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한 달 간 미국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뉴스를 두 개 고르자면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일련의 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내 명문대학교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반(反)이스라엘, 혹은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대규모 유혈사태 등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경찰에 체포되는 학생의 수와 동참하는 학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대학교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봄학기가 이제 곧 끝나는 시기다. 대부분의 학교는 정규 수업을 마무리하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상황인데 시위가 지속되며 기말고사, 나아가 졸업식에까지 차질이 생길 수 있어 학교 측과 시위학생들 사이의 대립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우선 현재 가장 큰 규모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미국 뉴욕시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교다. 4월 초 100명 이상의 컬럼비아대학 시위대가 체포되며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아이비대학인 이곳은 29일(월요일) 사실상의 최종 경고문을 학생들에게 공지했다. 컬럼비아대학은 이날, 시위대 측 지도부와의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날 오후 2시까지 자진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이를 어기고 시위에 계속 참여한다면 정학 처분이 내려질 것이고 이번 봄학기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오후 2시가 지났으나 시위대는 여전히 해산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된 상태다. 현재까지 에머슨대학, 에모리대학, 뉴욕대학, 남가주대학, 예일대학 등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대학 학생들은 2023년 10월 하마스에 의한 이스라엘 공격에 따른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지구 등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주민 약 1200명이 사망했고 대다수는 민간인이었다. 이스라엘은 현재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전은 10월 7일 공격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국제법상 보장되는 자기방어 권리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대학들은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 의원들로부터도 압박을 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교내 보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유대인 학생들이 반유대주의 움직임에 따라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컬럼비아대학에 재학 중인 한 유대인 학생은 29일 뉴욕 연방법원에 학교를 상대로 한 소(訴)를 제기했다. 학교가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음에 따라 유대인 학생들에게 불안한 환경이 조성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이 학생의 주장이다. 유대인 옹호단체들은 시위대가 부당한 잣대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스라엘의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 더 심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정권들에 대한 비판은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개다. 가자지구에서의 휴전, 나아가 이스라엘과 연관된 회사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일부 시위대들은 이에 더 너아가,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불가피하고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다는 것을 컬럼비아대학에 보여주기 위해 캠퍼스에 모이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부 대학 교수들 역시 시위에 참여해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샤나 레드먼드 컬럼비아대학 영문학 교수는 집회에 참석해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들”이라며 “그들은 양심과 권위를 갖고 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컬럼비아대학은 졸업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학은 29일 성명을 통해, “동료 학생들과 가족, 친구들에게 이 기념에 남을 일(졸업)을 누릴 기회를 박탈하지 않도록 해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대학은 “철수하지 않으면 여러 대학 정책 위반에 따른 징계 절차에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남가주 대학교는 안전 등을 이유로 졸업식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미노슈 샤픽 컬럼비아대학 총장은 우선 이스라엘과 연관된 기업에 대한 투자를 끊을 뜻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가자지구의 보건과 교육에 더 투자를 많이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뉴욕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등의 명문학교들 역시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학의 투자 대상을 놓고 일어난 시위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큰 예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이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반대 시위 움직임이다. 당시 학생들은 백인 통치하의 남아공과 연관된 회사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2020년에는 전국 곳곳의 대학생들이 기후변화 등을 이유로 들며 화석연료 회사 등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코넬대학교, 조지워싱턴대학교, 조지타운대학교 등이 투자 철회, 혹은 직접 투자 금지 등을 약속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왜 대학들이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중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지를 분석한 기사를 최근 실었다. 대학 측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 기부금 등을 관리하는 부서에서는 이를 따르기 어렵다고 했다. 우선 첫째는 대학이라는 것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특정 사안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이에 대한 토론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데 일방적인 한쪽 주장만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했을 시 학교 명성에 해(害)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편향된 결정을 내릴 경우 학교가 받는 기부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앞서 컬럼비아대학교 시위대 측은 구글을 소유하고 있는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 회사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가 사용하는 (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시위대의 주장이다. 시위대들은 이런 미국 회사들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학살을 방조하고 있으며 이런 회사들에 대학 자금이 투입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구글은 이스라엘에 제공되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아주 민감한 정보, 혹은 기밀 등을 다루지 않으며 무기나 정보수집과 연관된 군대 임무와도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쟁점은 시위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에 도움을 주고 있는 기업을 정확히 특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화석연료 회사 대상 투자 철회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 증명이 이뤄졌고 학생들의 지지도 얻었었다. 하지만 당시 투자를 철회한 대학들은 최근 급상승한 기름값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대학의 특정 기업 투자 철회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주주(株主) 등의 자격으로 특정 회사의 경영 상황에 대해 압박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미국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현상을 소개하며 1968년 베트남전쟁에 따른 반전(反戰) 시위 움직임과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우선 미국의 명문대학교들은 이런 정치적 사안에 대한 갈등이 생길 시 어떤 규칙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집행해야 하는지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했다. 앞서 샤픽 컬럼비아대학 총장은 뉴욕시 경찰의 개입을 사실상 허가, 이에 따라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체포됐다. 이는 학생들과 일부 교직원의 반발을 거세게 만들기도 했다. 일부 교수들은 학교 측의 사과와 학생들에게 완전한 법적 사면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장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대학가의 움직임이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게 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시위대는 1968년 4월 해당 대학에서 인종 간의 평등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었던 때와 현재 그들의 상황을 자주 비유하곤 한다. 당시 시위 때 7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민주당도 1968년에 대한 기억이 좋지만은 않다. 당시 대학가의 시위대는 그해 8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는데 올해도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전당대회가 열린다. 

당시 베트남전쟁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은 크게 엇갈렸다. 양쪽이 거세게 맞섰는데 반전(反戰)을 주장하는 쪽이 패배했고 미네소타주 출신의 허버트 험프리 당시 부통령을 대선후보로 정했다. 당시 시카고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려 경찰이 최루탄과 곤봉 등으로 시위대를 해산하는 장면이 생중계됐고 650명 이상이 체포됐었다. 

이코노미스트는 1968년과 같은 무력 충돌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은 낮게 봤다. 다만 1968년 시카고에서 민주당 학생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다 체포됐던 빌 애이어스 박사를 인용, “비슷한 상황이 재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애이어스는 “험프리는 베트남전쟁을 옹호하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반전 시위대에 끌려 다니는 가운데서도 민주당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리처드 닉슨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고 했다. 

애이어스는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어떻게 닉슨이 평화를 추구하는 후보로서 당선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애이어스는 “닉슨은 반공(反共) 전쟁광이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닉슨은 전쟁을 끝낼 ‘비밀 계획’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와 비슷하게 도널드 트럼프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안에 끝내겠다고 말했고 가자지구 전쟁을 언급하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바이든이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똑같이 선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 때문에 나오고 있다. 결국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현재의 선거 구도에서 누가 현재의 시위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을지는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