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필자가 18년 전인 1988년 6월호 月刊朝鮮에 썼던 '한국의 軍部' 중 마지막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대생활을 인생썩히는 일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다시 읽어보았다.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장교들만큼 사람이 된 이들도 드물 것이다. 건강하고, 정직하고, 정의감 있고, 행동적이며 추진력이 있는, 만나서 유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군인문화가 경제개발에 끼친 공헌은 굉장한 것이다' 흔히 예로 드는 것이 군의 경영·기획 제도가 행정·기업에 넘어가 현대적인 관리 기법으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해외로 뻗어 가는 국민적 에너지의 대폭발을 군대경험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남자들은 전쟁과 군 경험을 통해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좌절과 모욕감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맨 밑바닥에서 비로소 우러나는 용기와 희망을 한국인들은 터득하게 되었고 그 저력으로써 세계를 누비며 악착같이 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군대에서 겪었던 고생을 떠올리며 '에이, 군대 생활하는 셈치지'라면서 다시 용기를 얻고 돌파를 시도하는 '안되면 될 때까지'의 정신력이 한국의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는 풀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군 조직의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 2∼3년간의 군대생활이 한국인을 강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부모와 가정의 품속을 떠난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의 허전함을 잊게 해주는 기상나팔, 배고픔, 구타, 구보, 원산폭격, 그리고 연애편지… 이런 체험을 공유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동질성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람과 한 시간만 이야기해보면 군대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낌으로 알아낼 수 있을 만큼 한국 남자들의 체질 속에는 군사문화가 배어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民軍 관계를 釜馬사태 이전의 친선관계로 돌려놓으면서,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군사문화를 승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민주화란 것이 군사 정권의 선의나 시혜에 의하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의 대결에 의하여, 즉 사회세력간의 역학 관계가 변화하는 결과로써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었다. 군사정권이, 민주화의 물결을 타게 된 것, 또 다른 군인정치가에 머물렀을 노태우(盧泰愚)씨가 극적으로 변신한 것, 장교들이 여론을 두려워하고 오히려 피해의식까지 갖게 된 것, 이런 일들은 모두 국민들의 강력한 권리주장으로 얻어낸, 代價가 매우 비쌌던 변화이다.
군이 정치판으로부터 퇴장하게 된 것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 동안 국민을 품속에 안았던 군은 이제야말로 국민의 품속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국민은 커지고 군은 작아지며 착해지고 있는 것이다. 김민기(金敏基)씨가 전역하는 늙은 상사를 위해 작사·작곡했다는 [늙은 군인의 노래] 2, 3절엔 이런 대목이 있다.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중략)/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청춘 다 갔네
분단국가의 군인 된 보람과 슬픔. 그런 애환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해올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이 이제 희미해진 그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 내는 것, 거기서부터 民軍 관계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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