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보수우파(保守右派) 진영을 박살냈던 건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좌파(左派)진영, 즉 민주당을 비롯한 친북(親北)세력이 윤 대통령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 보수진영을 박살내고도 좌파진영의 적(敵)이 되어 있다는 것은, 단순 수학식처럼 풀이해보면, 그런 사람의 정체는 좌파의 이용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흔히들 인용하는 저 초한지(楚漢志)의 ‘한신’이 말했던 사냥개쯤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그런 윤석열이 보수우파 진영의 추대로 대통령이 되어 있다. 이쯤이면, 사실은 그 추대한 세력이 진정한 보수우파인지 아니면 미친 것인지 살펴봐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없고, 그 한 줌의 자칭 보수우파들로부터 윤석열은 거의 묻지마식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몇 년째 겪고 있다.
윤석열이 불과 얼마 전, 검사 시절에 국정원과 우리(?) 국군, 우리(?) 법원을 박살냈던 건 다들 아는 얘기이다. 그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 문재인에게 충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라던지, 지난 대선 직전까지 국민의힘 의원들과 보수진영에 경멸적인 심정이었다는 사실도 떠돌아다니는 녹취록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녹취가 조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조작이라는 보도도 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런 윤석열은 대통령으로 시작부터 이상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보수(保守)’라는 단어를 써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는 따질 것도 없이 비판받을 일이었다. 경험 많은 우리 보수 원로들이 지적한 보안, 경호, 업무 편의 등 기능적인 점에서의 위험성, 비효율성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중흥을 이룬 보수적 대통령들이 집무실로 사용한 전통과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당위성을 동시에 부정하는 그런 처사는 도저히 ‘보수’가 할 일이 아니었다.
보수는 절차와 형식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모범적이어야 한다. 특히 보수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 때로 보수는 전통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그 존재 의미의 본질이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 또한 존재 이유이다. 보수는 이념 수호가 존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문제는 매우 상징적인 일이었다. 보수이념 측면에서는 이념적 배신이라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를 과장이 심하다고 여기는 이는 보수 얼치기이거나 아마추어 패션 좌파이거나 교묘한 좌파세력이라 본다.
시작이 반이요 작명이 전부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대통령 윤석열이 청와대로 가지 않은 것은 보수정권으로서의 윤 정권의 파멸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는 느낌이다. 작금의 윤석열이 겪고 있는 모든 난항은 청와대로 가지 않을 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이다. 견강부회, 논리비약, 과장이 아니다. 선명한 경험칙에서 오는 과학적 지적이다.
그는 시작부터 그랬건만 진성 보수우파들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지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얻은 경험이 뼈져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도 종북좌파가 집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그래도 양산에 사는 역적과 그 무리를 당연히 국법에 따라 곧 처단하겠지 하는 희망으로 참고 참으며 지켜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 희망과 인내에 대통령 윤석열은 찬물을 끼얹었다. 진성 보수우파가 찬물을 덮어 썼는지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의료대란이다.
국정원과 국군, 법원, 보수정당을 박살낸 것은 예전 일이라고, 이제는 달라졌다고 ‘발가락이 닮았다’식으로 애써 자위한다 치더라도 의료대란은 현재 진행형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엊그제 있었던 ‘윤석열이 하고 싶은 말’ 행사장에서도 끝내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다.
(‘윤석열이 하고 싶은 말’이란 예전에 가수 나훈아 씨가 허위보도를 일삼는 우리 연예기자들을 꾸짖고자 할 때 기자회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나훈아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던 것을 본떠 써본 표현이다. 물론 그 나훈아와 이번 윤석열이 보여준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때 나훈아는 아무 잘못이 없었으나 후배 여배우들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에게 날아들지도 모를 돌을 온전히 맞을 각오로 기자들 앞에 선 것이었고 이번 윤석열은 여론에 떠밀려 나온 것으로, 자신의 잘못은 대부분 뒤로 한 채 사실상 아내의 잘못을 변호하러 나온 점에서 그렇다).
그런 모습을 보인 윤석열이 과연 보수우파일까. 우리는 이 점을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과학적 의심이다. 나온 김에 하는 소리인데,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자칭 보수우파들은 스스로 보수우파라고 자부한다면 제발 ‘개혁(改革)’이라는 표현부터 삼가길 바란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개혁’은 뒤집어엎는 사회 운동을 의미한다. 정치계에서는 주로 사회주의자들이 쓰는 표현으로, 기존 제도를 부정할 때 쓰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주의자가 쓸 표현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건국할 때부터 요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진보(進步), 개혁(改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500년 묵은 이 민족의 유교적 구시대 관념과 문화적 틀을 깨고 세계화에 맞춘 진보, 혁신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세웠다. 그 틀 아래 박정희 대통령이 역시 진보적 개척 정신으로 이 민족의 못난 점은 배척하고 장점을 극대화하여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었다. 즉, 우리 건국(建國) 대통령과 부국(富國) 대통령은 이미 당대 최고의 진보 정치인이었고 요즘 좌파들이 말하는 모두를 잘살게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혁명가였으며, 그 이승만과 박정희가 저변 국민과 함께 이룩한 성과 아래 현재의 대한민국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개혁’을 더하겠다는 것은 다른 제도, 다른 국가적 틀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보수우파가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기본 틀을 뒤집겠다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의료개혁’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의료제도에 ‘개혁’이라는 표현을 붙이려면 우리 의사들이 형편없거나 그동안 우리 국민이 질 낮은 의료시스템으로 수없이 죽어 나갔거나 했을 때이다. 우리 의료시스템과 의사들의 자질은 대한민국 현실과 국력에 맞게 성장해왔으며(그보다 빨리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짧은 역사에 비하면 유래를 찾기 힘든 모범적 사례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의사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근래 전공의들의 그런 선택이 환자의 생명을 외면한 권리 남용이라는 주장 중 어느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 건지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멀쩡히 돌아가는 의료시스템을 전문적인 연구도 없이 마치 마오쩌둥이 농민을 위한답시고 참새를 모조리 잡으라고 했던 식의 단편적 독단으로 붕괴시킨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잘못이라 본다. 이에 대해 자칭 보수언론과 윤석열 팬들은 왜 의사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모든 직업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조건반사적 권리구현을 왜 의사에게는 예외로 하고 있는가. 왜 의사들만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는가. 왜 원인 제공자의 잘못은 따져보지 않고 의사들에게 성인군자가 되어 희생만 하라고 강요하는가.
아무튼, 진성 보수우파가 볼 때는 윤 대통령은 국정원, 국군, 법원, 대기업을 초토화했었던 장본인이므로 적어도 지난날의 검사 윤석열은 대한민국 건국 보수우파 세력의 역적이다. 그런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어준 것은 그에게 그 역적 전과(前科)를 씻으라는 개과천선의 기회를 보수우파가 준 것일 테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은 자신에게 어떤 역사적 소명이 부여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지난 정권의 반역자들을 수수방관한 채 겨우 집안 변호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당신을 지켜줄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도 안 해보나? 정치적으로는 저 좌파, 저 민주당 세력이 기회주의 법률 기술자들과 함께 대통령 윤석열은 물론, 시민으로 돌아온 윤석열을 노릴 것이다. 윤석열 묻지마식 팬인 기회주의 패션 보수우파들은 당신이 권력을 놓았을 땐 철새처럼 떠날 것이다. 기업들은 어떨까? 예전에 이재용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들을 좌파적 견지에서 탄압했던 검사 윤석열을 기업인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윤 검사가 보수우파 추대로 대통령이 된 후엔 좀 달라지나 했을 텐데, 주 52시간 근로 관련 문제 등을 비롯해 여러 노동 현안을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 맞게 합당하게 바로잡지 못한 통에, 기업들 또한 윤석열을 경멸할 것이다. 진성 보수우파들은? 지난 정권의 반역자들을 처단키는커녕 의사집단과 의료시스템마저 붕괴시킨 당신에게 우호적일 리 없다. 솔직히 그간 고비 때마다 당신을 엄호한 스스로의 입을 찢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 시민으로 돌아왔을 때 과연 누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나? 이대로라면 당신은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처했을 때 살려줄 사람이 없겠지만 육신이 아플 때도 살려줄 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붕괴시킨 의료시스템은 부메랑이 되어 당신이 아플 때 그 아픈 몸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는 않나?
훗날에 그래도 진성 보수우파는 인간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보수우파 대통령이었다는 점 때문에 종북좌파들이 당신을 노릴 땐 엄호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 윤석열이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여지마저도 불사르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당신이 자연인으로 돌아갈 때 누가 지켜줄까?
- 태극당(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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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1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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