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된  1차대전 마지막 생존자
2011년 3월22일자 <조갑제닷컴>

지난 3월 15일, 전 미국이 한 사람의 노병(老兵)을 추모했다. 그 노병의 이름은 프랭크 버클스. 지난 2월27일 11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는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만 빼면, 유별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1차대전 참전용사라고는 하지만, 1917년 프랑스전선에 배치되어 1년 남짓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근무한 것이 그의 군대경력의 전부였다. 그는 화려한 무공은커녕, 전선에서 총 한 방 쏘아 본 적 없는 ‘별 볼 일 없는’ 병사였다.

군 생활이 평범했던 것처럼, 평생 평범한 미국인으로 살았던 그는 부시 대통령 시절 참전용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되면서 ‘뜨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물론 의회와 백악관, 각급 학교에서 ‘살아 있는 역사’인 그를 초청해 ‘역사의 증언’을 들었다.

프랭크 버클스를 보내면서, 미국은 국가적 예우를 다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워싱턴 D.C에는 조기(弔旗)가 내걸렸다. 알링턴국립묘지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국방부가 직접 주관했다. 장례식장에는 수천명의 조문객이 몰렸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도 조문을 했다. 일개 상병 출신인 프랭크 버클스는 그의 군대 시절 쳐다보지도 못했을, 유럽원정군 총사령관 존 퍼싱 장군 옆자리에 묻혔다.

백선엽 장군의 ‘명예元帥’ 추대가 무산된 사연

버클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백선엽 장군을 생각했다. 백선엽 장군은 6-25 당시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낙동강전선을 지켜냈고, 적도(敵都) 평양을 제1착으로 탈환한 분. 그 후에도 백 장군은 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연합참모총장(합참의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군의 기틀을 다졌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노구를 이끌고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에 앞장섰고, 근래에도 이승만 대통령 현창(顯彰)사업 등에 모습을 보였다. 평생 애국을 몸으로 실천한 백 장군은 단순한 ‘전쟁영웅’을 넘어서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추앙받아도 부족할 것이 없는 분이다.

이런 그 분의 업적을 기려 작년에 6-25 60주년을 맞아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元帥)’로 추대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한동안 국방부 등 정부에서도 열심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작년 6-25를 전후(前後)해 백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명예원수’ 추대 건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 일각의 반대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만주군에 복무했던 것을 들어 ‘친일파’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보다 더 심한 반대는 몇몇 예비역 장군들 사이에서 나왔다.

6-25에 참전했던 일부 예비역 장성들이 “6-25전쟁은 백선엽 혼자 치렀느냐?”면서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대개 6-25 초기 초급장교로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청와대를 비롯한 각계 요로에 진정을 내고, 심지어 ‘소송불사’를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했을까?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 중 ‘소모품 소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초급장교들은 극심한 희생을 치렀다. 무모하게 느껴지는 전투에 투입되어 비명(非命)에 간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전우들을 보면서 살아남은 초급장교들은그런 무모한 명령을 내린 비정한 상급지휘관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또 그들의 눈에는 상급지휘관들이 개전(開戰) 초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낙동강까지 일패도지(一敗塗地)한 ‘무능한 상관’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들로서는 “전쟁은 우리가 다 했는데, 공(功)은 엉뚱한 사람이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로 모시는 것이 어찌 백선엽 개인을 기리자는 것이었을까? 물론 그의 무공을 기리는 의미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6-25때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해보자는 의미 아니었을까?

미국이 프랭크 버클스를 ‘영웅’으로 기억하면서 보낸 것이 그가 잘 나서였을까? 미국민들이 그에게 보낸 경의(敬意)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470만 명의 참전용사, 11만6000명의 전사자, 20만4000명의 부상자, 더 나아가 2차대전, 한국전, 월남전, 걸프전,아프간전, 이라크전 등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들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무명(無名)병사를 ‘영웅’으로 만든 미국, ‘영웅’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기는 한국 - 너무나 극명한 대비가 된다.

건국 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이 없는 나라

두 나라의 차이는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을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두 나라는 차이가 난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사령관으로 전쟁영웅이었던 율리시즈 그랜트는 대통령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대통령 그랜트는 부패와 무능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50달러 지폐에 그의 초상을 넣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치욕적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닉슨, 무능한 대통령의 대명사 카터, ‘지퍼스캔들’로 대통령직을 욕보였던 클린턴도 자기 이름을 딴 대통령기념도서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기리는 동상 하나,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을 기리는 기념관 하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고도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기대하겠다는 것인가?

다행히 이승만 대통령 동상과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서명운동에 4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호응했다고 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사업이 본격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