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노조위원장 제1호’의 惡名

대구로 내려가서 처음에는 2면을 담당하다가 1958년부터는 1면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자유당 정권의 말기 증상으로 정치정세가 날로 험악해졌다. 정부는 <대구매일신문>과 같은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을 폐간했다. <경향신문>이 폐간된 직후 대구 매일신문에 가해지는 권력의 압력은 지능적이었다. 자유당 권력은 대구 지방의 가톨릭 유력신자(주로 사업가)들을 포섭, 대구 매일신문의 社主(사주)격인 가톨릭 교구의 신부들을 설득해 신문사의 인사개편 공작을 했다.

그 첫째 대상은 정권 비판의 선봉에 선 崔錫采(최석채) 주필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편집국을 개편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자유당 권력의 압력 공작 내용은 가톨릭 신자인 기자들에 의해 眞相(진상)이 全 사원들에게 알려져 편집국 기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른바 '문지방 사령'과 민족이동이 성행할 때이니 기자들의 불안과 동요는 심각했다.

게다가 경찰에 약점이 많아 親자유당 성향의 元老(원로) 언론인 이○○을 급조한 主幹(주간)이라는 직위에 임명하고 편집 제작은 주간이 관장한다면서 모든 기사는 주간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차라리 경찰국장의 결재를 받으라’고 하지… 기자들은 격분할 수 밖에 없었다.

1959년 봄 편집국 기자들과 공무국 사원들이 야외인 용두방川에 모여 대책회의 끝에 낳은 것이 ‘<대구매일신문> 勞組(노조)’이다. 그런데 이 노조 위원장으로 용두방川 모임을 전혀 모르고 회사에 남아 그날 신문의 初刷(초쇄)를 보던 나를 선출한 것이다. 노조의 주동자들은 거의 모두 가톨릭 신자들인데 신부 사장과 가톨릭 교구를 상대로 나설 수가 없으니 상이군인으로 경찰에 약점 잡힐 것 없고 無종교인 나를 선출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래서 나는 노동법이 생긴 이래 최초인 ‘신문사 노조위원장 제 1호’의 惡名(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대구매일신문>社 노조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신문을 지키려는 기자들의 방어수단일 뿐이었다.

나누어준 특종

결국 <대구매일신문>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 각 신문들은 增面(증면) 경쟁을 해 편집기자가 턱없이 부족한 때였다. 그런데 내 이력서를 받아주는 신문사는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신문사 노조위원장 딱지가 붙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 나가 장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부산의 <국제신문> 김형두 사장이 ‘아지프로(선전·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를 않겠다는 각서와 함께 이력서를 내라’고 했다. 이래서 <국제신문> 서울 취재부의 행정부팀으로 뛰게 되었다.

때는 朝·夕刊(조·석간) 시대였고 이승만,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李起鵬(이기붕)과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로 각각 출마한 趙炳玉(조병옥), 張勉(장면)이 대결하는 3·15 선거로 긴장된 시기였다. 나는 내무부와 내무부 별관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집중 취재하고 있었다. 入후보 등록 마감 이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승만 박사는 싱겁게 당선되고 개표는 부통령에 집중되고 있을 때였다.

온갖 부정투표에 이은 부정개표로 터무니없는 숫자들이 쏟아져서 후보자별 득표수를 집계하던 중앙선관委가 손을 들고 집계를 중단했다. 이때 내무부 관리 한 사람이 중앙선관委 간부들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후보별 득표수를 再확인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유권자 수보다 이기붕 표가 많이 나온 선거구가 있을 정도로 부정 개표된 숫자를 줄이라는 減標(감표) 지시였다.

나는 선관위 직원들 속에 있다가 이 減標 지시를 목격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이 ‘減標 지시’ 특종을 지방지인 <국제신문>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중앙지 기자 두 명에게 특종을 나누어 주었다.

4·19 때는 경무대 입구 電車(전차) 종점에서 경무대 쪽으로 몰려가는 학생들에게 최초로 발포하는 현장을 취재하며 피 흘리는 부상학생들을 취재차로 병원에 이송하는 등 저녁 늦게까지 목숨 걸고 취재하고 계엄령이 선포된 광화문의 경찰 경계선을 두 손 들고 통과하는 등 밤 늦게까지 사진을 전송한 기사와 사진이 이튿날 신문에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탱크의 캐터필러가 짓밟고 간 자리처럼 鉛版(연판)을 끌로 깎은 자리가 전쟁터의 폐허와도 같았다. 나는 허망했다. 앞으로 무엇을 취재하고 무슨 기사를 써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산 위에 산이 있듯이 4·19 뒤에는 5·16이 있었고 ‘軍服(군복) 장관’들이 참신한 군인을 자처하며 부패언론을 말할 때에도 나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만 했다. 그래도 나의 언론생활 중 <국제신문> 시절이 가장 마음만은 편했다.

이수근 ‘越南’ 특종

1964년 봄,새로 개국하는 민간방송인 <라디오서울>에서 월급 1만2000원을 주려고 하니 중앙청을 담당하는 기자로 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1만2000원 이라는 월급액수에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국제신문> 월급은 6000원이었다. 두 배의 월급에 마음이 동했다. 신문기자로부터 방송기자로 옮겼다. 그때 나보다 먼저 신문에서 방송으로 옮긴 이정석 기자에게 신문과 방송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정석 기자의 답은, “신문에서는 1분은 60초인데 방송에서는 1초 1초가 모여서 60초가 돼야 1분이다”고 했다. 신문과는 달리 방송은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먹고 사는 세상이란 말이었다.

나는 <국제신문> 서울 취재부에서 중앙청과 판문점을 담당하게 된 이래 <동양방송>에서 데스크로 들어앉을 때까지, 13년 동안 일선 취재 기자로 뛴 곳은 역시 중앙청과 판문점뿐이었다. 1960년 초, 개나리가 필 무렵에 나는 처음으로 판문점에 갔다. 판문점 버스에서 내리자 내 눈 앞에는 인민군 경비병들이 열 지어 걸어오는데 내 오른손이 나도 모르게 내 등 뒤를 더듬고 있었다. 총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혼자서 쓴 웃음을 지으며 여기는 총이 아니라 말로 싸우는 곳임을 되씹었다. 6·25 高地(고지)에서 본 인민군을 9년 만에 다시 보는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판문점 취재 13년 동안 1967년의 이수근 탈출사건 독점 보도와 푸에블로號 승무원 송환 단독 중계방송 등 크고 작은 특종 보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판문점에서 가장 기대를 하고 취재에 열을 올렸다가 실망한 것은 남북이산가족 찾기 적십자 회담이었다. 나도 이산가족이고 그 당시 내 부모님도 北에 살아계실 나이였기에 나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남북적십자 연락원 접촉 끝에 1971년 9월20일 판문점에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개최되는 순간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적십자 회담 대표나 수행원을 비롯하여 취재기자들까지 모두가 김일성 초상 휘장을 가슴에 달고 나온 것을 보는 순간이었다. 동포애와 人道주의와 적십자 정신을 앞세운 남북적십자회담을 하자면서 지금까지 없던 김일성 초상 휘장을 일제히 달고 나온 것은 적십자 정신도 인도주의도 동포애도 아닌 ‘1人 독재 체제’를 앞세운 정치선전 대결을 하자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때부터 주민 모두가 김일성 초상 휘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을 말할 때 北南조선이라고 남북을 北南이라고 뒤집어쓰게 되었다. 결국 남북적십자회담은 非인도적이고 동포애가 사라지고 남북이산가족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정년퇴직과 뒤늦은 상이군인 등록

나는 KBS에서 1988년 4월1일 내 생일에 정년퇴직을 했다. 제주도에서 군대에 입대할 때 나도 모르게 내 나이를 2년 늙게 만든 덕에 60세 정년인 전문직인 내가 실제 나이보다 2년 일찍 정년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퇴직할 무렵 서울 거리에서는 데모를 하다가 죽은 연세대학생 이한열 군을 烈士(열사)라고 하면서 이른바 민주화 데모가 한창일 때였다.

이때 내 아내가 데모 소동에 열을 받아 나도 모르게 국방부를 찾아가, “데모하다 죽은 사람은 烈士인데 6·25 전쟁 때 敵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 힘들게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은 뭡니까?”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 아내는 내가 전쟁 때 몸을 다쳐 불편하게 살고 있는데도 아무런 국가적 혜택이 없는데 대한 일종의 항의였다. 나는 상이군인이지만 취직을 해서 생활을 하면 됐지 국가의 援護(원호)를 받겠다고 손을 내밀 수는 없다는 생활태도로 살아왔고, 중앙청 출입기자로 나라의 재정형편도 알기에 상이군인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하루는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당신 軍番(군번)이 몇 번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이 내 군번은 알아서 뭘 하겠느냐고 했더니 “나 오늘 이한열 열사를 들고 나온 데모에 열 받아서 국방부에 갔다” 실토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군번을 알아야 전쟁 때 훈장 받은 것과 육군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을 확인, 국군통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해 상이군인 등급을 받아야 상이군인 연금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 군번 ‘1900705’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 2개월쯤 지나 국군통합병원에 와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가 왔고 신체검사 결과 상이 6급 판정을 받았다. 몇 달 후 연금이 나왔는데 3만 원이었다. 6·25 전쟁 38년 만에 받은 연금이 3만 원인데 해마다 조금씩 올라서 2015년인 지금은, 120만 원 선이 되었다. 나에게 상이군인 연금을 받게 한 내 아내는, 2014년 4월2일에 세상을 떠나서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날인 4월4일, 火葬(화장)된 아내의 뼛가루가 든 유골단지를 받아 안았다. 뒤늦게 등록한 상이군인 연금으로 나는 지금 독거노인 생활을 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