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좌파 지식인의 '아편중독'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정체 … 내재적 접근의 환상 버려야


▲ 박광작/성균관대 교수



재독학자 송두율씨의 그간의 발언이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 둘씩 거짓말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레닌의 공산당 전술이 생각났다.
즉 공산당 활동에서는 아무리 반동적인 단체일지라도 대중이 있는 곳에는 참을성 있고 끈덕지게 선전·선동과 수단적 이용을 위하여 위장 침투·잠입해야 하며, 이 목적을 위해 갖가지 책략, 교묘한 꾀, 합법·비합법적 모든 방법, 진실에 대한 침묵이나 진실 은폐, 즉 사기와 거짓말 등 갖가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씨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던 지난 73년은 서독의 좌익 학생운동이 한창 발흥하였던 시기였다. 동독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좌익 급진주의 세력의 침투에 대항해 서독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브란트 사민당 정부와 州 정부수반들이 '급진주의자에 대한 결의'를 공동으로 채택해 좌익세력을 공공부문에서 대대적으로 추방하기 시작했었다. 그럼에도 송씨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게 된 이유가 뭘까?

그것은 베트남의 공산화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아시아 전체의 공산화 도미노가 임박했다는 풍문 속에 송씨의 기회주의적, 소영웅적 계산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대다수 한국 유학생들은 유신독재를 거부했지만, 한국에서 언젠가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가 종식되자 바로 귀국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 속에 제 역할을 찾아가며 미력이나마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만족하였고, ‘88올림픽’ 이후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뿌듯한 자부심과 민족적 긍지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송씨와 친북 좌익 지식인들의 ‘민주화운동’은 ‘남한의 사회민주화’를 통한 종국적인 공산화 목표를 추구해 왔다.

진정한 민주화 운동가라면 소수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억압하는 독재의 가장 최고 단계인 파시즘과 전체주의 공산독재 둘 모두를 거부해야 하는 게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씨는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신통한 영약(靈藥)으로 ‘내재적 북한 접근법’을 선전하는 가운데 북한 수령 절대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서독에서 ‘내재적 동독 접근법’으로 승승장구했던 대표적 인물로서 루츠(Ludz)라는 교수가 있다. 그의 이름이 동독 ‘슈타지’ 첩보기구의 비밀문서에 포섭대상으로 올라 있었던 사실이 통일 후 발견됐다. 그러나 그가 이념적 정신분열 속에 고뇌하던 가운데 어느 날 숲 속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돼, 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루츠 교수의 비참한 최후가 예언해 주었듯이 ‘내재적 접근법’은 독일 통일 후 장송곡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송씨와 그 비호세력인 친북 지식인들이 재생해 낸 이 궤변이 우리 사회에 루츠의 망령(亡靈)처럼 일부 좌파 친북 활동가들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다. 이 나라가 어찌 이념적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송씨는 국내에 믿을 만한 구석뿐만 아니라 독일에 하버마스라는 철학자의 명성과 권위를 보호막으로 해서 기댈 데가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원래 공산당원들은 혁명을 위해 필요할 경우 모든 반동적, 자유주의 좌파적 권위도 이용가치가 있는 한 ‘쓸모 있는 얼간이(Useful Idiot)’로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북한의 전체주의 절대왕조체제의 옹호자가 아님은 자명하다. 뮌스터대학교 웹사이트에 의하면 송씨는 이번 추동학기 동안 5일만 출강하는 객원교수이며 담당 강좌명은 ‘반미(反美)주의’이다. 송씨가 지식인으로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지금까지의 구차하고 환상적인 내재적 자기 논리를 폐기·처분하고, 침묵하는 가운데 좌익 ‘지식인의 아편’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쳐야 하는 것뿐이다.

(박광작·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 2003.10.05 17:16 39'

http://nknet.org/bbs/zboard.php?id=talk&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