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총련이 2005년 2학기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사용 중인 선전교육자료다. 이 자료에는 강정구 칼럼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그 출처는 대부분 북한 역사책이나 일본 좌익들이 쓴 책을 좌익 연구소에서 그대로 베끼기 때문이다. 한총련 재학생 교육자료의 全文을 게재한다.
1. 1945년 해방인줄 알았더니,
일장기가 내려간 자리엔 또다시 남의 나라 국기가 올랐다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앞 일장기가 내려갔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치욕같은 일제 식민지배 역사의 막이 내린, 해방과 독립의 날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랬다. 그해 8월 15일 일본의 패망은 우리 민족에게는 미칠 듯한 기쁨이었고 분명 조선총독부 앞에서 휘날리고 있던 일장기는 내려갔다.
40년간 당한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이 고통은 나라의 주권을 외세에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일제가 패망한 첫날부터 진정한 완전 독립을 위한 준비에 바로 들어갔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일제가 패망한 첫날부터 자주적인 민주 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전국 곳곳에서 건국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 시작하다가 지방에서부터 인민위원회가 건설되어 갔다.
전국 곳곳에서 자주독립을 향해 빗발치는 민중들의 열기는 일부 친일무리들을 완전히 압도해갔으며 이것은 우리 민중이 얼마든지 자기의 손으로 자주 독립국가를 건설하여 새 생활을 창조해나갈 수 있음을 남김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 준장 몇 명이 성명서를 가지고 펜타곤의 어느 사무실로 급히 들어와 '우리는 한국을 분할해야 한다. 어느 곳을 분할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극동에서의 경험이 있는 한 대령이 그의 상관들에게 항의했다. '말도 안됩니다. 한국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나의 단위입니다. 분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장군들은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령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군들은 강압적으로 지시했다. '우리는 한국을 분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오늘 오후 4시까지 반드시 끝내야 한다' 이리하여 대령은 30분만에 벽걸이용 지도를 가지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했다. 1945년 8월 10일과 11일 사이의 일이었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
우리들의 조국, 한반도의 허리는 이렇게 쉽게 동강나버렸다. 한갓 펜타곤의 어느 사무실에서 이름도 알지 못할 장교들의 손으로....
이렇듯 민족비극의 원조인 38선은 미국이 이미 45년 7월에 계획을 세웠고 최종확정은 8월 11일 러스크라는 중령이 미 국부성 한 구속에서 지도로 확정지은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 누구와도 상의 한마디 없이, 또 연합국 누구와도 상의 없이 독단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집행한 당사자가 바로 맥아더였다.
1)인민위원회는 각급 단위에서 민중의 손으로 선출한 민중의 대표기관이었으며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민중의 권력기구였고 모든 계급 계층을 포괄한 통일전선 조직이었다.
해방된 기쁨도 잠시.. 1달도 채 지나지 못한 9월 8일 미군의 남한 점령, 식민지배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됐다.
한 사무실 구석에서 미군들이 그어버린 38선, 이러한 미국의 침략 의도는 한반도에 상륙을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 한국은 미국의 적이며 따라서 적국에 취하는 관례에 따라 모든 것을 수행하라 -미24군단장 하지 중장의 말 |
이러한 지시를 받은 미24군단은 마침내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했다.
전투기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마치 적전에 진입하듯 무시무시하게 인천에 상륙한 후 서울에 도착한 미군은 '한국인은 일본인들과 같은 혈통을 가진 고양이들이다'는 발언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리곤 해방군인줄 알고 환영 나온 우리 민중들을 일본군을 앞세워 사살했다. 이 때문에 2명이 죽고 10여명이 부상했다. 그런데 인천에 도착한 뒤 미군이 취한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질서를 유지하는데 협조해주었다고 일본인들을 격려한 뒤 미국인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부두에서 우리를 환영하려는 한국인들에게 일본 경찰이 발포한 것을 비롯하여 한국인과 일본인 간에 몇몇 충돌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관은 사전에 한국인들에게 상륙작전에 방해가 되니 물러서라고 명령한 바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 45년 9월 12일자> |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는 미군의 태도는 미군이 진주하기 하루 전인 9월 7일 태평양 방면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이름으로 된 포고문 1, 2, 3호가 잇따라 공포되면서 일본에 이은 미국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시작되고 말았다.
이 포고문은 미군이 남한에서 선포한 최초의 공식적인 침략선언이자 민족분단의 불운역사를 안게 된 결정적 선언이었다.
태평양 미군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일본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우리편 여러나라 군대의 오래 계속되어 온 무력투쟁을 끝마쳤다. 일본 천황의 명령에 따라서 그를 대표하여 정부와 대본영이 서명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이 지휘하는 전승군은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했다. 본관은 조선 인민이 오랫동안 노예처럼 지내온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려는 연합국의 결정을 명심하고 있다. 조선인은 우리가 조선인을 점령하는 목적이 항복 문서를 이행하고 조선인의 인권 및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나는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제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하 에 시행한다. (제2조) 정부 등 모든 공공 사업 기관에 종사하는 유급․무급 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기타 중요한 제반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 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모든 기록 및 재산을 보호 보존하여야 한다. (제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으로 발포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 행동을 하거나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제4조) 주민의 재산권은 존중한다. 주민은 본관의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일상적인 직무에 종사하라. (제5조) 군정 기간 동안 영어를 모든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공용어로 한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또는 일본어 원문 사이에 해석 또는 정의에 관하야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不同)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 원문이 적용된다. (제6조) 새로운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또는 나의 권한 아래 나올 것으로, 제군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를 지정할 것이다.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
또한 포고문 2호에서는 조선인으로 포고명령을 위반 한 자는 사형으로 처벌한다고 경고했다
그들의 포고문과 정책은 우리의 기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포고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우리에게 통상과 같이 생업에 전념하고, 이기주의로 날뛴다든가 일본 및 미상륙군에 대한 반항행위, 재산 및 사설기관 파괴 등을 엄단하며, 모든 점령과 시책은 일본 식민지적 통치 구조를 경유해서 실시한다고 했다.
해방이 되었다 하나 우린 일제 식민지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통치 구조를 그대로 지속 지켰고, 일본 관리들을 그대로 집무하게 하였다
하다못해 일본 식민지 통치의 최고 책임자였던 총독 아배가 형식상으로 미군정을 보좌하는 것으로 되어있을 정도였다。
1945년 9월 9일 오후 4시 남한 전역에 그때까지 게양되었던 일장기가 내려가고 미국의 성조기가 게양되고 아놀드 소장이 군정장관으로 경무국장에는 헌병사령관이던 쉬크 준장이 임명되어 총독부의 정무총감이하 각 국장이 해임 되었지만 여전히 행정고문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우리의 정서나 우리 민중이 안고 있는 그 어떤 현실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네 들만의 군정을 펄쳐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그때까지 자생적으로 치안임무를 부분적으로 수행하던 건국준비위원회나 각종단체의 경찰권 행사를 금지 시키고 우리 민족이 그렇게 증오하던 일인 경찰관을 포함 이전 친일경찰들을 그대로 존속시켰다. 또한 이들은 우리의 상해임시정부나 국내의 인민 공화국 등을 모두 부인하고 오직 군정 일변도로만 밀고 나갔다.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남에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주둔목적을 밝힌 미군은 일본과 다를바 없는 식민지 군대였던 것이다. 포고령에서 밝히고 있듯 그들은 스스로의 성격을 한반도의 남쪽을 ‘점령’하고 ‘모든 행정권을 장악’하여 ‘군정을 실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주둔했던 것이다.
그랬다. 이렇게 1945년 9월 8일, 미국이 인천항을 상륙함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의 역사, 새로운 우리 조국의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2. 1945년 9월 8일 시작된 미군 주둔!그
들은 왜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올렸던 것인가?
전략적으로 유용한 거점 한반도를 삼키자!!
1945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즉 미국이 한반도를 주둔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관심은 유럽쪽에 더 치중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가 한반도를 미․영․중․소의 4개국 신탁통치 하에 두자고 제안했던 얄타회담 훨씬 이전부터, 즉 일본과의 전쟁 수행중에도 ‘소련’이라는 존재가 한반도를 다루는 미국관리들의 관심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1943년 국무성의 한 문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한국(한반도)은 스탈린에게 소련 극동지역의 경제적 자원들을 크게 강화하고, 부동항을 획득하게 하며, 또 중국 및 일본과 관련하여 지배적인 전략적 지위를 점할 수 있게 하는 유혹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련의 한반도 장악은 극동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전략적 지위를 창조할 것이며, 중국 및 일본 내에서의 반영은 광범위할 것이다.(『한미동맹 50년』 p. 204) |
즉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소련이 대일전을 선포하고 1945년 8월 이후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장악해 갈 무렵 소련이 한반도 전역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분주하게 움직이게 된다.
| 포츠담 회담이 진행되던 1945년 7월 무렵 마샬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은 작전국장인 헐에게 미군의 한반도 진공에 대해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따라 헐은 최소한 인천과 부산이 미군의 작전지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북위 38선과 거의 일치하는 서울 북방에 선을 그었는데, 이같은 과정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 39) |
소련이 한반도로 발을 내딛던 1945년 8월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었으므로, 미국의 우려가 얼마나 컸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려가 컸던 만큼 그들의 움직임 또한 분주하였다. 당시 미국 정부 내에는 한반도 전후처리와 관련하여 두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한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므로 미군이 군사적 점령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국무성 일각)과 그 무렵 태평양에서의 미군의 진격속도나 전력으로 보아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주로 군부)이 그것이다.
8월 10일 일본이 항복의사를 표명하자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한 부처간 의견조정이 시급하였다. 그래야 극동에서의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대한 훈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 내에는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국무성과 육군성, 해군성 사이의 의견차이를 조율하기 위한 ‘3성조정위원회’(SWNCC)가 있었는데, 이 위원회는 8월 10일 밤 본스틸(C. H. Bonesteel)과 러스크(D. Rusk) 두 대령에게 두 의견을 절충시켜 일본의 항복과 무장해제를 받아낼 수 있는 선을 찾아보라고 명령했다.
러스크는 훗날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 육군측은, 가능한 한 북쪽에서 항복받기를 원하는 미국의 정치적 욕구와 미군이 그 지역에 도달하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는 점을 조화한 제안을 요청했다. 우리는 38도선을 권고했는데 … 이것은 미군의 책임 지역 내에 한국의 수도를 포함시켜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시쓰는 한국현대사』p. 43 |
러스크가 말하는 ‘미국의 정치적 욕구’는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분명한 한계’는 이미 한반도를 장악하기 시작한 소련군에 비해 오키나와에 있었던 미국의 처지를, ‘조화한 제안’이란, 38선 이북을 소련군이, 38선 이남을 미군이 장악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은 한반도 분할점령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별다른 반대 없이 받아들였고, 이에 발 맞추어 맥아더는 9월 2일 일본의 공식 항복 서명과 함께 이를 포고(「일반명령 제1호」)하고, 한반도에서 38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다고 발표하였다.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주한미군은 38선 이남이라는 지역에서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켜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 것을 목표로 주둔하였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주둔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순수한 군사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진정 주한미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순수한 군사적 목적’으로 주둔했다면, 9월 9일 조선총독부 아베 총독과의 항복 조인식 이후 주한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장기가 휘날리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에 성조기를 올리면서(미군정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주둔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일제 해방 기쁨도 잠시, 미군정이 왠말인가?
미군정, 그들은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는가?
우선 주한미군이 착수한 것은 미군정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정치, 군사, 경제를 구체적으로 장악해갔다. 이같은 과정 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 주둔의 구체적 목적은 “한국사회의 장악”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조선에 대한 통치권 장악”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이남에서의 정치권력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1. 미군정 실시
미군정은 9월 9일 일본과의 항복조인식 이후 시작되었지만, 미군정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는 이미 전부터 시작되었다. 미 군정의 실시를 위해 미국이 최초로 한 것은 8월 15일 조선총독부가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위)에 행정권을 이양한 것을 무효화시킨 것이었다.
미군 선발대는 비밀리에 한반도에 도착하여,
“미군이 주둔하기까지 모든 체제를 변경하지 말고 계속 유지하되, 정식 항복할 때까지 일본 통치기구를 그대로 미군에게 인계하라”고 조선총독부에게 통보한 것이다. 미국의 통고를 받은 조선총독부는 8월 18일 오후에 여운형 선생에 대한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한다. 물론 이러한 사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준위는 계속 활동을 강화하는데, 이에 당황한 조선총독 아베는 8월 28일 맥아더에게 그같은 상황을 전하고 치안유지의 권한을 요구하는 전문을 보냈다. “공산주의자와 선동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평화와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맥아더는 즉각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낸다.
“귀하는 우리 군대가 책임을 떠 맡을 때까지 …… 38선 이남의 한국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통치기구를 보존할 것을 지시한다. …… 나는 귀하에게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지시하는 바이다.” 이를 받아본 총독의 회신은 “귀하의 명철한 회답을 받고 본인은 지극히 기쁘다.”라는 것이었다.(『다시쓰는 한국 현대사』 pp. 44-45)
맥아더의 위와 같은 회신 내용은 미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주둔한다는 형식적 명분마저도 망각한 것이며, 그들의 주둔 목적이 “일본군의 무장해제”가 아니라 “조선에 대한 통치권 장악”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군 주둔의 근본적 목적이 “조선에 대한 통치권 장악”에 있다는 것은 미군이 주둔하기 하루 전인 9월 7일 맥아더의 38선 이남에 대한 점령정책을 명시한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1호에서도 잘 나타있음을 앞서 확인하바 있다.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위 포고문에서 주한미군은 과거 조선총독부의 통치체계를 그대로 존속시킬 것을 천명하고, 이같은 정책에 반하는 즉 조선의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반항행위”와 “사회교란행위”로 못박고 “가차없이 엄벌”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하지 중장은 9월 9일 항복조인식에서 ‘총독을 포함한 모든 관리가 기존의 자리를 지키는 식민정부가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 105)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최고통치권자”의 변화가 있었을 뿐 일제에서 해방된 당시 조선인민의 지위와 역할, 처지에 대한 변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군은 강제 점령을 통해 “조선에서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좌절시키고 미군정을 실시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통치권 장악”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하고, “미군정의 실시를 통해 미국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권력의 창출”이라는 2차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9월 9일 일본과의 항복 조인식을 거친 후 주한미군은 하지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하고 아놀드를 군정장관으로 하는 미군정을 실시하였다.
물론 미군정 실시를 통해 “조선에 대한 통치권 장악”이라는 1차 목표 수립 이후 “새로운 정치권력 창출”이라는 2차 목표가 그냥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2차 목표 수립을 위해 우선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조선인들을 미군정에 등용함으로써 “인적 장악 과정(이는 ”정치적 장악 과정“과 일치한다)”을 거치고, 그 이후 군사조직을 창설하고 예속화함으로써 “구조적 장악 과정”을 거친 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정치 권력을 창출한다.
2. ‘조선인민공화국’ 불법화
비록 ‘3일 천하’에 그치긴 하였지만 8월 15일 해방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는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총매진한다. 8월 18일 미군에 의해 조선에 대한 행정권이 다시 조선총독부로 돌아가긴 하였으나 건준위를 중심으로 한 조선 민중의 자주독립 의지까지 좌절된 것은 아니었다.
건준위를 중심으로 하여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그 결과 8월 말에는 전국적으로 145개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가 등장하였고 건준위는 지방 수준에서부터 인민위원회로 신속히 전환하였으며, 이북의 상당 부분과 이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건준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당 지역의 민중들의 손에 의해 인민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인민위원회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질적인 통치 기능을 행사하였다.(『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 p. 35)
그리고 이같은 조선 민중의 노력으로 드디어 1945년 9월 6일 전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민중대표들이 서울에서 회합, 역사적인 ‘조선인민공화국’의 창건을 만천하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공화국은 그 즉시 가장 급박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법률의 완전한 폐기, 친일협력자 및 민족반역자의 토지 몰수, 철도․통신․금융기관의 국유화 등을 골간으로 하는 정책 시안을 공표하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인민공화국’의 선포와 조선민중들의 자주독립국가 건설 노력은 미국의 정책 목표와 180도 배치되는 것이었기에 ‘조선인민공화국’을 무력화시키고, 조선민중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탄압하는 것이 미군정의 첫 번째 역할이자 임무였다.
이를 위해 미군정이 처음 실시한 것은 인공을 대신할 보수정당을 창당하는 것이었는데, 미군정은 친일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9월 16일 한민당의 창당에 관여하였다. 한국인 대다수가 일본 관료들과 협조하는 미국의 정책에 반대했지만 이런 정책에 환호하고 미군정에서 일하려고 애쓰는 조선인들도 존재하였는데, 친일 지주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이 바로 한민당의 주된 구성원이었다. 그리고 미군정은 1945년 10월 16일 맥아더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이승만과 한민당을 결합시켰다. 이승만은 생애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1925년에 권력남용과 횡령 혐의로 상해임시정부에서 쫓겨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임시정부의 주미 ‘특명 전권공사’라고 자칭하고 다녔던 인물이다.
미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승만이라는 존재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과 이승만의 귀환을 지지한 한민당은 이승만의 전국적인 신망을 이용하여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력을 확보코자 하였던 것이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p. 106-108)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인민공화국’을 대체할 수 있는 정당을 확보하게 된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하는 작업에 치중하게 된다.
우선 미군정은 당시 조선 민중의 총의를 통해 창건된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하였다.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1945년 10월 10일 군정장관 아놀드로 하여금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케 했는데, “38도 이남의 조선땅에는 미군정이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다른 정부가 존재할 수 없다”고 못박고 “고관대작을 참칭하는 자들은 흥행가치조차 의심할 괴뢰극을 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연극을 조종하는 사기꾼은 마땅히 그 괴뢰극을 폐막하여야 한다”고 냉소적인 비난을 퍼부었다.(『해방전후사의 인식』, p. 20) 같은 달 27일에는 미군정 민정장관 프레스코트가 ‘인공을 국(國)’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국’을 삭제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였다.(『남로당연구』, p. 119)
한편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이 대중조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특히 11월 초 서울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이 결성되고, 전평은 ‘조선인민공화국’과 그 강령을 지지하였다. 전평 소속 노조들은 과거 일본이 소유했던 공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지지는 엄청났다. 미군정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12월 8일 파업을 금지하는 노동법을 통과시키고, 노동자들의 공장장악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새로운 관리자를 임명하였다.
이런 식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의 대중적 기반을 흔드는 데 일정정도 성공했다고 판단한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1946년 1월 ‘조선인민공화국’ 활동을 ‘불법’으로 선언하고 이남 지역에서 계속 자치를 하고 있던 인민위원회 위원들의 직책을 박탈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민위원회가 시 행정을 맡고 있던 전라남도 목포시였는데, 미군정은 지역 경찰에게 지시해 인민위원회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시청의 모든 부서 책임자와 대부분의 직원들을 해임토록 했다. 그런 다음 그 자리를 거의 친일파로 채웠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 109)
마침내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가하는데, 이는 1945년 12월 12일 하지 성명을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 본인이 통솔하는 미군이 조선에 진주하기 전에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의 명칭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이 단체의 행동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이 단체는 한 정당이라기보다 오히려 정부로 조직된 것이다. …… 인민공화국은 그 자체가 선택한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어떤 의미에서든지 정부도 아니고 그러한 직능을 집행할 하등의 권리가 없다 …… 어떠한 정당이든지 정부로 행세해보려는 행동이 있다면 이것을 비법적 행동으로 취급하도록 하라고 나는 주둔군과 군정부에 명령을 내렸다 ……”(『남로당연구』, pp. 155-156)
그리고 마침내 ‘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군정의 무력에 의해 분쇄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 보니 이미 조선인민공화국이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인 관리들을 그대로 유임시키기로 한 명령을 위반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분쇄했다.”(한 미군장교의 발언,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 p. 48)
2) 물론 이같은 미군정 장관의 ‘국호’ 삭제 요구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경남 고령 대표 이구선은 “미군정장관 1개인이 ‘국호’ 변경 운운하는 것은 조선 3천만 대중을 너무 깔보는 것이다. 인공을 고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군정청의 이름을 ‘미군조선사령부’로 고쳐야 마땅하다. 우리 ‘국호’를 한자라도 고치면 나는 이 자리에서 할복하겠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마침내 ‘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국정부는 인민공화국을 원조할 의무는 있어도 ‘국호’를 변경할 권리는 없다.
‘국호’ 변경의 권리는 오직 3천만 민중에게 있을 뿐이다”, “미군정만이 유일한 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선문제는 연합국 이사회에서 결정된 문제이므로 맥아더 장군 밑에 있는 미군정이 해소할 권리는 없을 것이다”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남로당연구』, pp. 143-144)
3. “친일관료의 재등용”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적대세력에 대한 분쇄와 동시에 미군정이 추진한 것은 ‘자신의 하수인’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미군정을 실시하자마자 조선총독관리였던 일본인들을 ‘행정고문’이라는 명칭으로 그냥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고 특히 당시 조선 민중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일제 시대 조선인 경찰관리들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이중에는 일제하 고등경찰로서 민족운동자들을 검거․고문․학살한 민족반역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정은 일본식민지 잔재를 청산할 생각을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일반민족행위자들을 보호했던 것이다.(『해방전후사의 인식』, p. 21)
친일 관료를 등용하겠다는 미군정의 생각은 미군정이 시작되기 전인 1945년 9월 7일부터 확인된다. 9월 6일 미군의 선발대로 도착한 하리스 준장과 그 일행은 다음날인 7일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이었던 엔도와 회담을 진행한다.
하리스 : 남한에서의 행정을 행함에 있어서는, 현행 관청에 집무중인 관리 및 관청의 건물 설비를 계속해서 사용했으면 한다. 가능하겠는가?
엔도 : 귀관의 의향은 조선에 군정을 시행하겠다는 것인가?
하리스 : 군정 시행이라고 명확히는 말하지 않겠다. 조선은 여전히 총독과 정무총감의 총괄 밑에 두고, 미군사령관은 그 행정의 관리 감독을 했으면 하는 의향이다.
…<중략>…
하리스 : 미군사령관은 행정의 대강을 총독에게 지령하고, 구체적 안건에 대해서는 총독에게 결재권을 부여하는 것인 줄로 생각한다.(『해방전후사의 인식 2』, p. 158)
부일반민족협력자는 고사하고 조선 총독 이하 일제관리들까지 고스란히 등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는 재한미국인 선교사의 자식이며 해군소좌인 우임스에게 조선인 관리를 선택할 임무를 부여하였는데, 우임스는 이들 관리를 주로 조선 기독교 신도 중에서 뽑았다. 당연히 그 대부분은 한민당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하지는 10월 5일부터 행정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들을 임명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이름 | 일제시 직업 | 교육정도 | 종교 | 정당 |
| 김성수 | 동아일보사장 | 일본에서 대졸 | - | 한민당 |
| 전용정 | 목 사 | 대졸 | 기독교 | 한민당 |
| 김동원 | 목 사 | 대졸 | 기독교 | |
| 송진우 | 동아일보사장 | 일본유학 | - | 한민당 |
| 이용설 | 세브란스의교수 | 미국유학 | 기독교 | 한민당 |
| 여운형 | 독립운동가 | 중국유학 | 기독교 | 건준 |
| 외 5인 |
이들 중 여운형만이 행정고문으로 임명된 인사들이 조선인의 민주적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대표자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고문직을 사퇴하였고 김성수가 행정고문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미군정이 친일관료를 재등용한데서 정점을 이루는 부분은 친일 경찰이었다. 미군정이 친일 관료 특히 친일 경찰을 재등용한 의도와 목적은 당시 미군 경찰고문관이었던 매그린의 발언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훈련시킨 친일경찰을 계속 쓰는 일이 현명한 처사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로서의 자질을 천성적으로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본인을 위해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경찰에서 몰아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한미관계의 재인식 1』, p. 23)
당시 경찰 간부 1,157명 중 949명, 즉 82%가 일제경찰 출신들이었는데, 경찰고위직은 거의 100%를 이들이 차지하였다.
미국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 ‘친일관료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등용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권력의 창출”을 위한 인적 장악을 완성하게 된다.
구조적 장악 : “군사조직 창설 및 예속화”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장악하는데서 군사조직을 창설하는 것은 미군정에게 급박한 요구였다. 우선 이남사회에서는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는데 기존의 경찰력만으로는 부족하여 주한미군 헌병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러나 헌병의 주요임무는 미군관련 업무였기 때문에 이들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미군은 경찰을 지원할 수 있는 군사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다음으로 이미 이남 사회에는 30여개가 넘는 각종 사설 군사단체들이 존재하였다. 특히 ‘조선인민공화국’이 결성한 국군준비대는 1945년 말 당시 상비대원만 1만 5,000명, 예비대원 6만명에 달했다. 38선 이남의 유일한 통치주체임을 선언한 미군정으로서 이러한 무장조직의 ‘난립’은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미군정은 그들 휘하에 공인된 무장조직을 만듦으로써 여타의 것들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북지역에서 1945년 11월경부터 군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서, 미군정으로서는 북쪽의 움직임에 대응해 이남의 군사조직을 결성해야 했다.
이같은 이유로 하여 미군정은 1945년 11월 경부터 창군준비 작업을 본격화한다. 미군정 치안책임자인 제24군단 헌병사령관 쉬크로부터 “한국의 국방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를 받고, 하지는 11월 13일 ‘국방준비계획’을 담당할 부서로 국방사령부를 설치하도록 했다.
11월 20일 국방사령부는 경찰력을 보강하기 위해 육․공군 4만 5,000명, 해군․해안경비대 5,000명 등 총 5만명의 병력을 가진 국방군을 창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본토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 대신 군대창설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저해가 되므로 미소 공동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보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에 하지는 2만 5,000명 규모의 경찰예비대를 창설하는 계획을 만들어 미 정책당국에 재가를 요청하는 한편 창군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46년 조선경찰예비대(이하 조선경비대)가 설치되었다.
미군정이 지속되면서 조선경비대의 위상도 점차 확고해졌으며, 능력도 크게 증대되었다. 병력규모는 1946년 4월 말 2,406명에서 11월 말에는 5,273명으로 늘었다. 특히 미군의 병력감축으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적극 검토하면서, 미 국무성은 1947년 10월 주한미군의 철수 대안으로 이남의 군비를 증강시키는 방안을 검토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 조선경비대의 군비는 급속히 증강되어, 1946년 11월의 5,000명에서 1947년 말에는 약 2만 명 수준으로 늘었고, 정부 수립 이전까지 육군 5개 여단, 15개 연대의 5만여명에 해군 3,000여 명의 규모로 증편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수립과 함께 한국군이 창설되고, 미군정 산하에 있던 조선경비대는 9월 1일 「남조선 과도정부의 행정권 이양절차」를 통해 대한민국 국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일이 있기 전인 8월 24일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과도기의 잠정적 군사 및 안보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하여 미군 철수 이전까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을 계속 통괄한다는 데 합의했다.(지금까지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p. 42-45)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주한미군과 미군정당국은 자신들의 주도하에 군사조직을 창설하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군으로 통합한다.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주한미군의 권한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과도기의 잠정적 군사 및 안보에 관한 행정협정」을 통해 한국군을 장악하였다. 이로서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 후에도 한국 정부와 사회에 대한 통제권을 합법적으로 틀어쥐게 되고, 이는 한미 간의 종속적 군사관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 : “주둔 목적의 완전 달성” 그 후
앞에서 이 시기 주한미군 주둔의 본질적 목표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권력의 창출”이라는 것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유엔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포한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 주둔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군정을 통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친일관료를 재등용시키고 한국군을 장악함으로써 주한미군은 더 이상 미군정을 유지하지 않아도 한국에 대한 지배권과 통제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미국의 관심은 주한미군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 목적을 이미 달성한 주한미군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거나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전인 1948년 4월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문서(NSC 8)는 미국의 당시 고민을 잘 보여준다.
NSC 8은 미국이 실행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방침을 제시했다. 즉 첫째는 이남을 포기한다(이남에서 철수한다), 둘째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미국의 인적․금전적 개입을 청산하는 방식으로” 이남 정부를 지원한다, 셋째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이남의 독립과 영토를 보장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두 번째 경로가 가장 유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군 철수 전에 “북한이나 기타 무력으로부터 남한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현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과 장비를 제공해야 했다. 또한 미군 철수 후의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의 경제원조가 필요했다. 이 계획의 핵심 부분은 “정치․경제적 안정을 증진하고, 정치적 전복이나 비폭력적 수단을 통해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도록” 이남 정부를 정책적으로 이끌어주는 것이었다.(지금까지 『한미관계사 20년사』, p. 29)
미국이 이같은 한반도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은 당분간 더 주둔해야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8년 8월 11일 「한미간의 한국정부에의 통치권 이양 및 미 점령 군대의 철수에 관한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38선 이남의 지역에 대한 미군정의 점령이 법적으로 종료된 조건에서, 미군이 잠정적으로 이남에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1948년 8월 24일 서울에서 「과도기의 잠정적 군사 및 안보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군은 점령을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한반도 정책 집행을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의 연장을 합법화시킨 것이다. 특히 이 협정은 주한미군의 형사재판권에 대해 미국의 배타적 관할권을 인정함으로써 한미관계의 불평등성과 예속성을 규정짓는 첫 번째 협정이 되기도 하였다.(「평화만들기」, www.peacemaking.or.kr, 138호)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미군 주둔을 합법적으로 연장시킨 미국은 한반도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수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1949년 3월 22일의 NSC 8/2이다. 전반적인 정책 목표는 1948년 4월 2일 NSC 8과 같았지만, NSC 8/2에서는 1948년 12월 31일까지 미군 철수를 종료해야 한다는 NSC 8의 계획을 수정하였다.
미군주둔이 현재 “기본 정책에 착수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하여 성공적으로 경제를 재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최소한의 내외적 안보”를 보장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다. NSC 8/2는 이남 정부가 군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미국의 군사, 경제, 기술 지원에 전적으로 의지할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가적인 이익과 복지 및 한국민의 열망이라는 두 측면에서 이루어진 커다란 성과를 공고히 하려면 미국은 한국 정부에 대해 정치적인 지원과 경제, 기술, 군사, 기타 원조를 지속해야 한다.
문서상으로는 ‘한국민의 열망’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미국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국가적인 이익과 복지’였을 것이며, 여기서 ‘미국의 국가적 이익’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완성이란 ‘군사 및 경제 원조를 통해 한국 사회를 완전히 미국의 통제와 지배 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1948년 12월 25일 소련군이 철수를 완료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미군 철수 여론을 이기지 못하여 1949년 6월 30일 전에 주한미군을 철수한다고 적고 있다.
6. 주한미군의 철수
당시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제와 지배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러 가지 협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겨놓음으로써 완전한 철수라고도 할 수 없었으며, 또한 언제라도 재주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1948년 4월 2일 NSC 8 문서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1948년 12월 31일까지 철수를 완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예정대로 1948년 9월 15일부터 부분적인 철수를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미군정이 종식됨으로써 더 이상 주한미군이 주둔할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15일 미육군성은 맥아더에게 이남에 1개 연대의 전투부대만 무기한 잔류시키되 7,500명을 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주한미군 철수를 잠정 연기시킨 것이다. 이같은 연기의 배경에는 다른 정치군사적 이유가 개입되었겠지만 이제 막 수립된 이승만 정부를 민중의 저항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자신의 뒤를 이어줄 한국군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1949년 3월 22일 NSC 8/2 정책문서를 통해 군사와 경제 부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결정하고, 그같은 결정을 채택하고 나서야 1949년 6월 30일 이전까지 철수를 완료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특히 1948년 12월 12일 유엔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지고, 12월 25일 소련군이 철수를 완료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 명분을 완전히 잃게 되었던 점도 주한미군의 철수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결정함과 동시에 이남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각종 협약을 체결한다. 1948년 8월 24일 「과도기의 잠정적 군사 및 안보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하였는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계속해서 한국군을 조직․훈련․무장시킨다.
(2) 동사령관은 대한민국 정부에 한국군의 감독의무를 점진적으로 이양하고, 미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다.
(3) 동사령관은 중요한 지역과 시설에 대한 통제권과 주한미군사령부의 인원에 대한 치외법권을 보유한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미군정이 보유하고 있는 행정권이 모두 한국 정부에게로 넘어갔으나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 만큼은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지금까지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p. 48-49)
또한 미국은 위 협정에 근거하여 임시군사고문단을 설치하는데, 주한미군과 이후 군사고문단은 각가지 억압기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선경비대’를 8개 사단, 10만 여명의 육․해․공군으로 구성되는 한국군으로 편성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동시에 6만여 공개 경찰 이외에 수만명의 비밀경찰을 조직, 강화하는 조치가 잇달아 취해졌다.
이어서 갖가지 테러단을 규합하여 ‘대한청년단’과 ‘민보단’을 만들어내고 1949년 하반기에 들어서서는 20여만으로 구성되는 ‘호국단’을 조직하였다.(『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 p. 127)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이틀 후인 7월 1일 발족한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주한미군과 임시군사고문단의 위와 같은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주한미군이 재주둔하기까지 군사고문단은 한국 정부의 정치, 경제, 군사 분야를 좌지우지하였다.
따라서 당시 주한미군의 철수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정치와 군사, 경제가 미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아니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주객관적 상황을 이용하여 한국에 대한 지배와 간섭, 통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결과는 이승만의 대미굴종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미국에 대한 이승만의 굴종 의식은 아래의 발언에서 남김없이 드러난다.(『다시쓰는 한국현대사』, p.126)
미국측 제안대로 전부 동의하라. 미국의 힘으로 정부가 세워졌고 앞으로도 미국의 힘에 의하여 유지될 우리 정부가 미국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려가면서 그들의 그만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미군은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이땅을 주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이 처음 주둔하였던 1945년 9월 8일부터 500명의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를 했던 1949년 6월 30일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주한미군이 내세웠던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주둔 명분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워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군은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38선 이남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하였으며 그 통치권을 이용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 탄합하여 분쇄하고, 마침내 이승만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권력을 창출”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을 연장하면서 한국군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정부를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있게 장악하기 위해 각종 협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내외적인 철수 여론에 못이겨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하였지만 오히려 미국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는 등 한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당시 주한미군 주둔의 본질적 목적은 “조선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하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창출”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1950년 한국전쟁,
비정상적이고 참혹한 전쟁 개입으로 주둔 명분 만들다!
미국의 전격적인 전쟁 개입으로 주둔을 본격화 하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무쵸 주한미대사에게 군사지원을 요청한다.
무쵸로부터 보고를 받은 미국방성은 즉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공산측의 즉각적인 침략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무기지원과 함께 해․공군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어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는 주한유엔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미국 대통령에게 유엔군사령관 임명을 위임하였다.
이에 트루먼은 맥아더를 유엔군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16개국의 유엔회원국이 이 결의안에 따라 미국에 군을 파병하였다.
이에 앞서 6월 29일 한강방어선을 시찰하고 한국에 대하여 해․공군지원에 추가하여 미 지상군 투입을 건의한다. 트루먼의 승인을 받은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중인 24사단에 한국으로의 이동을 명령하였다. 이에 미 24사단 21연대는 사단의 선발대로 7월 1일 부산에 공수되었고, 7월 5일 이북군과 첫 번째 교전을 하였다. 미 24사단의 한국으로의 이동에 이어 미 제8군단사령부가 7월 9일 일본에서 대구로 이동하였고 8군의 주력부대들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7월 15일 이승만은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하였다.
주한미군의 2차 주둔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서술로는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1947년 3월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즉 대소 봉쇄 정책을 선언한 뒤 같은 해 6월 5일 마샬플랜을 발표했으며, 194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서명함으로써 대소봉쇄정책을 구체화시킨다.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추진되던 대소봉쇄정책은 1949년 7월 14일 소련의 핵실험이 성공하고 같은 해 10월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건설하자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안보의식에 큰 변화를 느끼게 되었고,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 및 외교관계를 일체 금지시키고 중국의 유엔가입 노력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을 정하였다. 오히려 미국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자 했던 것은 직접적인 군사적 방법을 통한 해결이었다. 이는 1954년 2월 미국 하원에서 행한 로버트슨 국무차관보의 발언을 통해 사후적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1』, P. 177)
<종래와 같이 (장개석의) 중국을 회복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내부 붕괴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중국 주변에 무력 공격의 위협을 줘야 한다.>
중국에서 공산당의 승리가 분명해져 가고 있던 1949년 상반기에 이미 미국의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수뇌부들 사이에서는 중국 본토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졌다. 이로부터 ‘패전국인 일본을 아시아의 후방 병참기지로 전환시키고 한반도, 대만, 베트남을 각각 군사적 진공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며 최종적으로 중국 대륙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는 전략방침이 수립되었다.
한편 미국은 1950년 4월 NSC-68로 알려진 비밀정책 권고안을 작성케 된다. 이 문서에서는 방위비의 대폭 증액을 요구했으며, “소련 세력의 추가적인 확장을 막고 …크렘린의 지배와 영향력 축소를 유도해 소비에트 체제 안에 자멸의 씨앗을 키움으로써 적어도 크렘린이 자신들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서유럽 재무장을 지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방부는 이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군사비 지출을 당시의 135억 달러에서 180억 달러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았고, 국무부가 내 놓은 수치는 훨씬 더 높은 350억～500억 달러 선이었다. NSC-68은 국무부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또 다시 트루먼 행정부는 새로운 정책수행을 위해 의회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악몽 같은 과제에 직면했다. 지출 확대를 옹호하기 위해 소련의 위협을 들먹이는 과거의 시도는 성공했지만, 이 작전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행정부 안에 적지 않았다. 행정부는 이것이 먹히려면 새로운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위기를 한국에서 찾았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p. 140-141)
정리해보면 당시 미국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 혁명으로 인해 대(對)공산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 군사력과 예산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발발은 미국의 요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시점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한국 전쟁 발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은 논외로 한다).
무쵸 대사로부터 한국전쟁에 대한 보고와 지원요청을 받은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트루먼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6월 25일 국제연합 안보리가 소집되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애치슨은 UN 주재 미국 부대표 그로스에게 UN 사무총장 리에게 전화하도록 지시했다. 그로스는 리에게 “주한미국대사가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 몇 군데를 침공했다고 미 국무부에 알려왔다”고 말했다. 안보리 회의에서 그로스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을 “북한이 대한민국 무장공격”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이북군의 철수와 이를 위한 국제연합 회원국의 협력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확인할 것이 있다. 6월 25일 무쵸가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은 “한국 군사고문단 현장자문 보고서가 부분적으로 확인한 한국군 보고에 따르면, 북한군이 오늘 아침 대한미군 영토 몇 군데를 침공했다고 한다”(두꺼운 글씨는 필자가 강조한 것)고 되어 있다. 무쵸는 전투가 벌어졌다는 보고를 했지만 이북이 선제공격을 했다는 이승만 측의 주장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로스는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 몇 군데를 침공했다”고 UN 사무총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무쵸는 이렇게 확언한 것이 아니었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p. 160-161)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이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남침’을 기정사실화하여 UN 안보리에 제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대응이 즉각적이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NSC-68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언가 ‘근거’가 필요했던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의 상황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춰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보인 것이다.
역사학자 조이스와 가브리엘 콜코는 “한국에서 위기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에 맞먹는 위기를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미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세계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다시 주장하려는 백악관의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다”(『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p. 141)
6월 26일(미국 시간으로는 25일) 애치슨의 지시에 따라 UN 안보리가 개최되었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로 운영되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소련은 대만의 중국 대표권에 대한 거부 표시로 유엔 참석을 보이코트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호조건 하에서 미국은 동맹국의 지원을 받아 이북을 ‘침략자’로 규정짓고 ‘38선의 원상회복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6월 26일과 27일에 걸쳐 백악관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이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였다.(『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1』, p. 200)
1. 맥아더 휘하의 해․공군을 즉각 한국에 투입시킬 것
2. 미국은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해야 한다.
3. 조만간 있게 될 지상군을 포함한 대규모 부대의 투입을 위해 각 군 참모총장은 군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명령을 준비할 것’
4. 미 7함대를 대만과 중국 사이의 해협에 파견하고 필리핀의 미군을 증강시킬 것이며 동시에 필리핀 정부에 대한 원조를 강화할 것.
6월 29일 맥아더의 건의를 받은 트루먼은 바로 다음날 맥아더에게 “휘하의 지상군을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7월 7일 UN에서 채택된 유엔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한은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회원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병력 및 기타 원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유엔의 깃발 아래 미국이 통솔하는 통합사령부를 설치”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p. 53-54) 이로서 미국은 한국전쟁을 주도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트루먼은 전쟁동원을 가속화하기 위해 의회로부터 비상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의무 병역 제도를 재도입했다. 그리고 NSC-68의 내용에 입각해 500억 달러의 방위 예산을 제출했으며, 종전 후 다시 의무 병역 제도를 재도입했다.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의 2차 주둔 근거는 UN 결의안이며, 주둔 목적은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라는 주둔 목적은 얼마 가지 않아 부정된다. 미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이후 9월 28일 서울을 ‘회복’한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였다. ‘서울 수복’으로 한국 전쟁의 개입 명분과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었던 ‘38선 회복’을 달성한 후 미국은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이북과 협상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주도로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결정을 하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미국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인천상륙을 개시하던 9월 15일 이미 워싱턴은 맥아더에게 38선을 돌파하여 계속 북진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9월 29일 한국군을 필두로 대대적인 북진공격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1』, p. 215)
미국의 애초 목표가 ‘38선 회복’이 아니었음은 1950년 9월 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간사가 작성한 새로운 대한정책 초안 NSC-81에서도 확인된다. 그 내용은 주로 이북지역 내의 군사행동과 점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및 소련이 개입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 문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NSC-81은 미 합동참모본부의 반대에 부딪쳤지만 인천상륙작전 개시 나흘 전인 9월 11일 NSC-81/1의 이름으로 트루먼의 승인을 받아 실행에 옮겨진다.
문서에서 제시된 행동방침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한미관계 20년사(1945～1965년), pp. 33-35)
- 소련 및 중국의 위협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유엔사령관이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한 군사작전
- 유엔과 미 대통령의 승인을 요하는 북한 점령계획
- 한국인들의 분노를 미국으로부터 공산주의자들 쪽으로 돌리는 캠페인
- 38선 이북의 작전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인들에게 제의할 조건을 미리 “우호적인 특정 유엔 회원국들”과 논의할 것
- 북한 지역의 점령과 진압, 북한군 무장해제에서 한국군이 중심역할을 할 것
NSC-81/1이 승인된 뒤, ‘북한지역점령지침’이 1950년 10월 28일 맥아더에게 전달되는데, 이 지침은 세 단계를 명확히 제시한 후 “북한정부를 대신하여 잠정적으로 대리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침 Part Ⅱ “민정방침”은 38선 이북 지역에서 한국의 통치권은 인정하지 않지만, “전국적 범위의 사안에 대해서는 재통일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미 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에서 이북 지역 정치고문을 임명할 계획이었다.(『한미관계 20년사(1945～1965년), p. 80)
이제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라는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 하는 것은 밝혀졌다.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한반도 질서의 재편이었다. 즉 대공산권봉쇄 정책의 일환으로 한반도 전체를 미국의 손아귀에 장악해야 했으며, 바로 그같은 목적이 있었기에 ‘38선 회복’이라는 명분상의 목표가 달성되기 전부터 이북 지역에 대한 점령지침을 마련하였으며, 38선 이북으로의 군사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소련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38선 이북에서의 형식적인 중심 역할은 한국군이 담당한다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미국 행정부에게 있어서 한국전쟁은 ‘신의 은총’과도 다름 없었다. 미국은 이같은 ‘신의 은총’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다. 1951년 6월 소련이 미국에 군사정전을 수립하자고 요구했으나, 투르먼이 그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과 나토의 재무장, 일본의 재무장, 대공산권 봉쇄를 위한 한반도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할 때까지 ‘신의 은총’은 계속돼야 했던 것이다.
“한국 중심의 한반도 통일” “예속적 한미동맹 관계의 구조화”
‘38선 이북으로 북한군 격퇴’라는 허구적인 명분 뒤에 숨은 주한미군의 당시 전쟁개입과 주둔 목적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한국 중심의 한반도 통일”을 주도하는 것이었으며, 그를 위해 한국사회의 전면적 장악 즉 “예속적 한미동맹의 구조화”였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국 중심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하자 미국은 “예속적인 한미동맹 구조의 강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이 부분은 4장에서 다루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한국 전쟁 시기 미국이 “예속적 한미동맹 관계”를 구조화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하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950년 7월 초에 이미 국제적인 권한과 미국 내에서의 법적 권한을 갖게 된 미국이 다음으로 착수한 것은 한국에서의 특권적 지위를 갖는 작업이었다. 우선 미국은 7월 12일 한미간에 「주한미군과 범법행위의 관할권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치외법권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 협정은 한국 내에서 미 군사조직의 소속원이 저지른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미 군법회의가 배타적인 사법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했다. 또 전쟁이라는 상황에 비추어 미군은 미군 이외에 어떤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군은 군정하에서 지배자로서 누렸던 특권적 지위를 다시 갖게 되었다.
한편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게 된다. 7월 14일 이승만은 “현재와 같은 적대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한국의 육해공군에 대한 지휘권을 당신에게 넘기겠다”는 편지를 맥아더에게 보냈고, 이틀 뒤 맥아더는 이를 수락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맥아더는 일본에 있던 미8군 중 7사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를 한국으로 파견하면서,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을 주한 유엔군사령관에 임명했다. 이어 그는 17일 워커에게 한국지상군에 대한 지휘권도 부여했다. 이 때부터 한국군의 작전은 주한유엔군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이 맥아더의 권위를 빌어 한국 육군참모총장에게 보낸 요청에 수행되었다.(『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p. 54-55)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보유하게 된 주한미군은 한국군을 육성하고 통제하기 위한 절차에 진입한다.
1951년 5월 17일 미국은 NSC-48-5와 12월 20일 NSC-118/2라는 정책 문서를 통해 “유엔군의 부담을 떠안을 수 있을 만한 전력을 지니도록 한국군을 육성해야 한다”고 결의한다.
한국군 증강은 1952년도 5월 새로 부임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데, 그는 “유엔군이 부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 육군의 확장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그 해 6월 한국군 9만 2,000명의 증원과 2개 사단 증편안을 미 합참에 건의했는데, 그 중 9만 2,000명의 증원안은 7월에 허가되었다.
이어서 10월 말에는 한국군을 12사단과 6개 독립연대로 증강시키고, 육군과 해병대의 병력상한선을 46만 3,000명으로 늘리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또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들어선 뒤인 1953년 1월에는 2개 신규사단의 창설이 승인되었고, 4월에는 병력상한선이 52만 5,000명으로 늘어났다. 마침내 5월에는 최종안이 확정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육군을 1953년 8월까지 20개 사단으로 확장하고 군단을 2개에서 6개로 증편하여 추가로 창설되는 사단을 지휘하며 육군 병력상한선을 65만 5,000명으로 늘린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1953년 말까지 한국군 위주의 전투준비태세를 완료하고 1954년 중반까지는 미군 4개 사단과 2개 군단의 재배치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 pp. 57-58)
이어 주한미군은 한국의 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군 사령부는 통상적으로 한국정부가 책임지고 있던 많은 지역의 책임을 떠맡았다. 유엔한국민간원조사령부(후에 한국민간원조사령부로 바뀜)는 미군정 시기와 비슷한 방식은 자체 인원으로 도시와 지방에서 활동하도록 만들어졌다. 경제원조에 관한 통제권은 1950년 후반 미 대사로부터 유엔사령부로 이전되었으며, 1959년까지 환원되지 않았다.
(『한미관계 20년사(1945～1965년), p. 290)
특히 미국은 경제문제의 군사적 종속을 꾀한다. 한국 전쟁 이전에 주한미대사가 보유하였던 한국경제문제의 결정 권한은 주한미군이 재주둔하면서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넘겨지면서, 경제문제의 군사적 종속은 시작된다. 1952년 초에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대사의 추천으로 마이어라는 인물을 단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별사절단이 방한하여 이승만 정부와의 경제 협정을 협상한다. 마침내 1952년 5월 24일 「대한민국과 통합사령부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일명 마이어 협정)이 체결되는데, 마이어 협정에 의하면 ‘한국대표 1인과 유엔군사령관 대표 1인’으로 합동경제위원회가 구성된다. 합동경제위원회는 ‘한국과 유엔사와의 효과적인 경제조정을 촉진’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경제에 관한 쌍방의 주요 협의체’였다.
‘한국국민의 고난을 구제하여 건전한 한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대한 유엔사의 원조계획의 경제적 전반과 이와 관련되는 한국의 경제와 계획의 모든 사항’(두꺼운 글씨는 필자의 강조)을 검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관이 모든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토’는 ‘지시’라는 단어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주한미군』, pp. 167-168)
한국전쟁을 통해 재주둔하면서 한국사회를 다시 장악하기 시작한 주한미군은 그 이후 계속해서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영역을 장악․통제하고 자신의 지배구도를 관철시켜 나갔다.
4. 이 땅을 강점한 미군,
그 핵심 인물 <맥아더>는 무슨 짓을 이땅에 벌여왔는가?
50년이 넘게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의 포로로 살아왔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맥아더는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민족의 영웅으로 군림하여 왔다. 오죽했으면 인천의 자유공원에 동상까지 세워 맥아더를 기리고 있겠는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이를 지휘한 맥아더 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일종의 보답의 징표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호전광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양민학살을 배후에서 조종해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육한 맥아더라는 인물이 대한민국에서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군림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만은 분명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맥아더는 우리 국민이 추앙하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인물이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점령군 미군의 사령관으로 한반도를 강점하고
민족의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짓밟은 인물이다
1945년 9월8일 미군은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것도 ‘해방군’을 환영한다며 마중 나온 인천 시민들의 피를 밟으면서…. 9월8일 미군은 공군의 엄호 하에 완전무장을 하고 마치 적진에 상륙하듯 무시무시하게 인천에 상륙했으며 미리 일본 군경을 동원해, 한국인들에게 일체의 외출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해방군’인 미군에 대한 반가운 마음으로 이들을 환영하고자 외출했고, 결국 경비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총격을 받아 상당수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한국인들이 이에 항의하자, 미군 당국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오히려 살인을 저지른 일본 경찰을 두둔하였던 것이다.
그 하루 전날인 9월7일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 1호를 발표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 1 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최고 통치권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시행된다.
제 3 조 모든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는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강조 - 필자 주)
맥아더의 포고문에 나와 있듯이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이 땅을 강점하였다. 또한 조선인민위원회,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등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이미 조직되어 활동하던 우리 민중의 자주적인 통치 기구를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최고 통치권’을 발휘한다. 미국은 점령 이후 곧 미군정을 선포하고 일체의 민족 자주권을 박살했던 것이다.
맥아더가 말했던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는 단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 즉 미군의 한반도 강점에 반대하는 행위를 말한다.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등 민족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외세를 반대하고 자주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던 수많은 민중들을 친일파를 동원하여 혹은 미군이 직접 ‘가차없이 엄벌에 처’했다. 역사 이래 점령군도 이런 잔인무도한 점령군은 없었다.
그 점령군의 최고우두머리인 ‘총사령관’이 바로 맥아더였다.
맥아더는 일본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 10만점에 대한 반환을 반대한 인물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를 일본에 빼앗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약탈자들과 관변 고고학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왕과 왕비의 무덤을 파헤쳐 금 세공품과 옥 장식, 청자, 돌조각품, 탑 등 유물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간 것은 물론, 사찰들에서 값으로 따질 수 없을만큼 귀한 사리함들을, 도서관에서도 수만점의 서책들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약탈된 문화재들 가운데에서 개성에 있는 고려 귀족들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청자와 같이 최고로 엄선된 물품들은 천황에게까지 진상되었다. 8.15 해방이후 우리 민족은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 문제가 끝내 덮여버린데는 당시 주변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다. 특히 미국은 전후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일본의 아시아 침략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의 반환문제 또한 자기들의 입맛대로 유야무야 처리하였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02년 2월4일자 아시아판에서 약탈 문화재를 반대한 핵심 인사는 바로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였다고 폭로하였다.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1948년 라디오 연설 녹취록을 보면 맥아더가 ‘나는 군사행동과 점령의 결과로 상실되거나 파괴된 문화재의 원상복귀에 관해서는 소수의견일지라도 아주 강력히 반대한다’고 발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맥아더는 문화재 반환 문제가 ‘우리(미국-필자 주)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키고 일본이 이데올로기적 압력에 취약하도록 만들며 전복적인 행동에 적합한 토양을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자신의 반대 이유를 설명하였다.
맥아더는 대한민국의 이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제국주의 군대의 사령관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맥아더를 기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영토와 주권을 찾아준 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맥아더는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제국주의 군대의 사령관일 뿐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맥아더의 군사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이 됨으로써 국제 질서의 전면에 나서게 된 미국은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주의 세력과의 냉전을 선포하면서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냉전 정책의 일환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을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전환시켰으며 대한민국을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한국 전쟁이 어떻게 발발되었든 간에 한국전쟁에서의 승리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에 있어 미국에게 관건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미국은 1950년 7월7일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맥아더를 임명한 것이다. 공군의 98%, 해군의 83.3%, 지상군의 88%가 미군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고 동북아 진출의 교두보를 사수하기 위한 미국의 이익에 기반해서 전개된 작전이지 대한민국을 지키거나 나아가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미국이 쏘아대는 포탄으로 해서 수많은 인천 시민들이 살상당했다. 상륙작전 이틀 전인 13일 하루 동안 95,000파운드의 네이팜탄을 퍼부었으며, 15일 상륙 전 45분동안 로켓발사함을 포함하여 19척으로 구성된 공격함대는 인천항에 모두 2,845발을 쏘아댔다. 아무리 전쟁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민들이 거주하는 도시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작전이며 그런 작전을 명령한 사령관이 과연 올바른 사령관인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서울을 탈취하라. 그곳에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3일동안 서울은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 - 1950년 9월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한 미군에게 내린 명령
맥아더는 핵폭탄 투하까지 주장했던 세계 최대의 호전광이다
맥아더는 ‘이런 자식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으로 유명할 정도로 절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군인이기는 하지만 극히 평화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앞서 2장에서 언급하였듯이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민간인의 죽음따위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정도의 호전광이자 냉전주의자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유엔연합군과 한국군이 파죽지세로 북쪽으로 돌진하고 있을 때 중국군의 한국전쟁 개입여부가 최대의 관건이 되었다. 미국 정부에서조차 중국의 국경선 일대까지는 진격하지 말 것을 명령할 정도였다.
1950년 10월15일 중국군의 참전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 맥아더가 회담을 가졌는데, 회담을 갖기 직전 이승만과 맥아더는 몇 차례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본인은 소련은 몰라도 중공이 한반도에 개입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이번에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이 가능성을 긍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귀하가 긍정함으로써 북진을 방해하는 작전상의 제한이 가중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가 이승만에게>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본인은 믿을만한 정보통의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중공군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을 겉으로는 긍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압록강을 넘을 것입니다. 조금도 모르는 것으로 할 것입니다. …… 중공의 잠재적인 군사력을 때릴 만한 기회는 지금 아니고서는 없을 것입니다. 전력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필요하다면 원폭도 불사할 것입니다.
10월15일 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회담에서 트루먼이 중공군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질문에 맥아더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마침내 중국군은 인해전술로 한국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1950년 12월3일 서부, 동부 전선의 모든 유엔군 부대는 38선으로 총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중국군이 개입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자시의 북진작전에 제동이 걸릴까봐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해 온 맥아더는 이제 말을 바꾸어 ‘중공군이 개입했으니 이길 가망이 사라졌다. 이기고 싶으면 중공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확전의 논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 사용을 건의했다. 맥아더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만주의 숨통을 따라 30～50발의 원자탄을 줄줄이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50만에 달하는 중국 장개석 국민군을 압록강에 투여하고 동해에서 황해까지 60년 내지 120년 동안 효력이 유지되는 방사성 코발트를 뿌렸을 것이다.”
트루먼도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원폭 투하를 신중히 검토했다. 최근에 공개된 미 극비문서를 통해 미국은 개전 초기부터 종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원폭 투하를 고려했음이 밝혀졌다.
미국의 원폭투하계획은 세계적인 반전 여론과 소련의 상응한 조처를 우려한 영국의 저지로 무산되었고, 원폭투하를 주장한 강경론자 맥아더는 해임되고 후임에 리지웨이가 임명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맥아더의 만주폭격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일이었다.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목표지점으로 한두 곳이 아니라 무려 26곳을 선정하여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한 맥아더를 해임한 것은 한반도를 위해서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나 천만다행인 조치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2002년 5월 2일 제 407호
맥아더는 노근리 양민학살을 사주한 살인마
| 조선 사람들을 짐승과 같이 생각하라. 짐승을 잡듯이 무자비하게 죽여야 - 1950년 9월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한 미군에게 내린 명령 서울을 탈취하라. 그곳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3일 동안 서울은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 -1950년 9월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한 미군에게 내린 명령 나는 만주의 숨통을 따라 30-50발의 원자탄을 줄줄이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황해까지 60년 내지 120년 동안 효력이 유지되는 방사성 코발트를 뿌렸을 것이다. - 한국전쟁에서 핵폭탄을 투하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맥아더의 회고 |
다음은 9월28일 ‘서울 수복’ 직후 중앙청에서 열린 환도식에서 맥아더와 이승만이 38선 돌파를 놓고 나눈 대화이다.
이 : 장군, 38선 돌파를 주장해온 장군의 굳은 의사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맥 : 물론입니다. 군사상의 추적권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이 : 국군은 내일 38선에 도달합니다. 그 추적권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맥 : 대통령 각하, 이틀 동안만 여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에게 항복을 권유할 생각입니다. 이에 불응하니까 38선을 돌파를 할 수밖에 없다는 형식을 취할 작정입니다.
이 : 하지만 사기충천한 현지 부대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 지 모르는데 그것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맥 : 현지부대가....... 알았습니다. (정일권 회고록 중)
추적권을 달라고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미 1950년 7월18일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눈에 뛰는 대목은 인용문 마지막의 대화 내용이다. ‘현재 부대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 지 모르는데 양해해 달라’는 이승만의 이야기에 맥아더는 ‘알았다’고 답변하였다.
물론 이 대화는 38선을 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의 대화이기 때문에 남측지역보다는 북측지역에서의 학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지역이 어디가 되었건 ‘알았다’는 맥아더의 답변이 무슨 치밀한 학살계획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총사령관이 그러한 사실을 묵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만은 분명하다.
맥아더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1950년 7월26일부터 29일 사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2대대 H중대의 병사들이 비무장상태의 무저항 피난민에 대한 경직된 통제작전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미 공군의 폭격과 기총소사, 그리고 미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2대대 병사들의 장시간 억류와 사격으로 빚어진 피난민 학살사건이다.
여기서는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부분만 다루도록 하겠다. 이 부분은 박선원 연세대 박사의 ‘미국 정부의 노근리 보고서의 문제점 비판 논문’을 참조하였다.
한국전쟁 초기 1950년 7월 미군 상륙까지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미 공군은 통상 수준을 뛰어넘는 규모의 육군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전황을 감독하고 중요한 전략방향을 결정한 총사령관 맥아더는 인민군 집결지역이나 여타 전술적 목표지점으로 판단된 미8군의 작전지역에 통상적인 명령체계를 벗어나 직접 공군의 지원작전을 지시했다. 전략의 핵심은 접전지역에 물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는 것으로 필요한 지점이라고 판단되면 어디든 공군은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물론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무차별 공습이었다.
지상군의 요청을 받은 공대지 지원사격과 폭격도 매우 빈번히 발생했다. 이것은 육군병력에 비해 월등한 우세를 자랑하는 미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1950년 7월 18일 이후부터는 더욱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 양상과 성격에 대해 최근 출간된 The Bridge at No Gun Ri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6월말 7월 7일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맥아더가 임명되었다는 앞에서의 설명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6월말부터 맥아더가 명령하였다는 사실을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미군이 유엔군의 옷을 입을 날짜가 7월 7일이며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한국전쟁에 개입하였으며 맥아더가 그 책임을 맡고 있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마자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고 지시한다.
1. 미국 민간인들의 한국에서의 철수문제
2. 맥아더 사령부와 관계없이 한국에 주둔하는 미 군사고문단이 요청하는 군장비 지금
3. 한국 내의 모든 작전지휘권은 맥아더가 맡는다.
4. 유엔의 뒷받침 아래 맥아더는 7함대를 포함한 그의 모든 병력을 사용한다.
이때부터 맥아더 사령부는 한국 양민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북한 인민군 배후를 향해 폭격을 퍼부으라고 명령하였다. 7월 들어 미군당국은 미육군을 향해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피난민들에 대해 기총공격을 가하라고 명령하였다.”
1907년 헤이그조약의 경고문인 “적대행위는 교전중인 무장군인들에 대해서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도 무시한 명령이었다. 사실 1950년 9월2일 맥아더 명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적군인 인민군 포로는 제네바 협약에 의해 처리했지만, 보호대상인 피난민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이 보고서에 나타난 것처럼 피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수동적인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7월24일 당시 일본 동경에 있던 맥아더의 지시에 응하여 제1기병사단은 ‘피난민들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만약 북쪽으로 향하는 피난민이 있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전단을 살포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따라 노근리사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7월26일 정오 제8군 사령관 워커는 극동군 최고사령관 맥아더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전선을 통과하는 어떤 피난민의 이동도 불허할 것이다(no movement of refugees will be permitted through the battle lines)'고 밝히고 있다.
맥아더의 작전 방침을 반영하여 노근리사건 발생 하루 전인 1950년 7월25일 미 해군 항공모함 밸리 포지호의 작전보고서에 의하면 해군 함재기들은 8～10명 이상 규모의 어떠한 한국민들에 대해서든 간에 전투원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라는 육군의 지시에 따라 ‘흰 옷 입은 사람들’을 공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즉 노근리사건 발생 첫날인 7월26일 오전 10시 미 제8군사령부의 라디오 메시지 형식은 “어떠한 피난민도, 반복한다 - 어떠한 피난민도 어떤 경우라도 전선을 통과하게 해서는 안된다”(No, repeat no refugees will be permitted to cross battle lines at any time)라는 명령을 모든 전선에 내렸다.
이상을 통해 맥아더 극동군 사령부- 미 8군- 제1기병사단(제24, 25사단 포함)- 각각 예하 연대와 대대로 이어지는 명령지휘체계에 의해 피난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이 내려졌으며 여기에 미 공군 전투기와 해군 함재기들이 동원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증거는 미국정부는 물론이고 맥아더 또한 한국전 초기 피난민 학살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맥아더는 총사령관으로서 피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보호하지 않은 소극적인 범죄 행위만 한 것이 아니라 국제협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양민에 대한 폭격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한 적극적인 범죄행위를 범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우리는 반공 반북 이념의 포로로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친일 행적, 수많은 양민을 죽인 살상 행위 등도 ‘북한의 남침 저지’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맥아더는 대한민국이 반공 반북의 독가스 속에서 신음할 때 가장 큰 수혜를 받아온 인물이다.
살인 범죄자를 영웅으로 모시는 수치스런 역사를 끝내자!
인천의 자유공원에 맥아더 동상이 세워진 것은 1957년 10월3일의 일이다. 우리 민족의 하늘이 열린 날 동상이 세워졌다고 하니 이는 역사의 비극이요 민족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이승만 정권이 맥아더 동상을 세움으로써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가 이여송을 기리면서 추구했던 선조와 당시 지배층들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승만과 위정 집권자들의 목표는 정확하게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과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천에 맥아더 동상이 세워진 1957년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한반도의 정세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베트남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면서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군사력을 대규모로 증강하게 된다. 1957년 미국은 정전협정 13조 공식폐기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58년부터 대한민국에 핵폭탄, 어네스트 존 미사일, 팬텀기 등을 배치하였다. 당시 맥아더 동상의 설치가 미국의 사주에 의해서였건 이승만 정권의 독자적인 결정이었건 ‘북한의 남침에서 우리를 구한 민족의 은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의도는 분명하다. 그 맥락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맥아더가 선정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앞에서 누차 언급했듯이 맥아더라는 인물은 결코 우리의 은인이 될 수 없다. 그의 군사적 행동은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을 뿐이다. 오히려 맥아더는 ‘점령군’의 우두머리일 뿐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설을 군화발로 짓밟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민간인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핵폭탄 투하를 주장했을 정도의 호전광이었으며 양민학살의 직접적인 배후자, 명령자였다.
역사는 발전하고 시대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맥아더가 ‘민족의 영웅’으로 인정받던 시대는 끝났다. 분단시대에 맥아더가 누렸던 ‘영광’이 6․15 공동선언 시대에 와서도 유지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맥아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하며 맥아더 동상의 철거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겠다.
<참고-신문 기사>
'맥아더 6.25때 원자탄 30여발 투하 요구'
北, 브루스 커밍스 교수 글 인용해 보도
6.25전쟁 당시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총사령관에 임명되자마자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고 그후에도 30여발의 원자탄을 투하하면 10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또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한 뒤에도 원자폭탄 사용을 여러 차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입수된 북한의 '통일신보'(1.22)는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지난해 12월 프랑스의 '몽드 디플로마티크'지에 기고한 글 '북조선에서의 전화(戰禍)에 대한 회상'을 인용해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이는 맥아더 사령관이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을 계기로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고 맥아더 사령관 해임의 주요 사유가 핵무기 사용을 둘러싼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라는 그간의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커밍스 교수의 글은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15일 일차 보도한 데 이어 이번에 통일신보가 다시 소개했다.
다음은 북한 언론매체가 전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전쟁이 개시된 지 2주일밖에 안 된 1950년 7월 7일(편집자 주;맥아더가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날) 맥아더는 리지웨이 당시 미육군 참모차장(사망한 워커 미8군사령관 후임으로 1950년 12월말 한국전선에 도착)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참모본부는 이 긴급 메시지를 놓고 맥아더에게 원자탄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연구했다.
작전국장 찰스 볼트에게 맥아더와 '육군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원자탄을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토의할 책임이 부과됐다.
볼트는 적어도 10-20개의 원자탄을 한국전을 위해 비축해야 한다고 했으며 맥아더는 그에게 전쟁에서 급한 경우 원자무기의 전략적 사용을 시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원자탄을 사용하겠다고 천명했다.
같은 날 전략항공대에 극동에 즉시에 원자탄 투하를 위해 폭격기들을 날려 보낼 수 있도록 지시가 하달됐으며 미국은 그당시 450개의 원자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 9일 맥아더는 한국전에서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는 독자적 권한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 놓았으며 12월 24일에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26개의 원자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맥아더는 그후 여러 회견에서 10일 동안에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작전계획을 갖고 있고 '30여개의 원자탄을 투하하려 한다',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다'고 했다.
1951년 4월 초에 맥아더는 원자탄을 다시 사용하려고 했다. 원자탄과 관련된 동원령이 하달되고 앞서 3월말에는 일본의 가네다와 오키나와의 핵무기 저장고에서 핵무기 적재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보고됐다. 원자폭탄들은 그곳에 부분품으로 운반돼 조립됐고 핵탄두만 결합시키면 됐다.
그 때 트루먼이 맥아더를 호출했다. 그것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제거하고 원자탄 정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핵무기 사용 계획은 1953년 정전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반복 검토됐다. 미국이 한 이 '미치광이짓'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