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열린 제5회 한반도 미래포럼 공개토론회(장소: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나온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발언 전문을 소개한다.

---------------------------------------------------------------------------

국제 안보나 핵 문제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가 ‘Fire Wall(방화벽)’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사이에는 방화벽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 그러나 사실 방화벽은 없다. 어느 단계에 가면 방화벽을 넘어간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NPT를 만들었고, 미국은 ‘원자력협정’이라는 방확벽을 만들어 못 넘어가게 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방화벽을 넘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안보를 강화시켜 가는 방안은 뭘까.

북한이 핵을 써서 자살행위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북한이 자살행위로 갈 수밖에 없도록 우리가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안보전략이 있다. 현 정부는 여기에 신경을 써야한다. 북한에 대해 유화적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다. ‘Push Against Wall’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벽에 대고 밀어붙이면 더 나갈 벽이 없다. 그러면 앞으로 튀어 나온다. 튀어나와서는 앞에 있는 사람을 때린다. 따라서 이런 ‘Push Against Wall’은 피해야한다. 북한을 자살로 몰아가선 곤란하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우리를 칠 것이냐 여부에 대한 논의가 많다. 핵을 가지고 친다는 것은 핵을 투발시킨다는 것이다. 이건 핵을 사용하는 두번째 목적이다. 핵을 사용하는 첫번째 목적은 핵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의 행동 양식이나, 정책 결정,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이다. 즉, ‘Political Use’(정치적 이용)다.

우리는 북한에 의해 상당히 정치적 이용을 당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 선언’ 등을 통해 확장억제의 방식으로 핵우산을 강화하더라도 북한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압박당하고 조종당하는 것, 이건 막을 수 없다.

핵을 가진 북한 때문에 우리 행동은 자꾸 위축된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 판문점 회담이다.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세 사람이 만났는데, 회담장에 들어갈 땐 누가 들어갔나. 트럼프와 김정은만 들어가고, 문재인은 바깥에서 문밖의 남자가 됐다. 핵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다.

북한이 핵을 정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당하는 건 북한에 의해서만이 아니다.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음으로써 치르게 되는 댓가도 엄청나다. 미국이 핵우산을 그냥 씌어주는 게 아니라 많은 댓가가 따른다. 그 댓가를 치르기 싫어서 ‘우리는 핵을 갖겠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오게 되는 타협안은 이런 것들이다. A안: 현재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면서 그대로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가는 것. B안: 우리도 핵무기를 갖게다고 하는 것. C안: 현재의 확장억제를 유지하면서도 우리의 잠재적 핵능력을 ‘우리도 여차하면 핵을 가질 수 있는 상태’까지 발전시키는 것, 쉽게 말해 당장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무기화되지 않은 무기 시스템까지는 가야 한다는 것이다.

C에 대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도대체 당신은 뭔가. A인가 B인가’라고 반문한다. 대학 학점을 예로들면 A학점 B학점만 있는게 아니라 A+ A-도 있고 B+도 있는데, A-정도는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 압박 뿐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그늘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는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 C안에 대해 이제는 생각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일본이나 독일의 예를 보자. 독일은 고농축 우라늄을 뮌헨공과대학에서 실험하고 만들고 있다. 미국이 이를 두고 고농축 우라늄 관련 시설을 없애라고 엄청난 압박을 가했지만, 독일은 꿈쩍않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해서 NATO 해체를 얘기하고 유럽 안보는 유럽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발언하자, 당시 독일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책임진다? 그렇다면 독일도 영국 프랑스처럼 핵무장할 수 밖에 없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발톱을 드러냈다. 우리도 이런 독일과 같은 단계까지는 가야한다는 것이다.

자꾸 NPT를 없애는 얘기를 하는데 NPT 범위 내에서도 우리는 우라늄을 농축하고 재처리 할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에 의해서도 문제 없다. 그 분야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또 과거 2004년이나 박정희 정권 시절처럼 뒤에서 할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확실히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경제적 목적에 의한 것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경제적 목적으로 핵 재처리를 한다’고 설명하더라도, 군사적 방어벽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나라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 안고 있는 안보 상황은 ‘언제든, 필요할 경우 넘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켜 갈 필요가 있다. NPT체제를 유지하면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