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산케이 신문, 교도통신, 지지통신
  등 일본언론이, <한국에 언론자유나 인권이 있느냐?>는 식으로
  공세를 폈고, 외교부 대변인은, <그런 문제는 검찰에 가서 따져라,
  그런 질문은 불쾌하다>는 식으로 답을 하며 격하게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뜨려는
  대변인에게 일본 기자들은 '더 질문 받고 가라'는 식의 반발까지
  한 모양이다.
  
  15일 유엔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이미 다 해결됐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날카로운 공방을
  이루었다. 또, 14일에는, 위안부 강제연행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1996년)를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했던 '구마라스와미'씨를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만나, 과거 보고서 내용 중, '아사히 오보'와
  관련된 부분(요시다 허위증언)을 철회를 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울러,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위안부 및 독도와 관련한
  자신들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나가겠다는 방침도 최근
  밝혔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큰 분노'를 한다.
  그런데, 한국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큰 분노'를 하게 만드는 원인을
  하나하나 뜯어놓고 살펴보면, 그 중 하나로 '(오직) 상대가 일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큰 분노'의 원인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수치로 치면 아마 50% 이상은 충분히 될
  것 같다. 달리 말해, 똑 같은 미운 짓을 했어도, 일본이 그 짓을
  했다면 다른 나라가 한 것에 비해 2배 이상은 더 크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된다.
  
  분노도 일종의 학습이다. ①'상대가 고분고분'하면, ②'더 큰
  분노로 발전'하고, ③'다른 분야로까지 분노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위안부 문제를 1993년에 고노담화로 매듭짓고 더 이상은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던 한일간의 약속(김영삼 정부)에 이어, 역시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던 한일간의 다짐(김대중 정부)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은, ①'상대(일본)가
  고분고분'하여 ②'더 큰 분노로 발전'하는 현상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진영의 이웃나라 국가행사를 하루 전에 망쳐놓는 희대의
  비상식을 자행한 것이나, 전혀 문제 없는(오히려 도움되는) 이웃나라
  집단자위권에 규탄결의안을 도출하는 비상식적 행동패턴은,
  ①'상대(일본)가 고분고분'하여 ③'다른 분야로까지 분노가 확산'되는
  현상의 대표적 케이스다.
  
  중간에 부작용(버르장머리 이후 IMF)도 있었지만, 지난 50여 년간
  보여준 한일관계의 기본 속성은 이렇게, <상대가 고분고분하여,
  (안심하고) 더 큰 분노를 퍼붓고, 그 분노를 다른 분야로까지>라는
  것으로 정의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상대가 고분고분'하면,
  (큰 속 안썩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서 상대의 입장도 최소한
  헤아려 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은
  지금까지 이와는 정반대로 일본을 대해 온 것이다. ②'더 큰 분노로
  발전'하고, ③'다른 분야로까지 분노가 확산'되는 지금 같은 對日
  행동패턴은, 이제 한민족 고유의 DNA와 같이 뼛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큰 문제는, 이러한 행동패턴(②,③)을 탄생시킨 소스(Source)가
  되는 ①'상대의 고분고분함'이 지금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는
  점이다. 요 며칠 벌어진 몇 가지 한일간의 대립은 이러한 시도의 단적
  예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상대의 고분고분함'(①)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과, 그간 한국의 행동패턴(②③)에
  질려, 그 근본(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본 간의 힘겨루기가 곳곳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일본은, 정부 차원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과거 추억(①)을 완전히 없애고 새출발하겠다고 작심을 하며
  한국에 달려들고 있는 분위기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한국 길들이기'에
  나선 정황이 역력하다는 것쯤에 해당한다.
  
  이제 한국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거의 도
  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우리에게 '익숙한 것'(①②③)은
  '일종의 혜택'이었지, 결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이것(①②③)을 마음껏 누려 온
  탓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좀처럼 착각(일본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비참한 것은,
  상대가 작심을 하고 변해가는데도, 과거의 추억(①)에만 집착하다가,
  결국 물리적으로 떠밀려 (굴욕적으로) 우리의 행동(②,③)을 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다.
  
  여기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우리가 먼저 능동적으로 현실감각을
  찾고, 이러한 일본의 (①에 대한) 변화시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호 Win-Win 차원의
  소프트랜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은, 우리가 일본을
  (감정 실린) 일본이 아니라, 외국(타국)의 하나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시각을 갖추지 못하는 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위안부 관련 주장에 우리는 항상 끓어올라
  비이성의 상태로 빠져드는 과열의 도가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는, 일본 입장에서 보면, 감정만 앞서고 '말'이 안통하는,
  그래서 그냥 무시하는 것이 최선인 나라(한국)로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상태가 거의 그렇다.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
  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일본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나라(외국)고,
  위안부와 관련해서도 얼마든지 우리와 다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나라(외국)라는, 냉철한 시각을 우리가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상호 Win-Win은 시작될 수 있다. 또한, 그
  이후라야 비로서,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무조건) 한국이 옳고 일본은 틀리다>라는 근거없는 명제(거
  짓명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본이 너무 미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본을 미워했는데,
  어느 날 한번은 돌아보니, 일본은 그대로인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한국)만 조금 이상한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사실)을 대부분의 한국인은 또한 모르고 있다.
  뭔가 개선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의 이 상태가
  잘못됐다는 점을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측면에서,
  여전히 과도한 반일의 수준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퇴행적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 내 갖가지 풍경들은, 한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만 더욱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