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60억∼1백억원 추정

朴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서 받은 정치자금은 한해에 60억∼1백억 원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朴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부터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네 받으면 일단 집무실 금고에 넣어 두었다가 매월 초 정기적으로 金桂元실장에게 일정한 액수를 주어 쓰도록 했다. 비서실장 금고에는 늘 1억∼2억 원의 잔고가 유지되도록 했는데 10·26 직전에 9억5천만 원이 모여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朴대통령은 10·26사건 며칠 전에 약 4억 원의 돈을 金비서실장에게 건네주었다. 원래는 10월초에 주어야 하는데 추석이 겹쳐져 그랬는지 돈이 늦게 들어와 그랬는지 월말에 두 달 분을 준 것이었다. 나머지 약 4억 원은 비서실장 몫이었다.

기업체에서는 정치자금을 가져다줄 때 대통령에게만 돈을 줄 수가 없고, 비서실장 몫을 따로 두고 갔던 것이다. 이 돈을 비서실장은 공금화 하여 금고에 넣어 보존해 왔던 것이다. 비서실장 금고에서는 매달 2억 원 남짓 지출되었다고 한다. 신형식(申炯植) 당시 공화당 사무총장은 『79년 2월에 총장이 되었는데 그때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공화당 운영비를 2천만 원쯤 올려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매달 1억3천5백만 원씩 비서실장으로부터 타 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유정회에 대한 운영비 보조는 「기천만원」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공화당과 유정회는 朴대통령의 친정체제 아래에 있어 중간 보스도 없고, 따라서 독자적인 정치자금 조성력이 약했었다. 朴대통령은 유신 이전에 공화당의 중간 보스들이 여러 가지 이권에 개입, 정치자금도 모으고 부정축재도 한 것을 교훈 삼아 정치자금 모집 및 지출의 창구를 청와대로 일원화하였던 것이다.

유신 이전에 비해 기업체에 대한 정치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었던 것이다. 미 하원 국제관계 소위원회가 1978년에 낸 「한미관계 보고서」는 유신 직전인 1970년 무렵의 정치자금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1970년에 청와대의 한 고위관리는 이후락(李厚洛) 김성곤(金成坤) 김형욱(金炯旭)이 각기 1억 달러쯤의 개인재산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소위원회의 증언에서 金炯旭은 金成坤이 끌어 모은 정치자금 가운데 75만 달러를 자신의 개인용도로 가져다 썼다고 말했다.

그는 또 金成坤이 朴대통령부처, 丁一權 李厚洛 등에게도 사용(私用)자금을 대주었다고 했다. 박대통령에게 바쳐진 자금에 관하여 본 소위원회가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판단해볼 때 李厚洛은 이 자금을 모아 가지고 스위스의 은행구좌에 대통령용이란 명목으로 입금했을 가능성이 있다. 李厚洛과 다른 인물들도 朴대통령에게 돈을 바쳤는데 대통령은 청와대의 대통령 책상 뒤에 있는 캐비넷에 그것을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스위스 은행구좌의 실재(實在)는 은행기록, 李厚洛의 아들 이동훈(李東勳)의 증언, 청와대의 朴대통령 측근들에 의해 입증됐다. 李東勳은 소위원회 조사관에게 스위스 은행에 있는 돈은 대통령을 위한 정부자금이라고 했다.

그는 또 李厚洛이 그 자금을 관리하였으나 그것이 李厚洛의 개인용도는 아니라고 했다. 李東勳은 또 그가 일본에서 아버지의 돈으로 2백만 달러의 예금을 은행에 넣어두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朴대통령이 비밀자금을 필요로 했던 이유에 대해 李東勳은 지지자들에게 돈을 주고 정적들을 매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미국정부의 어느 보고에 따르면 거의 모든 야당 국회의원들이 돈을 받았다고 한 한국실업인이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실업인은 대통령이 군부의 배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7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돈을 육군의 핵심 지휘관들에게 주고 있다고 한다」

최초·최후의 집무실·내실 조사

비서실장 금고에서 지출된 돈의 성격은 공화당과 유정회에 대한 운영비 보조 이외에 수석비서관들에 대한 판공비 보조 및 朴대통령이 특별히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출 등이었다. 朴대통령은 정기적으로 도와주거나 인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치부책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그런 사람들을 돕는 데 비서실장 금고 돈만 이용한 것이 아니고, 다른 수석비서관이나 경호실장도 통했고, 그럴 때는 자신의 금고 돈을 썼다. 朴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직접 돈을 꺼내 촌지를 주었다는 목격담도 많다.

돈을 직접 받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화 뿐 아니라 달러 현찰도 금고에 상당량 보관돼 있었던 듯하다. 朴대통령이란 권력의 중심이 사라진 청와대는 쓸쓸한 상가에 지나지 않았다. 10·26 뒤 합법적 권한은 崔圭夏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넘어갔으나 그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집무하고 있었다. 실질적 권력은 합동수사본부와 계엄사령부로 대표되는 군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과정이었다.

10·26당일부터 崔대통령이 청와대로 출근한 12월말까지의 두 달 동안 청와대는 권력의 진공상태 하에 있었다. 金桂元씨는 가택연금 되기 직전에 崔圭夏권한대행을 만나 후임 비서실장에 최광수(崔侊洙) 의전수석을 추천하였다. 崔수석이 朴대통령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모셨고 외무부에서도 崔권한대행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金씨가 10월 29일에 구속된 직후 崔侊洙수석은 비서실장서리로 임명돼 청와대 비서실을 관장하게 되었다.

79년 11월 14일 고건(高建)정무제2수석비서관(행정담당)은 김태호(金泰鎬) 의전비서관(현 내무부 장관), 정기옥(鄭基鈺)의전비서관(현 뱅쿠버 총영사), 박학봉(朴鶴奉) 부속실비서관, 이광형(李光炯) 부속실 부관, 그리고 유혁인(柳赫仁) 정무제1수석비서관과 함께 1층 집무실과 2층 내실을 조사하였다. 집기와 책, 그리고 서류를 정리, 포장하고 목록을 만들어 보관처를 결정하는 작업이었다. 2층 내실은 朴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부속실직원과 청소부·식당심부름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金桂元실장도 딱 한 번 내실에 가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총기가 많아

2층 내실에서는 총기가 많이 발견되었다. 엽총 7정, 권총 9정, 칼빈소총 2정이었다. 칼빈탄창 8개, 칼빈총탄 6발, 경기용 권총인 센터 파이어 실탄 2백45발, 엽총실탄 1백5발, 소형권총 실탄 11발도 있었다. 권총과 엽총은 거의가 선물로 들어온 것이었다. 金炯旭 정보부장이 선물한 영국제 12구경 권총, 쉘 석유회사 전무가 선물한 19세기의 영국제 결투용 권총, 미국 콜트사 사장이 선물한 45구경 리볼버 권총도 있었다. 이것들은 육사 박물관에 인계되었다.

말년의 朴대통령과 인간적으로 친했던 육사2기 동기생 심흥선(沈興善)씨(총무처장관 역임)는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께서 초조 불안하신 것 같다. 술을 잡수시면, 누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고, 머리맡 요 밑에 권총을 숨겨두고 잠을 잔다는 이야기도 하시더라』 朴대통령이 침실에 칼빈총을 걸어 놓은 적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권총을 요 밑에 두고 잤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은 없다. 설사 朴대통령이 그렇게 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도록 했을 리는 없다. 2층 거실의 책상 서랍에 권총을 넣어둔 것은 사실인 듯하다.

朴대통령은 1977년 대구사범시절의 담임선생 기시(岸光作)씨를 청와대로 초청,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기시씨의 증언이다. 『이 집을 무력으로 점령한 내가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데 대해서 운명의 불가사의를 느낍니다. 그런 저이기 때문에 언제 나 자신이 살해될지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朴대통령의 2층 내실 식당에는 전자 오르간이 있었고 톱악기도 발견되었다. 대통령은 2층에서 밤에 홀로 가끔 퉁소를 불기도 하였다. 썰렁한 청와대 본관에 울려 퍼지던 것은 애조 띤 음률이었다고 한다. 전기안마기 의자도 내실에 있었다. 부속실의 李光炯씨는 1층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출입문 쪽 벽에 붙은 일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일력은 그날그날 뜯게 돼 있는 것인데 26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진 채 멈춰 있었다. 李씨는 『이것이야말로 역사적인 자료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떼 내 포장하였다. 高建팀은 대통령 집무실이 나중에 복원될 수 있도록 사진촬영과 제도(製圖)를 철저히 하였다고 한다.

朴대통령의 도서목록

어떤 사람의 사고체계를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서재에 있는 도서목록을 훑어보는 일일 것이다. 서재란 별명을 갖고 있는 집무실에는 약 6백권의 책이 꽂혀 있었는데 소설이나 수필집,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세계대백과사전, 파월한국전사, 난중일기, 朴正熙대통령(중국어판), 불확실성의 시대, 감사원 결산 감사보고서, 성경, 성경사전, 최수운(崔水雲)연구, 단재 신채호(申采浩)전집, 백두진(白斗鎭)회고록, 지미카터 자서전, 자본론의 오역(일어판), 金日成(일어판), 사상범죄론, 한국헌법, 다국적기업, 정경문화(잡지)…. 「암살사 연구」란 책도 있었다.

박종규(朴鐘圭)경호실장 시절인 1973년에 경호실의 연구발전실에서 펴낸 상하권으로 된 책이었다.. 세계 각국의 암살사례를 분석, 암살을 예방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취지로 쓰여진 책이었다. 대통령 서재의 도서목록이 풍기는 느낌과 그의 일기에서 얻게 되는 느낌은 비슷하다. 실용주의자의 분위기가 그것이다. 관념적인, 철학적인,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소재로 꽉 차 있는 것이다.

집무실 비품목록을 보면 재미있는 품목들이 눈에 뜨인다. 계산자 3점, 돋보기 5점, 은단통 1점, 소독솜통 1점, 라디오 2점, 정원수 정지용 톱 1점, 그리고 부채와 파리채 각 1점. 朴대통령은 사범학교 교육 덕분에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유교적 교양인이기도 하였다. 피아노를 치고 작곡도 했으며 유화도 그리고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서도와 한문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스케치에 능했기 때문에 건설이나 건축관계의 구상을 그림으로 그려 지시하는 수도 잦았다. 비품 중에 재떨이가 없었던 것은 朴대통령이 말년에 금연을 선언한 때문인데 간혹 한 개비씩 피우기도 하였다. 특히 志晩군의 문제로 고민할 때는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고 하여 한 개비를 빼내 피웠다. 점심을 먹고는 金桂元실장을 불러 마치 고교생이 숨어서 담배 피우듯 하기도 했다. 金秉洙국군 서울 지구병원장이 말렸더니, 대통령은 『임마, 그러면 너는 뭣 때문에 있노?』라고 하더란 것이다.

잡비장부의 내역

부채와 파리채가 있는 사연은 이렇다.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朴대통령은 여름에도 청와대의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하였다. 집무실 창문을 열어놓고 파리가 들어오는 방안에서 선풍기와 부채로써 삼복더위를 견뎠다. 한번은 李光炯 부속실직원이 집무실에 들어갔는데 대통령이 더위를 먹은 듯 얼굴이 벌겋게 돼 있었다. 李씨는 보일러실 직원을 불러 에어컨을 정식으로 틀지 말고 실내 공기순환만 시켜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朴대통령은 식사 도중 槿惠양에게 『그놈들이 에어컨을 틀었더군. 갑자기 시원해지던데 내가 모를 줄 알고. 앞으로는 절대 틀지 말라고 하라』고 일러주더란 것이다. 집무실에는 비디오테이프도 몇 개 있었다. 「일본 후지 텔리비전과의 인터뷰」 「오원춘(吳元春)사건」 「500MD헬기」 등등이었다. 朴대통령은 대접견실에 있는 영사기를 통해서 영화도 가끔 보았다고 한다.

朴대통령 부속실에서는 세 가지 장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장부」는 朴대통령을 제외한 두 딸과 한 아들의 잡비 씀씀이를 다룬 것이었다. 1979년 10월에는 27만9천3백88원이 지출되었다. 2층 내실 담당 가정부인 미스원에게 10만원, 신당동의 대통령사저를 관리하고 있던 박환영 비서관과 아주머니에게 월급 이외의 보조비로 2만원씩, 선물인 듯한 동양란 구입비 3만2천 원, 志晩 생도의 콘택트 렌즈 구입비 5만원, 세탁비 2만여 원 등등이었다.

본관에는 식당이 있었다. 본관 근무자와 대통령가족이 식사하는 곳이었다. 저녁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수석 비서관회식, 특별보좌관 회식도 여기서 했다. 이 식당의 식료품 구입비는 79년 8월에 80만8천7백65원이었다. 그 전날보다 약13만원이 준 것은 식구가 두 명(대통령과 비서실장) 줄어든 것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 朴대통령의 개인지출을 기록한 장부에 따르면 朴대통령은 79년에 약70만원을 양복, 허리띠, 구두 구입비 등으로 썼다. 10월3일에 구두 세 켤레 11만2천2백원, 8월5일에 흰색 반바지 두 벌 3만원, 허리띠(반바지용)2만원, 5월28일에 잠옷 네 벌 2만원….

朴대통령은 소양증으로 해서 순면내의를 입었고 와이셔츠는 삼도물산에서 만든 폴리에스터 65% 면35% 혼방제품을 입었다. 朴대통령은 그 동안의 와이셔츠 구입비로 3백만 원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삼도물산에서는 여기에 회사 돈을 보태어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朴대통령은 담배를 끊자 몸무게가 60kg에서 3∼4kg쯤 불었다. 바지가 맞지 않게 되자 입던 양복을 단골로 이용하던 세기양복점에 맡겨 확장수리를 해 입었다고 한다. 朴대통령 개인 잡비는 朴대통령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빼 쓰고 입금해 두기도 했다. 1979년 초에 9만9천8백30원이 전년도에서 이월되었다가 그가 죽었을 때는 9만7천3백30원이 잔고로 남아 있었다.

1979년 11월 14일의 朴대통령 집무실 공식 조사팀이 금고를 열었을 때 거기엔 돈이 한푼도 없었다. 崔侊洙 전 외무장관에게 「금고 내 돈의 인수인계」에 대해 물었더니 『그것은 朴槿惠씨에게 알아봐야 할 것이다』고 했다. 朴槿惠씨는 『국장이 끝난 11월 초순에 아버님 집무실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집무실 중에는 신당동으로 가져간 것도 있다. 태백계획이란 군사관계 보고서는 비서실에 인계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975년 12월 포항시추 현장에서 나온 원유를 담은 유리병도 집무실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손님들에게 이 원유를 재떨이에 부어 불을 붙여 보이기도 하는 등 정보부가 주관한 시추작업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한 맺힌 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었다. 대통령의 메모집도 朴槿惠씨는 신당동 사저로 가져갔다고 한다.

집무실 금고에 대해서는 『서류와 편지가 들어 있었고,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용돈도 있었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고 했다. 10·26사건 며칠 전에 별세한 심의환(沈宜煥) 당시 총무처장관 미망인 앞으로 썼으나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도 그 금고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朴씨는 『금고는 열려 있었다.』고 했다. 금고가 열려 있었다면 朴대통령이 10월 26일 오후에 궁정동으로 갈 때 잠그지 않았다는 것일 뿐 누군가에 의해 손이 갔다고 볼 수는 없다. 朴대통령이 퇴근하면 부속실에서는 출입문을 잠그기 때문이다. 더구나 10·26사건 이후에는 집무실을 봉인해버렸고 공식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이 방에 들어간 것은 朴槿惠씨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朴씨가 가져간 「대통령의 용돈」이 어느 정도이냐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용돈을 서민의 용돈과 같은 수치감각으로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시로 朴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아 왔던 金桂元비서실장은 『수 십억 원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이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李光炯씨는 『그 금고 안에는 큰돈이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께서는 많은 돈을 쌓아두는 성격이 아니다』고 했다. 당시 朴대통령은 들어온 정치자금 가운데 약4억 원을 떼어 비서실장금고로 보낸 뒤였고, 추석을 지낸 지 20여 일쯤 지난 시점이었으므로 큰돈이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朴대통령은 이 금고를, 정치자금을 보관해두고 부하들에게 분배해주는 공간으로 이용하였으므로 시점에 따라 잔고는 크게 차이가 났을 것이다. 朴대통령의 집무실 금고에 든 돈은 그 과다에 관계없이 국가소유가 되었어야 했다.

그 돈과 집무실의 서류들이 朴槿惠씨에 의해 반출된 것은 앞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5공화국 때부터 청와대 공보수석 비서관실에는 사관역할을 하는 통치사료담당비서관이 지정돼 있었다. 지금 청와대에 보존된 통치사료 중 朴正熙 대통령 관련자료는 전무한 형편이라고 한다. 청와대에서는 朴槿惠씨가 가져간 자료가 과연 사적인 소유가 될 수 있는지 법적 검토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의 줄기인 朴正熙대통령의 신변 관련 자료의 독점은 역사연구와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독점된 자료의 선택적 공개는 朴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오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全斗煥대통령도 퇴임 후 메모, 면담록 등 통치사료 원본을 연희동 집으로 가져갔다. 사본은 정부 내에 보존돼 있어 朴대통령의 경우와는 다르다.

車실장 돈은 어디로

金桂元비서실장은 『내 방의 금고에서 군인이나 야당정치인에게 돈이 나간 적은 없다』고 했다. 군인 및 야당 정치인과 선을 닿고 있던 청와대 사람은 車실장과 柳赫仁정무제1수석이었다. 朴대통령은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車실장이 정치에 개입하도록 했고, 이것이 金載圭정보부장과의 불화를 불렀다. 1979년 5월30일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정보부장, 경호실장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동안 이철승(李哲承), 신도환(辛道煥)씨를 지원하여 金泳三의원의 총재당선을 저지하는 공작을 펴고 있었던 車실장은 『아무래도 金泳三이가 당선될 것 같다』는 보고를 했다.

金載圭부장은 『李哲承총재가 틀림없다』고 하여 두 사람이 맞섰다. 車실장은 바깥으로 나와 친한 신민당의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들어가서는 『金泳三총재가 틀림없다』고 했다. 金泳三의원의 총재당선은 金載圭부장의 정치적 무능을 노출시켰다. 이때부터 권력층핵심부의 균열과 정부 대 야당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하여 10·26사건까지 갔던 것이다. 車실장은 야당공작뿐 아니라 군 인사에 개입한다든지 명절 때 주요 지휘관들에게 돈 봉투를 돌렸고 이규광(李圭光)씨를 팀장으로 하는 사설정보대를 운영하였다.

車실장의 당시 참모 李모씨는 『그 때 車실장은 공화당·유정회 내의 소장의원 그룹을 특별관리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80년 봄에 정풍운동에 참여한 의원들도 있다. 車실장은 이들을 몇번 소집하기도 하였다. 朴대통령의 양해나 지시하에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朴대통령은 기성정치인들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고 젊은 엘리트 정치인을 지원하여 다음 세대의 중심세력으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군대 내에서도 정규육사출신들을 특별관리 하였다.

경호실 작전차장보 자리를 全斗煥, 盧泰愚, 金復東 소장이 차례로 거쳐간 것이 대표적 경우였다. 새로운 친정세력을 키우겠다는 朴대통령의 구상이 車智澈을 심부름꾼으로 하여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車실장이 그런 심부름을 하는 데는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車실장 자신은 결벽증이 있어 경제인들과의 접촉을 기피하였고, 부하들에게는 『은행출입도 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그의 사후에 월권적 행동에 대한 비난은 수없이 쏟아졌지만 이권에 개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朴대통령의 정치자금 사정에 정통한 당시의 한 비서실 간부는 『車실장은 정치자금을 쓰는 창구였지 모으는 창구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車실장의 금고는 어떻게 되었는가?

권력공백상태서 車실장 방 정리

합동수사본부는 金桂元비서실장을 구속, 피의자로 취급하면서 수사의 일환으로 비서실장 방을 수색하였다. 車실장은 피해자였고 경호실이 무장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경호실장실에 대한 수색은 없었다. 경호실은 李在田차장마저 구속되고 金復東 작전차장보는 5군단 부군단장으로 전보되는 등 상층부의 기능이 마비된 데다가 崔圭夏 대통령권한대행이 경호실의 경호를 받지 않으려고 해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였다. 시키는 사람이 없고 감시하는 외부조직도 없는 상황에서 車실장의 사무실은 부관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車실장은 부속실에 吳철석씨 등 세 부관을 데리고 있었다. 이들은 실장 방의 서류들을 정리하여 일부 서류를 폐기했다고 한다. 실장 방의 금고에 대해서 한 부관은 『금고에 용돈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車실장이 정치공작이나 군인들에게 돈을 썼다면 그것은 朴대통령과 그분 사이의 문제일 뿐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朴대통령의 비자금이 보존되고 있었던 비서실장실 금고와 집무실 금고의 돈 처리는 어느 정도 해명되었으나 朴-車실장 루트의 해명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朴대통령이 이밖에도 다른 비자금관리소를 갖고 있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유신 이전에 朴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스위스은행에 비밀구좌를 갖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유신 말기의 사정은 알 수가 없다. 朴대통령이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한 돈이 있었다면 그 내용은 관리인과 대통령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고,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그 관리인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보부장의 금고 돈

10·26 뒤 계엄사 합수본부는 金載圭의 자금조사도 했다. 1차 자술서에는 「예금 20억원, 봉급 60만원에 월 생계보조비 1백50만원, 판공비 월1억 원, 미화 1만 달러, 월수입 약3천2백 만원」으로 돼 있다. 그때 정보부의 예산은 정부의 다른 기관 예산항목 속에 분산, 은닉돼 있었는데 이중의 상당 부분은 정권유지비로 쓰였다. 즉, 야당공작 자금이나 해외에서의 활동자금이 이 정부예산에서 지출되었던 것이다.

金載圭는 79년 10월 추석 때 全斗煥 보안사령관에게 5백만 원, 鄭昇和 육군참모총장에게 3백만 원 등 주요 군 지휘관에게 정보부장 이름의 촌지를 돌렸다. 이런 돈도 정보부 예산에서 나갔을 것이다. 합수본부는 金載圭의 집무실을 수색하여 비자금의 사용처를 확인하였으나 그 방향으로의 수사를 확대하지는 않았다. 金부장 방에서는 金炯旭 전 정보부장의 회고록 원고도 발견되었다. 합수본부는 이 회고록을 둘러싼 金載圭와 金炯旭의 비밀협상과정을 알아냈으나 수사를 깊게 진행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중단해 버렸다.

金載圭는 회고록 출판포기를 조건으로 金炯旭에게 1백50만 달러를 파리에서 건네주겠다고 제의하여 그를 그곳으로 유인했었다. 적어도 이 사실까지는 합수본부가 확인했다. 金炯旭이 산 채로 납치돼 왔다든지 시체로 탁송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朴대통령이 10·26직전에 청와대에 두고 있던 비자금은 많아도 수 십억 원 정도였던 것 같다. 全斗煥 전 대통령은 5백50억 원의 정치자금 잔금을 盧泰愚정권에 인계하였고, 1백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따로 갖고 나갔었다. 5·17계엄확대조치 뒤 계엄사는 金鍾泌공화당총재의 부정축재 규모를 2백13억5천만 원이라고 발표했었는데 그 가운데는 金총재가 정치자금으로 입금시켜 두었던 정기예금 42억9천77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액수와 비교할 때 朴대통령의 비자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신이전 朴대통령 주변의 정치자금 상황은 5공화국 때보다 훨씬 혼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인데, 유신 말기에는 상당히 개선되었던 것이다. 78년 12월의 총선 때도 朴대통령은 선거자금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朴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이유 중의 하나는 경제에 부담되는 선거와 정치풍토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으나 정부 선택권을 원천 봉쇄한 바탕에서 이루어진 개선을 국민들은 별로 평가해주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