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동 진압하러 입대

우리 세 명은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먼저 월남한 이북 출신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회현동에 있는 敵産(적산)가옥의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苦學(고학)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麗順(여순) 반란사건이 터졌다. 제주 4·3 폭동을 진압시키기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여수 14연대가 남로당 세포분자들에 의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군대에도 빨갱이들이 침투하고 있어 반란을 일으키니 누가 4·3폭동을 진압하겠는가? 게다가 반란군은 이북에서 나온 사람은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우리도 총을 잡자- 제주 4·3폭동은 우리가 진압해야지…’ 이심전심 뭉치게 된 38선을 넘어온 청년들은 反共의 대명사였던 서북청년회가 조직화해 제주行 집단 입대가 이뤄졌다. 나는 1948년 11월20일 140여 명의 조직 속에 끼어 제주航(항)에 상륙하여 9연대장 宋堯讚(송요찬) 소령(육군참모총장 역임)을 따라가 1900으로 시작되는 군번과 함께 일등병이 되었다.

우리는 군대경험이 있는 자를 소대장·중대장 견습생으로 선출하여 3개 소대로 중대편성을 하게 되었다. 일종의 자치적 군대조직이었다. 美軍의 군복과 군화가 보급되고 일본군이 쓰던 구구식 소총과 帶劍(대검) 그리고 실탄이 보급되었다. 군복과 군화는 나에게는 너무 커 작은 것으로 바꾸어 몸에 걸치게 하는데 약 1주일이 걸렸다. 구구식 소총의 경우는 제대로 쏠 수 있는 것이 소대에 3~4정뿐이었고, 彈子(탄자) 받침이 없는 게 대부분이고 심지어 격침이 부러져 있는 것도 있었다.

우리 중대의 구구식 소총들이 제대로 쏠 수 있게 보강이 되기까지는 약 보름이 걸렸다. 그리고 일제 때 학교에서 군사교련을 받은 경험뿐인 우리들에게 미국식 군사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 중대는 해변마을인 월정리의 작은 소학교 건물에 주둔하게 된다. 중위와 소위인 두 명의 정식장교가 부임하게 되고 훈련 교관으로 5명의 하사관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들 장교와 하사관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제주 9연대에서는 공비와 내통하고 있었던 장교와 하사관 등 남로당 세포 조직이 연대장을 암살했는가 하면 부대의 작전계획을 공비들에게 사전에 통고하던 사건 등이 발생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우리들의 장교와 하사관들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은 1949년 초에 9연대가 우리 西靑(서북청년단) 부대들만 남겨두고 육지로 이동을 하고 대신 여순반란사건을 진압한 제2연대가 와서 우리 중대에 새 장교와 하사관을 부임하게 함으로써 깨끗이 끝났다.

2연대가 들어온 이후 공비 토벌은 본격화되고 서청부대도 4개 중대로 증강되어 2연대 3대대로 편성되고 M1 소총을 새로 지급받았다. 봄이 시작된 1949년 3월부터는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설치되어 劉載興(유재흥) 대령(국방장관 역임)이 전투사령관으로 부임했고 우리 3대에도 전투 대대장(고구명 소령)이 부임하면서 한라산 중턱의 교래리로 올라가 주둔하게 되었다.

군인도 배가 고파야 공비를 잡는다

4·3 폭동으로 한라산 중턱의 많은 부락들이 불타고 폐허가 되었는데 거기서 살던 주민들 대부분은 자연 동굴 등에 숨어살며 무장폭도들을 돕고 있었다. 軍의 작전은 이들 산간부락 주민들을 모두 하산시켜 피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장폭도들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우리 부대도 이와 같은 작전계획에 따라 전 부대원을 3인조로 편성하여 교래리에서 동서남북 사방 10km 구역을 잠복 수색하게 되었다. 낮에는 100개 이상의 3인조가 제각기 흩어져서 밀림지대와 초원지대를 수색하고, 밤이면 공비가 나올 만한 자리에서 잠복한다. 때문에 우리 부대의 3인조 수색활동 구역에서는 공비들의 활동이 아주 어렵게 되었다.

우리 3인조 병사들은 휴대식량이 아주 부실했다. 그래서였을까? 배가 고프면 잘 발달된 후각 덕분에 공비소굴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3일 분의 식량으로 미숫가루 한 봉지(1일분) 넙적한 비스킷 1일분, 쌀이 1일분이었는데, 비스킷은 군것질로 먹게 되어 한 끼 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고 미숫가루는 습기가 많은 산 속에서 종이봉지가 터져서 주머니에 있던 담배가루 등과 범벅이 되어 먹을 수가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틀이 지나면 배가 고파서 공비소굴의 냄새를 잘 맡았다.

어떤 때는 수십 명씩의 비무장 공비를 피난민으로 부대까지 인솔해 오는 경우도 있었다. 호랑이도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듯이 군인도 배가 고파야 공비를 잡는다는 말도 나왔다. 3인조 수색 잠복 전투가 시작되면서 교래리의 우리 부대 풀밭에는 피난민 천막이 서게 되고 군인들과 비무장공비였던 피난민들이 어울려서 오락회나 축구를 하는 광경도 벌어졌다. 피난민들이 많아지면 제주읍의 수용소로 후송하였다.

“비행기가 떨어졌다”

내가 속한 3인조 수색대는 4월 初, 어느 날 교래리 동쪽 방향으로 출동하여 물장오름 일대를 살피고 나서 방향을 돌려 밀림지대로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표고버섯 재배장을 만나게 되었다. 관리자가 있을 리 없는 이 표고버섯 재배장도 봄기운에 표고버섯이 여기저기 꽤 많이 돋아나고 있었다. 우리는 표고버섯을 닥치는 대로 뜯어 모아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 반합으로 쪄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서 초원지대로 다시 나와 많은 돌담들을 살피면서 우리 부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군복 입은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어 우리는 돌담에 의지해서 총을 겨누었는데 아무래도 공비는 아닌 것 같아서 내가 돌담 위에 올라가 총을 하늘 쪽으로 높이 쳐들며 “어이 거기 어디냐?”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週間(주간)암호인 나의 총을 높게 든 신호를 아군이면 두 손을 좌우로 벌려서 응답해야 하는데 신호를 받지 못한 채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은 철모를 쓰고 있어서, 철모를 쓴 공비는 없었기에 내가 “아군이다 쏘지 말라” 했다. 가까이 왔을 때 보니 그 철모에는 대령 계급장이 분명했다. 劉載興 전투사령관이었다.

우리는 뛰쳐나가 “각하 어찌된 일입니까?”고 했더니 “히코기가 오치다”(비행기가 떨어졌다)고 했다. 일본서 자라고 일본군 장교였던 유재흥 사령관은, 당시 우리 말이 아주 서툴렀다. 우리 3인조는 전투사령관을 호위해서 관음사 쪽에 있는 1대대를 갔다. 1대대에 도착하자 대대장과 장교들이 나와서 사령관과 조종사를 맞아들였는데 우리 3인조는 저녁거리로 잡아 갖고 있던 꿩 한 마리를 각하를 대접하라며 주고 나왔다.

이날 劉載興 사령관은 작전 명령서를 당시 잠자리 비행기로 불리던 연락기를 타고 관음사의 1대대 박격포 탄통에 넣어 떨어뜨리고, 교래리의 3대대로 가다가 밀림지대에서 불시착을 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나뭇가지 위에 떨어지자 비행사와 함께 빠져나와 초원지대로 나왔다가 우리 3인조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사령관의 비행기 불시착 사건은 한라산 공비 토벌작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공비들이 그 나뭇가지 위의 비행기에 있던 작전 명령서를, 그들의 사령부에 갖고 가서 보고는 크게 겁을 먹어 무장공비들의 무기들을 회수하고 일반주민 피난민 속에 잠복하도록 했다는 것이고, 회수된 무기들은 기름칠을 잘 해서 방수포장을 해 한라산 개미고개 일대에 파묻었다는 정보였다.

각 대대에서는 개미고개에 출동하여 보물찾기 하듯 땅을 쑤시며 탐색을 해서 6~7개 뭉치를 찾아내어 소총 70정 가량을 회수했다. 이것은 무장공비들이 회수했다는 무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장공비들의 전투조직이 와해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라산 공비 토벌작전은 여기서 일단락이 되어 우리는 제주읍으로 철수하여 1년 늦은 5·10 선거를 하고 LST수송선으로 제주도를 떠났다.

보름간 지속된 신남 전투

목포에 상륙해서 화물열차로 짐을 옮기고 있을 때 ‘이동 중인 부대는 춘천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춘천과 홍천에서는 8연대 1대대와 2대대가 대대장 지휘로 38선을 넘어 월북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대대장 표무원 소령과 2대대장 강태무 소령은 軍內의 대대적인 肅軍(숙군)사업으로 남로당 세포인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될 것이 두려워 북한간첩을 통해 북쪽 괴뢰군과 짜고 야간훈련이니 연대작전이라고 속여 부하들을 끌고 월북한 사건이었다. 이른바 ‘표·강 사건’ 이라는 우리 군대의 치욕적인 사건 때문에 우리 대대는 38선 접경인 춘천으로 가게 되었다.

춘천에 도착한 우리 대대는 월북한 8연대 1대대가 있던 소양강변의 막사를 점유하고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하게 되었다. 당시 춘천 북방의 38선은 경찰이 주요 통로들을 막고 경계하고 있었으나 곧 군대가 38선 경계를 담당해야 할 상황에 있었다.

제주에서 2연대 3대대였던 우리 대대는 춘천에 7연대가 들어오게 되자 7연대 2대대로 편입되었는데 나와 10여 명의 동지들은 연대본부로 차출되었다. 연대 정보과 소속인 수색대로 조직돼 우리 연대가 담당하게 될 38선 구역의 요소들을 정찰하였고, 우리 군대가 38선 경계 임무를 직접 넘겨받게 되자 38선 접경 북쪽지역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맡게 된 38선 구역은 我軍(아군) 병력배치가 없는 약 4km의 산간지역인 춘성군 부귀리로 38선 북쪽은 오음리와 유천리 등 화천댐 남쪽 지역이었다. 육군 일등병인 내가 4km의 38선 산악지대를 감당해야 하는 중책이었는데 내 주변에는 화랑 공작대라는 민간 조직원 서 너 명이 무장을 하고 나를 도왔다. 수색대 본부는 춘천에서 양구 쪽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는 내평리로 약 6km 후방에 있었는데 전화선도 없어서 산골마을 청년들이 도보로 연락병 노릇을 해 주었다.

당시 내가 맡은 이 산악지대 38선은 남북을 오고가는 보따리 장사꾼도 있었고 간첩도 넘나들었다. 나와 화랑공작대원은 가끔 산악통로에 잠복했다가 보따리 장사꾼을 만나 북쪽 정보도 입수하고 간첩도 잡아내야만 했다. 보따리 장사꾼 속에는 남북한 二重(이중) 간첩노릇을 하는 자도 있었다.

내가 부귀리에 자리 잡은 지 얼마 후인 1949년 8월 초에 우리 연대 담당 동쪽지역인 신남에서 큰 전투가 벌어져 우리 수색대도 전원 출동하게 되었다. 북한 괴뢰군 대대 병력이 38선 남쪽의 우리 7연대가 지키고 있는 고지를 한밤 중에 집중 포격한 끝에 점령하고는 38선 이남 신남 일대에 포격과 총격으로 제압하려는 도발을 해 온 것이다.

신남에 도착한 우리 수색대가 敵이 점령하고 있는 高地를 마주 볼 수 있는 고지로 접근하고 있을 때 敵의 82밀리 박격포탄이 수십 발 쏟아져 터졌으나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 고지에 올라가 적진을 향해 총을 쏘았다. 우리 수색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彼我(피아)간 포격과 총격으로 화약연기가 자욱한 전투광경을 난생 처음 경험하고 있었다. 이 신남 전투는 敵(적)이 점령했던 모든 고지를 탈환하고 끝내기까지 보름이나 걸렸다.

도망친 二重 간첩

신남전투가 끝나자 우리 수색대원들은 원 위치로 복귀하게 되어 나는 부귀리로 돌아와 내 구역 38선 접경을 점검하게 되었다. 신남전투 이후 적의 소규모 침투도발이 잦아지면서 남북을 오가던 장사꾼은 볼 수가 없게 되어 접경지대에 뭔가 이상이 있으면 첩자를 이용해서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38선 북쪽마을에 살다가 남쪽으로 나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첩자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38선 접경에는 8·15 해방 이전에 남쪽마을에서 살다가 북쪽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가끔 이들이 남쪽마을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1949년 늦가을에 옛날 부귀리에서 살다가 북쪽마을로 간 40대의 남자가 남쪽고향인 부귀리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을 마을사람들이 저녁이면 많이 모이는 옛 구장집에서 만나 북쪽마을 부근의 상황들을 물어 보았더니 꽤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지만 말해주는 태도가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우리 따로 이야기를 합시다”고 하며 마루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북쪽마을에 38선 이남마을에 가도 좋다고 허가를 해 줄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고 그랬더니 “그렇다”고 끄덕이었다.

그래서 “어째서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왔느냐”고 했더니 “추수도 끝나고 고향생각도 나서 밤중에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 마을에 가까운 친척이나 조상묘도 없다고 하던데 누구를 보고 싶어 왔느냐?’ 했더니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나서 뒷간(화장실)에 좀 가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 의심스럽기에 화랑공작대원을 감시원으로 따라가게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뒷간에서 감쪽같이 없어졌다.

따라갔던 감시원의 말인 즉 뒷간 바주문(注: 갈대, 싸리 따위를 발처럼 엮어 만든 門)에 허리띠를 풀어 걸쳐놓았기에 안에서 일을 보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아서 문을 열어 보았더니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뒷간의 앞문에 허리띠를 풀어서 걸어놓고는 뒷간의 뒤쪽 구멍으로 빠져나가 개울로 내려가서 도망을 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북쪽 간첩으로 고향에 침투했었는데 나에게도 북쪽 정보를 주는 것으로 二重 간첩 노릇을 할 것처럼 놀다가 내가 의심하고 뒷간까지 감시원을 붙이자 北으로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겨울이 되고 산과 들이 하얀 눈에 덮인 어느 날 내 연락원을 해주던 마을 청년이 노루를 잡았다고 하며 먹으러 가자고 나를 끌기에 따라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집 뒷산 능선에 하얀 옷들을 입은 20여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