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에 정치 평론 글을 자주 올리는 李長春 대사는 개성과 소신이 강한 외교관이었다. 2000년 3월호 月刊朝鮮을 읽다가 李 대사를 인터뷰하고 논평한 기사가 있어 再錄한다. 李 대사의 직설적인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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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長春 大使의 職을 건 한국 外交 직격 비판

구멍가게만도 못한 外交部 인사

金玄浩(월간조선 기자)

●2년 사이 장관이 3명, 9년간 정책실장이 11명.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 외교관 숫자는 日本보다도 많아 자리다툼 치열. 장관이 학교 후배 봐주려고 편파 규정 만들고…. 李·朴정권 때의 기개도 없는 외교관들…. 국가 이익이 실종되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 고참 현직 大使(대사)가 우리 외교부의 人事(인사) 문란과 조직의 난맥상, 이에따른 총체적 외교 역량의 허약성을 강도높게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사표를 던졌다.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필리핀 주재 대사를 역임한 李長春(이장춘·59) 본부대사는 지난 2월10일자 문화일보 寄稿(기고)를 통해, 한국 외교는 잦은 외교관 교체로 국제 무대의 조롱거리가 됐으며,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통상 업무까지 빼앗는 虛慾(허욕)을 부리는 반면 강대국 외교에서는 굴욕적인 나약함을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외교부가 발칵 뒤집혔다. 당장 징계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사표까지 던진 사람에게 징계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파면을 시키자니 파문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게 외교부의 고민이다.

한때 외교부에서 가장 잘 나가던 그룹에 속했던 李대사는 법정 停年(정년:63세)을 3년 6개월여 앞두고 있다. 그러나 補職(보직) 없는 본부대사는 1년 이상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오는 5월이면 「퇴출」이 확정적이었다. 게다가 출신지가 경남 마산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행동을 개인적 동기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조직에 칼을 꽂는 거냐』는 격한 반응도 일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동기야 어쨌든 그의 지적은 외교부를 아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李長春 대사의 외교부內 별명은 「Long(長) Spring(春)」. 그러나 여기서 「Spring」은 봄이 아니라 용수철이다. 평소 「돌출 행동」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1998년 초 정부 조직 개편 때는 외무부의 통상업무 장악 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외교부內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조직인으로서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그가 「소신파」라는 데 대해서는 異見(이견)을 달기 어려워 보인다.

李대사는 40세이던 1980년부터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 정무비서관을 3년간 지냈고, 3개국 대사와 외교정책기획실장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많이 거쳤다. 일에 대한 의욕도 왕성하다는 評(평)을 들었다. 그만큼 우리 외교 현실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識見(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제 외교가의 「건달들」


사표를 던진 이튿날인 2월11일 李대사를 만났다. 대개 공직자가 파문에 휘말리면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게 마련인데 그는 거침이 없었다.

『더 이상 나에게 補職을 주지 않으니 이제 34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할 때 아닙니까. 그래서 평생 몸담은 조직과 후배들을 위해서, 또 나라를 대표해 일한 사람으로서 苦言(고언)을 남기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혹시 總選(총선)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때가 때이니 만큼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디다. 그러나 내 나이가 얼맙니까. 한 평생 외교관 하던 사람이 정치할 재간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大使를 세 번이나 한 사람이 初選(초선) 국회의원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는 다른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우리 외교부의 인사와 조직의 문제점으로 들어갔다.

『이 정부 들어 2년도 안돼 외무장관이 세 번째 나왔습니다. 장관이 바뀌면 차관도 바뀝니다. 기획관리실장도 2년새 세 번째입니다. 新設(신설)한 지 9년이 안된 외교정책실은 실장이 11번 바뀌었습니다. 관료조직의 기초 부서장인 과장도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합니다. 이러니 국제회의 때마다 대표가 바뀌고 국제 외교가의 조롱거리가 되는 겁니다. 외교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사람을 사귀는 겁니다. 이렇게 자주 바뀌니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친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외교관들이 요술 방망이를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국제 무대에서 사람을 알지 못하면 외교 못합니다』


외무장관은 정치인이 바람직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39년간 外相(외상)을 했던 메테르니히, 29년 기록의 그로미코 舊소련 외무장관, 18년의 겐셔 서독 외무장관, 인도네시아에서 14년 기록을 세우고 1999년 정권교체로 물러난 알라타스 외무장관, 싱가포르에서 10년째 재직중인 자야쿠마 외무장관, 대통령이 바뀐 후에도 지금까지 맡고 있는 필리핀의 시아존 외무장관 등등…. 그의 입에서는 세계적 長壽(장수) 외무장관들의 이름이 줄줄 흘러 나왔다.

『이 정도는 아닐지라도 미국처럼 외무장관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래야 원대한 국가 외교 전략을 설계할 수 있고, 국제적인 거물도 키워 낼 수 있는 겁니다. 국력이 작은 나라일수록 장관이나 외교관의 개인적 능력과 관록이 중요한 만큼 한 자리에 오래 두어야 합니다. 우리처럼 보따리 자주 싸서 다니면 건달밖에 안됩니다. 구멍가게 주인도 자주 바뀌면 장사가 안되는데 하물며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할 외교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李대사는 대통령 중심제下에서도 외무장관은 정치인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직업외교관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외무부의 인사와 조직은 직업외교관인 차관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장관은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정부 초기에 정치인 장관이 임명된 적이 있지요. 하지만 그는 외무부 조직과 인사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취임식 때 「한 사람이 공관장을 세 번까지만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세상에 大使 回數(횟수)를 제한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어쨌든 원칙을 그렇게 정했으면 제대로 지키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며칠 뒤 政務職(정무직)을 지낸 사람은 이 제한을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외무부에서 政務職은 차관과 외교안보연구원장(차관급)인데 이 자리를 거쳐 주요 공관장으로 나가 있는 두 사람이 모두 장관의 고등학교 후배였습니다. 또 停年이 2년6개월 이상 남지 않은 사람은 공관장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가 며칠 뒤 총영사는 괜찮다고 합디다. 나중에 보니 이번에는 장관의 대학 후배가 특1급 총영사로 발령 나더라구요. 새 규정 때문에 부임한 지 1년도 안된 대사들까지 무더기로 불러 들이면서 말입니다. 자기 사람을 살리려고 규정까지 마음대로 만드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部(부)의 기강이 서겠습니까』 (李대사는 「외교부(외교통상부의 공식 약칭)」 대신 보통명사로서 「외무부」라는 용어를 쓴다고 말했다)

李대사는 외교부의 잦은 자리 교체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로 「사람 거품」을 꼽았다. 한국의 외교관 숫자는 1천명 선으로 일본의 850명보다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자리 回轉(회전)을 빨리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비교적 우리 외교조직이 안정적이었습니다. 金永周(김영주), 尹錫憲(윤석헌)씨가 4년간 차관을 하는 등 좋은 전통과 관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견제하는 과제가 생기면서 외무부가 바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하게 기구를 확대하고 조직을 늘린 것이지요. 외무고시에서 1년에 50명씩 뽑기도 했습니다. 우리 외교 규모로 보아 15명을 넘기면 곤란합니다. 일본은 한 해 2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교관은 물론 한국 관료 조직 전체가 지나치게 세분된 계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 등에는 과장 국장 등의 직책만 있을 뿐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 이사관 등의 계급 체계는 아예 없다는 설명이다. 3등 서기관, 2등 서기관, 참사관 등은 외교街(가)의 국제적 계급이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계급 제도 때문에 한국의 공무원들은 「승진 따로, 補職 따로」의 이중 경쟁에 시달려야 하고, 직급과 직책의 부조화로 인한 人力(인력) 손실이 적지 않다고 李대사는 말했다.


외교관 계급 제도 폐지해야


『외교관들의 경우 40대 중반에 부이사관(3급) 진급의 고비를 넘기게 되면 정작 맡을 직책이 확 줄어듭니다. 본국에 있는 동안 거의 절반이 연구기관이나 아니면 간판만 걸어놓고 있는 자리에서 소일하거나, 다른 기관에 파견을 나가는 실정입니다』

그는 한국 관료 조직의 계급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1999년 4월 한 신문에 싣기도 했다. 이 글에서 그는 『한국의 관료제도는 권위주의적 「벼슬 분배」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5·16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은 功臣(공신)들에게 감투를 갈라 주고 공무원 조직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공무원 조직은 조선왕조의 品階(품계) 제도나 日帝(일제)의 식민관료적 잔재를 씻지 못하고 계단의 확장을 거듭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무부가 대외 통상 업무까지 맡아 외교통상부로 확대된 데 대해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기구 조정의 와중에 벌어진 관료 집단 간의 「텃밭 싸움」에서 외무부가 승리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허망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년 동안 「통상장관」으로서 입을 벌린 적이 없으며, 외교통상부의 통상본부장은 밖에서는 장관 대우를 못 받고 안에서는 국무회의에도 못 들어가 결국 「통상 장관」을 없애버린 꼴이 됐다는 것이다.

『처음 권력을 잡은 신참 權府(권부)가 직업 관료들의 利己的(이기적) 왜곡과 농간을 가려내고 타박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당시 외무부는 換亂(환란)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을 구실로 내 세웠지만, 외교 기관이 투자 유치나 수출 진흥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은 초보적 상식입니다. 우리의 3대 교역국인 미국 일본 중국은 물론, 싱가포르 같은 무역 국가도 외무부에는 통상관련 부처가 없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아주 작거나 정치 안보적 현안이 거의 없는,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등 태평스런 극소수의 내각제 국가에서만 있는 예외적 존재입니다』

외교부의 주력 분야는 최근 2년간만 보더라도 탈북자 문제, 북한 핵과 미사일, 러시아와의 외교관 맞추방 사건, 독도 문제, 東티모르 파병 문제 등 정치안보상의 문제들이며,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은 외교부에 벅찬 도전이 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탈북자 7명의 북한 송환 사건에서 한국 외교의 무력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 아닙니까.

『내가 관여한 일이 아니라서 정확히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우리 외무부가 그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조직이나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외무부 국정원 통일부 간의 협조나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과거 안기부는 북한 방송 내용 하나도 외무부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외교부는 「국제 정보기관」 기능 갖추어야


李대사는 자신이 공관장으로 나가 있을 때 안기부 파견관이 大使마저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바깥에서도 딴 살림을 차리는 안기부가 안에선들 외무부와 협조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외무부도 문제지요.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려면 이와 관련된 유엔 인권제도가 어떻게 돼 있는지,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문제를 다루는 국내 구조는 어떤지, 러시아 외무부와 국경 수비대는 어떤 관계인지 등등 온갖 측면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외무부 풍토에서 전문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는 외교부는 개별 국가나 세계 정세에 누구보다 밝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국제정보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런데도 우리 외교부가 자체 정보 관리 부서 하나 없이, 그나마 있던 정보과마저 폐지해 버렸다고 개탄했다. 미국 국무부의 정보조사국은 4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외무부는 사실상 국가 모든 업무를 다루는 곳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외무부를 國務部(Department of State)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제 문제는 경제 부처와, 군사 문제는 국방부와, 독도 문제는 해양수산부와 협력하고 공조해야 합니다. 관련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도와 주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문제는 국정원과 통일부가 외무부를 도와 주어야 하는데 서로 경쟁과 견제가 더욱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 과거 안기부가 기관 利己主義(이기주의)에 따라 對北(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에 간여하는 걸 적잖이 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시지요.

『예민한 문제들은 지금도 밝힐 수가 없고, 한 가지만 말하지요. 내가 국제기구조약국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 6월에 「北方政策(북방정책)」이란 용어와 개념을 처음 만들어 立案(입안) 했습니다. 이것이 국내 신문과 외신에 크게 보도됐는데 안기부가 「이건 말이 안된다」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외무부가 앞서 나가는 걸 참지 못한 거지요. 당시 盧信永(노신영) 안기부장과 李範錫(이범석) 외무장관이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 영향도 컸던 것 같습니다. 결국 6共에 와서야 北方政策이 채택됐지요. 안기부(국정원)가 너무 막강해지는 것은 안기부 자체의 프로페셔널리즘(전문성)을 위해서 좋지 않습니다. 정보기관의 長(장)이 超(초)각료급인 나라는 「세계 제국」인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외교의 중심에는 외무부가 있어야 합니다』


李承晩-朴正熙 시대의 氣槪를 상실


李대사는 외무부가 외교의 중심에 제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참담한」 일로 다음의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소련과 修交(수교)하면서 修交 대금으로 현금 10억 달러를, 그것도 외국(홍콩) 은행에서 빌려 송금한 것은 세계 역사상 없는 일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다 상품 차관 4억7천만 달러까지 주었고, 그동안 받은 것은 2억 몇천만 달러뿐이어서 받아야 될 돈이 이자까지 합쳐 약 18억 달러 아닙니까. 당시 집권자가 자신의 임기중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성취욕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청와대에서 하려는 일을 외무부가 무슨 힘이 있어 막겠냐고 하겠지만 장관이 안된다고 고집 부리다 사퇴라도 했어야지요』

『1983년 아웅산 사태를 맞은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처음에 어느 부서에서 기획하고 건의했는지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수께끼입니다. 국가 원수의 외국 방문은 당연히 외무부가 그 목적 등에 관한 건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당시 외무부는 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대통령이 거기를 갔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사고 후 청와대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도 않았습니다』

李대사에 따르면 한국 외교의 「氣槪(기개)」 상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해 너무 저자세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참고가 될지 모르지만 1983년 5월 중국이 UNDP(유엔개발계획) 자금 지원을 받아 중국에서 열리게 된 행사에 미수교국인 한국의 참가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UNDP 회원국인 한국의 참여가 거부될 경우 행사 자체를 취소할 것을 유엔 기구에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중국의 부당한 처사를 각종 국제 회의에서 공개 규탄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으로 중국에 맞섰습니다. 한국의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중국을 비판했지요. 결국 중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허용했습니다. 「조용한」 외교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對北 경수로 사업에서도 우리는 미국에 너무 「조용히」 말려 들었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기는 어렵겠지만 외교는 주고 받는(give and take)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 표명도 하고, 반대 목소리도 내야 합니다. 몇명이 사표를 던지거나 장관이 바뀌면 미국에 대고 말하기가 더욱 좋아지겠지요. 우리는 조용히 35억 달러의 경수로 부담을 떠안고 말았습니다』

李承晩(이승만)대통령이 反共(반공) 포로를 석방해 미국을 경악케 한 일이나,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월남戰에 참여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대가를 얻어 낸 일 등은 오늘의 한국 외교에서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고 李대사는 안타까워 했다.

그는 외교부가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진정한 「한국적 외교본부」가 되기 위해서는 외교관의 전문성을 높이고, 내부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하며,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외교부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달라지면 담당 부서의 규모나 구성도 당연히 달라져야 할 텐데도 未修交(미수교) 때 그대로 입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외교부 대변인도 級(급)을 대폭 올려야 합니다. 장관을 대신해서 외국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고위 간부의 수도 늘려야 합니다. 장관이 하루 세 끼 이상 식사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알고 보면 외국 손님과 밥먹는 것만큼 중요한 외교도 없습니다』

李대사는 서울 文理大(문리대) 재학중 4·19의 중심 인물로 활약, 건국 포장을 받았다.

『4·19 때 직접 쓴 격문이 13개였습니다. 내 하숙집이 총본부격이었지요. 외무부에 들어가서도 그때의 왕성한 혈기를 잃지 않고 일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內에서 갈등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외무부를 드러내 놓고 비판하는 것도 친정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떠나는 자의 충정을 표시한 것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앞으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한국 정치와 외교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