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따라죽을지 모를 정도로 휘청이는 시체조 노동자들

수많은 시체들을 묻을 각각의 묘(墓)를 만든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은 야산도 아닌 길고 넓게 드러누운 둔덕 밑에 촘촘이 들어앉은 집들 속에 있었다. 집 마당에서 둔덕으로 환히 올려다보이는 곳에서 시채를 날라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둔덕은 원래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남새도 심고 좀더 올라가면 옥수수밭도 있고 그쪽으로 쭉 뻗어 올라가면 야산들이 있었다.

시체들을 원래 산으로 올려보낼 참이었을 것 같은데 그 많은 시체들을 산으로 올려보낸다는 것이 당시 상황에서 내가 보기에도 불가능해 보였다. 말이 시체조이지 그 사람들도 죽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 언제 따라죽을지 모를 정도로 휘청이는 노동자들로 조직된 구성이었으므로 담가를 들고 오르내리는 모습이 당장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끝내 산으로 오르지 못했다. 시체들을 둔덕을 파고 묻어버렸다. 죽음이 너무 흔한 시기여서 무서움도 없이 주검을 땅에 묻는 것을 지켜보는 애들도 많았다. 나는 내 아이들이 절대 그쪽에서 어슬렁대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참변의 몇 년이 흘렀다.

유엔과 한국서 온 쌀을 빼돌리는 당(黨) 간부들

유엔에서, 한국에서 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소 안도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상화된 배급은 아니고 한 달에 열흘분 정도로 주면 잘 주었다.

쌀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자 간부들의 활기찬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동안 굶주렸던 간부들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배급소에 들어온 쌀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뒷공작이 미친 듯이 벌어졌다. 그들은 양정부(糧政部)와 짜고서 배급카트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역대에 없었던 사기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원래 세대에 따라 한 개밖에 나오지 않는 배급카트를 서너 개씩 만들어 여려 개의 배급소에 넣고 배급을 3~4중으로 타먹었다. 한 간부는 다섯 곳의 배급소에서 달마다 쌀을 실어들이다가 인민들의 눈에 의하여 적발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기 시작하니 모두 간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어서 종당(終當)에는 조용히 무마시켰다.

배급을 줄 때 일반 인민들은 처음에는 열흘분, 그 다음에는 일주일분, 그 다음에는 삼일분씩 닭 모이주듯이 했다. 오죽하면 인민들이 배급소에 “닭모이 타러 간다”고 했겠는가. 인민들은 한 가족이 네 식구의 식량으로 열흘 정도밖에 못탄다. 그러니 간부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려죽여야만 죽이는 것인가. 그래서 북한이 간부들만의 나라인 것이다. 당시 유엔과 한국에서 들어온 쌀은 인민들은 목을 겨우 추기고 부역(負役)에 끌어내기에 충분했고 간부들은 사기충천해서 불어난 배를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2002년, 남편과 이혼

이렇게 시간들이 흐르는 가운데 떠나간 동생은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남편도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돌아와야 할 텐데.” 이 한 마디이다. 나에게는 그 말 한 마디가 못 오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헤어져야 한다는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나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남편을 불시에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 가슴을 충분히 뒤집어놓고 남음이 있었다.

드디어 그 시각이 왔다. 시어머니가 내 결심을 독촉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아들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해한다. 철저히 이해한다. 솔직히 내주기 싫지만 내놓지 않고 내 욕심을 챙기려 했던 생각은 나 역시 철저히 없었다. 우선 내 자존심이 그걸 허용 안한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날이기도 했고 기필코 보내야 한다고 결심을 굳히는 날이기도 했다. 남편의 결심도 이미 굳혀져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보다 마음이 약하다. 우리는 살면서 타격태격한 적이 없다. 항상 마음이 잘 맞았고 놀기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과 나는 부부라기보다 같은 동기(同期)나 친구처럼 웃고 떠들며 즐기는 편이었다.

2002년도에 끝내 이혼이 되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첫 번째 추락사가 시작되었다. 아니 추락사가 아니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더 잘된 일이었음을 지금 자부한다. 훗날 어떤 기회를 타고 시엄마가 찾아왔다. 후회? 후회는 늦은 것이다. 거기에 대한 보상은 없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버리면 종당에는 망하기 쉽다. 악(惡)한 뒤끝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어릴 때부터 심어준 우리 아버지의 인생철학이다.

군당(郡黨)부장집도 옥수수죽으로 끼니 때워

북한의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삼백만을 죽이고 무덤 우에 선 왕국(王國)이 무사할 리 없다. 거기에는 기필코 함정이 뒤따른다. 그 함정이 지금 발뼘 발뼘 다가오고 있다. 지금 북한은 중앙당급 간부들을 내놓고는 도당급 간부들도 살아가기에 숨이 차서 어쩔 줄 모른다. 군급(郡級) 간부들은 평백성의 장사하는 사람들의 생활보다 더 어려우면 어렵지 낫지 못하다.

국고(國庫)가 거덜이 났으니 쥐어 짤 데가 없다. 나와 26년 지기 친구의 남편이 군당(郡黨)부장인데 그 집을 가봤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옥수수 쌀밥도 하루 세 끼 잇기 힘들어 친구의 얼굴은 시름에 쌓여 있었다. 옥수수 가루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많다고 했다.

보안서 보위부 역시 배급을 준다고 하지만 악마구리 끓듯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배급 1년분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계산하면 6개월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살기 위해 끊임 없이 인민들의 목을 조인다. 좀 괜찮게 산다고 보아지는 집은 그들의 목표물이다. 끊임없이 코걸이질하고 늘어진다. 나도 끊임없이 그들에게 코걸이질당한 사람이다.

북한에서 비(非)사회주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걸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판인데. 조금만 판을 늘이는 것 같아 보이면 어김없이 목조르기 당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토해내야만 된다. 더 큰 손해를 볼까봐 부들부들 떨면서 그들에게 털어바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산다.

쇠고기 1킬로 사러 온 시내 장마당 다녀도 못구해

이천 삼백만 인민들이 18년 전이나 18년 후나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악(惡)을 쓰는 인민들의 모습과 보이지 않는 반항심뿐이다.

내가 대한민국이 천국(天國)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북한의 중앙당 일반급의 간부들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김일성, 김정일의 연설문을 쓰는 중앙당 101호실의 한 사람을 우연한 기회에 만난 적이 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연설문 한 개에 고작 선물시계 한 개씩 준다는 것이다. 몇년 어간에 선물시계 세 개를 받은 것을 무한한 행복감으로 여겼다. 그리고 돼지고기, 기름 몇병, TV 이런 것들이 전부라고 했다. 그것도 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 전(前)의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앓는 아이를 위해 쇠고기 1킬로를 사려고 온 시내의 장마당을 다 뒤진 적이 있다. 친구들한테도 부탁했고 장사꾼들한테도 부탁했는데 끝내 살 수 없었다.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였다. 대한민국에 오니 북한에서는 그토록 보기 힘든 쇠고기가 어디 가나 흔했다.

더운 물, 전기, 자가용차. 이것은 북한 고위특권층들밖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서민들도 다 누리고 있는 혜택이다.

없는 먹거리가 있는가. 아마 중앙당의 일반 간부층들도 외국에 못 나가 본 사람들은 못 먹어본 먹거리가 많을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국민이든 먹거리가 같고 전기가 같고 자가용차가 같은 대한민국. 그래서 우리의 대한민국이 천국인 것이다.

나도 천국에 살아 시간이 지나면 천국을 잊어버릴까봐 겁이 난다. 그토록 고생하며 살던 북한을 마음 속에서 항상 떠올리며 우리를 받아주고 삶의 터전을 준 대한민국을 그지없이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