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영화 '황산벌'

영화를 보는 동안 '史實을 저렇듯 비틀어 해석할 수 있구나','대의명분이라는 큰 글자로 쓰여진 역사의 뒷전에서는 저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무릅을 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적나라한 욕설로 재미를 보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예 작심하고 욕설들을 전진배치(?)함으로써 배설의 욕구도 한껏 충족시켰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쉬지 않고 관객들을 웃겼다. 노무현 때문에, 이념갈등 때문에, 나날이 나빠지는 경제 때문에, 회사일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잠시나마 세상사를 깨끗이-아주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저 않고 권하고 싶은 영화가 '황산벌'(감독-이준익, 주연-박중훈,정진영)이다.

영화 '황산벌'는 660년 백제의 존망을 놓고 신라와 백제가 일전을 벌인 황산벌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황산벌 전투!
한국 사람이라면 이후 676년 신라가 당나라를 완전히 몰아내기까지 장장 16년에 걸친 통일전쟁의 序戰이자, 가장 비장하고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을 갖고 있는 황산벌 전투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처자식을 베고 전장으로 나간 계백의 이야기를, 단기필마로 적진으로 돌격해 장렬하게 산화한 화랑 반굴과 관창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史實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작가적 상상력, 역사를 바로보는 눈을 가진 거장을 만난다면 황산벌 전투를 포함하는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 3국의 쟁패에 대한 이야기는 '원탁의 기사'나 '롤랑의 노래','니벨룽겐의 반지','충신장' 못지 않은 명작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은 그렇게 진지하게 역사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보는 영화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담없이 보고, 웃을수 있는 '퓨전 코미디 사극'일 뿐이다.
그런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따진다는 것이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코미디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엄숙주의적' 입장에서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가주의자'의 시각에서 영화 '황산벌'에서 비판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에 내포된 '국가허무주의'일 것이다.

영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백제의 의자왕,신라의 김춘추(태종무열왕)의 4자 회담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 고종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은 천자가 주재하는 사대질서를 강조하면서 고구려와 백제가 사대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있음을 꾸짖는다 (물론 아주 코믹하게). 김춘추는 당 고종 옆에 붙어서며 '고구려와 백제는 '惡의 軸' 이상가는 '惡의 덩어리''라고 질타한다. 말끝마다 '정통성'을 강조하는 당고종을 향해 연개소문이 '여기 정통성 제대로 가진 놈이 어딨냐'(상당 부분 사실과 부합하는 얘기임)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4자 회담은 결렬된다.

영화 속에서 김춘추가 백제를 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대야성 전투에서 그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후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 준다는 당나라의 약속에 혹했기 때문이다. 말로라도 '三韓一統'이라든가, 하다못해 '백제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自衛 전쟁'이라는 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김유신과 그 휘하 장수들은 자신들의 작전을 唐軍을 위한 '살(쌀)배달'이라고 자조한다.

통일전쟁 과정에서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펼쳤던 김춘추-김유신, 문무왕-김유신의 관계도 영화 속에서는 계속 삐걱거린다.
김춘추는 인척관계를 내세워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놓는 투박한 야전군인 김유신을 못미더워하면서 젊은 文官에게 '내는 저런 노땅들 안 믿는다. 너 같은 '젊은 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법민(문무왕)은 아버지의 위세만 믿고 김유신에게도 함부로 대하다가 호되게 혼나는 철부지로 나온다. 통일전쟁 시기 당나라와 신라 사이의 가교역할을 했던 김인문(문무왕의 동생)은 아예 唐에 빌붙어 김유신이나 김법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김유신 휘하의 장수들은 진골이니, 가야계니 하면서 반목한다.
나중에 김유신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김법민과 반목하는 휘하 장수들을 다독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大義를 내세워서가 아니라, 자신과 김법민, 휘하 장수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혼맥을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小利를 내세워서이다.

반굴과 관창의 전사도 극도로 희화화된다. 병사들을 격동시키기 위해 김유신은 장군 김흠순(김유신의 동생)과 김품일에게 아들들을 차출할 것을 명령한다.
김흠순과 김품일은 각각 반굴과 관창에게 '이번에 나가 죽으면 너는 완전히 뜬다'는 말로 꼬신다(점잖지 않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꼬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반굴과 관창은 '내가 뜨게 되는 것 확실하냐? 개죽음 아닌 것 확실하냐?고 다짐을 한 후, 적진으로 돌진한다. 반굴과 관창이 죽은 후에도 대여섯 명의 화랑들이 필마단기로 백제군 진영으로 돌격한다.
하지만 반굴과 관창을 비롯해 이들 화랑들의 비장감 넘치는 돌격은 백제군의 화살이나 창에 맞아 글자 그대로 '개죽음'으로 끝난다 (이 부분은 2차대전 말기 연합군에 맞서 무모하고 무의미한 저항을 했던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나, 일본의 소년항공병들을 연상케 한다).
이들 화랑들은 마치 가부키 배우들처럼 하얗게 화장을 하고, 눈가와 입술을 붉게 칠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반 장졸들과 화랑들을 구별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화랑들은 구리빛 얼굴에 흙투성이 장졸들과 유리된 공허한 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고 비웃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라군과 백제군의 지루한 대치 상태는 화랑들이 전사하고 난 후, 폭우가 쏟아지면서 끝난다. '거시기할 때까지 머시기한다'는 구호 아래 '죽어도 갑옷을 벗지 않는다'는 결의로 뭉친 백제군을 향해 신라군은 투석기로 찰흙 덩어리들을 쏘아댄다.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 내리쬐면서 진흙이 말라붙기 시작하자 백제군들은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갑옷을 벗어던진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라군의 공세가 시작되고, 처절한 전투가 전개된다. 이제까지의 걸쭉한 욕설과 폭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전투신이 한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부하 장졸들이 거의 전사한 후, 몇 장졸들과 함께 고립된 계백은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기에 앞서 시골서 농사를 짓다 끌려온 무지렁뱅이 병졸 거시기(이문식)를 땅굴을 통해 내보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나는 너를 남기겠다.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모시고 농사 잘 지으라'면서....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신라군에게 포위된 계백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이고 온 가족들을 떠올린다. 계백이 독약이 든 사발을 내밀며 아내에게 자식들과 함께 깨끗이 죽으라고 했을 때, 아내(김선아)는 '당신이 이제까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당신이 뭔데 내자식들에게 죽으라고 하느냐'고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대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계백에게 아내는 이렇게 대꾸한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지나온 생을 반추하며 회한에 잠긴 계백의 목을 신라군 장수가 벤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백제가 항복하자, 김춘추는 소정방 앞으로 달려와 백제 영토에 대한 영유권과 의자왕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 소정방이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소정방은 '이번 출병은 너희들이 아쉬워서 요청한 것 아니냐? 니들 힘만으로 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봐라'는 태도다. 김춘추는 분해하면서도 맥없이 꼬리를 내린다. 분기탱천한 김유신은 칼을 뽑아 소정방 앞에 놓인 탁자에 꽂으며 '너희 당나라 놈들, 언젠가는 내 손으로 몰아낸다!'고 일갈한다. 그 사이 김유신과 코드가 맞게 된 김법민은 아버지 김춘추에게 '당나라 놈들 없이도 외삼촌과 내가 하겠다'고 외친다.

마지막 장면. 너른 벌판에게 농민들이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있다. 논 사이로 난 큰 길을 황산벌 전투에서 살아난 거시기가 달려오며 '엄마!'를 외친다. 논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하던 아낙이 그 소리를 듣고 허리를 편다. 그 아낙은 전원주. 촌스러우면서도 코믹한 그의 등장에 관객들은 다시 한번 폭소를 터뜨린다. 모자가 얼싸안고 자식의 생환을 기뻐하는 가운데 '이 세상 아웅다웅하며 살 것 있나?'라는 경쾌한 노래가 들려온다.

영화 '황산벌'을 같이 본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은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남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랑 관창이나 반굴은 정말 그렇게 죽었을 것 같지 않느냐'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남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씁쓸함'이었다.

그 씁쓸함은 영화 '황산벌'이 서툴게 '메시지'를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계백처럼 비장하게 가족을 쳐죽이고 전쟁터에 나와 박터지게 싸워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보다는 울타리 밑으로 개구멍을 뚫고 도망쳐 어머니 품에 안긴 거시기가 더 행복한 것 아닌가?'
'세속오계니, 국가니, 통일이니 하는 대의가 다 무슨 의미인가? 헛된 공명심에 값진 생명을 던진데 불과하지 않은가?'
아마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대한민국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니 하면서 남과 북이 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보수니 진보니,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면서 이념대결을 하는 것이 무슨 쓰잘데기 없는 일인가?'
물론 그것은 '국가'중심적 사고로 똘똘 뭉친 기자의 과민반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폭소와 육두문자를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면서도, 역사를, 나라를,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는 없었을까? 흥행에 성공한 많은 코믹물들이 끝에 가서는 가슴 찡하게 하는 사랑을 담아내듯이 역사를 비틀면서 웃기다가도 나라와 민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물론 감독은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니 이념이니 하면서 아웅다웅해 봐야 말짱 헛거'라는 메시지였다.
나라의 힘이 약해서, 국민들이 나라의 소중함을 충분히 깨닫지 못해서, 망국의 치욕과 분단의 고통을 맛 본 나라에서, 잘못된 이념 때문에 폭동과 소요와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200만 대군이 총칼을 맞대고 사는 나라에서 그런 생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문득 언젠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300년 전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 지금 보면 아무 것도 아니듯이, 오늘날 남과 북의 갈등도 역사 속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겠느냐'던 김원웅 의원의 말이 생각난다.그런 김원웅 의원의 의식의 귀결점은 어디였던가?

'황산벌'은 분명 재미있는 영화이다. 아마 전국 관객 400~500만은 너끈히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거듭 말하거니와 폭소 속에 나라와 겨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식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웃기기만 하는 영화로 갔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산벌'은 관객들로 하여금 배를 잡게 만드는 가운데, '국가허무주의'를 은연 중 전파하고 있다. 그래서 '황산벌'은 입맛 씁쓸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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