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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 민노당 지도부
2000년에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으나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획득해 종북·좌파 정당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민노당의 지역구 당선자는 권영길, 조승수이며, 비례대표 당선자는 강기갑, 노회찬 등 8명이다.
2008년 이전까지 黨內 세력은 크게 ‘민족해방(NL) 계열과 ‘민중민주’(PD) 계열로 양분되어 있었다. 초창기에는 NL계열이 대의원 숫자 등에서 우세를 보이며 당내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내 노선 차이는 운동권 내에서의 분류일 뿐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NL-PD는 모두 從北的(종북적) 태도를 보여 왔다.
민노당은 2008년 1월12일 2007년 대선에서 큰 성과를 못 이룬 책임으로 지도부가 사퇴하고, PD계열의 심상정(現진보신당 상임고문)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심 위원장의 당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심 위원장은 2월4일 사퇴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을 사퇴한 심상정을 대신해 천영세 대표가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민노당은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과의 분당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2석, 전국구 3석을 확보했다. 이후 2008년 7월 강기갑을 대표로 선출해 체제를 정비했으며, 2010년 민변출신의 이정희(前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4기 지도부를 선출했다.
1) 창당에서 2002년 대선: 민노당의 핵심인사들을 세대별로 보면 80년대 운동권과 노동운동을 한 ‘신세대 좌파 운동권 2기’라 할 수 있다. 해방직후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및 인민당과 근민당, 그리고 건국 이후의 진보당을 이끈 박헌영, 여운형, 백남운, 조봉암 등이 구세대 좌파 1기라면 4.19 이후 전두환 정부까지 좌파 정당들을 이끈 김달호, 윤길중, 박기출, 고정훈, 김철 등은 구세대 2기이며, 민주화운동 참여한 이우재, 이부영, 장기표, 이재오, 김근태 등은 운동권 신세대 좌파 운동권 1기라 할 수 있다. 민노당은 권영길이 주도한 민노총을 중심으로 ‘민족해방(NL) 계열과 ‘민중민주’(PD) 계열 등 다양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고 있다. 창당에서 2002년까지 민노당의 주요 활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7~2000년: 민노당의 전신 ‘국민승리21’로 활동 ▲1997년 대통령 선거에 권영길 출마(1.19% 득표) ▲2000년 1월 민노당 창당, 권영길 대표로 선출 ▲2000년 4월: 16대 총선 출마, 출마지역 평균 13.1% 득표 ▲2000년 10월: 北노동당 창건 기념행사 관련 방북 ▲2001년 6월: 금강산 통일 대토론회 참가 ▲2002년 2월: 부시방한규탄 범국민대회 개▲2002년 3월: 노회찬 민노당 정기 당 대회에서 사무총장에 선출 ▲200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2, 광역의원 11명 당선 ▲2002년: 대선에 권영길 출마(98만 표 획득)
2) 2004년 총선 전후: 민노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제도권 정당으로 진입했다. 지역구 당선자(2명)는 권영길과 조승수이었으며 나머지 8명은 비례대표였다. 총선 직후 시행된 제2기 지도부 선거에서 김혜경(現진보신당 고문)이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17대 총선 당시 울산 북구의 음식물 자원화 시설 관련 간담회에서 있었던 조승수 의원(당시 국회의원 후보)의 발언이 빌미가 되어 2005년 9월 조승수 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10월에 시행된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민노당 정갑득 후보가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에게 패해 전체 의석이 총 9석으로 줄어들었다.
2004년 총선에서 2007년 대선까지 민노당의 주요 활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4년 7월: 국군의 이라크 파병저지 민노당 대표단 무기한 농성 ▲2005년 8월24일 김혜경 당시 민노당 대표가 방북 기간 중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참배. 김혜경은 당시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는 내용의 서명 ▲2005년 8월: 北사회민주당과의 교류를 위한 지도부 방북(남한정당 최초)▲2005년 10월: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혜경을 비롯한 전 지도부가 총사퇴. 이후 민노당은 비상대책위원회(임시대표 권영길) 체제로 운영 ▲2006년 1월20일~24일: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당직선거가 시행. 대표 후보로 주대환, 문성현, 조승수 세 후보 도전. 이후 문성현·조승수 후보와의 2차 투표 끝에 2006년 2월10일 문성현 후보가 새 대표로 당선 ▲2006년 5월: 제4회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15명(비례 10명 포함), 기초의원 66명 당선 ▲2006년 6월: 한미FTA 중단. 국민투표실시 촉구 100만 서명운동(남한 정당 최초)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 해결 명목으로 민노당 대표단 평양 방문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이 민노당 내부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 대선에서 3% 득표율(712,121표) 기록. 당시 각 시도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은 곳은 울산광역시(8.4%)
3) 2008년 총선과 그 이후: 민노당은 2008년 총선에서 권영길·강기갑 후보가 각각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비례대표는 곽정숙, 홍희덕, 이정희 세 명의 후보가 당선되어 2004년보다 5석 줄어든 5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총선이 끝난 5월 초부터 韓美 쇠고기 협상 논란이 불거져 나오자, 민노당은 강기갑을 중심으로 정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투쟁에 들어갔다. 黨 지도부가 일주일 동안 단식농성을 치렀으며, 좌파단체들과 연대해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5월 말에는 민노당 지지율이 10.3%에 이르기도 했다. (2008년 5월 마지막 주 리얼미터 조사)
2008년 7월 강기갑이 민노당 대표에 선출되고, 이정희가 정책위의장이 되는 등 국회의원단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구조로 당 체제가 개편됐다. 같은 해 10월29일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 4명의 후보가 출마, 여수시 시의원후보 선거에서 김상일이 당선됐다. 2009년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는 호남 지역에서 1명의 광역의원, 1명의 기초의원을 당선시켰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과 함께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해 인천에서 기초단체장 2명을 배출했고, 36명의 광역의원을 당선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이정희(前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당대표로, 장원섭(前광주금속노조 부위원장), 김성진(前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공동대표), 정성희(前민노총 대외협력실장), 우위영(前여중생범대위 문예위원장), 최은민(前민노총 총연맹 부위원장), 윤금순(前6.15민족공동위원회 남측여성본부 공동대표), 이혜선(前민노총 공공연맹 부위원장), 이영순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 총선에서 2010까지 민노당의 주요 활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8년 2월: 강기갑 의원, 한미FTA 국회비준 반대 단식 ▲2008년 4월: 강기갑 의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단식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길거리 토론회 개최, 촛불집회 참석 이정희 의원 연행 ▲2008년 11월: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과 정당교류를 한다는 명목으로 평양방문 ▲2010년 7월 제4기 민노당 지도부 선출(당대표: 이정희)
정리/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