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출처:월간조선)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서울시 직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니, 4년 전 첫 출근 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제가 시장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들 생각이 먼저 납니다.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불가피했더라도 저의 불찰로 힘들게 해드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들의 아픔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이제 저의 이 마음을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있습니다.
청계천 노점상들을 만나고 다녔던 故 김일기 팀장님, 당신의 몸에 불치의 병이 심해지는 줄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다가
어느 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병상에 누워서도 “잘 되어가고 있느냐”며 오히려 문병 온 사람들을 걱정했습니다. 병마가 비록 당신의 육신을 앗아갔지만 우리는 당신의 아름다운 영혼과 대화를 이어갈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2004년 7월 1일 하룻밤 새 대중교통체계가 전면 개편된 날, 늘어선 버스들의 장사진과 당황한 시민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일부 교통카드도 말썽을 부렸습니다. 제가 직접 텔레비전에 나가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지나자 기대한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 나갔지만 그 때의 송구스러운 마음은 못내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싸고 편리해졌다고 칭찬도 해오고 세계의 도시들도 노하우를 배우러 오지만 그때 몇 달을 가슴 졸이며 날 밤을 지새운 교통전문가들과 IT기술자들, 그리고 시 공무원들, 땀에 젖은 그 모습들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청계천 복원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2005년 9월 초, 새물맞이를 한 달 앞두고 을지로 어느 음식점에서 대표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시장님!”

투박한 손이 덥석 제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저희 소상인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에 씻긴 얼굴들이 눈물로 젖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고 많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천만 우리 서울 시민들입니다. 저를 믿고 한결같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지와 소음에 짜증나고, 막히는 교통이 불편해도 말없이 참고 기다려 준 이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격려와 제안을 보내준 이들, 그 믿음, 그 기다림, 그 지지가 없었더라면 저 역시 흔들리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시민들이 함께 해주셨기에 많은 어려운 일들이 너끈히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시의회 의원님들, 25개 자치구청장님들과 4만 8천여 서울시 직원 여러분,
산하기관 임직원들과 노동조합 조합원 여러분, 여러분의 비판이 늘 저를 되돌아보게 했고 여러분의 합심이 늘 저를 채찍질했고 여러분의 헌신이 늘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경영마인드를 강조했지만,여러분은 제게 공공 마인드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바람 부는 공사판에서 헬멧을 쓰고
장마 지는 한강 둑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근무시간을 넘어 현장으로 달려가고, 미리 걱정하고, 새로운 방안을 궁리해 내었습니다. 7백만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이 파업했을 땐 파업을 대비해 미리 기관사 훈련을 받았던 119소방대원과 공사 간부들이 직접 나서서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이후로 서울 지하철은 서지 않았습니다.

지난 4년 임기 동안 서울시정에 공적이 있었다면 모두가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그리고 허물이 있었다면 물론 저의 탓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야당 시장이었기에 겪었던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숱한 장애가 있었습니다.
방책이래야 유리 상자 속 같이 투명하게 하고 성심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꿈이 진실했고 그 진실을 믿고 성원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도 감사드릴 일이 있습니다.

“교통대란 난다,” “상인 소동난다,” “홍수 난다,”

비판과 반대가 쏟아진 국무회의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은 서울시 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안에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였지만 그 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서울시 직원 여러분!

4년 전에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으면서 저는 일을 하기로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일이라면 이력이 난 사람이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은 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여는 서광 속에서, 그러나 외환위기가 남긴 그늘 아래에서 도시의 일상이 혼돈과 체념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근심을 씻어내고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하겠다,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자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도시행정의 변치 않는 첫 번째 목표는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도시가 국제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수도서울로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어쩌면 서로 뗄 수 없는 이 두 가지에 더하여 도시가 매력과 품격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 한정된 財源으로 그런 일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해내느냐,
이 생각이 지난 4년 동안 서울시정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취임하고 몇 달 안 된 어느 겨울날 변두리 산동네를 찾아 갔습니다.

옛날에 제가 살았던 곳입니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근 단칸방에 한 치매 노인이 있었습니다. 추위와 어둠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일 나갔던 젊은 부부가 돌아와 통곡하였습니다.

이런 어려움부터 해결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로 천 삼백 스무 분의 치매노인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렵게 학교를 다닌 사람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후 중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야간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졸업장이 있었기에 대학도 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 제가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오백 스무 분의 교장선생님들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뜻을 모아 하이서울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얼마 전 저에게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막 시작한 대학 생활이 꿈만 같다고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했다가
나와 같은 후배들에게 갚겠다고 했습니다.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아직도 서울시 구석구석에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늘진 곳 다 찾아 챙기지 못한 것을 압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위로의 말씀을 보내니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고생에 좌절하지 않고 고운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 그런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서울시 직원 여러분!

시장 집무실이 일로 파묻혀 갈 때면 저는 가끔 창밖으로 서울광장을 내다보곤 합니다, 거기 제가 아주 좋아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엄마 손잡고 나온 아이들이 분수 속을 뛰어 다니며 깔깔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어울려 씽씽 스케이트를 타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냥 즐거워 보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저도 즐거워집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하고, 현장에서 행동하라고 했지요.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려진 것은 주로 큰 개발 사업들이었지만 제가 더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은 실은 작은 일들이었습니다. 광화문에 횡단보도 하나 내는 것이 그렇게 복잡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편안히 건너다니는 것을 보면 좋지 않습니까. 시립교향악단의 연주든, 하이 서울 축제든 즐겁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입니다.

영등포, 미아리, 천호동에서, 그리고 뚝섬, 노들섬에서 우리는 작은 일로 시민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자고 했습니다. 서울 숲이나 쌈지공원이나 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고 첨단산업단지의 R&D가 중요하듯이 재래시장이 비 안 맞고 위생적으로 관리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시-나라-세계가 크나 작으나 결국 ‘사람 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이런 저런 사업들을 많이 했으니 돈을 많이 썼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편성됩니다.
내야 할 세금을 안내면 법을 어긴 죄로 벌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예산을 허투루 쓰는 것도 죄짓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서울시 살림을 살아 매년 8천억 원 가량의 예산을 절감했습니다. 그 돈으로 청계천 복원 같은 특별 사업을 하고 나머지는 이전에 시가 진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취임 당시에 서울시에 5조 넘는 부채가 있었는데 임기 중에 절반 이상을 갚았습니다. 돈 버는 것이 힘 드는 만큼 귀한 줄 알고 어렵게 여겨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것은 제가 몸으로 익힌 재정 원칙입니다.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주어진 여건 하에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남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중앙정부와 협조가 더 원활했더라면 서울이 국제금융도시로 몇 발짝은 더 나갔을 것입니다.

수도이전 위헌판결로 서울이 서울로 지켜졌지만 행정기능은 분할되게 되었습니다. 뉴타운 개발, 자립형 사립고 설립으로 강북지역 활성화의 계기는 만들었으나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시도지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방발전을 궁리하였지만 성과는 미흡하였습니다.

제 성심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못다 한 일은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시장에게로 넘어가서 결국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잘 이루어지려면, 지방자치가 좀 더 내실화 되어야 합니다.

제도 탓을 하자는 것은 아니나, 이 기회에 그 한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서울시 직원 여러분!

임기를 마치고 떠난다니까 모두들 저 보고 수고했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그 ‘수고’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 수고로 인해 시민들이 행복해 하니까 그것을 보는 저는 더욱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일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지요.

경제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민이 살기 어렵고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떠나는 마음이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기업현장에 채용된 노숙자들 얼굴에서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끼니와 잠자리가 주어졌을 때 보다 일자리가 생기니 확실히 희망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 나온 제 손을 잡고 하루라도 일을 더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재기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흩어진 가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자리가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의욕을 가진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경제와 복지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서울시 직원 여러분!

시사 주간지 TIME은 서울의 ‘푸른 꿈 (Green Dreams)’이 환경과 삶의 질을 모범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의 고비에서,긴장의 장소에 서서, 나는 우리가 꿈을 가졌다는 것을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그 푸른 꿈이 파장을 일으키고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음을 봅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겠습니다. 어제를 감싸 안고 오늘을 뛰어 넘어 내일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꿈이 우리를 화합하게 하고 꿈이 우리를 전진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고 꿈을 키워 가십시다.

이제 저는 6월 30일 근무시간까지 마지막 할 일을 다 하고 청사를 떠나려 합니다. 저에게 하셨듯이 후임시장에게도 신뢰와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민 여러분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6년 6월 30일
서울특별시장 이 명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