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수도인 캔버라에 가면 두 건물이 가장 눈에 뜨인다. 내각책임제하의 권력 중심인 국회의사당과 그 맞은 편 언덕 밑에 있는 전쟁기념관.

호주에 무슨 전쟁이 있었기에 전쟁기념관이 있나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호주를 잘 모른다. 호주는 20세기에 일어난 주요한 전쟁에 모두 참전한 기록을 갖고 있다. 1차-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말레이시아 공산군 토벌전, 월남전쟁, 걸프전쟁,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그리고 예상되는 미국-이라크 전쟁에도 미국 편에 서서 참전할 예정이다.

한국 전쟁이 터지자 미군과 함께 가장 먼저, 퇴각하는 국군을 도우러 온 것이 일본에 있던 호주 공군이었다. 호주는 육군 1개 여단도 보냈다. 호주군은 한국전쟁중 339명의 전사, 29명의 포로, 1216명의 부상을 기록했다. 전쟁 경비는 당시 돈으로 약 4800만 파운드.

한국전 참전으로 호주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에 타격이 많았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월드 뱅크(세계은행)에 이야기를 잘 해주어 호주에 2억5천만 달러를 대출해주도록 주선했다.

호주가 이처럼 자기 전쟁도 아닌데 찾아다니면서 참전하듯 하는 이유가 있다. 전쟁을 잊은 국민과 국가는 타락한다는 것을 국가 지도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섬이고 주위에 강력한 적을 두고 있지 않아 자칫하다가는 국민들이 나태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참전을 통해서 긴장감을 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김정일의 핵공갈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가는 데도 평화 타령만 하면서 전쟁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회피하고 있다. 왜인가. 지도층이나 일반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인가. 미국이 주한미군을 보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의 안보를 외국에 맡겨놓고는 그 고만운 외국, 즉 미국을 욕하는 일에 더 열심인 것처럼 비쳐진 나라가 한국이다. 전쟁도 모르고, 안보도 모르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이상한 한국인, 은혜를 원수로 갚는 한국인. 이런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고착될 때 우리의 선진국 진입은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날 것이다.

호주에선 한국전 참전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론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