인 2월 2일 박정희의장과 이병철회장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가 도착한 울산공업지구 기공식 현장의 허허벌판에서는 5천년만에 처음으로 공업근대화의 굉음과 함성이 울려퍼졌습니다.
배1- 그리고 3월 24일 윤보선 대통령이 하야 하고 박정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근대화의 최일선에 선 박정희의 리더쉽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6월 9일, 외자도입이 원활치 못하자 숨겨진 내자를 동원해서라도 산업자본을 만들기 위하여 종전의 화폐단위인 환을 원으로 바꾸는 통화개혁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었습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박, 등장)
박- 그래, 지금 상황이 어떤가?
배2- 전국의 은행창구마다 대 혼란이 빚어지고 있으며 대외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 그래? 일시적 충격은 좀 있겠지. 이병철회장 도착했나?
배2- 조금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 그럼 들어오시라고 해.
(배2, 문 열어 이를 안내한다)
박- 아, 이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 안녕하셨십니꺼?
박- 어젯밤 방송 들으셨지요?
이- 예.
박-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큰 혼란에 빠질 깁니더.
박- 그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경제건설을 하자면 외자도입만으로는 충당이 어려운 실정이오. 이회장께서 애쓰신 덕분에 지난 봄에 28명이나 되는 미국 실업인단이 울산 공업지구 시찰을 마치고 돌아갔지만 아직도 뚜렸한 성과가 없지 않소.
이- 그러나 화폐개혁은 극약처방이라고 생각합니더. 신 화폐로 교환하기 위해 매일 수백만명이 은행 창구에 줄을 서면 그 원성이 모두 정부에 돌아갈 깁니더. 이건 국민경제적으로도 에너지 낭비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화폐개혁이 성공한 예가 없십니더.
배2- 독일은 성공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이- 서독은 2차대전후에 인플레가 워낙 심해서 부득이 단행한 것일 뿐 성공이다 실패다카는 말은 하지 않십니더.
배2- 아직 두고 보아야겠으나 국내 거주 화교들이 전체 통화량의 3분의 1을 주무르고 있다고 하며 또 소문난 알부자들이 숨겨논 현찰까지 합치면 1천억환은 훨씬 넘을 것으로들 보던데요.
이- 그건 소문일 뿐입니더. 지금처럼 인플레가 심한데 누가 현찰을 그렇게 많이 숨겨두겠십니꺼? 지부터도 대부분 여유 자금은 은행에 넣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은행 예치금의 활용 권한은 은행에 있지 않십니꺼.
박- ....진작 기업인들 얘기도 들을 걸 그랬군요. 워낙 극비리에 추진해 온 일이라서 미리 의논드리지 못했소. 그래, 이회장께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이- 지금이라도 예금 동결을 해제해야 한다꼬 봅니더.
박- 그러면 정치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치 않을까요?
이- 전면 해제가 어려우면 기술적으로 풀어가는 도리밖에 없지예.
박- 하여튼 좀 더 상황을 보도록 하죠. 그리고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초에 발표했는데 이회장께서는 검토해 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 노력하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봅니더.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를 좀 더 뚜렷하게 내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서도...
박- 무슨 뜻이죠?
이- 이번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수출을 많이 늘려서 가능한 외화를 많이 벌어오자는 거 아이겠십니꺼.
박- 물론입니다.
이- 지도 그동안 설탕, 면직 등 수입대체 산업 위주로 사업을 해왔지만서도 앞으로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수출 위주의 제조업을 적극 개발해야 할끼라고 생각합니더. 장차 우리나라가 살 길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밖엔 없다고 봅니더.
박-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 그라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출산업진흥계획으로 바꾸어 부르면 좀 더 목표가 뚜렷하게 들어나지 않겠십니꺼.
박- 아, 대단히 좋은 생각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친 김에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구호를 내걸고 매달 수출 현황 보고회도 열고 매년 수출의 날도 정하여 실적이 높은 기업에 포상을 하는 등 수출 제일주의로 나가야겠습니다. (배2을 향해) 그럴게 아니라 지금 곧 상공장관 들어오라고 해.
배2- 알겠습니다. (퇴장)
박- 뭐 또 좋은 의견 없으십니까?
이- 기런데 이번 계획에서 국방예산을 동결하셨는데 그 부분이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십니더.
박- 동결이 아니라 자연증가분만 반영한 것이죠.
이- 마 지 생각에는 군부가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는데도 국방예산을 늘리지 않았다카는 점이 특이하게 생각되어서예.
박- 한 푼이라도 아껴서 공업 발전에 써야지요. 돈이 없어서 통화개혁까지 하자는 판에.
이- 허지만 각하, 북한 군사력이 막강한데 최소한의 대비책은 세워야 하지 않겠십니꺼.
박- 그 점은 염려 안 해도 될 겁니다. 당분간은 미국이 우리 국방을 책임져줄 거니까요. 이승만대통령이 잘 못한 것도 많지만 잘 한 것도 많아요. 휴전 직후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뺐다시피 해서 체결했잖습니까. 미군이 휴전선 코앞에 주둔하고 있는 한은 북한이 도발은 꿈도 못 꿀 겁니다. 그러니 미군이 우리 국방을 대신해주고 있는 동안에 우린 한시바삐 경제발전에 전력을 쏟아부어야죠. 문제는 정치, 사회가 안정되어야 할텐데.
이- 민정이양을 하고나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나아지지 않겠십니꺼?
박-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헌법도 개정해야 하고 정당도 만들어야 하고 또
대선과 총선까지 두 번의 선거를 치르려면 국력의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이- 허지만서도 그런 거이 바로 정치아이겠습니꺼.
박- 나도 정치를 처음 해봐서 잘 모르지만 정치란 국민을 잘 살게 만들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수단이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니 목적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이- 마상에서 천하를 잡을 수는 있어도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십니꺼.
박- 명언이로군요. (둘, 함께 웃는다)
이- (독백) 정치의 혼미 속에 지도자는 방황하고 경제는 불안하고 사회가 혼란하니 이 나라가 장차 어이 될 것인가?
박- (독백) 통화개혁은 완전 실패야! 말이 좋아 내자 동원이지 자력갱생이란 헛소리야. 대외개방 노선으로 나가야 되! 수출만이 살 길이야! 경제팀을 완전히 바꿔야 돼. 어떻게 해서든 기업인들을 앞장 세워야 해.

자막/ 4장: 외자도입

배2- (관객에게) 여기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한참 시간을 건너뛰어 1964년 초여름으로 넘어갑니다. 이때 이병철은 중앙정보부의 막후 공작으로 임기 1년을 갓 넘기고 전경련 회장직에서 밀려난 이후였습니다.
박- 기업인이 부럽습니다. 남의 간섭 안 받고 내 맘대로 하는 게 기업 아닌가요?
이- 허구헌날 정치판 눈치나 보아야 하는 기업인이 부러우시다뇨.
박- 그러시다면 직접 정치판에 나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 지는 전혀 그럴만한 재목이 아입니더.
박- 그러나 내 기업만 잘 된다고 나라가 잘 되는 건 아니잖소? 나라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뜻으로 정계 진출을 한번 고려해보시죠.
이- 나라를 위한 봉사라면 지는 정치보다는 언론 쪽에 관심이 더 많십니더.
박- 언론이라구요?
이- 현대사회에서 언론이야말로 국민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막대한데 요즘 언론은 지 사
명을 충실히 다 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더.
박-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이- 그래서 지는 기회가 닿으면 언론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십니더. 우선 라디오부터시작해서 신문과 TV방송을 해볼까 생각중입니더.
박- 이 회장께서 하신다면 적극 돕겠습니다.
이- 감사합니더.
박- 그 대신 이회장께서도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무엇이지예?
박- 경제개발 계획에 발맞추어 지금 모든 기업들이 다투어서 공장 건설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고 있는데 유독 국내 1등 기업인 삼성만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유감입니다. 더구나 삼성은 그동안 소비재 산업만 키워왔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데 이럴 때에 기간 산업 발전에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그건 각하께서 오해를 하신 깁니더.
박- 오해라구요?
이- 지로 말하면 바로 직전까지 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았던 사람인데 우리 회원사들이 다투어서 서로 유리한 사업을 하겠다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지마저 선뜻 뛰어들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십니더.
박-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계시겠습니까?
이- 그건 아입니더. 지도 울산에 석유화학공장을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해 오고 있지만서도 이거이 규모가 워낙 큰 장치산업이다 보이 부지 확보에서부터 사업성 검토에 시간이 마이 걸립니더.
박- 이 회장께서는 매우 빈틈없고 치밀한 사업가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젠 좀 나서주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오늘 뵙자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하시지예.
박- 지금 우리나라에 시급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다보니 농업생산성 향상이 아주 다급한 과제입니다. 이 회장께서 우선 급한대로 농약공장을 맡아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농약공장이라면 지도 검토는 해봤습니다만서도 그 정도 사업규모라면 굳이 삼성이 나설 까닭은 없다고 봅니더.
박- 농약공장이 성에 안차신다면 그럼 비료공장은 어떠십니까?
이- ...그건 마 지로서는 역부족이라서...
박- 이 회장께선 정부에 협조할 의사가 없으신가요?
이- 전혀 그런 뜻이 아입니더. 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비료공장이라면 지가 과거에도 자유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까지 두 차례나 시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 지로서는 한이 맺혀 있는 사업입니더.
박- 이번 기회에 맺힌 한을 풀어보시죠.
이- 그러나 이 비료공장은 지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업이 아입니더. 넘어야 할 산이 한두개가 아입니더. 행정부 전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여도 될동말동한 사업인만큼...
박- 알겠습니다. 내 당장 장기영부총리를 불러서 최대한 협조해드리도록 하죠.
이-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금 조달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동안 일본의 미쓰이물산과 이런 저런 사업관계로 차관 교섭을 해보았습니다만서도 설사 성사된다케도 차관제공액의 80%는 일본 수출입은행의 융자로 조달키로 되어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는 일본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며 승인을 얻으려면 그 전에 먼저 한일 국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더.
박- 한일 국교 문제는 단지 청구권 자금이나 외자조달의 차원을 떠나서 동북아의 안보 질서 확립을 위해서도 조속히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한시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이- 그러나 국민들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지 않습니까.
박- 그 문제는 내게 맡기시오. 그럼 수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조명, 암전되면 이, 퇴장하며 박,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다. 배2, 서류를 들고 들어와서 박에게 보이고 배석한다.)
배1- (관객에게) 전년도 헌법 개정을 거쳐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민주당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당선된 박정희의 제3공화국 정부는 출범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일회담 반대로 촉발된 전국적인 시위는 6. 3사태를 일으켜 전국은 비상계엄체제하에 돌입,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으나 박정희는 굴하지 않고 한일회담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본 조달을 위하여 그는 만난을 무릅썼습니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 아래 텅스텐, 중석, 무연탄에 오징어, 김, 면직물 등 고작 1차 산품었지만 내다 팔 수 있는 것들은 다 수출했으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9월에는 마침내 월남 파병을 결행했습니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한 푼이라도 아쉬운 외화획득도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해외 인력 진출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2월에 접어들어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으로 서독을 공식 방문한 길에 만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해가 다 저물은 1964년 12월 31일 밤 열시가 지나서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소리- 각하, 상공부 장관 전화입니다.
박- 아, 바꿔줘. (배2, 인터폰 수화기를 건네준다) 나 박정희야. 어떻게 됐어?
소리- (목소리) 각하! 박충훈 상공장관입니다. 방금 수출대금 1억2천만불이 입금 완료됐습니다. 이로써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출목표인 1억 1,750만불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무려 2년이나 앞당겨 달성했음을 보고드립니다! (배음으로 상공부 전 직원들의 목이 쉰 만세소리가 들린다)
박- 정말야?
소리- 네. 각하!
박- 수고들 했어. (전화를 끊고) 그래, 하면 되! 할 수 있어. 해 냈다구!
배2- 각하! 축하드립니다.
박- 임자.
배2- 네. 각하!
박- 우리 막걸리나 한 잔 하지.
배2- 네. 각하. ...저 각하, 사모님도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십니다.
박- 그래? 그럼 비서들도 다 데리고 들어와. (퇴장)
배2- 네. 각하. (퇴장)

5장/ 근대화의 길

배1- (관객에게) 이렇게 한 해가 저물고 이듬해 1965년 6월에 한일 국교 정상화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박정희를 만난 직후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던 이병철은 한국 비료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5년 9월에 드디어 미쓰이물산으로부터 우리나라 민간 차관으로는 최초로 4,390만불에 달하는 거액의 차관 도입을 승인받고 이어서 울산 공업단지 내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공장 건설을 끝낼 야심찬 계획을 맹렬히 추진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주영의 현대건설까지 참여한 이 공사가 완공 단계에 즈음한 1966년 9월 한비 임원이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사건이 도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박, 신문을 펴들고 하수로 등장. 배2, 뒤따른다)
박- 삼성의 이병철이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게 뭐야? 이거 벌써 지난 5월에 부사세관에서 적발되서 벌금 물리고 끝난 사건이잖아.
배2- 네, 각하. 이병철회장의 둘째 아들 이창희 한비 상무가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다 끝난 사건인데 이번에 정치권에서 고의적으로 터뜨린 것 같습니다.
박- 그런데 온 매스콤이 이 사건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배2- 이병철회장이 지난 5월에 중앙일보를 창간해서 언론 시장에 뛰어드니까 견제 심리가 작용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동아일보는 아예 총대를 멨습니다.
박- 하여튼 이렇게까지 확대될 사건이 아닌데. 그래 이병철 쪽에서는 뭐라고 해?
배2- 한비는 국가에 헌납키로 하고 남은 공사는 정부에서 맡아달라고 합니다.
박- (분노해서) 그걸 말이라고 해? 국가에 헌납하려면 마저 다 지어서 바치라고 해.
배2- 네, 각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박, 퇴장. 상수에 이병철 등장. 역시 신문을 펼쳐들고 있다.)
손- 회장님, 이건 정치적 모략입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됩니다. 우리도 매스콤을 동원해서 정면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 정면 대응해서 뭐할라꼬? 공장 짓고 나면 한비 주식 30% 내놓으라고 협박한 사람, 정치자금 뜯어간 정치인들 다 까발려서 우짤라꼬? 가만 있어도 알 사람들 다 안대이. 천하의 이병철이가 4천만불이 넘는 공장 지으면서 기껏 5만불짜리 사카린 원료 팔아묵으려고 밀수했다카는 게 말이 되나 말이다.
손- 그래도 이 일로 해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실 수는 없습니다.
이- 마, 쉴 때도 됐다. 남은 사업들은 큰 아들 맹희한테 맡기고 한비는 이대로 국가에 넘겨줘삐라.
손- 저, 그런데 회장님.
이- 기래.
손- 청와대에서는 한비 공장을 우리 보고 마저 다 지은 뒤에 국가에 헌납하라고 합니다.
이- 뭐라꼬? 다 지어바치라꼬! 박정희가 그랬단 말이가? 그 양반이 내한테 그럴 수 있나? 내가 사람 잘못 봤대이. 정치인은 절대로 믿지 말거래이. 삼성은 앞으로 절대로 정치판 근처에도 가서는 안된단카이!
(이, 퇴장)
배2- 이후 이병철과 박정희는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이때부터 박정희는 대형 국책사업에는 본인이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섰으며 민간 기업 파트너로는 현대건설의 정주영을 끌어들입니다. 1964년말 독일을 방문했을 때 박정희는 수풀이 우거진 그림 같은 농촌 마을 사이로 쭉 뻗은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시속 160킬로로 달리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헐벗은 내 나라 산촌이 푸르게 가꾸어질 때까지는 다시는 유럽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박정희는 1967년 11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합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박, 등장. 하수쪽 벽면에 게시된 남한 지도를 보며)

박- 정주영회장 들어오시라고 하지.
배2- 네. 각하. (문열어주면 정, 등장. 배2, 퇴장)
박- 정회장, 어서 오시오.
정- 각하, 부르셨습니까?
박- 그래, 소양댐 공사 준비는 잘 진척되고 있습니까?
정- 이제 거의 설계를 끝내고 장비와 자재 반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공기를 단
축하려고 합니다.
박- 그러다 날림공사 소린 나오지 않겠죠?
정- 철근 콘크리트라면 몰라도 모래와 자갈로 제방을 쌓는 사력댐 건설은 날림으로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박- 정회장 아니었으면 큰 일 날뻔 했소. 설계를 맡은 일본 공영 안대로 콘크리트 중력 댐으로 건설했다가는 비용도 문제지만 댐이 바로 휴전선 코앞인데 북괴놈들이 포탄을 쏘아댔다간 서울까지 물에 잠길번 하지 않았소.
정- 저희 현대건설이야 하청업자에 불과한데 무슨 힘이 있습니까. 각하께서 다행히 저희들이 제시한 설계 변경안을 채택해 주신 덕분입니다. 힘은 들어도 다 해놓으면 경비도 싸게 먹히지만 이북에서 제아무리 포탄을 쏘아도 끄떡 없을 겁니다.
박- 내가 포병장교 출신인데 그걸 모르겠소. 다만 소양댐은 홍수예방이나 용수 공급도 중요하지만 공장을 돌릴 전기가 모자라는데다가 지금 추진 중인 농어촌 전화사업을 위해서도 발전 용량이 제일 중요합니다. 농어촌 구석구석까지 전기가 들어가야 농민들의 생산 역량을 키울 수 있지 않겠소.
정- 각하, 염려마십시오. 적어도 20만 킬로와트는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뱍- 그런데 정회장, 이번에 현대가 미국 포드사와 합작해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실 계획이라죠?
정- 네. 포드사와 50대 50으로 합작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박- 나 역시 자동차 산업을 국가의 기간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선 3개년 정도로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말이오.
정- 그런데 각하, 지금 상공부에서 추진하는 엔진 주물공장 일원화 계획은 재고해야 합니다.
박- 정회장, 지금 자동차 회사는 신진 말고도 아세아, 기아산업에 이제 현대까지 여러 회사들이 난립해 있어서 회사마다 사양이 틀리니까 국산화율이 이제 고작 20%밖에 되질 않지 않소.
정- 각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20%이던 것은 신진자동차가 독점해서 조립, 시판했을 때이고 그 뒤에 여타 회사들이 가세하면서 오히려 국산화율이 지금은 38%까지 올라갔습니다. 시장경제 체제하에서는 기업들이 자유 경쟁을 통해서 상호 발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GM과 포드도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박- 정회장 말씀 참고하겠습니다. 내 오늘 정회장을 부른 건 그 일 때문이 아니오.
정- 그럼 무슨 일로...
박- 자동차 백날 만들어 봤자 도로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오? 그래서 내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할 생각이오.
정- 서울에서 막바로 부산까지 말씀입니까?
박- 이건 이번 나의 대통령선거 공약이잖소. 고속도로와 항만 건설 및 4대강 유역 개발이 모두 나의 대국토 건설계획에 담겨 있소.
정- 알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줄 압니다만 이렇게 빨리 추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은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라서...
박-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맡을 생각이오. 정회장은 잘 아시겠지만 이 고속도로 개발은 철도나 항만보다 투자효율이 높고 각종 산업의 발달과 지역개발 촉진은 물론 국민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사업이오. 또 이는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 사업이기 때문에 우리 자본, 우리 기술, 우리의 노력만으로 완수할 생각이오.
정- 만일 이 사업이 추진된다면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가 될 것입니다.
박- 정회장은 태국에서 이미 고속도로 공사를 해본 경험도 있지 않소?
정- 그땐 채 100킬로도 안됐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그 네 배가 넘지 않습니까.
박- 그때 큰 손해를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정- 수업료를 톡톡히 냈지요.
박- 그래서 말씀인데 이번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용을 산출해보니 부처마다 차이가 엄청납니다. 건설부, 재무부, 서울시 안이 다 틀리고 기획원은 아예 산출을 포기했는데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는 현대건설에서 한번 예산을 뽑아주시오.
정- 언제까지 해야죠?
박-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지도를 내밀며) 이건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노선도인데 참고하십시오.
정-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뽑아올리겠습니다.
박- 일단 공사가 시작되면 국내 건설업체들을 총 동원해도 어렵겠지만 정회장이 각별히 앞장 서주셔야겠습니다.
정-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 박, 퇴장)
배1- (관객에게)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에 고무된 박정희는 새로 발탁한 내각 부총리겸 기획원장관에 박충훈, 상공부장관에 김정렴을 앞세워 경부고속도로는 물론 포항제철과 울산석유화학 등 국내 기간산업 건설에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온 몸을 불살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널리 인구에 회자된 박태준사장의 포철신화는 굳이 이 자리에서 되풀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1968년 2월 총예산 429억원이 든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으며 4월에는 포항제철의 설립을 위한 대장정이 시작되던 그 해 여름, 이병철은 일본에서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는 2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경영일선 복귀와 더불어 신규로 전자산업 진출이라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병철은 태릉골프장에서 대통령을 만납니다. 한비사건 이후 대통령과의 독대는 처음입니다. 서먹해진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콜럼비아대 김완희박사의 자문을 통해 전자산업의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본 두 사람은 그만큼 서로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태릉골프장 클럽하우스. 박, 이, 등장. 배2, 막걸리 주전자와 사발을 테이블에 놓는다)
박- 자, 이회장, 이리 오셔서 막사 한잔 하십시다.
이- 아, 예. 긴데 막사가 멉니꺼?
박- 아, 이게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건데 운동하고 나서 마시기엔 그만입니다.
(박, 술을 따른다)
이- 감사합니더. (둘, 마신다) 시언하고 좋네예.
박- 오늘 시합에 졌으니 대신 내가 막걸리를 내는 거요.
이- 그래도 각하, 샷 감각이 아주 좋으신대예.
박- 내 이회장이 소개한 한상중프로한테 배워서 재미를 붙이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백 달러가 될 때까지는 골프를 안 칠 생각입니다.
이- 인자 150달러를 넘괐으이 머잖아 그리 될 깁니더.
배2- 각하, 승용차 편으로 가시겠습니까?
박- 아냐. 헬기 대기시켜. 고속도로 공사구간 둘러보고 갈 거야.
배2- 네. 알겠습니다. (쟁반 들고 퇴장)
박- 이회장께서는 근래에는 어디 용인에 농원을 가꾸시며 쉬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머리도 식힐 겸 주로 농장에 가 있기는 했습니다만서도 가보니까 이것 저것 오히려 일거리가 많십디더.
박- 어딜 가시건 그냥 쉬실 분이 아니죠. 그래, 농원에서 무슨 일을 주로 하십니까?
이- 원래 원예에 취미가 많아서 밤나무, 살구나무 등 유실수 단지를 가꾸다 보니 장차 대체 식량 자원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느꼈십니더. 쌀 농사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라고 무엇보다도 헐벗은 산야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지 않십니꺼.
박-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유럽에 가서 울창한 숲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재임 중에 어떻해서든 딴 건 못해도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사업만큼은 반드시 해내야겠다고 마음 먹고 산림청을 독립시켜서 공무원들을 닦달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이 회장께서 혹시 무슨 비법이라도 없으십니까?
이- 비법은 없십니더. 방법은 하나밖에 없십니더.
박- 그래, 그게 무엇이죠?
이- 입산금지를 시키는 방법밖엔 없십니더.
박- .입산금지라구요?..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요. (둘, 함께 웃는다) 그런데 이회장께서 이제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셔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이미 보고를 받으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지가 이번에 삼성전자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어서 일본의 산요전기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자 합니더.
박- 김완희박사한테서 얘기 들었습니다. 두 분이 만나셨다죠?
이- 김박사님은 여러 차례 뵙고 많은 조언을 받았십니더.
박- 아시다시피 군소업체들까지 합치면 이미 59개 업체들이 난립해 있는데 모두가 그저 외국 기술을 들여다가 조립 생산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김박사 말씀대로 전자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삼성 같은 큰 기업이 맡아주는 게 옳다고 봅니다만 그런데 삼성이 일본회사와 합작을 한다면 역시 기술 개발이 아니라 기술 도입에 그치는 것 아닙니까?
이- 각하, 이 전자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래 산업입니더. 값싼 모래를 원료로 한 실리콘 칩에서 TV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부가가치 99%의 산업이며 노동력, 내수, 수출 등 우리 경제 상황에 가장 알맞은 사업입니더. 현재의 조립 생산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더. 다만 기술만은 우선 합작으로 시작한다케도 최단시일 내에 원천 기술을 확보할 깁니더.
박- 조그만 트랜지스터를 손가방 하나 가득 채우기만 해도 몇 만불이나 하는데 언제까지 섬유 같은 면직물만 수출하고 앉았을 수는 없지요. 이 회장 뜻은 잘 알겠소만 기존 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우선 금성사부터 앞장 서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상공부에서도 난색을 표하는데다가 언론에서도 부정적 여론을 펴고 있지 않소.
이- 저희는 내수 시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수출을 목적으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정부에서 꼭 합작 투자 승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더. 당장은 기존 업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오히려 경쟁을 통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더. 전자산업의 육성은 지금 이 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깁니더.
박- 나 역시 전자공업의 육성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압니다. 그래서 지금 구미에 전자공업단지 건설에 착수했으며 오죽하면 내 큰 딸 아이도 내년에 대학을 가는데 김완희박사를 만나고 나더니 전자공학과에 입학할 생각이라오.
이- 큰 따님이요?
박- 집사람은 역사학과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도 첨단과학 분야에 진출할 때가 되지 않았소. 그동안 김박사로부터 강의를 좀 들었소만 워낙 기술 혁신이 빨라 이게 크래이지 비지네스라고 하던데 삼성이 한다면 섯불리 하지는 않겠죠.
이- 욕심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최선을 다 해서 잘 해보겠습니다.
박- 정부에서도 전자공업육성을 위한 8개년 계획을 추진 중인데 만약 삼성에서 전량 수출을 한다는 조건으로 해서라도 해보시겠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지시하겠소만.
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 그 대신 이 회장께서도 내 청을 하나 들어주셔야겠습니다.
이- 말씀하시죠.
박-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 단계로 보아 이제부터는 전자산업을 비롯한 중화학공업 분야를 개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국책사업으로 포항제철과 울산 석유화학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민간기업에서도 적극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삼성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주셔야 할텐데 이 회장께서 조선 사업을 맡아주시겠습니까?
이- 조선사업이라면 제가 일본에 다니면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조만간에 사업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박- 꼭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실까요?
이- 예.
(박, 이, 퇴장)

자막/ 6장: 녹색 혁명

배2- 이렇게 해서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가 탄생합니다. 전량 수출 조건으로 일본과 합작 투자 승인을 얻은 삼성산요는 수원과 울주군에 1백만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에 들어간 이후 1978년도에는 오늘날의 삼성전자로 독립하고 흑백TV 4백만대를 생산하여 수출 1억불을 달성하며 그때 이미 이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탄생하던 1969년에서부터 71년 사이 국내 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3선 개헌반대 시위가 전국을 휩쓰는 가운데 국민투표가 강행되어 개헌이 통과되었으며 이어 대선과 총선을 치르는 동안에 북한은 전년도의 청와대 습격에 이어 미국의 푸에블로호 납치, 정보기 EC121기 격추, 무장 공비 침투 등 6. 25 이후 최고의 안보 위협 사건을 촉발시켰습니다.
이 와중에 박정희는 내각 개편을 단행하면서 부총리겸 기획원장관에 김학렬, 재무부장관에 남덕우, 청와대 비서실장에 직전 상공부장관이던 김정렴 등 역대 최상의 경제팀을 꾸렸습니다.
(서부전선. 기관총 사격 소리에 이어 헬리콥터 비행 중 추락하는 소음. 야전 점퍼 차림의 박, 등장하며 망원경으로 둘러 본다)
렴- 미 2사단은 지금 발칵 뒤집힌 모양입니다.
박- 오끼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공수부대는 차질 없이 훈련에 참가한대?
렴- 현재로서는 훈련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합니다. (야전 점퍼 차림으로 등장) 각하, 유재흥 국방장관 오셨습니다.
상- 각하, 지금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습니다.
박- 그래, 미군 헬리콥터는 어떻하다 떨어졌대?
상-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미군 부상병들을 수송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이번엔 북괴놈들의 도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 그래? 피해 상황은 어때?
상- 일곱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됬습니다.
박- 멍청한 놈들, 하필 훈련 중에 사고가 날게 뭐야. 그나 저나 서부전선 미 2사단 전방에서 총격 사건이 벌써 요 근래 세 번째 아냐. 이번엔 군사분계선 표지판 교체 작업을 하던 미군 17명을 향해서 고의적으로 기관총과 소총 사격을 해댄 건 단순한 도발이 아냐.
상- 각하, 본스틸 유엔군 사령관하고 포터 미국 대사는 지금 현장 시찰을 마치고 오후 2시까지 오기로 했습니다.
박- 알았어. 좀 더 둘러보고 내려갈게.
상- 각하, 점심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 국수나 한그릇 줘.
상- 알겠습니다. 돌아가 있겠습니다. (퇴장)
렴- 지금 포커스 레티나 공수작전 훈련 기간을 노리고 북괴가 의도적으로 미군을 자극해서 주한 미군 철수를 부채질 하는 것 아닙니까?
박- 그러니까 만약 김일성이 또 남침을 해오면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서부전선에서 미군을 빼는 일야.
렴- 전쟁이 났는데 왜 미군을 뺍니까?
박- 아냐, 빼야돼. 미군을 빼지 않으면 미군 병사들이 뻣뻣이 서서 총을 쏘다가 쓰러질 꺼 야. 그러면 미국 TV, 신문기자들이 그 참상을 낱낱이 보도할텐데 그리되면 미 의회와 언론이 화전양면으로 갈려 전쟁 개입여부에 대한 결정이 늦어진다구. 이를 예방키 위해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을 철수시키고 38선 전역을 우리가 맡아야 해. 저놈들은 평소 공격 태세를 완비했으니 첫 일주일은 우리가 밀릴 거야. 그러나 그 뒤 반격해서 밀고 올라가 면 미국은 “역시 코리아는 다르다. 베트남과는 달리 자력으로 싸우려 한다. 이런 우방 을 도와야 한다”라며 공군과 병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야. 육상 전투는 전적으로 우 리가 맡고 미국에 기대할 것은 해 공군과 병참 밖에 없어.
렴- 각하, 이건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위급한 국가안보 시기에 만약 저같이 군 사 문제에 문외한인 민간인이 대통령을 맡고 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합 니다.
박- 임자, 그 반대의 경우는 더 심각해. 군대만 알고 경제를 모르면 어떻게 되겠어? 그래서 임자를 청와대로 불러온 거야. 그래, 이제 좀 대강 업무를 파악했어?
렴- 각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비서실장 감이 못됩니다. 경제만 겨우 좀 알 뿐인데...
박- 임자, 지금 국내외 정세가 말야, 난 정치, 외교, 국방 일에만 몰두하기에도 벅차. 그
러니 경제는 임자가 알아서 잘 좀 챙겨줘야겠어.
렴- 전 재주가 없지만 김학렬부총리와 남덕우재무장관을 잘 받들어서 심부름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박- 심부름이 제일 어려운 거야. 어제 공화당 재정위원장 맡고 있는 김성곤이 다녀갔는데 시멘트업계가 과잉재고 문제로 극심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말야, 특별 융자라도 해달라는데 그럴 재원이 있나?
렴- 현재로서는 어렵겠는데요.
박- 한번 잘 좀 찾아봐.
렴- 부총리하고 의논해 보겠습니다.
박- 그래서 이 남아도는 시멘트를 정부가 대신 구입해서 부진한 새마을 가꾸기 운동에 돌려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보라구. 이걸 전국 농어촌 마을에 무상으로 나눠줘서 마을 공동사업에 유용하게 써보도록 하라는 거야.
렴- 전국의 마을이 3만개는 훨씬 넘을텐데요. 그 많은 데 다 나눠줍니까?
박- 처음엔 공평하게 다 나눠줘서 과연 마을 발전을 위해서 잘 썼는지 심사를 한 뒤에 실적이 우수한 마을들만을 선별해서 연차적으로 계속 지원해주겠다고 하면 경쟁적으로 더 열심히 마을 발전을 위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을까?
렴- 각하께서 지난번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주창하신 새마을운동의 실천 방안으로 우선 시행하기에 알맞은 사업인 것 같습니다.
박- 우리 농어민들이 5천년동안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살아왔는데 말야 이들에게 근면과 자조와 협동의 정신을 일깨워주면 머잖아 달라질 거야.
렴- 그렇게 오랫동안 몸에 베인 나태한 습성이 쉽게 고쳐질까요?
박-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사업으로 유도하면 달라질 거라구. 당장 소득이 오르는 게 눈에 보이면 달라지지 않겠어? 그동안 농약과 비료 문제는 해결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벼 품종도 개량하고 과학적인 영농기술을 보급해서 소득증대 사업을 펴나가도록 연구 좀 해봐.
렴- 네. 각하.
박- 그리고 농어촌만이 문제가 아냐. 전 국토를 종합적으로 들여다 봐야 해. 내 이번에 고속도로 건설을 구상하면서 더 절실히 느꼈는데 말야, 이거 산림청에만 맡겨서 될 일이 아냐.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66%가 임야로 되어 있잖아. 그런데 보라구. 온통 산들이 죄다 벌거숭이잖아. 이거야 말로 미래의 재산인데 산림녹화야 말로 국가적 과제라구. 이 새마을운동과 병행해서 조림 사업과 자연보호 운동을 함께 벌여나가야 해.
렴- 산림녹화 계획을 별도로 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박- 거 몇 년 해서 될 일이 아냐. 적어도 10개년 계획 정도로 짜보라구.
렴- 네. 각하.
박- 산림녹화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이 뭐냐구 물었더니 이병철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렴- 네?
박- 입산금지밖에 방법이 없다는 거야.
렴- 입산금지요?
박- 딴은 맞는 말이지.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렴-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박- 산림청을 당분간이라도 농림부에서 내무부로 이전 시켜야겠어. 경찰이 단속을 맡아야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겠어? 자, 그만 내려가지, 배고프다. (퇴장)
렴- (관객에게) 대선과 총선이 맛 물려 숨 가쁘게 돌아가고 국내외적으로 사면초가에 둘러싸여있는 와중에서도 박정희는 오늘날 제3세계의 귀감이 된 새마을운동 뿐 아니라 산림녹화사업에 이르기까지 먼 장래의 국가발전을 내다보는 사업에 혼신의 열정을 쏟았습니다. 임업통계에 의하면 남한 전체 임목 면적의 84%가 40년생 이하입니다. 곧 박정희 때 심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조림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지금도 푸르른 산하를 바라보며 박정희를 떠올립니다.
(퇴장)

자막/ 7장: 국방이냐 건설이냐

배1- (관객에게) 드디어 1970년, 5년만에 열배로 늘어난 수출 10억불이 달성되던 그 해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0월에는 그보다 두 배 가까운 예산을 들인 9개의 울산 석유화학 공장이 동시에 준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무렵 한국 경제의 성장세는 둔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년도 GNP 성장률만 해도 16%에서 9%로 반감했고 외채를 들여다 건설한 차관업체의 절반은 부실기업으로 판명이 났으며 외적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도시 빈민과 영세 농어민과 노동자들의 불만은 팽배해 가고 있었습니다.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노동기본법을 품에 안고 분신자살한 사건도 이즘의 일이었습니다. 이듬해 1971년 3월 마침내 미 7사단이 철수하면서 안보위기까지 겹치자 박정희는 그동안 구상해온 중화학 공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상공부의 오원철 공업국장을 청와대 제2수석으로 임명하고 나서 어느 날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경부 고속도로를 시주하며 정주영을 만납니다.

정- 각하, 여기가 경부고속도록 423킬로 전 구간 중에서 딱 중간쯤 되는 곳입니다.
박- 정회장 그동안 노고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공기를 지켜줘서 고맙게 생각하오.
정-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공기가 돈인데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죠.
박- 방금 지나온 당재터널이 제일 난공사였다는데 손해는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정- 손해는 좀 봤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중장비를 많이 장만했으니까 그만큼 회사 규모가 커진 게 남은 거 아니겠습니까. 저기 보이는 저 티짜형 타워 크레인도 이번에 독일에서 들여온 최신형입니다.
박- 그러면 이제 더 규모가 큰 사업을 해보시죠.
정- 어떤 사업 말씀입니까?
박- 정회장도 아다시피 이제 우리나라도 중화학공업에 뛰어들 단계가 되었다고 보고 KIST에 의뢰해서 전략적 우선 사업으로 주물선공장과 특수강공장, 중기계공장과 조선공장 등 4대 핵공장 건설계획을 수립했는데 정회장이 이 중에서 조선 사업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정- 조선사업이라구요? 허지만 각하, 저는 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 정회장이 언제 아는 것만 골라서 사업을 하셨소?
정- 허지만 각하, 배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이 조선 사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라는 것은 압니다. 자칫 잘못하면 현대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박- 그래, 정 못하시겠다는 거요?
정- 저, 각하,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는 이제부터 자동차 사업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 또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사업이 아닙니까. 미국 포드사와 제휴해서 이제 막 코티나 승용차 양산 체제에 들어가서...
박- 정회장, 요즘 국내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마치 자신들만이 노력해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며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고 듣고 있소. 정 회장, 지금의 현대가 정 회장 개인 거요? 지금의 현대가 이만큼 되기까지 여기엔 정 회장 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그리고 현대 소속의 근로자들이 다함께 피와 땀으로 일궈논 것이오. 따라서 지금 이름 있는 기업들은 모두 국민기업인 것이요. 어느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란 말이요. 현대가 굳이 이 사업을 안 맡겠다면 앞으로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모든 사업에서 현대를 철저히 배제시킬 작정이오. 어떻게 하겠소?
정-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박- 모든 뒷받침을 정부가 나서 지원할테니 곧바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시오. 외자유치 부분에선 정부가 보증을 서 주겠소.
(박, 퇴장)
정- 이보시오, 오수석, 이거 나보고 죽으라는 말씀 아니오?
오- 어디 정회장께서 죽으란다고 그냥 죽으실 분입니까?
정- 그런데 각하께서 이렇게 조선 사업에 목을 메시는 이유가 뭡니까?
오-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지 잘 아시죠?
정- 그야, 이순신장군 아닙니까?
오- 이순신장군이 뭘로 유명하죠?
정- ...거북선 말입니까?
오- 그 거북선이 배 아닙니까.
정- ...그래서 각하께서 혁명 직후 통화개혁을 하면서 새로 만든 지폐 앞면에다가 거북선을 그려넣으셨군요.
오- 그냥 해본 소리구요. 각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시피 이제부터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실 계획입니다. 언제까지 경공업 제품만 만들어서 수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정- 그런다고 조선 사업 기반도 없는 우리가 배 만들어서 당장 팔리겠습니까?
오- 조선 사업은 지금이 호기입니다. 에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봉쇄한 이후 각국이 대형 유조선 발주에 나서고 있는만큼 우리나라가 뛰어들면 인건비 등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 조선 사업이 인건비 뜯어먹는 사업이라는 정도는 압니다.
오- 그리고 내년에 연산 100만톤이 넘는 포항제철이 완공되면 당장 전량 수출이 어려우니 우선 내수 기반을 마련키 위해서도 조선 사업은 크게 도움이 됩니다. 철판이 배 만드는 주 재료 아닙니까.
정- 하, 이거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오- 삼성 이병철 회장께 물어보시죠? 그 양반이 요즘 조선 사업에 관심이 많아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 뭐요? 앓느니 차라리 죽겠소.
오- 정 회장님, 각하께서 이번에 현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애를 많이 쓰셨다고 저보고 보너스를 하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정- 보너스라니요?
오- 내년에 착공될 고리 원자력발전소 아시지요?
정- 네.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설계를 맡기로 했다지요?
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데다가 1년 국가예산의 네 배가 넘는 공사 아닙니까. 현대에서 조선 사업을 맡게 되면 보너스로 원전 공사에 현대를 참여시키라고 각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 각하께서요? 아, 진작 보너스부터 말씀하실 일이지. 나 조선 사업 계획서 만들어 오겠소. (굉음이 들린다) 야, 이놈들아! 그게 얼마짜리 기게인데...
(정, 황급히 퇴장)
배2- (관객에게) 이 직후 정주영 회장은 유럽으로 달려 가 이탤리의 선박왕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 울산 미포만 갯벌 사진 한 장만 보여주고 조선소도 없는 현대가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을 수주 받았으며 그 길로 영국 런던으로 달려가 달랑 사업계획서 한 통과 거북선 그림이 찍혀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고 바클레이 은행 부총재로부터 1억불의 외자를 유치해서 조선소를 세웠다는 얘기는 오늘날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현대는 울산 조선소를 완공하고 공장 완공과 더불어 수주 받은 두 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납품하는 세계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머잖아 세계 1위의 조선소로 등극합니다.
(박, 등장)
오- 부르셨습니까?
박- 임자, 수출 백억불을 달성하려면 무슨 공업을 해야지?
오- 네? 백억불이라고 하셨습니까? 각하, 10억불을 달성한 게 엊그제인데 지금 그 열배를 말씀하셨습니까?
박- 수출 백억불은 되야 국민소득이 1천불 가까이 되지 않겠어? 그 정도는 되어야 북한이 죽었다 깨도 우릴 따라올 생각을 못하지 않겠냐구. 지금은 국력이 엇비슷한데다가 군사력이 우리의 두 배가 넘으니까 저놈들이 호시탐탐 우릴 엿보고 올해가 적화통일의 적기다라고 큰 소리치는 거 아냐. 게다가 이 판국에 미군까지 살금살금 철수를 하니 말야. 지금 경제를 다시 살리려면 화급히 중화학공업을 일으켜야 할텐데 이제부터는 자주국방도 해야할 판이니 방위산업도 해야 하잖아. 재원도 부족한데 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 아이디어 좀 내보라구.
오- 각하,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굳이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박- 뭐라구? 그게 무슨 소리야?
오- 여하한 병기도 분해하면 부품입니다. 소정의 소재를 설계대로 정밀 가공하면 부품별로 생산공장이 다르더라도 조립하면 성능이 완벽한 무기가 완성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방위산업은 중화학공업이 전제가 되는 산업인 만큼 무기의 주요 부분별로 생산업체를 지정하여 건설하고 일단 유사시에는 전 능력을 방위산업으로 전용하면 됩니다.
박- 그러니까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면 방위산업은 저절로 뒤따라올 수 있단 말이지?
오- 그렇습니다. 이 같은 방위산업 건설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먼저 중화학공업단지의 건설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박- 그런데 후발 국가인 우리가 뒤늦게 중화학 공업을 일으켜서 과연 수출 산업으로 키울 수 있을까?
오- 지금 선진국에서는 이 분야가 3D업종인데다가 고노임, 공해 문제 등으로 정체 상태인데 우리는 숙련된 양질의 노동력을 풍부히 갖추고 있는데다가 후발 국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능 좋은 최신 시설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어서 경쟁력 확보에도 유리하고 세계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전망도 밝으며 단가도 높아서 국민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중화학 공업을 하면 방위산업과 수출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박- 역시 오수석은 국보급 수석이야. 임자가 책임지고 중화학공업을 전략적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봐. 그리고 방위산업도 말야, 수출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최신 병기와 호환성을 갖추도록 해야 해.
오- 네. 각하. 물론입니다.
박-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들에게 고기국에 이밥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 입고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을 세웠다가 이게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니까 전략을 바꿔서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를 외치며 남북 대결 국면으로 나오고 있는데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시간이...
오- 방위산업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4, 5년은 걸립니다.
박- 4, 5년은 길어. 어떻게 해서든 2, 3년 안에 토대를 닦아야 해.
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 그동안은 시간을 벌어야겠기에 내가 극비리에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시켜서 평양에 다녀온 건 알고 있지?
오- 네. 실장님한테서 짧게 들었습니다만.
박- 올 여름에 공동성명을 내고 남북한이 상호 비방, 무력도발 금지 등을 골자로 한 평화통일 3대 원칙을 합의키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저놈들 속을 알 수 없으니까 절대로 방심해선 안되지만 우선 시간은 벌어놔야지.
(박, 오와 함께 퇴장)

자막/ 8장: 유신시대

(배1, 관객에게)
배1- 시간, 그렇습니다. 그 무렵 박정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1972년 역사적인 7. 4 공동성명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발표되며 남북한은 휴전 후 26년만에 처음으로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고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여 적십자회담 등 구체적인 대화의 물꼬를 터 다급한 국가 안보 체제의 확립을 위한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함과 동시에 10월 유신을 단행했습니다. 전년도인 1971년 4월에 무리한 3선 개헌을 통해 제 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정희에게 남은 3년의 임기는 너무 짧았습니다. 그리하여 새 임기 초인 1972년 10월에 개정 공포한 유신헌법에 의해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다시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1978년까지 경제발전에 몰두할 시간을 장만했습니다.
배2- 그렇게 해서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의 쿠데타라고 불리우는 집권 2기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듬해 1973년 초에 박정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고 일로 매진하였으나 그해 10월에 터진 중동전의 여파로 제1차 오일쇼크가 몰아닥쳐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유신체제를 거부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국을 휘몰아치자 정부는 긴급조치 1, 2호를 연달아 발동하며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 구금하는 등 인권탄압에 나서 국내외 여론의 매서운 질타를 받게 됩니다.
(박, 등장)
박- 정주영 회장과 같이 온다더니.
렴- 곧 도착할 겁니다. 먼저 각하께 결재 받을 서류가 있어서요.
(박, 서류에 결재하며)
박- 이번에 오수석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걸프, 칼텍스, 유니온 등 메이저 회사들로부터 종전 가격으로 안정적인 석유 공급 약속을 받아왔으니 우선 급한 불은 껐지만 말야,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하필 중동전이 터질 게 뭐야.
렴- 각하, 당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유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차량운행 제한에서부터 영업시간 단축, 네온사인 금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 절약 수단을 총 동원해야 합니다.
박- 나부터 세숫물도 대야에 받아 쓰고 변기에 벽돌도 넣었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다 강구해야지. 그런데 아끼고 덜 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잖으냐 말야. 벌써부터 생산 활동이 타격을 받고 수출은 줄고 재고는 쌓여가니까 기업 수지가 악화되고 고용도 불안해지고 있지 않으냐 말야.
렴- 그러나 각하, 지금의 석유 파동은 비단 우리나라만 겪는 일은 아닙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박- 문제는 우린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북한 김일성이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다가 이제는 아들 김정일 후계 체제까지 공고히 하고 있는데 국내 정치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고 말야.
렴- 올 초에 긴급조치 3호를 발동한 이후 그나마 민심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박- 그래도 야당에서는 유신 체제를 민주주의의 말살이니 영구집권 획책이니 하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잖아.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해. 공짜 평화란 없는 거야.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의 일부라도 유보할 수밖에 없어.
렴- 정치적 발언으로는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요?
박- 지금 같은 비상시국일수록 국민들에게 최대한 솔직하게 말해야지 어찌 듣기 좋은 말로 꾸며대란 말야. 난 처음부터 내 입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운 적이 없어.
렴- 민주주의의 교과서처럼 알려진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남북전쟁의 위기가 감돌자 재판없이 인신 구금을 하고 비판적 언론 사주를 체포했는가 하면 통신 검열에 사유재산 몰수 뿐 아니라 선거 개입에 무력 동원까지 서슴치 않았으며 의회 동의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했었지만 오늘날 그런 얘기하는 미국 사람은 없습니다.
박- 그거 백년 전 미국 서부활극 시대 얘기야. 요즘 그런 말이 씨알이나 먹힐 것 같애? 민주주의 말살이니 뭐니 온갖 욕은 다 나 혼자 얻어 먹을테니 염려 말고 임자들은 오직 경제개발과 국가안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해. 정치는 내가 다 막을테니 날 방패막이로 삼으면 돼. 나 죽은 뒤에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해. 그러나 정치는 불안해도 행정은 흔들리면 안돼.
렴- 내각과 비서실 중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박-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는 막 중화학 공업을 일으키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사태가 터졌으니 말이지.
렴- 이런 가운데도 현대 정주영 회장의 울산조선소도 드디어 올해 상반기 중에 준공될 것이며 삼성의 이병철 회장 역시 삼성중공업을 설립해서 일본 IHI사와 합작해서 조선소 건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박- 그 양반 남들이 돌다리 두드리고 건너는 거 보고나서 건넌다는 사람야. 두고 봐야지. 그런데 무엇보다 앞으로의 사업 전망이 어둡잖아. 이 석유파동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렴- 그래서 각하, 방법은 중동 진출밖에 없습니다.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중동에는 지금 오일 달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건설 회사들이 중동에 진출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게다가 우리한테는 월남전에도 참전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우수한 남성 인력이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60년대에는 여성 인력이 봉제공장을 가동시켜 수출 전선을 지켰지만 이젠 남성들이 나설 차롑니다.
박- 글쎄, 문제는 말야, 우리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중동에 뛰어들 명분이 없잖아.
렴- 각하, 국익이 최우선이잖습니까. 이스라엘과는 외교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폰 울린다)
인터폰- 각하, 정주영회장님 오셨습니다.
박- 들어오시라고 해.
(렴, 문 열어주면 정, 등장)
박- 아, 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셨습니까?
정- 네. 각하. 하명하신대로 죽 둘러보고 왔습니다.
박- 그래 직접 가서 보니까 어떻습디까? 사업할만한 여건이 되던가요?
정- 사우디, 쿠에이트, 리바아까지 다 둘러보았는데 사업하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곳입니다.
박- 아니, 정 회장, 무슨 말씀이오? 남들은 돈을 몇 배로 줘도 그 뜨거운 뙈약볕에선 일 못하겠다고 퇴짜를 놓는다던데. 어떤 점들이 좋던가요?
정- 토목 공사를 하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없습니다. 사막이다 보니 우선 모래, 자갈 같은 건설 자재들이 공사장 바로 옆에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들고 자재 조달이 되는 곳은 세상에 거기밖에 없을 겁니다.
박- 그런데 더위 때문에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정- 그거야 낮에 자고 밤에 횃불 켜고 작업하면 됩니다. 비까지 안 오니까 쉬는 날도 없구요.
박- 그래요? 용수 공급은 어떻 하죠? 전부가 사막지대인데.
정- 강이나 호수에서 트럭으로 끌어다가 쓰면 됩니다. 게다가 중동지역에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술 먹고 놀 수 있는 오락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일밖에는 할 것이 없으니 노동자들 돈 쓸 일 없고 노임도 두 배를 주는데다가 선진국에서는 다들 기피하니까 경쟁자도 없습니다.
박- 이거 정 회장님 말씀 듣고 보니 천국이 따로 없군요. 그럼 정 회장께서 앞장 서서 중동에 진출을 해보시겠습니까?
정- 가지 말라고 말리셔도 가겠습니다. 다만 먼저 중동 지역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각하께서 잘 좀 터주시기 바랍니다.
박- 정부에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민간 차원에서도 아랍 사람들과 평소 관계를 돈독히 해두셔야죠. 중동 진출은 민간 베이스가 아니면 안됩니다.
정- 염려마십시오. 아랍사람들은 뒷돈을 좋아한다는데 그 방면에서는 우리가 선수 아닙니까? (웃다가 멈춘다)
박- 못 들은 걸로 하겠소. 그리고 정 회장, 울산조선소도 차질 없이 공사가 잘 되고 있다죠?
정- 네. 각하께서 적극 밀어주신 덕분에 올 상반기 중엔 준공과 더불어 이탤리에서 수주한 유조선 두 척도 동시에 건조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박- 하여튼 정 회장 뚝심은 알아줘야 해. 그래, 자동차 사업은 잘 되가고 있습니까?
정- 각하께서 조선소를 해보라고 하시는 바람에 잠시 주춤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박- 나 때문에 시름을 덜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정- 하, 지금 석유파동이 일어났는데 차가 팔리겠습니까? 그동안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신차를 개발해서 수출하려고 준비해 왔는데 한 2년 정도 미루기로 했습니다.
박- 자동차를 수출하신다구요? 우리가 개발한 자체 브랜드로 말입니까?
정- 예. 그것도 미국 본토에 내다 팔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남의 나라 차만 배껴서 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탤리의 이탈 디자인회사에 맡겨서 디자인과 설계까지는 다 끝내 놓았습니다. 이름도 지었습니다. 포니라고요.
박- 포니라?
정- 조랑말이란 뜻입니다.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입니다.
박- 잘 되기 바랍니다. 나하고 안에 들어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하면서 어디 얘기 좀 들어봅시다.
정- 감사합니다.
박- (혼잣말로) 포니라, 포니. 조랑말이라구?
정- 네. 히히힝~!
(둘, 퇴장하면 배1, 관객에게)

자막/ 9장: 수출 100억불

배1- 제1차 석유위기를 돌파하는데 중동진출은 크게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벌어들인 외화가 1975년 8억불에서 76년에는 16억불로 배가되었고 78년에는 무려 44억불에 이르렀습니다. 전체 해외건설 수주액 가운데서 중동지역의 비중이 75년 이후 90%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정주영의 현대는 75년에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맡아 단독으로 9억불을 수주할 정도로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렇게 석유위기의 탈출구를 찾아갈 무렵에도 국내외의 시련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북괴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의 저격을 받아 서거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11월에는 남침 땅굴이 최초로 발견되었고 이듬해 봄에는 월남이 패망하여 공산화되었으며 이어서 캄보디아와 라오스마저 공산화 되었고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하여 무력 남침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이병철 또한 중화학 공업에 뒤질새라 의욕을 펼쳤습니다.
손- 회장님, 울산 석유화학 공장 건설을 강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이- 그동안 정부로부터 중화학공업에 투자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이제 겨우 일본 IHI사와 합작으로 조선소 설립 인가까지 받았지만서도, 전 세계적으로 오일쇼크가 터진 이 마당에 조선소 만들어 봤자 배가 팔리겠노? 2, 3년은 두고 봐야 제. 우선은 석유화학 공장부터 끝을 내야제.
손- 그런데 회장님, 이번에 파이프 폭발 사건으로 피해가 막심한데다가 공기마저 1년 이상 늦춰져서 투자 대비 효율이 크게 떨어질텐데요.
이- 내외자 합해서 1억불 이상을 쏟아부은 사업을 포기하란 말이가? 게다가 이 PTA는 모든 합성섬유의 원료인데 이런 중요한 수출품의 원료를 국산화해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야 말로 기업이 할 일이라고. 자네도 아다시피 난 평생에 공직이라고는 전경련 회장직을 딱 한번 맡았던 것밖엔 없어. 내가 그때 심혈을 기울여서 울산 공업단지를 만들었는데 지금 엉뚱한 사람들이 모두 그 덕을 보고 있잖아.
손- 지금 울산에는 현대 조선소 뿐 아니라 자동차 공장까지 들어서면서 울산이 현대 정주영 왕국이라고들 말할 정도입니다.
이- 그 양반 차기 전경련 회장직도 노리고 있다카제?
손- 현 김용완 회장이 적극 밀고 있다고들 합니다. 회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 박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설치는 모양인데 전경련 회장감은 못된다....마, 전방의 김용주 회장 정도는 되야제.
손- 그런데 회장님, 이번에 남덕우를 부총리겸 기획원 장관으로 임명하고 나서 앞으로는 경제개발 정책을 더 공세적으로 펴면서 삼성도 방위산업 쪽에 역할을 맡아달라는 압력이 계속 내려오고 있는데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무슨 소리 하고 있노? 나라가 있어야 기업도 존재하는 기다. 마땅히 역할을 해야제. 난 집이 부자라서 놀기도 심심하고 깝깝해서 사업을 시작했지만서도 그때는 재미로 안했나. 그러다가 6. 25를 겪은 이후로는 평생을 사업보국의 신념으로 살아왔는데 지금 같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제. 역사적으로 옳은 전쟁이란 것도 없지만 옳지 못한 평화도 없는 기다. 월남을 보라고. 아무리 미국이 도와줘도 자력이 없으면 저렇게 한 국가가 한순간에 사라져 없어져삐잖아. 다만 방위산업을 하더라도 미래의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봐야제.
손- 혹시 구상하고 계신 사업이 있으신지요?
이- 우리나라가 안보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할 기다.
손- 네? 핵무기라구요?
이- 궁극적으로는 그 방법밖엔 없대이. 주한 미군이 물러나면서 조만간 핵무기도 철수할낀데 그 때를 대비해야제. 박대통령이라면 해낼 기다. 그럴라카믄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연료 재처리공장이 반드시 필요할긴데 이는 국가 차원의 사업인만큼 앞으로 추이를 한참 지켜봐야제. 우리가 하고 싶다꼬 할 수 있는 사업이 아인기라. 허지만 이 원자력 사업은 군수용으로 출발하더라도 향후 평화적 이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대이. 내 이번에 울산에다가 삼성 건설회사를 맹글라카는 것도 다 이런 포석인기라.
(이, 손, 퇴장)
배1- 1976년 2월 현대자동차는 고유모델 포니를 생산해서 최초로 수출에 나서면서 글로벌 자동차업체로 태어나며 이듬해 삼성전자는 수출 1억불 고지를 점령하고 이어서 반도체 사업에 승부수를 띄우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 두 라이벌 기업간에는 그동안 내재되어 왔던 갈등과 대립이 표출합니다. 1977년 4월에 정주영이 제13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직후의 일입니다.
(정, 김, 등장)
김- 정회장, 어서 오시오.
정- 김회장님 덕분에 제가 전경련 회장 감투까지 쓰게 됐습니다.
김- 감사는 내가 해야지요. 정회장이 나서지 않았으면 우리 전경련회관 건물을 누가 나서서 짓겠습니까?
정- 회원들이 상부상조해서 한 것이지 어디 제가 혼자서 다 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나저나 이병철 회장도 나오기로 했습니까?
김- 곧 나오실 겁니다. 만나시면 두 분이 잘 좀 화해하시죠.
정- 화해구 뭐구 있습니까? 아, 제가 신문 칼럼에 대구 요즘 신문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 특정 재벌이 신문사하면서 남의 기업 험담이나 늘어놓구 하는 게 도리냐 했을 뿐인데 어디 제가 못할 소리 했습니까?
김- 할 말은 해야지요. 그러나 공연히 평지풍파까지 일으켜서야 되겠소?
정-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소리지만 그 양반 사업하는 스타일도 맘에 안 들어요. 맨날 남이 하는 사업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뒤따라 한 것밖에 더 있습니까. 전자산업도 그렇지요, 나 같은 사람은 토건업자라고 깔보더니 이번에 울산에다가 삼성종합건설은 또 왜 차립니까?
김- 어쨌거나 그 양반이 경제계 선배이구 하니 정회장이 먼저 손을 내미시죠. 그 양반도 작년에 일본에 가서 위암 수술도 받고 하면서 많이 바뀌셨답니다.
정- 김회장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김- 아, 마침 저기 오시는군요. 아, 이 회장, 어서 오십시오.
이- 다들 안녕하셨십니꺼?
정- 이 회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 정회장, 축하드립니더. 이번에 전경련 살림을 맡으셨으니 앞으로 수고 많으시겠습니더.
정- 이 회장께서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초대 회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힘이 된다면 마땅히 도와야제.
정- 그래,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이- 걱정해주시는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십니더. 요즘엔 그저 틈나는대로 운동이나 하러 다닙니더.
정- 이제 사업은 좀 천천히 하시죠. 뒤따라가기 힘듭니다.
이- 사돈 남말 하십니다 그려.
김- 이거 왜들 이러십니까? 백수 앞에 놓고 기죽이시는 겁니까?
(모두, 웃는다. 박수 갈채 소리 들리며 박, 등장. 모두 그를 향하여 박수 친다. 1977년 12월 22일 제13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 연설한다. 이, 정을 위시하여 김, 렴, 오, 배1, 2 등 모두 등장.)

자막/ 제 13회 수출의 날 기념식: 1977년 12월 22일

박- 국민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날이 될 것입니다. 누가 우릴 못사는 민족이라 했습니까. 오늘 우리는 81년까지의 목표를 4년이나 앞당겨 수출 100억불이라는 대과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불과 13년 전, 처음 1억불 수출을 달성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 같이 기뻐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대망의 1백억불 수출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으니 실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북한의 안보 위협, 세계적인 자원파동과 경제 불황, 그리고 무역장벽 등 2중 3중의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힘겨운 처지에서 이룩해 낸 것입니다.
(우렁찬 박수소리 가라앉으면 조명 바뀌며 접견실. 박, 이, 정, 배1, 배2 등 5인이 둘러앉는다)
김- 각하,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얼마나 노고가 크셨습니까.
이, 정- 축하드립니다.
박- 우리 다같이 축하해야죠. 이 모두가 여기 계신 분들이 다함께 고생해서 이룩한 위업이 아닙니까.
오- 그래도 각하께서 앞장 스셔서 길을 인도해 주셨으니까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박- 그러나 아무리 내가 앞장 서서 외친다고 한들 모든 분들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고맙게 생각하는 게 누군줄 아시오?
렴- 누구죠?
박- 김일성이요.
모두- 네?
이, 정,- 김일성이라구요?
말이오.
박- 그렇소. 김일성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죽을 힘을 다 해서 여기까지 왔겠소? 우리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게 하고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게 한 게 다 김일성이 때문이었으니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박- 지난 70년부터 오늘까지 큼직한 사건들 빼고도 북한이 휴전협정을 위반한 사례가 몇건인지 아시오? 자그만치 5만건이 넘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탱크, 장갑차는 물론이거니와 미사일 같은 최첨단 국산병기도 자체 개발했고 이번에 고리 원전을 건설하면서 장차 핵무기 개발을 위한 원자력 기술도 확보했으니 저들도 우릴 함부로 깔보진 못할 거요. 그러나 작년부터는 우리가 북한의 경제력을 앞서기 시작했으니 저들이 초조해져서 무모한 도발을 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소만.
이-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북한의 위협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십니더.
정- 각하께선 국가안보를 위해 영부인까지 잃으셨는데도 믿지 못하겠다는 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박- 그 사람 무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내가 걸음이 빨라 앞서 가니까 그때마다 나보고 혼자서 앞서가지 말고 같이 가자고 그러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나보다 앞서 가버렸소. 그미는 나 대신 간 거요.
렴- 각하,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힘내십시오.
박- 그렇소. 미안하오. 오늘 수출 백억불 달성과 더불어 우리 국민소득도 1천불이 넘었으니 이제 중진국 대열에는 올라선 것이오. 그런데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올해 쌀 생산량이 드디어 4천만석을 돌파해서 이제부턴 식량자립 시대가 열렸다는 거요. 덕분에 쌀로 빚은 막걸리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게 됐소. 절대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도 60년대 중반까지 40%에 달하던 것이 이제 10% 밑으로 떨어졌소.
오- 각하, 인도의 간디가 한 말이 있습니다.
박- 마하트마 간디 말이오?
오- 네. 그 간디가 말하길 세상의 어떤 체제도 빈곤보다 나쁜 체제는 없다고 했답니다. 우리보다 1년 앞서 독립한 인도가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많은 인구의 절반이 넘는 55%가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하루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뭄바이 거리에서 병들어 죽어나가고 있는데 그런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박- 민생이 있고나서 민주주의도 있는 거 아니겠소?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의료보험법 제정이었소. 그리고 올해부터 우리나라에도 처음으로 직장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키로 하였소. 그리고 지금 잠실에 국제규모의 경기장을 짓고 있는데 우리도 올림픽을 유치하여 국격을 높혀야 하지 않겠소?
김- 옳으신 말씀입니다.
렴- 적극 찬성합니다.
박- 올림픽 유치계획을 곧 공식 발표할 생각이오. 이제부터 더 큰 꿈을 꾸어야 할텐데 이회장께서는 앞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십니까?
이- 지는 이번에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고 나서 앞으로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남은 생애를 반도체 사업에 바칠 각오입니더. 이 마법의 돌이라카는 반도체야말로 우리 미래의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더.
박- 꼭 그렇게 되길 바라겠소. 이회장처럼 앞서 가는 기업인들이 많이 나와야 나라 경제가 부흥할 것이오. 그나저나 우리 정회장께서는 중동에 진출해서 큰 업적을 쌓으셨고 이제 자동차까지 수출하기에 이르렀는데 성공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정- 각하. 제가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까, 대학을 나왔습니까, 영어를 할 줄 압니까. 현대가 잘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했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근로자의 공입니다.
박- 정회장 말이 맞아. 그런 뜻에서 우리 오늘은 다 함께 쌀로 빚은 막걸리 파티를 합시다.
(모두 박수치는 가운데 조명, 어두워지며 권총 소리 연달아 터진다. 암전.)



자막/ 10:/ 에필로그

배1- 인생사를 흔히 새옹지마에 비유합니다. 국가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듬해 1978년 7월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됩니다. 이제 그의 시대는 저물었음을 그는 깨닫지 못합니다. 수출 백억불에 국민소득 1천불 시대의 국민은 예전의 국민이 아닙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벗어난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는 분출합니다. 그와 더불어 제2차 오일쇼크가 또다시 세계를 강타합니다. 1979년 10월에 접어들며 부마사태가 터지고 부산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며 급기야 마산, 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6일 박정희는 심복인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18년간 이 나라 근대화의 기수였던 한 작은 거인의 삶과 더불어 5. 16혁명이 막을 내리는 순간입니다.
배2- 5. 16혁명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 통일에 성공한 마오쩌둥이 가난에 찌든 중국을 산업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약진 운동이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소위 저 유명한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배1- 이 날이 1966년 5월 16일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다시피 이 문화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막을 내릴 때까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참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10년 동안에 무려 2천만 명이 넘는 무고한 자국민을 학살한 마오쩌둥은 오늘날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매일같이 그의 초상이 새겨진 위안화 지폐를 자랑스럽게 꺼내들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뽐내고 있지만 박정희의 혼령은 유신독재의 탈을 쓰고 오늘도 한강을 배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배2- 박정희를 비롯하여 이병철, 정주영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지난 세기 1910년대,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배1- 어느 때보다도 영명한 지도자의 존재를 절실히 염원하는 이 때에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의해 정해진다는 명언을 떠올립니다.

(새마을 노래 합창으로 이어지며 조명 꺼지면)





민중극단 창단 50주년 기념 역사 기록극
정진수/ 작, 연출

「한강의 기적」 -박정희와 이병철과 정주영-

때: 2013년 2월 13일 ~ 24(평일/ 7시 30분, 토/3시, 6시 일/3시)

곳: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한국공연예술센터 내)




정진수 선생의 탁월한 역사해석: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한국 현대사의 핵심을 잘 잡아내다

2년 전 정진수 선생의 작품인 '한강의 기적'을 보면서 연극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朴正熙(박정희), 李秉喆(이병철), 鄭周永(정주영)의 인간됨과 이 세 巨人이 만들어간 1960, 70년대 이야기가 사실에 아주 충실하게 연극화 되었다. 젊은이들에게 이 연극을 보여주면 좋은 현대사 교육이 될 것이란 생각이 날 정도였다.
산업화의 과정을 이렇게 핵심적으로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진수 선생의 탁월한 역사해석 능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2012년의 두 차례 선거에 延(연)인원으로 5252만8257명이 투표하였다. 이들의 주권행사는 새누리당에 국회를, 박근혜에게 대통령직을 주는 결단을 내렸다. 동시에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하였다. 요약하면 "헌법을 존중하라, 현대사를 긍정하라, 從北(종북)은 안 된다"이다. 국민들은, 일부로부터 '독재자의 딸'이라고 욕을 먹던 이를 대통령으로 뽑음으로써 역사의 榮辱(영욕)을 다 포용한 것이다. 달라진 세상에 맞추어 '한강의 기적'이 재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득 "선거를 잘 한 덕분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이 정권을 잡은 것은 고려 무신란 이후 약800년만이다. 교사 같은 군인 박정희는 銃口(총구)의 권력을 생산적으로 썼다. 기업가, 과학자, 기술자를 밀어주었다. 이들이 새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한강의 기적'에도 나오는 박정희-이병철의 역사적 만남이다. 이병철은 가난을 물리치는 데 기업의 역할을 설명하고, 박정희는 금방 이해한다. 군인이 기업인을 적극적으로 후원, 산업화를 추진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서울시내의 한 CJ 빌딩 안엔 故李秉喆(고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요약하여 새겨놓았다.

人材第一
事業報國
合理經營

이 3大 원칙엔 李秉喆의 위대한 안목이 녹아 있으며,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말이기도 하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재육성임을 간파한 그는 국가건설期 기업의 존재목적이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뒤에 대통령이 되는 李明博(이명박) 은, 정주영 작고 직후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李秉喆(이병철) 회장은 매우 치밀한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鄭周永 회장은 무모한 모험가로 흔히 대비되곤 합니다. 만약 李秉喆 회장이 치밀하기만 하고 결단력과 모험심이 없었거나, 鄭周永 회장이 무모한 모험심만 있고 치밀하지 못했다면 두 사람 다 오늘의 삼성과 現代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국가 경제 발전에 끼친 공로도 별 것 아니었을 것입니다.
鄭회장의 '신화'에 빠질 수 없는 몇 대목이 모두 도박과 같은 모험과 배짱, 그리고 밀어붙이기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 이면에는 무서울 만큼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바로 보지 않고 신화 같은 얘기에만 매달리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합니다."

정진수 선생의 '한강의 기적'을 보아야 이 기적은 우연이 아니고 한민족이 좋은 지도자를 만나 신나게 일한 결과물임을 실감할 수 있다. 박정희는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호쾌한 영웅도 아니고 나폴레옹과 같은 電光石火(전광석화)의 천재도 아니었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超人(초인),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그들의 숨결을 읽을 줄 안 土種(토종) 한국인이었다. 민족의 恨(한)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였다.
한국 현대사를 흔히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한강의 기적'이란 드라마를 보고 사실처럼 느끼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연극에서 필자가 잊지 못하는 대사는 박정희의 말이다.
"김일성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죽을 힘을 다 해서 여기까지 왔겠소? 우리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게 하고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게 한 게 다 김일성이 때문이었으니..."
그렇다. 김일성의 남침이 없었더라면 울분의 나날을 보내던 민간인 박정희가 장교로 복직하는 일도,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의 惡行이 위대한 지도자를 역사의 무대로 불러내어 결국 北을 망치게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한 드라마가 또 어디 있을까? 정진수 선생의 훌륭한 역사의식이 '한강의 기적'을 국민必見(필견)의 역사교재로 승화시킨 셈이다.








인터뷰 당시 73세이던 李秉喆 회장은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신이 나고 재미 있다"고 했다.

"뭘 새로 창조한다는 것이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건 저의 本能(본능)인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작한 반도체처럼 처음 사업을 할 때는 저녁에도 그 생각, 자고 일어나서도 그 생각, 뭣이 부족한 것이 없나, 있으면 보강하고 물어보고, 회의를 해서 안되는 게 있느냐 또 알아보고 일을 맡기고, 계속 뒤를 체크하면서 전체를 展望(전망)해가면서 일을 하지요. 그런데 만들어놓은 회사에서 뭐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짜증이 납니다. "

李 회장은 "나는 똑 같은 일을 하라고 하면 정말 싫어!"라고 했다.






어느 때보다도 영명한 지도자의 존재를 절실히 염원하는 이 때에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의해 정해진다는 명언을 떠올립니다.
박- 그렇소. 김일성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죽을 힘을 다 해서 여기까지 왔겠소? 우리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게 하고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게 한 게 다 김일성이 때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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