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他界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대학교 때는 미식 축구팀의 명 센터였고, 2차 세계대전 때는 구축함에서 근무했다. 태풍을 맞아 세 척의 구축함이 침몰하여 778명이 죽는 사고가 났을 때 그의 배는 침몰을 면했다. 닉슨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멜빈 R. 레어드는 이 태풍 속에서 다른 구축함에 타고 있다가 살아난 사람이다. 그는 12월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친구인 포드에 대해서 감동적인 평가와 일화를 소개했다.
포드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의 경험으로 해서 정치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生死가 오가는 戰場의 위기에 비교하면 정치판의 위기는 위기도 아니다. 포드는 하원의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가 소속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해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은 대신에 그는 부통령으로서 상원의장이 되었고,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닉슨 대통령은 스피로 에그뉴 부통령이 스캔들로 사임하자 공화당의 하원총무였던 그를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1974년 8월9일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자 포드는 대통령직을 인수했다. 그 직후 포드는 닉슨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사면령을 내렸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을 은폐하고 국민들에게 거짓보고한 데 대해서 격앙되어 있었던 언론과 야당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레어드는 자신도 포드의 결심에 찬성하고 일단 美 의회를 먼저 설득한 뒤 사면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포드는 즉각적인 사면령을 내렸다고 한다.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미국이 매달려 있으면 있을수록 국가의 進路가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악몽'을 일찍 끝내겠다는 포드의 결정은 여론을 거슬렀다. 이는 그가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 민주당 후보에게 진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포드의 닉슨 사면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가 암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5년 전 에드워드 케네디는 '존 F 케네디의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포드 전 대통령에게 주는 자리에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했다. 그는 '나도 포드 대통령의 사임조치에 반대한 사람들중의 하나였지만 시간은 과거사를 명확히 해준다. 지금 우리는 그때 포드 대통령이 취한 조치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포드의 답사가 감동적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여론조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험적 결단을 어떻게 했느냐로 정해진다. 단기적으로 어떤 결단은 (그 영향이) 너무 엄청나고, 때로는 자기파멸적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가장 큰 人生 패배는 그런 결단의 용기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삶은 사는 것이 아니다'
포드의 이 이야기를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에게 들려주고싶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김대중의 6.15 반역 선언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主敵인 김정일을 한번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無害無得한 대운하 계획이나 열차페리 발상을 설명하는 데는 열심이다. 김정일 세력과의 불가피한 대결을 피해가려는 두 사람의 계산이 대통령 당선을 위해선 맞을지도 모른다. 포드는 이런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들 그것은 헛된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회주의적 자세로썬 한국에서 결단코 대통령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한눈에 보는
베스트 기사
- 1 조선일보에 항의 전화와 절독 사태가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 2 윤석열의 두번째 自爆
- 3 윤석열 연출 사이코 드라마의 놀라운 진상이 드러나다!
- 4 세계가 이 추태를 지켜보고 있다! 윤석열은 스스로 걸어나와야!
- 5 호남 자유우파의 상징적 인물, 詩人 정재학
- 6 뉴욕타임스 "알고리즘 중독에 의하여 유발된 세계최초의 반란"
- 7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 같이 나가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 8 조갑제 "尹 영혼이 음모론 유튜브에 사로잡혔다"
- 9 보수가 좌파보다 더 열심히 윤석열과 국힘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
- 10 이순형 판사의 해괴한 수색영장 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