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느닷없이 내놓은 이른바 ‘평화 비전’ 운운의 신(新)대북정책은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대북(對北) 제의들을 재탕, 3탕으로 우려놓은 전시품에 불과했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북한이 무엇을 하면 우리도 이렇게 하겠다’는 식의 하나마나 한 소리와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다. 개중에는 굳이 먼저 말할 필요없는 당근작전, 선심작전, 물량작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선거를 앞둔 범여권의 북풍작전을 의식해 허겁지겁 쳐본 ‘개(犬)헤엄’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의 이런 서투른 궁여지책은 김정일도, ‘햇볕’ 지지자들도, ‘햇볕’ 비판자들도 모두 다 불쾌하게 만들 실패작이다. 실패로 끝나지 않고 역효과를 낼 뿐이다.

우선 김정일 정권부터가 ‘수구 반동 한나라당은 제거의 대상이지 협력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혁명적 원칙성’ 을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겐 항상 혁명투쟁의 표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북주의자는 아니면서 그러나 ‘햇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로서도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미지작전’에 급급한 한나라당의 ‘아류(亞流) 햇볕’을 지지해줄 이유란 도무지 없다. 이왕 ‘햇볕’을 지지할 바에야 아예 ‘햇볕 본당(本堂)’인 범여권의 ‘햇볕’을 지지하는 편이 한결 더 확실하지. 왜 굳이 한나라당의 ‘짝퉁 햇볕’을 지지해준다는 말인가?

‘김대중·노무현 식 햇볕’을 비판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배신이다. 문안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왜 굳이 한나라당을 반(反)좌파 대안(代案)으로 간주해 왔는지의 그 이유와 근거를 하루아침에 상실했다고 믿기 쉽게 되어 있다. 이들은 도덕적 청신성, 부패에 대한 면역성, 역사적 헌신(獻身)성, 고난(苦難)의 징표, 투쟁의 치열성에 있어 한나라당 안의 웰빙족(族)은 그야말로 ‘늴리리야, 늴리리’급(級)밖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달리 대안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한나라당을 도리 없이 ‘썩어도 준치’라고 봐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봐 주기’를 한나라당 스스로 “그만두어 달라”고 차버린 셈이 되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그렇지 않다. 내용을 잘 보고 말하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러다가는 김정일과 ‘햇볕’ 근본주의자들이 “그렇다면 거짓 시늉을 했다는 말이냐”고 야단칠까 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한나라당은 결국 제1 야당으로서 대북정책 같은 막중한 문제를 놓고 이쪽 저쪽에 다 같이 잔꾀를 부리려다 공연히 국민적 인식의 혼란만 부추긴 데 대해 마땅히 자성하고 자괴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 또한 ‘김대중·노무현 식 햇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건 비판하는 사람들이건 한나라당의 이런 얄팍한 잔꾀가 통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식으로 지지율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오산(誤算)이었음을 ‘햇볕’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이 한모습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보수냐 진보냐 이전에 믿을 수 있는 보수도, 믿을 수 있는 진보도 못 되는 행태는 ‘햇볕’ 지지자든 비판자든 그냥 덮고 넘어가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한나라당이 계속 이런 어설픈 ‘이미지작전’으로 나가려 할 경우엔 대북정책에 관한 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의 차이는 없어졌다고 선언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별다른 이념적 차별성을 읽을 수 없게 돼버린다면 ‘왜 굳이 이명박, 박근혜 또는 박근혜, 이명박이라야만 하는가?’의 그 이유도 함께 희석될 것이다. ‘산토끼’도 ‘집토끼’도 외면한 이런 상황을 한나라당은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