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딴 날 안세영 선수의 ’분노' 폭로 회견이 있은 뒤 여론은 안세영 편을 들고 있다. 22살의 젊은 선수가 그동안 배드민턴협회의 횡포에 얼마나 참아왔으면 이렇게 하겠느냐는 거다.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했다.
배드민턴협회는 '공적(公敵)'이 됐다. 안세영이 저격한 배드민턴협회의 회장은 아마 취재진을 피할 의도로 파리에서 항공스케줄을 바꿔 귀국까지 했다. 안세영은 당당하고 승자가 됐고, 협회 임원진이나 대표팀 코치진은 뭐라고 변명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 성난 국민들은 왜 선수를 혹사시키느냐, 왜 해병대극기훈련까지 시키느냐, 왜 아직도 선수들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강제훈련을 시키느냐, 스타선수의 처우를 왜 그렇게밖에 해주지 않느냐, 왜 우리는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사회체육 저변을 넓혀 그 안에서 선수를 뽑아 출전시키지 않느냐, 왜 협회 임원진은 비즈니스석을 타고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에 태우느냐 등을 따지고 있다.
배드민턴협회는 선수 관리와 운영, 훈련 시스템에서 허점이 많을 거다. 안세영 폭로로 내부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안세영이나 일부 국민들의 요구는 현실에서 이율배반의 측면이 있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은 원하지만, 그 메달을 따기 위해 나름대로 최적화된 지금의 시스템을 문제삼고 있다.
선수들을 잦은 출전으로 혹사시키는 것을 '선수 인권' 차원에서 반대하고, 선수가 원치 않는 해병대극기훈련을 왜 시켰느냐고 문제삼고, 선수가 자기 하고 싶은 시간에 자율적으로 운동하도록 허용하라고 주장하면,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에 지금처럼 이렇게 열광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금메달 지상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올림픽 메달 숫자가 형편없었다면 더 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렇게 올림픽 메달을 좋아하는 국민들 앞에서 대한체육회는 초상집이 되고 선수들은 대역죄인으로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처럼 사회체육 위주가 돼야 한다면서 소수엘리트 선수의 보호 관리에 더 많이 신경쓰고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정된 협회 예산은 엘리트선수와 생활체육인들, 동호인들에게 고루 배분돼야 한다면서, 왜 안세영에게 올림픽 한달을 앞두고 전담 트레이너를 그만두게 했느냐고 따진다. 왜 안세영의 다친 무릎에 더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고 그 뒤 한의원 6주 치료만 받게 해서 섭섭하게 해줬느냐고 따지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단체에 후원은 한 적 없으면서 왜 선수들을 비즈니스석에 안 태우고 이코노미석에 태웠느냐고 분개하고 있다. 젊고 건강한 운동선수들을 이코노미석에 태우는 게 그렇게 문제인가(물론 임원진이 개인 돈이 아닌 협회 돈으로 비즈니스석에 탄 것도 문제).
배드민턴협회가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대부분 운동단체협회의 사정이 비슷할 것으로 본다. 협회장은 주로 돈을 내놓는 기업인이 맡는다. 속된 말로 돈을 내놓고 '감투'를 얻는 자리다. 양궁협회처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맡으면 최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비인기운동 종목에서 대기업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 돈만 나가지 기업홍보 효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협회 김택규 회장을 검색해보니, 연매출 180억쯤 되는 건설 토목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배드민턴 동호인 출신이다. 이제 그는 선수 복지 확대를 위해 정의선 회장처럼 돈을 더 내놓든지, 아니면 협회 회장직을 내놓든지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대한사격연맹 신명주 회장은 이번에 자리를 내놓았다. 본인이 운영하는 명주병원에서 '임금체불' 논란이 일면서다.
소속 개인을 만족시키는 조직은 거의 없다. 객관적으로 문제가 많은 조직은 별도로 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조직에서도 구성원의 불만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이는 운동선수들만이 아닌 직장인들도 모두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안세영은 금메달을 따는 순간 배드민턴협회에 대해 참을 수없는 분노를 폭발했지만,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딴 김원호 선수는 “이 자리에까지 온 것도 혼자 힘으로 온 게 아니다”라며 “협회에서 올림픽 전에 대비 훈련을 지원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나은 선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써주신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출신은 역시 속일 수 없는 것인가?
背恩忘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