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 사시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에 있은 내 옆집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굶어 죽어가는 시기여도 사상투쟁은 계속되었으며 주(週)생활총화 월(月)생활총화들을 빠짐없이 참가해야 하였다. 어느 날 여맹위원장이 내 옆집의 여인을 끌어내 회의 탁(卓) 앞에 세웠다. 여인은 육체도 정신도 다같이 경(輕)한 신체장애였다. 남편도 역시 육체 장애인이다.그들에게는 다섯 살짜리 아들과 세 살짜리 딸애가 있었다. 어느 날 기척이 없어 가 보니 모두 굶어죽었다. 누가 통곡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집이라도 팔아서 먹고 죽지, 왜 그냥 가는가”고 목메인 소리를 했다. 그 여인이 죽기 며칠 전 여맹총회에 끌려나와 당한 일이다. 잊혀지지 않는 내 가슴 속의 가장 슬픈 이야기로 남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
여맹총화의 날
그날은 하루 종일 어수선한 분위기
비판과 호상비판의 날이 선 무대

수백 명이 앉아있는 선전실 연단에
한 여인이 서 있다
머리를 푹 숙이고
그는 장애인

여맹위원장이 나섰다
여인 앞에
증오의 눈초리로
묻는다
따진다
말하라
네가 한 모든 행위를

울며
서 있다 여인은
차마 말할 수 없는데
무조건 말을 하란다

분위기는 험악하다
대답을 피하면 안되는 모임
입을 열어야 한다
여인이 입을 열기 전에
끝이 나지 않을 모임

온몸의 수치를 모아
그녀는 말한다 울면서
밤꽃 사시오

그리고
또 말한다
그녀는

살기 띤 눈으로 여맹위원장이 묻는
그대로
빠짐없이
낱낱이

우리는 듣고 있다
수치를 악문 여인의 목소리를
여인이 했다는 그 행위들을

한 줌의 쌀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들을
하루저녁에 고작 벌어야
한 줌밖에 안되는 그것의 행위
온 밤 남자들 속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수난들을

그녀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먼저 굶어죽은 남편도
역시 장애인이다
남아있는 자식들을 위해
어떤 속에서도
모성만은 장애가 될 수 없었던 그것

그 때문에 그녀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풍기문란 죄로
여맹모임의 연단에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밤꽃 사시오
그녀가 했던 말
그리고 그가 했던 모든 행위들
사라져버렸다
며칠 만에

그 여인의
두 아이가 굶어죽었다
그 여인이
먼저 굶어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