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4.11총선당시 송두율 비호 '송호창 공개지지'

宋씨, 한총련 利敵규정 철회-합법화, 국보법 폐지 주장해온 인물
기사본문 이미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지난 4.11 총선에서 ‘민가협’(從北단체) 출신의 인재근 씨를 지지한데 이어 송두율 비호에 앞장섰던 송호창 변호사를 지지했었다.

■ 현재 민통당 의원인 宋변호사는 지난 3월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조국 서울대 교수,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 메시지와 함께 安원장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宋변호사에 따르면 安원장은 “내가 아는 송호창은 늘 함께 하는 사람이며 온유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추겨세운 뒤, “아울러 공동체에 대한 선의와 넘치는 사랑을 주체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했었다. 과연 宋변호사는 安원장의 말처럼 ‘공동체에 대한 선의와 넘치는 사랑을 주체 못하는 사람’일까? 宋변호사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 보자.

그는 북한의 ‘對南공작원’으로 판시(判示) 된 在獨학자 송두율 입국(2003년 9월22일) 당시 국보법 위반 혐의로 宋교수가 구속되자 변호인단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송두율 석방을 촉구하는 소위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했었다.

당시 대책위는 성명을 통해 “재판과는 별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성과와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검찰이 구시대적인 국가보안법의 형식논리만으로 宋교수를 구속기소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宋교수에 대한 범죄혐의가 전혀 사실과 다르거나 처벌할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이고...(중략) 검찰과 국정원 관계자의 중대한 범죄행위인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해 고발하고, 포승 수갑 등 위법한 재구사용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었다.

■ 송두율은 200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해외인사 초청행사 일환으로 37년 만에 한국에 왔지만, 독일에서의 反국가 활동을 이유로 검찰에 구속됐었다. 宋씨는 북한 조선로동당 서열 23위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고위직 공작원 여부가 논란이 됐었다.
 
宋교수는 2004년 3월 1심에서 국보법상 反국가단체 가입, 특수탈출 및 회합통신 위반 등 혐의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7월 항소심은 宋교수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증명하기 어렵다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줬지만 宋교수가 “북한의 조선로동당에 入黨해 對南공작을 했고,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한 목적수행을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宋교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통영의 딸들-신숙자·오혜원·오규원 사건> 관련, 오길남 박사의 入北을 권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사본문 이미지
조국 서울대 교수와 송호창(現 민통당 의원) 변호사/출처: 송호창 의원 홈페이지


吳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1985년 8월 당시 송두율은 70년대 초 독일 유학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온 吳박사가 경제난과 아내의 병으로 어렵게 생활하자 “기댈 곳은 북한밖에 없다”며 오길남 가족의 入北을 권유했다. 吳박사는 저서인《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 및 최근 다시 출판된《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적었다.
 
“송두율의 入北 권유 이후 재독작곡가 윤이상은 이제 민족통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북한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썼으면 하오’라는 편지를 써 보냈고, 거듭 ‘고생하지 말고 북한으로 가시오. 거기 가면 吳박사는 대접을 받으면서 학문을 이룰 수가 있소’고 권했다”
 
吳박사는 1985년 12월 송두율을 비롯한 윤이상, 김종한 등에 의해 북한공작원을 소개받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평양에 들어갔고 이후 1986년 11월 평양의 칠보산연락소에서 ‘한민전’ 對南흑색선전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 와서 처참한 현실은 물론 송두율의 실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吳박사는 평양 칠보산연락소 이창균 고문 등 對南사업본부 고위 인사들로부터 “송두율이 70년대 초반부터 1년에 북한을 1~2차례씩 왕래해 온 북한의 비밀노동당원이었음을 확인했다”면서 “북한방문은 평소 유럽 외딴 곳으로 휴가를 간다는 외양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吳박사는 “86년 2월 평양 용성구역 남조선혁명박물관에 갔을 때 1975년 송두율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접 만들었던 ‘유신독재 타도하여 민주사회 건설하자’는 프래카드가 유리관에 전시돼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吳박사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北에서 확인한 송두율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철저하게 은닉해 온 송두율에게 깊은 증오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평양에 있었다. 나는 그가 가증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중략) 반정부활동을 한다고 모두 북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독재정권이 반정부인사를 탄압하는 구실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던 내게 송두율은 충격이었다.” (<추적/다시 보는 박원순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 조갑제닷컴, 2011년 11월15일자 보도 인용)

■ 宋변호사는 또 △2002년 7월19일 ‘10기 한총련 의장 석방,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합법화를 위한 민주사회단체 지도자 1000인 선언’, △2007년 10월17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의하는 각계 원로, 대표인사’ 성명 등을 통해 줄곧 從北세력을 옹호하는 활동을 해왔다.

宋변호사가 옹호한 한총련은 국보법 철폐-주한미군 철수-연방제 통일을 노골적으로 주장해오다 1998년 利敵단체로 판시된 從北조직이다. 이 단체가 利敵단체로 판시된 계기는 1996년 여름 연세대에서 열린 ‘통일대축전’ 행사였다.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같은 해 8월12일부터 20일 연세대 내 종합관과 과학관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며 폭력을 행사했다. 사후 농성 장소에선 김일성을 찬양하는 낙서와 유인물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총련은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김일성선전 지침서〉에서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조국해방전쟁, 사회주의 복구시기,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였던 외교전 등의 위엄스런 업적에 대해 선전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김일성이 일으킨 6·25에 대해서 “통일을 위한 미국과 한민족의 전쟁이므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적었다.

대법원은 2004도3212 판결문에서 제10기 한총련 정기 대의원대회 자료집의 이적성과 관련, “북한의 주체사상을 한총련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 궁극적으로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같은 자주·민주·통일투쟁을 달성하자고 선전ㆍ선동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대한민국의 존립 안정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라고 판시했다. 북한정권은 한총련을 ‘애국통일단체’로 부르며 격찬해왔다. 일례로 2008년 5월17일 북한의 <로동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한총련을 비롯한 애국적인 통일운동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탄압책동을 요란하게 벌려놓고 있다”고 했고, 5월5일 범민련 북측본부는 “리명박 패당은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악랄하게 탄압했던 과거 파쑈 독재정권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했었다.

■ 宋변호사는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우상호 現 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대변인으로 활동했었다. 그는 2011년 10월3일 ‘남북공동번영 정신을 되새기는 10·4선언 4주년’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反헌법적인 “6.15선언과 10.4언에 담긴 민족의 염원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었다. (하단 원문 참고)

기사본문 이미지

安원장은 공개적으로 국보법을 폐지하고,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주변 인물, 그리고 그가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인물 및 멘토들의 대다수는 從北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안보문제에 관해서는 보수적(?)이라는 安원장의 이념관은 그가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위와 같이 얼마든지 파악이 가능하다.<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