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B-52 전략폭격기의 모습. 이 거대한 비행기(길이 47.7m, 너비 56.4m)가 전시된 국가는 미국 이외에 한국과 영국뿐이다/김필재(조갑제닷컴)

이태원에서 점심 식사 후 용산 전쟁기념관을 잠시 들렀다. 전쟁기념관의 옥외 전시장에는 매우 귀중한 전시물이 있다. 바로 美 공군이 반세기 넘게 현역으로 운용하는 B-52 전략(戰略) 폭격기이다. B-52는 미국의 보잉(Boeing)이 제작했다. 미국 최초의 제트 전략 포격기인 B-47의 후속모델로 1952년 초도(初度)비행을 하고 1955년 실전 배치됐다. 

B-52의 애칭은 ‘Stratofortress(성층권의 요새)’로 2차 대전 당시 운용했던 B-17(Flying Fortress)와 B-29(Super Fortress)의 계보를 잇는 美 공군의 대표적 초대형 폭격기이다.

B-52는 베트남전에서 맹활약을 했는데 ‘호치민(호지명) 루트’가 있는 정글과 북베트남 항구를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로 인해 B-52는 북베트남과 베트콩들이 가장 무서워 한 미군 병기가 됐다. B-52는 개발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수많은 퇴역의 위기가 있었다.

조종사의 세대교체를 예로 들자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가 같은 B-52를 탄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B-52H 조종사가 된 美 공군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 대위의 경우 부친인 돈 웰시(Don Welsh) 예비역 대령이 베트남전에서 B-52 폭격기를 몰았던 참전용사였다. 웰시 대위의 할아버지인 돈 스프레이그(Don Sprague) 예비역 대령 역시 냉전시절 B-52 폭격기를 이용한 핵공격 임무를 수행했던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B-52의 길이는 47.7m, 너비 56.4m, 무게 221.35t에 최대 항속거리가 1만6000㎞에 달한다. 최대 상승고도는 5만5000피트로 고고도(高高度) 침투가 가능하다.

개당 2000파운드(약 907㎏) 의 재래식 폭탄 35발과 순항미사일 12발을 장착할 수 있으며, 특히 AGM-86 ALCM, AGM-69 SRAM, AGM-129 ACM 등 공대지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사거리 2500㎞인 AGM-86 ALCM와 사거리 3000㎞인 AGM-129 ACM은 폭발력이 200킬로톤(kt)에 달한다. 사거리 200㎞인 AGM-69 SRAM의 폭발력은 170kt 수준이다.

B-52는 걸프전 당시 美공군에 남아있던 B-52 80여대가 동원되어 1,600여 회의 비행하며, 2만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것은 당시 다국적군(多國籍軍)이 투하한 폭탄 가운데 약 40%에 해당된다. 또한 B-52G 7대의 경우 美 본토로부터 무려 35시간을 비행, AGM-86C 순항미사일을 목표물에 발사, 당시 최장 시간의 전투비행기록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B-52는 D타입으로 베트남전 참전기체이다. 퇴역 후 미국의 애리조나 주 투산(Tucson)에 보관됐던 기체인데, 故 이병형 장군(초대 전쟁기념관장, 2003년 9월23일 별세)이 美 정부를 설득해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들여온 기체이다.

영국의 덕스포드 왕립공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B-52의 모습

당시 美 정부가 난색을 표명했던 이유는 B-52가 유사시 핵폭탄을 적재하여 전쟁을 한 번에 끝내는 전략폭격기였기 때문에 소련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2006년 6월27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인용). 李 장군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미국 정부를 설득해 내부 장비를 모두 제거한 뒤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들여왔다.

현재 미국 이외의 지역에 B-52가 전시된 곳은 영국 덕스포드(Duxford)의 왕립 공군박물관과 한국의 전쟁기념관뿐이다. (참고로 이병형 장군은 제5군단장 재직 당시 전군 최초로 ‘핵 투발’ 훈련을 실시해 유사시 북한의 핵 공격 대처능력을 향상시켰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역으로 운용 중인 B-52H는 1960년대에 운용됐던 H형과 외형만 같을 뿐 전혀 새로운 기종이다. 이 기체는 현대전에 적합한 각종 공격, 항법장비와 통신장비, 센서, 데이터링크, 데이터버스, 전자전·방어 체계를 갖춘 첨단 폭격기로 개량됐다. B-52의 수명연장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어 美 공군은 2045년까지 이 기체를 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