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떠나고 싶다.

새벽 5시마다 어김없는 종소리

“땡 땡 땡.”

동네 마당가에 매달린 종소리는 피난을 떠나는 동네를 거느린 듯 유난히도 챙챙하다. 가장 추운 대·소한(大·小寒)의 기간에만 며칠에 한 번씩 뜸해졌다가 서둘러 봄을 알리며 온 한 해 우리를 묶어놓는 종소리이다. 그 종소리를 따라 눈을 부스스 비비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선다.

매일 아침 당(黨) 정책 침투다. 그리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건 거덜이 난 국고(國庫)가 개인의 돈 주머니를 훑어내는 미련한 소리뿐이다. 혹시 사건처리를 위해 보안원, 보위원들이 등장해 저들의 말을 늘어놓은 뒤에 인민반장이 黨 정책과제를 쭉 불러준다. 이제는 선전 선동도 필요없이 무자비하게 불러댄다. 반장이 장부책에 씌어진 과제들을 부르기 시작하자 술렁대기 시작한다.

“무슨 제목으로 꾸민 돈이야? 그걸 연구하는라고 어느 놈팽인지 잠을 잤겠냐?”

모두 발끈한 얼굴을 쳐들고 인민반장의 얼굴에 강한 시선을 던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장은 이미 만성이 되어 장부책에 시선을 박은 채 건설과제들, 수집과제들을 냅다 불러댄다. 끊임없는 돈타령이다. 인민의 주머니에 돈을 맡겨 놓은 것처럼,

모두 속이 뒤집혀질 정도로 증오가 부글부를 끓지만 장군님의 방침, 당의 정책이라니 어쩔 수 없이 침통한 얼굴을 대신하고 서있다.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1년, 10년이 변함없는 그 모양으로 점점 도수를 높여 긁어내자 조금씩 돌변하기 시작한다. 몇년 전까지만 잠을 자던 악(惡)이 두렵긴 하지만 저절로 솟구쳐 오른다.

“차라리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생돈을 내라고 해라. 거기에다 장군님이요 당(黨)정책이요 하고 밀어붙이지 말고. 그게 더 불만이다.” 하고 소리친다.

장군님이 시끄럽고 밉다는 소리다. 이제는 노골적인 도전이다. 또다른 쪽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신세에 낼 돈이 어디 있어? 돈을 낳는 구멍이라도 있느냐?” 동네의 입이 걸쭉하고 드센 여인 몇이 선두에서 투덜댄다. 그러자 모두 한 마디씩 던진다. 이제는 참을 만큼 다 참았다는 증거다.

“못 내겠으면 이 마을에서 이사를 가든지 해”

반장이 연설이 길어지자 밥 가마에 불을 지피고 나온 여인들이 빨리 끝내라고 소리지른다. 출근해야 할 남편들, 학교 가야 할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린다. 속이 뒤집힐 정도로 끓는 증오를 가슴에다 마저 쏟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반장은 이미 준비를 다 해놓고 나온 듯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손에 든 장부책을 들고 즉시 1호 집부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모두 출근하기 전에 금방 포치한 정책과제 집행을 위한 돈을 받아내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다닌다. 금방 불을 땐 내내(냄새)를 걷어내느라 어느 집 할 것 없이 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인민반장에게 돈을 내면서도 한결같이 항거하는 목소리가 싸울 듯이 복도를 울린다. 순순히 돈을 내는 사람은 없다. 반장은 이제는 그런 것쯤에는 익숙되었다는 듯이 돈을 받아쥐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집 문을 두드린다. 못낸 집들은 매일 몇차례씩 추격전이다. 못내겠다고 뻗대는 집들과는 반장이 오히려 호통질을 해낸다.

“당(黨) 정책 관철이다. 장군님 모시는 사업이야. 밥가마에 밥은 끓고 있겠지? 살아있는 사람은 무조건 해야 되는 정책이다.”

마침내 싸움이 벌어진다.

“뭘 먹고 사는지 가마 뚜껑 좀 열어봐라.”

가난한 반원이 맞선다.

“뭘 먹고 살든 그건 네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야. 사정은 다 같아. 있어서 내는 사람이 없어. 못 내겠으면 이 마을에서 이사를 가든지 해.”

다음날 아침 반 모임 때 보니 50프로는 냈다. 웬간하면 문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집들은 내고야 만다. 끈질긴 추격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0프로 세대는 그날 벌어 그날로 살아가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집들이다. 집만 있다 뿐이지 꽃제비 못지 않게 가난하다.

그들의 집 문을 열면 역한 시래기 냄새가 쏟아져 나온다. 집도 꾸리지 못해 돼지굴인지 사람의 집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진짜 그들이야말로 옥수수가루 한 홉에 시래기가 끼니인 가련한 사람들이다. 돈낼 형편이 못 된다고 가슴을 두드리며 운다. 동(洞)에서 세대수에 맞추어서 내려온 과제이니 그들이 못내면 그 과제가 내는 사람들의 몫으로 덧과제가 될수 있다. 그러면 동네가 부글부글 끓는다. 내 앞의 과제도 내기 힘든데 남의 과제까지 낸다는 게 말이 되냐구?

동(洞) 사무장, 반장들 세워놓고 “이런 머저리같은 년들”

언제인가 동네의 가난한 집과 반장이 너무 싸우길래 당원 노인네가 한 마디 했다.

“반장 골고루 다 받아내야 된다는 법이 있나? 없는 사람 기름 짜겠나. 못낸다구 해서 洞에서 아무렴 반장을 죽이기까지 하겠나. 좀 작작 하라구.”

그 말을 듣는 반장이 펄쩍 뛰었다.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한 세대라도 미진되면 반장이 동위원회 비판무 대에 서야 된다구요. 모르면 삐치지 마세요.”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너네들 충성경쟁 하느라구 그러겠지 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위원회에 볼 일이 있었다. 주지 않는 배급이지만 혹시 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배급주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식량신청서에 도장을 찍어놔야 한다.

동 사무소의 문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미친 듯이 고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x, x, x,반 반장들 일어나. 야. 이게 어디서 이런 머저리같은 년들이야? 언제 포치한 돈인데 아직도 못 걷어들이고 있어? 못내겠다는 사람 없어. 인민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야. 네들 능력부족이야. 반장 권한 가지고 뭘해? 머저리 같은 것들!”

모진 상말까지 섞어가며 악에 받쳐 고아대는 것은 다름아닌 동사무장이었다.

엿듣는 것 같아서 흠칫하고 서서 들어갈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에서 서성거리는데 저쪽에서 경비원이 눈치채고 다가왔다.

“이제 알겠죠? 내가 얼마나 양쪽 수모 다 받는지”

“반장들 모임이요. 어디서 왔소?”

“아 네. 식량 신청서 확인 도장 받으려구요.”

“조금 기다리면 끝날 거요. 한참 됐으니.”

우리 조직 책임자도 더러 악을 쓰지만 지성적인 욕설이지 이런 상말로 악을 쓰는 일은 없다. 충격이 너무 커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음날 반장이 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정책과제 수행을 위해 뛰어다니다 우리집 문턱까지 다달았다. 내가 먼저 물었다.

“반장. 나 어제 동사무소에 나갔다가 놀랐어. 동 사무장 그 여자 원래 그렇게 드세니? 너희 항상 그런 분위기야. 어쩐지 그렇게 보인다.”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장이 한숨을 그으며 대꾸했다.

“이제 알겠죠? 내가 얼마나 양쪽 수모 다 받는지. 반원들이 돈을 안내겠다구 앙탈. 돈을 못 걷어들였다구 해서 사무장한테 천대. 말 다 못해요. 그날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쩍 하면 개xx라고 하는 게 입에 붙은 말이에요.”

동네 여인들이 ‘여자 치안대’ ‘치마두른 악마’라고 뒷욕질을 할 때 그게 무슨 소린지를 다는 몰랐다. 매일이다시피 뜯기는 것만도 분한데 저런 악설(惡舌)까지 듣고 살다니. 여맹원들이 정말 용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역(負役) 못 나가면 대신 돈 내야

그뿐이 아니다. 부역(負役)에 몰려 죽을 지경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새벽부역 때문에 나는 공장 출근시간이 늦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못 나가면 대신 돈이다. 오죽 했으면 돈 있는 사람들은 새벽동원을 피하기 위해 일년 분으로 대신 돈을 지불해 물리치기도 한다. 그래도 물리칠 수 없는 건 한 밤중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 날들은 밤중에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요란하게 종소리를 때리며 한바탕 난리를 피운다. 그런 날들에는 반장이 직장세대인 우리집 문을 제일 마지막에 두드린다. 나는 투덜대며 문을 연다.

“밤중에 왜 이리 소란스러워?”

“다른 게 아니구요. 불원간 야간전투가 있어요. 밤에 급시에 당(黨)에서 과제가 떨어져서요. 저쪽에 본래 있는 작은 공장건물을 허물고 그 옆에다 새로 공장을 크게 다시 짓는데 그 기초 파기가 무척 바쁜가 봐요. 일이 끝나서 들어오면 밥이라두 한 끼 지어먹이려구 그래요.”

또 돈이다. 그 놈의 돈, 질기기도 질긴 놈의 돈. 또다시 신경이 곤두박질친다. 안 나가는 사람이 나가는 사람을 생각해서 돈 못내겠다는 말은 차마 못한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자전거를 끌어내는데 옆집 여인이 온 몸에 진탕이 게발린 채 끔직한 차림으로 우들우들 떨면서 들어선다. 밤 12시에 불려 나간 사람들이 7시가 되어서 들어오는 그 난감한 모습이 내 머리를 때린다. 당장 주머니를 열어 반장에게 돈을 내민다. 옆집 여인이 설명하기를 기초 파낸 땅에서 물이 나와 물 속에 들어가서 퍼올려 손수레로 밤새껏 날랐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면서 투덜대었다. 그 긴장한 기초 파기는 며칠간 계속 되었으며 그 건설이 끝날 때까지 나의 주머니돈 역시 함께 동참했다.

공부하러 가니? 돈 바치러 가니?

돈이란 동사무소에서만 걷어가는 게 아니다. 직장은 동보다 어벌이 크다. 아침에 출근하기 바쁘게 비서와 단위책임자의 연설은 온통 당(黨)의 방침, 장군님 말씀 등으로 일감보다 우리의 신경을 더 팽팽히 조인다. 다음은 정책과제, 수집과제 등 돈을 요구하는 분배된 몫을 책임자가 장부책에 이미 계산된 것을 줄줄 내려 읽는다.

우리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있고 단위책임자의 얼굴은 태연하고 의연하다. 전달보다 한 계단 더 높아진 과제를 놓고 내 옆의 직원이 속달댄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된 판이냐 ? 살라는 거냐 아니면 죽으라는 거냐? 개인 주머니 터는 데 통두 크다. 이 꼴 보지 말고 어느 산 속에 들어가서 숨어 살 수만 있다면” 하고 몰래 한숨 쉰다.

저녁에 퇴근해 들어오니 아이가 또 돈 타령이다.

“엄마. 내일 돈 가져가야 돼. 파동, 파고철이 없으니 돈을 내야 돼요.”

“엊그제 낸 돈은 뭐구. 또 돈이야? 공부하러 가니? 돈 바치러 가니? 엄마 미쳐버리겠다. 인민반, 공장, 학교, 몽땅 바치고 굶어라.”

시무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아침에 학교갈 시간이 돼 오자 아이는 그 돈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알고 있다. 애가 왜 주춤거리는지. 돈을 제때에 내지 못하면 숙제해야 할 책가방이 선생님에게 묶이어버린다. 몸만 집으로 돌아와 직장에서 돌아올 엄마를 목빠지게 기다린다. 아니 돈을 기다린다. 애가 가엾어서 당장 돈지갑을 뒤져 돈을 챙겨보낸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모든 가정집들의 분위기는 꼭같다. 출근하려고 복도를 나서는데 옆집 애가 가방을 메고서 홀짝거리며 울고 있다. 과반수의 아이들이 똑같다.

“철옥아 울지 말고 빨리 학교에 가거라. 엄마 속상하게 만들지 말고…”

애가 우는 건 분명 돈 때문이다. 식구가 많은 옆집, 부부가 재혼해 애가 셋씩이나 되는 옆집은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근근히 살아간다. ‘시든 꽃 같은 아이들아’가 이것을 대변해서 쓴 시(詩)이다.

고난의 행군을 시작해 20여년 삼백만이 쓰러져 갈 때는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더니 백성이 악착스레 살아가기 시작하니 그것이 가시가 되어 처음에는 조금씩 뜯어내더니 이제는 소도적이 되었다. 항의할 수도 없다. 총대 정치가 남조선만 잠재우는 게 아니라 인민을 잠재우는데 더할나위 없는 무기이다.

국가의 밑천은 인민에게 있다. 호령질 한 마디면 산도 허물자면 허문다. 지겹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 열 번도 더 들먹인다. 해마다 작년보다 올해는 좀 어떨까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꾹 참고 한 해 한 해 지겹게 보내고 있다. 참을 인(仁)자를 마음의 곳곳에 부착시켜 놓고 기를 쓰고 다잡으며 산다는 게 고역같다. 동생이 탈북한 지 10여년 만에 참고 참던 내 마음도 펑 뚫리고 있다. 참고 또 참던 것이 곪아터지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 산천이 있는 땅을 뜨지 말자고 사려물었던 이빨이 흔들리고 있다. 내 마음이 폴싹 무너지려 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떠나고 싶다고 외우고 있다. 하지만 떠나고 싶을 뿐이지 당장 어쩔 수는 없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