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연매출 2兆 넘어·빚으로 빚 갚는 악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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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넷 실패가 결정타
지난 5월 증권가에는 PC업계의 스타였던 삼보컴퓨터가 부도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주컴퓨터 부도에 이은 또 다른 충격적인 뉴스였다. 결국 5월 18일 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상장폐지 절차도 진행됐다. 불과 6, 7년 전만 해도 삼보컴퓨터는 “21세기 한국 IT업계를 이끌 3대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삼보컴퓨터의 자회사는 50여개에 달했다.
1980년 서울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삼보는 한때 연매출 2조원으로까지 성장했던 신화적인 기업이었다.
삼보의 부침(浮沈)은 격변하는 시장에서 어떤 기업도 추락할 수 있다는 냉엄한 기업생존의 교훈(敎訓)을 가르쳐주고 있다.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삼보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시장은 기다리지 않는다=LG경제연구원 나준호 책임연구원은 삼보 경영난 원인에 대해 “과거의 성공경험에 취해 있었다”고 분석했다. 기능과 다양성 위주에서 가격 위주로 바뀌는 PC시장의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래 삼보는 데스크톱과 공공수주(受注) 부문에서 경쟁력이 강했다. 그러나 시장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노트북과 개인사용자 시장이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삼보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사용자에게 PC 판매 2년 후 무료로 업그레이드해주는 ‘체인지업’ 정책을 벌여 시장점유율을 높이기도 했다. 에버라텍 등 노트북 사업도 새로 벌였다.
그러나 체인지업은 나중에 수백억원의 교체비용만 들게 하고 결국 중단됐다. 에버라텍도 분투했지만 삼보의 법정관리를 막지는 못했다.
삼보는 수익모델을 바꾸는 데에도 실기(失機)했다. 한 PC업체 임원은 “삼보는 예전과 다름없이 PC를 만들고 팔았지만, 세계 PC 시장은 중국·대만업체들이 급격히 성장하며 삼보를 긴장시켰다”고 말했다. ODM(제조업자개발생산방식) 중심의 수익모델에서 변신하지 못했던 삼보는 시장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매출만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다=컴퓨터 업계에서는 삼보컴퓨터를 “매출 위주로 달리는 두 발 자전거”라고 불렀다. 한 바퀴는 매출, 다른 바퀴는 차입금이라는 것.
매출을 늘리려면 돈을 빌려 유통망과 생산조직에 투자해야 한다. 갚을 돈을 마련하려면 저가(低價)에라도 제품을 많이 팔아 매출을 늘려야 한다. 저가 제품군이 늘어나면 부품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그러면 차입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대부분 제조업체는 이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삼보는 이 ‘두 발 자전거’를 탔다가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급속하게 내리막길로 달렸다.
컨설팅 업체의 한 임원은 “삼보컴퓨터가 매출 2조원을 위해 준비한 전국적인 대리점망, 마케팅 비용, 거액의 차입금이 결국 경영의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현재 PC업계에서 주연테크 같은 무차입 경영을 선언한 보수적인 업체들이 선전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내가 옳다’는 함정에 빠졌던 삼보 오너=이용태(李龍兌) 회장 등 오너 경영진이 참모진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앞세웠다는 것도 실패의 원인 중 하나다. 삼보의 한 전직 임원은 “직원들 간 문화는 자유로웠을지 몰라도, 임원 회의에 들어가면 처음 지녔던 ‘비전’에 집착하는 오너에게 임원들이 감히 반대하는 말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며 “80년대 벤처 초창기부터 IT 산업의 비전을 그려온 오너 경영진에게 임원들은 제대로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지난 98년 출범한 두루넷을 정리할 기회를 놓친 것은 오너의 판단 미스로 평가된다. 삼보와 관련 있는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어찌됐든 간에 오너가 계속 적자를 보는 사업(두루넷)에 고집스럽게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삼보 경영진 사이에는 두루넷을 놓고 여러 차례 회의가 열렸고, 그때마다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삼보는 끝내 7000억원(파워콤 망임대료 상계대금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약 5000억원)을 두루넷에 투자했다. 결국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나래앤컴퍼니 같은 자회사는 물론 모회사인 삼보컴퓨터에까지 회복 불가능한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백승재기자 whitesj@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