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김구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테·러·리·스·트. 김구는 전 생애에 걸쳐 수십 건의 테러를 자행하고 다수의 인명을 살상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적 암살자’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의 수괴’라는 동시대 역사인들의 비난과 조롱을 애써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부정의(不正義)한 일본제국주의 체제에 맞서 싸운 자신의 혁명적 과거를 표상하는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민족의 십자군’이었다.
그렇다면 김구는 진짜 테러리스트였을까? 아니, 테러리스트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지금껏 김구의 테러 활동 혹은 테러리즘을 정면으로 거론하고 분석한 학술연구는 없었다. 수많은 애국지사에게서 조금의 친일 흔적이라도 나오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좌파 역사학자들이 ‘김구’만은 성역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김구의 명암(明暗) 중 한국인들이 잘 바라보지 않으려 하는 어둠의 면모, 즉 ‘테러리스트 김구’를 본격적으로 파헤쳤다. 이 책은 ‘세계적인 테러리스트’와 ‘대한민국 국부’라는 이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백범 김구’라는 거대 신화의 탈신화(脫神話)에 도전하는 본격적인 학술연구의 결과다.
저자는 정규재 주필과 함께 약 20회에 걸쳐 ‘김구의 흑역사’를 다룬 라이브 대담 방송을 진행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드러나는 ‘김구의 살인본색’과 ‘백범일지의 거짓’에 경악하고 분노했으며, 오로지 학자적 양심만을 길라잡이 삼아 김구의 테러·테러리즘을 정조준했다. 그것은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는 놀라움, 두려움, 착잡함으로 가슴 졸이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저자는 ‘김구 신화’라는 거짓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충격적 위선에 치를 떨어야 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저자는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에 대한 정의부터 챙긴다. 테러는 목적이 개인적 원한·보복과 구별되고, 대상이 비무장 민간인으로 전쟁과 구별되며, 치밀한 사전계획으로 우발적 범죄와도 구별된다. 테러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정의로운 폭력적 저항이다. 이봉창과 윤봉길의 폭탄 투척과 이를 기획한 김구는 극동 전역에서 당대 가장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로 명성을 떨쳤지만, 우리에게는 강의한 사랑의 독립전사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테러리스트’임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테러리스트란 부정의(不正義)한 일본제국주의 체제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혁명가의 ‘명예로운 훈장’이자 ‘자긍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역사학자들이 믿고 싶은 사실만 골라 믿는 확증편향 또는 강박관념으로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며 ‘의사’ 혹은 ‘의열투쟁(義烈鬪爭)’이라는 용어를 남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메타 히스토리 테러리즘을 두고 전근대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해 의열 혹은 의거라고 치켜세우고 폭력을 신화화 혹은 신성화하는 것은 명백한 반문명·반인권·반지성”이라고 갈파한다. 의열투쟁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식민지 해방투쟁의 비대칭 전술이자 ‘전통적인 테러리즘’과 그 어떤 구별성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테러리즘에 대한 역사학계의 알레르기는 9·11 테러의 충격파에 따라 김구를 오사마 빈 라덴으로 착각하는 연상심리와 그에 따른 거부반응일 뿐이다. 이는 그야말로 ‘내 편이 하면 의열, 남의 편이 하면 테러’라는 지독한 내로남불이자 사이비 역사학의 민낯일 뿐이다. 이런 역사학계의 불편한 진실이야말로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역사적 강박관념’ 혹은 ‘보이지 않는 추상’의 밑자락에 깔려 있다.”
저자는 김구의 테러 활동을 항일(抗日), 밀정(密偵), 정적(政敵) 3가지로 구분해 ‘테러리즘 있는 테러’와 ‘테러리즘 없는 테러’를 분별하고, 그 구조와 특질, 논리를 밝히고자 했다. 테러리즘은 선악의 가치판단이 아닌 사실 판단의 뉴트럴한 학술개념이기에 도덕적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괄호 안에 묶어두고 오직 사실 판단만으로 김구가 자행한 테러 활동을 실증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김구의 테러 활동을 피해자, 목표, 수단, 동기, 의도라는 5가지 요인으로 재구성했다.
항일 테러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특별한 폭력을 행사했던 1896년 3월 치하포 살인 테러를 시작으로 1932년 1월 이봉창, 1932년 4월 윤봉길의 폭살테러를 다룬다. 치하포 사건은 청년 김구가 국모보수(國母報讐)를 위해 일본군 육군 중위를 때려죽인 사건으로 알려져왔다. 1932년 1월 이봉창 폭살테러는 일본 동경에서 육군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환궁(還宮)하는 일본 천황을 폭살시키려다 미수에 그친 테러 사건이다. 1932년 4월 윤봉길 폭살테러는 상해 홍구공원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터트려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 등을 폭살시킨 테러 사건이다. 김구는 윤봉길 폭살테러를 자행해서 세계적인 테러리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밀정 테러는 항일운동을 방해·저지하는 한인 밀정에 대해 특수한 폭력을 행사했던 1922년 2월 김립 암살, 1933년 8월 옥관빈 암살, 1939년 5월 안공근 암살 테러를 다룬다. 1922년 2월에 있었던 김립 암살은 김구가 소학교 제자였던 오면직(吳冕稙)과 노종균(盧鍾均)을 시켜 임정 국무원 비서장 김립을 국사범으로 몰아 암살한 사건이다. 1933년 8월에 발생한 옥관빈 암살은 남화한인청년연맹 정화암을 사주해 상해 한인 거상 옥관빈을 밀정으로 몰아 암살한 사건이다. 1939년 5월의 안공근 암살은 역시 정화암을 사주해 안중근의 막냇동생 안공근을 암살한 테러 사건이다.
정적 테러는 1945년 11월 환국 이후 건국 과정에서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적에 대해 특별한 폭력을 행사했던 1945년 12월 송진우, 1947년 7월 여운형, 1947년 12월 장덕수 암살 테러 사건을 다룬다. 송진우 암살은 민족주의 광신자 한현우를 사주해서 당시 한민당 수석총무 송진우를 찬탁론자로 몰아 암살한 사건이다. 여운형 암살은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한현우를 사주해서 근로인민당 당수 여운형을 민족 반역자로 몰아 암살한 사건이다. 장덕수 암살은 한독당 산하 대한보국의용단장 김석황과 그 일당을 동원해 당시 한민당 정치부장 장덕수를 암살한 테러 사건이다.
이 책에서 다룬 김구의 테러 9건 중 정치적 목적성을 지니는 ‘테러리즘 있는 테러’는 윤봉길 폭살 테러 단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시종일관 테러리즘으로 반대파를 숙청했다”는 지적과 같이 테러를 개인적 재물 탐심과 보복, 정적 제거 수단으로 삼았던 ‘테러리즘 없는 테러’였다.
김구에게 테러는 일제의 부정의에 맞서는 신성한 수단이 아니라 ‘야만의 정의(Wild Justice)’를 구현하는 비열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환상하는 것과 달리 자타가 공인하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리스트’였다. 그렇다고 9·11 테러와 같이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폭력을 자행하는 ‘뉴테러리스트’는 아니었고, 차별적 폭력을 행사하는 ‘전통적인 테러리스트’였다.
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김구는 한국 근현대사에 죽음비를 몰고 다니는 짙은 먹구름이자 조작된 허구가 장엄한 역사로 둔갑한 역사인(歷史人)을 대표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환상하는 김구는 종북 주사파가 만들어낸 역사적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김구를 두고 ‘민족의 구원자’ 혹은 ‘자유와 통일의 메시아’라 환상하고 성인화(聖人化)하는 것은 지독한 정신분열이자 끔찍한 위선이다. 한국인들은 김구라는 시대착오적인 우상숭배와 터무니없는 환망공상(幻妄空想)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저자 정안기>
교토(京都)대학에서 일본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학술진흥재단(JSPS) 특별연구원,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을 거쳐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한국연구재단(NRF) 인문사회학술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선, 일본, 만주를 넘나들며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충성과 반역』(조갑제닷컴, 2020), 공저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미래사, 2020),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