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월간조선 수요 강좌가 오는 1월7일 저녁 6-8시 조선일보 광화문 빌딩 9층 강당에서 열립니다. 이 빌딩은 옛 원자력병원(현 오양수산) 건물 맞은 편의 옛 충방빌딩입니다. 연락처는 724-6845입니다. 이번은 한양대 인류학과 金秉模교수가 [훈-흉노-한민족의 친연성]이란 제목으로 강연합니다.



에가미의 기마민족 일본정복설

일본 동경대학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가 쓴 「騎馬民族國家-일본고대사에의 어프로치」(中公新書. 1967년)는 한반도 일본 중국 북방초원지대 등 동북 아시아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일본의 고대 건국과정을 다룬 名著이다. 이 책에서 에가미 교수는 4-5세기 일본의 고대국가를 세운 세력은 부여-고구려와도 관련이 있는 북방 유목 문화 출신의 기마민족으로서 이들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西岸(또는 큐슈)에 상륙하여 지금의 나라 오사카 지방으로 진출, 소위 야마토 정권(大和)을 세운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학설은 일본인들이 天皇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으로서 일본 열도에서 自生했다는 통설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 뒤의 한국 및 일본의 고고학적 연구는 에가미 교수의 기마민족정복국가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에가미 교수의 관점은 북방유목민족의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보아온 기존의 관점을 깨고 중앙아시아-몽골-만주로 이어지는 북방 대초원의 유목기마민족출신을 主語로 삼는 고대사 연구법이다. 농경민족적 역사관이 아닌 기마민족 중심의 역사관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 서 있는 에가미 교수의 학설은 비단 일본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대사, 특히 三韓(馬韓·弁韓·辰韓)·가야·신라의 성립과정에 대한 시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학설은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될 여지가 많은 동북 아시아의 古代에 대한 거대한 재해석이기도 하다. 유물중심의 고고학적 해석이나 史書중심의 경직된 해석을 뛰어넘어 언어학, 神話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시각에다가 학자로서는 하기 힘든 대담한 추리를 보탠 그의 기마민족국가설은 생동하는 느낌을 준다.

그의 핵심적 주장은 「騎馬民族國家」란 책의 한 항목 「동북아시아계 기마민족의 일본정복설」에서 요약되어 있다.

그는 고대 일본은 대륙-한반도를 통해서 들어온 기마민족인 天孫族이 농경민족인 야요이 문화의 倭族을 정복해서 세운 정권이라고 말한다. 에가미 교수는 이 天孫族은 부여·고구려와도 관련이 있는 東北아시아계의 민족으로서 일본 진출 직전에는 한반도 남부의 任那(가야) 방면에 근거를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추정은 古墳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적인 접근으로부터 얻은 결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동북 아시아계열의 기마민족이 신식 무기와 말을 몰고 한반도를 경유하여 북큐슈나 혼슈의 西端部에 침입하여 4세기 말에는 畿內(나라 부근) 지방에 진출, 강대한 세력을 가진 야마토(大和)정권을 수립하였다는 이야기이다.

雄略천황 이전의, 天皇이라고 불려지기 전의 倭國王은 중국의 南朝로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자칭한 기록이 5세기「宋書 倭國傳」등에 남아 있다.
「使持節都督, 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 六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
加羅를 포함시켜 「七國諸軍事」라고 쓴 기록도 보인다. 에가미 교수는 위의 자칭 왜국왕이 자신의 영토라고 선언한 6,7개지역에 의문을 던진다. 5세기에는 이미 한반도에서 秦韓(辰韓)과 慕韓(馬韓)은 없어지고 그 땅에 신라와 백제가 서 있었는데도 왜국왕은 없어진 故土를 영토개념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에가미 교수는 5세기 당시 倭王이 한반도에 갖고 있었던 직할령은 任那(가야)에 불과했었는데도 마치 한반도 남쪽 전부를 관할하고 있는 것처럼 쓴 것은 「과거 마한 변한 진한의 三韓시대에 그 지배권을 남한 전체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든지 아니면 그런 유력한 傳承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왕은 자신의 그런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현재의 백제, 신라뿐 아니라 그 전 단계의 마한, 진한까지 영토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과거로 소급시켜 宋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했으리라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왜왕은 마한, 진한은 영토개념에 포함시키면서도 弁韓(변한)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5세기에 왜왕(주-기마민족이 일본을 침공하여 왜족을 점령하고 자칭한 명칭)은 아직 任那)를 倭의 일부로서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倭라고라고만 하면 되었지 굳이 倭의 모태인 弁韓을 영토에 포함시킬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에가미 교수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三韓 시대에 한반도 남부를 넓게 지배한 왕은 과연 있었던가. 그는 3세기에 쓰여진 晉壽의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나오는 辰王에 주목한다. 진왕은 馬韓을 구성하는 여러 小國 중 하나인 月氏國을 다스리는데, 여기서 辰韓의 12개국, 弁韓의 12개국중 12개국을 복속시켰다.

진왕은 馬韓의 사람이 되며 왕위는 세습이지만 자기 스스로 왕이 될 수는 없다고 적혀 있다. 에가미 교수는 이 진왕은 북방으로부터 들어온 기마민족 출신이라고 해석한다. 외래족이었으므로 馬韓의 여러 나라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 왕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에가미 교수는, 북방기마민족 집단 출신인 진왕은 三韓을 다 지배한 것은 아니고 마한의 月氏國에 본부를 두고 당시 한반도 남부의 弁韓 지역을 다스린 가장 유력한 지배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가미 교수는 魏志 東夷傳에 나오는 辰韓(뒤에 이곳에서 신라가 성립한다)에 관한 기술에 주목했다. 東夷傳에 따르면 진한의 노인들 이야기라면서 옛날에 중국의 秦나라 사람들이 勞役 등을 피해서 한반도 남부에 들어왔는데 馬韓이 동쪽의 辰韓 땅을 떼주어 살게 하였다는 것이다. 진한은 마한과는 말이 다르고 사람들은 秦나라 사람과 닮았다고 한다. 여기서 말한 秦나라 사람은 중국의 漢族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중국문화를 흡수한 북방유목기마민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기술로 보아 辰韓 弁韓 지역에 중국문화를 흡수한 북방초원 출신 외래인들이 들어와 3세기 무렵엔 辰王의 지배형식으로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에가미 교수의 이야기이다.

4세기 전반에 들어서면 부여계통의 북방민족이 馬韓 지역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우고, 후반에는 진한 지역에 기마집단이 등장하여 신라가 일어난다. 이처럼 부족국가들이 뭉쳐서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가운데서도 弁韓 지역(지금의 경상남도)만은 소국의 연합체 형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은 이 지역에 辰王의 지배권이 계속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에가미 교수는 여기서 학자로서는 하기 힘든 대담한 추리를 계속한다.

그는 한때 한반도 남부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진왕세력이 백제, 신라의 등장으로 그 지배권이 변한지역으로 축소된 상황에서 일본으로의 진출을 꾀하게 되었다고 했다. 에가미 교수는
변한 지역에 倭라고 불리는 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倭라는 부족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 걸쳐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왜의 본거지는 일본이지만 한반도 남부에도 진출하여 교두보를 갖고 있었다.

任那 지방의 加羅가 바로 왜의 거주지였다는 것이다. 기마민족출신인 辰王세력은 한반도 남부 왜의 협조를 받아, 加羅를 발진기지로 삼고는 왜의 본거지가 있는 일본열도에 침입한다. 상륙지는 북큐슈나 혼슈의 서쪽일 것이다. 왜는 야요이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동남아시아 계통이고 농경에 종사하면서 살았다. 이들은 신무기로 무장하고 기마전술을 쓰는 辰王 세력에 정복당한다. 진왕세력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 서해안에 걸친 倭韓연합국을 성립시킨 다음 지금의 나라 지방으로 진격을 개시한다. 에가미 교수는 한반도와 일본에 걸친 기마민족정복국가가 나라-교토-오사카 지방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세 방면의 전투를 하게 되었다고 썼다.

진왕세력은, 일본 서해안의 미정복지에 대한 작전을 계속하는 한편, 한반도 남부에 남은 倭를 근거로 하여 對고구려 작전을 전개하면서 나라에 있는 倭의 사령부를 정복하였다는 것이다. 에가미 교수의, 기마민족국가에 의한 일본정복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 동북지방의 기마민족 세력이 중국과 접촉하여 농경 도시문명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한반도 남부로 들어와 辰王세력이 된 후 진한과 변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에가미 교수는 이 기마민족이 鮮卑族계통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북방기마민족인 선비족은 서기 4세기경에 중국으로 내려와 여러 나라를 만든다. 그 일파가 한반도로 들어와 진왕세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진왕세력은 4세기에 들어서 부여계열의 부족이 馬韓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우고, 진한 지역에서도 적석목곽분을 쓰는 기마민족이 나타나 신라를 세우자 지금의 경상남도 지역에 고립되었다. 진왕세력은 경남지역과 일본에 걸쳐서 살고 있던 倭族중 경남지역에 진출한 왜족과 손잡고 일본 본토 침공을 개시하여 일본의 농경 왜족을 정복해가면서 나라에 진출, 야마토정권(大和)를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정복을 가능케 하였던 것은 기마민족의 신무기와 특히 기마전술이었다고 본다.

에가미 교수는 3세기말부터 시작된 중국과 북방의 대동란으로 북방민족이 여러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흐름의 하나가 기마민족의 한반도 진출과 일본 침공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4세기를 전후하여 흉노, 선비 등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화북지방, 만주의 고구려, 한반도의 三韓지방, 일본열도쪽으로 대이동을 하였다는 점을 비슷한 시기의 게르만족 대이동과 비교하여 설명하기도 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것도 흉노의 西進이었다. 게르만족은 흉노에 밀려 서쪽 로마 문명권으로 들어가 서로마를 망하게 하고 서유럽에 여러 게르만족의 국가들을 세웠다. 북이탈리아엔 롬브르드족이, 프랑스엔 프랑크족이, 스페인엔 고트족이, 영국엔 앵글로 삭슨족이 지배하는 나라들이 섰고 이 게르만족 지배의 국가들은 지금의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모태가 되었다.

에가미씨는 게르만족이 서유럽에 했던 역할을 북방기마민족이 동아시아에서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오늘의 일본, 오늘의 한국, 오늘의 중국은 4세기에 기마민족들이 세운 고대국가를 모태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