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521장과의 만남

이대로 실천만 하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그날 이후로 목이 터져라 521장을 부르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구석에 방치돼 있던 큰북을 둥둥 치며 특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간증> 찬송가 521장과의 만남


다음은 최근 애국단체 집회의 주제가 선정된 찬송 521장의 애창과 실천을 호소하는 전단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찬송가 521장과의 만남
찬양선교사 김 종 환

2000년 초 뉴욕의 작은 한인교회. 이민 온 지 몇 해 안된 1가족 5명과 자매 하나, 담임목사 이렇게들 모여 예배하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좁은 예배당. 세로보다 가로가 훨씬 긴 공간에다 장방형 테이블 3개를 옆으로 나란히 놓고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준비찬송 가사가 특이했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이런 찬송가가 있는 줄 여태 몰랐다니. 한 절 한 절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는데 찡한 감동이 왔다. 이대로 실천만 하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그날 이후로 목이 터져라 521장을 부르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구석에 방치돼 있던 큰북을 둥둥 치며 특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 후 뉴욕을 떠나게 됐을 때 담임목사께선 521장을 전파하여 민족을 깨우치라시며 선교사의 귀한 직분을 주셨다.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한인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감히 특송을 자청해서 기회가 주어지면 1절은 독창으로, 2-3-4절은 회중과 함께 부르며 민족의 자각과 부흥을 다짐했다.

군인가족이 대부분인 노스캐롤라이나주 훼잇빌의 장로교회 부흥회에선 3-4절에 이르자 온 회중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멕시코 접경 엘파소의 성결교회 금요예배에선 7순의 담임목사께서 예배 벽두에 곧장 불러내시더니 2절을 마치자 중지시킨 다음 이상한 말로 독창을 하셨다. 방언인가 했더니 브라질어였다. 당신께서 10여 년 전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살던 브라질의 장로교회들에선 521장 찬송을 참으로 많이 불렀다며 간곡한 기도로 격려해 주셨다.

2004년 4월 언론계 선배께 귀국인사를 갔더니 저녁에 평신도 대표자 비상총회에서 강연을 하신다기에 521장 특송이 어떻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주관 목사님께 연락, 쾌히 승낙을 받아 주셨다. 여전도회관에서 하얀 점퍼 차림으로 외람되게 선 자리였지만 온 교회와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역사적인 자리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에 감사했다. 그리고 얼마 뒤, 광화문 어디선가 521장이 들려 다가가 보니 젊은 전도사 한 분이 파출소 앞에서 노방전도를 막 시작하는 참이었다. 인사를 건네니 얼굴을 알아 보며 그날 여전도 회관 총회에 참석했다며 동역을 권유해 합류한 것이 광화문 조선일보 앞 도로원표 쉼터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열리는 북한 인권과 해방을 위한 기도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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