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생(生)의 가장 치열한 시간들 
  
 
모주(母酒)를 사서 옥수수가루를 섞어 죽을 쑤어 먹다
  
쌀 한 알 못 물어들이는 가련한 나라는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배 고픈 사람에게 쌀이 아니라 미친 듯이 사상(思想)을 퍼먹이는 길로 나갔다. 그 속에서도 사상투쟁은 계속되었으며 사람들을 장악 통제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당(黨)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원문 통달경연에 참가하라는 조직적인 지시에 대항했다가 비판무대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그 어려운 속에서도 통달학습, 문답식 경연들이 계속되었다.
 
그 때 나는 한쪽 어깨에는 장사배낭을 한쪽 어깨에는 사상의 짐을 메고 무척 힘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 모두가 그놈의 문답식 때문에 모두 애를 먹었다. 잘못하면 무대에 나와서 망신당해야 하고 생활총화에서도 비판무대에 서야 하니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사상사업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끼니를 먹이듯이 멈춤을 몰랐다.
 
그 시기 나에게도 시래기죽도 언제 끊길지 모를 위태위태한 순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버티고 사는 친구들의 집부터 먼저 찾고 그들의 방법을 열심히 지켜보고 내 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당시 우리 가정 우리 가족들도 너무 힘들어 했다. 부모가 돼가지고 아이가 배고파 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술을 뽑고 난 모주(母酒)를 사서 옥수수가루를 섞어서 죽을 쑤어 먹었다. 난생 처음이지만 배고픈 아들과 나는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난다. 남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챙겨주었다. 어느 날엔가 학습, 생활총화를 참가하고 늦게 돌아오니 아이가 너무 배고파서 자기절로 김치를 퍼다가 정신 없이 먹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김치가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김치조차 없는 집이 부지기수이니까.
  
 
밑천 마련 위해 옷을 내다 팔다
  
우리 엄마네 집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집안의 것을 TV로부터 팔기 시작한 것이 집안의 가산(家産)을 거의 내다 팔아먹으며 근근히 목숨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죽지 않으면 살 정도로 쌀알을 알로 세이며 내 생(生)의 가장 치열한 시간이 흘렀다. 바싹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준비를 해나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죽음이 덮칠지 몰랐다. 갑자기 일어난 고난이고 너무 생소한 길이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부담이 컸다. 
 
밑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옷들이 좀 많았던 나는 그 옷들 중에서 입을 옷만 챙기고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죄다 팔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집 근방은 머리만 잘 굴리면 살 수 있는 위치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밑천이 중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타산을 철저히 따져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실수는 금물이었다. 
 
실수해서 밑천까지 씹히는 날에는 죽음밖에 차례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각오하고 나섰다. 다행히도 실수는 없었고 의도에 맞아들어갔다. 이렇게 굶음을 놓고는 흥정이 되지 않는 상당히 긴 시간들이 흘렀다. 열흘만 굶어도 죽어나갈 건 뻔하지 않는가. 그 시간들을 아이와 나는 모주로 끼니를 때우며 용케도 버텨나갔다. 
  
결국 모주죽에서 옥수수죽으로, 옥수수죽에서 옥수수밥으로 간신히 일어섰다. 이제는 밑천이 꺾일 염려가 없었고 내가 번 돈으로 내 가정도 살리고 부모님들도 만족하게 해주진 못해도 조금씩 도와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 가정은 겨우 안식(安息)을 찾고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 집은 여전히 겨우 한 끼 한 끼를 외우며 숨가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집에 설상가상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쳐들었다. 부모님이 잠시 집을 비운 뒤 집에 도적이 들어와 집을 반반히 흩어갔다. 굶으면서도 동생들 시집 보낼 예물들을 꽁꽁 건사해 두었던 것과 심지어 가마(가마솥)까지 다 털어갔다. 도적도 알씸차게 걷어갔다. 
  
가마 한 개 싸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나도 힘들다. 돈을 번다고 해서 풍족한 것이 아니었다. 근근히 굶지 않고 살 만큼이지 푹푹 퍼줄 정도는 아니었다. 밑천을 때려먹지 않는 조건에서 유지하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주지 않으면 편하지 못하다. 그래봤자 다행인 것이 목숨건사뿐이었다. 
 

동생의 脫北(탈북) 소식
  
어느 날 장가간 동생네 집에 들르니 뼈에 가죽을 씌운 온 식구가 죽음을 기다리듯이 누워있었다. 내 힘으로 그들까지 살릴 능력은 없다. 그러던 와중에 동생이 국경에 있는 고모를 통해 탈북(脫北)했다는 소식이 고모편으로 알려왔다.
 
온 집안에 겹시름이 쌓였다. 국경쪽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안쪽에서는 무척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 당시 상당히 사건화되어 시내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우리 시내에서 첫 번째 탈북이었기 때문이었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일이 되어 남편도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하기 전 남편이 어디서 먼저 듣고 걱정하며 물었다. “돈벌이 갔으니까 올 때면 오겠죠” 하고 시들해서 대답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동생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직급이 있는 남편이 자칫하면 처가쪽 때문에 직급에서 물러나 앉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또한 탈북자 동생을 둔 아내와 산다는 것이 상당한 수치였고 또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남편에게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멀리 떠나간 동생이 오히려 한시름이 놓였다. 나 하나의 희생이 가슴이 아프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컸고 제발 돌아오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가 돌아온다면 무사할 수 없다. 제발 돌아오지 말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이제는 한 길이 남았다. 내가 남편에게 내 자리를 비워주는 길이다.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대열은 점점 늘어만 갔다. 배고픔이 극도에 달하니 환각증(幻覺症)이 온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내 집 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섯 명의 꽃제비를 잡아먹은 모자(母子)
  
우리 집에서 50미터 정도 나가면 한 동에 두 세대짜리 집들이 울타리를 치고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다. 그 첫집의 장가 못간 늙은 총각과 엄마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모자(母子)가 잡혀갔다. 그들 모자는 꽃제비 아이들을 불러들여 다섯 명이나 잡아먹었던 것이다. 옆집이 아이들도 없는 집에서 아이들의 괴상한 울음소리를 감촉했고 이상한 고기냄새가 풍겨와 수상하다고 신고했던 것이다. 
 
그들을 잡아간 다음 집을 수색을 하니 잡아먹은 아이들의 뼈가 아궁이 안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30분 정도 가는 거리에서는 사람고기를 시장에다 내다 팔아서 소문이 굉장했다. 모두 끔찍스러워서 치를 떨었다. 굶어죽는 것만도 기가 막힌데 잡혀먹히기까지 하다니. 
 
그뿐이 아니다. 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사람들의 무리들이 여기저기서 사람을 죽이고서라도 도적질을 감행했다. 어느 하루는 시내의 하수망에서 부부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돈 때문에 옆집 친구까지 살해하는 일들까지 빈번히 일어났다. 밤에는 강도들이 도로를 지켜서서 사람들의 몸수색, 때려죽이고 자전거 등 물품을 빼앗기도 했다. 밤을 깨기 바쁘게 사건 사고들이 늘어만 갔다.
 
내 집 곁에는 길가에서 굶어죽은 사람들을 보관하는 시체 보관소가 있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시체들, 그리고 죽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 수많은 사람들. 당시 보안서가 주체가 되어 시체 신소(申訴)들이 들어가게 되고 이미 전에 나와있는 시체조가 시체들을 처리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시체들을 차도 없이 담가(擔架:들것)에 실어 나르는 담가대들이 시내 곳곳에 나타났다. 시체조는 그 시체들을 시체보관소에 매일같이 날라들였다가 무더기로 한 곳에다가 매몰시키곤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