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전공의들이 공개 지지했던 박형욱 교수(대한의학회 부회장)가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언론에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최근 기사에서 접한 가장 천박한 용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화일보와 조선일보는 무려 기사 제목으로 썼다.

▲ 14일 문화일보 “박형욱호 의협 비대위 ‘전공의 수렴청정’ 우려”

▲ 17일 조선일보 “‘수렴청정’박단, 의협 비대위 합류하나...15명 중 3명 전공의 채우기로”

제목을 보면 마치 박형욱 위원장은 허수아비일 뿐, 사실상 전공의와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의협 비대위를 좌지우지 한다는 뉘앙스다. ‘수렴청정’이라는 용어를 쓴 것 자체가 사실상 박 위원장에 대한 모욕이다. 의사이자 변호사며, 최고의 의료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 박 위원장이 ‘수렴청정’을 당한다니, 한참 어린 후배 의사의 꼭두각시 노릇 하려 출사표를 던졌다는 건가?

박형욱 비대위원장의 이력은 이렇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예방의학 전문의, 사법고시를 거쳐 사법연수원(37기)을 수료한 후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 이병박 정부 청와대에서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 활동, 학계로 돌아온 후 의대 교수로서 의협 대의원회 부의장과 대한의학회 부회장 역임, 의협과 보건복지부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에 의료계 위원으로 참여.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이런 화려한 프로필에는 눈 감고 어처구니 없는 ‘수렴청정’ 운운한 데에는 기자의 나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10개월 의료대란의 핵심 축인 전공의·의대생들이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소통을 강화하고 목소리를 냄을오써 강력한 단일대오가 형성되는 데 찬물을 끼얹고 싶은 심리인가? ‘수렴청정’을 가장 먼저 기사 제목에 쓴 문화일보 권 모 기자가 ‘의료대란’ 사태에서 일관되게 의료계를 악마화 하는 기사를 써 왔다는 점에서 의심은 더 짙어진다.  

게다가 ‘수렴청정’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쓴 듯하다. 수렴청정(垂簾聽政)은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을 줄인 용어로, 수렴(垂簾), 즉 발을 드리우고 함께 정사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 미성년의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왕대비(大王大妃) 혹은 왕대비(王大妃)가 발을 치고 왕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발을 치는 이유는 조선이 남녀 간 내외(內外)를 엄격히 구분한 유교 국가였기게 대비(大妃)라 할지라도 남자 신하들과 얼굴을 맞대고 업무를 보는 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비유라 할지라도 이 용어를 남성을 대상으로 쓰는 건 매우 어색하다. 박 위원장처럼 경험 많은 최고의 전문가를 ‘수렴청정이 필요한 어린 왕’에 빗대는 것은 더 괴이하다. 

박 위원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조선일보의 ‘수렴청정’ 기사를 링크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기자님도 참...조선일보 선우정 편집국장께서 강○○ 기자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의사소통을 하면 강○○ 기자님이 “수렴청정”을 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