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하면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은데…}

金正日 : 앞으로 이 영화제에 많이 나가게 해서 앞으로는 이 세계 방방곡곡에다가 에, 만방에다가, 아마 조선이라는 게 영화 통해서 좀 선전해야 되겠다. 뭐 노동신문에 대가리 선전문에 큰 돈 들여가지고 선전을 해두 영화 하나 하는 것보다 못하단 말입니다.
崔銀姬 : 예, 그렇습니다.
金正日 : 우리가 그 전에 10여년 전, 20여년 전 무슨 소리를 했는가. 인민들은 좀 허리띠 졸라매자, 허리띠 졸라매고 남북이 분단돼 있는 조건에서는 우리가 우선 자체의 혁명역량을 준비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에, 허리띠 졸라매고 국방건설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국산화, 국산화 하는데 엔진개발, 남조선 아이들, 남조선 사람들 하는 것 보면 오토바이 하더래도 엔진 가져오고, 뭐 가져오고… 뭐 그저 다 조립품이거든. 승용차 요새 뭐든가, 그것도 다 완전히 조립품이란 말입니다.
그래 자기네 국산화라는 그거 40%인데 조립해 가지고 선전을 어떡허나 국산화다. 자기네가. 우린 그렇게 하지 말고 기획공정 기계를 다 보여주라… 보여주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완성된 것까지 보여주고 그럼 이 기자들이라는 게 남조선에 【?그 남조선 공장하고 우리 공장하고 대비해 볼 게 아니냐.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가. 좋다, 국방공업이나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민다. 밀면서도 동시에 우린 뭘 해야 되갔는가, 이제 인민생활 올릴 때가 됐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인민들이 허리띠 졸라매는 거는, 내가 그 말 했습니다. 우리 동무들 보고… 참고해서 들어보세요.
50년도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인민들이 감정이 어드랬느냐? 그 때는 이 감정이 특히 남조선 사람들도 역시 그 때 인민군대가 나갈 때 받아들인 감정하고 그게 하나 맞아떨어진 게 있다. 몇몇 자본가나 몇몇 그 중산 계층을 위한 사회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 때 그 제도가 좋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 때 뭐 있었는가. 소련이 그 때 무기 좀 대주었을 뿐이지. 사실 우리가 제도 좋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고수하자 해서 나간 게지. 그러니까 남조선은 역시 자본가, 지주, 매판 자본가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거 나가 해방하자 하는데 의의가 있어서 했는데 그 때는 그걸 큰 득을 봤단 말입니다. 우리가. 이게 사회주의 한 30년 해보니까 역시 인민들 먹이고 살리고 하는 것은 서방세계로 뻗쳐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다. 엄연히 서방세계보다 떨어져 있는데 지금. 그래 사람들이 지금 이거 의식문제가, 이거 아주 사상 문제가 아주 중요한데 이거 우리 지금 극복하기 위해서 동구라파 나라들이 지금 저 애먹죠.
이번에 호요방이 만나고 와서 그래요. 우리나라 나왔을 때 당신네 왜 개방, 저 관광업 안하냐, 관광업 하면 돈 많이 번다. 이래서 내 이해해서 우리 관광업 이제 하겠다, 이제 하겠는데 역시 그것도 우리가 안하자고 해서 안한 게 아니라, 물론 안하자고 했지만 지금은 하자고 결심했다. 근데 그 남조선 아이들은 관광업 안하느냐, 관광업합니다. 대대적으로 하죠. 관광업을 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글쎄 종심(縱深·세로 방향의 거리)이 이렇게 밭다. 수도하고 수도가 종심이 밭고, 또 이 분계선하고 종심이…. 이거. 아 이거 당신네 대륙이 큰 대륙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거 마음대로 하지만, 우리야 종심이 밭은데다가, 아 이거 국경이 해안연선이 이거 얼마되지 않은 데다가 총총히 총총히 다 지금 군사 요새화했는데 이걸 개방한다면 우리가 자연히 관광업도 한 걸로 해서 개방한다고 해서 자기네 병력 철수한 거나 같지 않은가. 밥 한 번 먹구 우리가 전략적으로 고착되기 시작하는데 아 다 와 보고 가면 다 개방하면 하하, 또 평양개방하면 마감에는 국경에 남겨 놓은 군대가 평양에 들어오라고 하는 거나 같다.
그 다음은 평양에 와서 해야지, 자연히 무장해제 당하는 것과 같다. 무장해제 하는 거나 같은데 이거 통일된 다음에 우리가 하자 했다. 그러나 당신네 경험도 있고. 우리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는데 방법이 있는데 우리가 하겠는데 관광을… 그 사람들이 함흥 가겠다 청진 가겠다 뭐 다 있는데 함흥, 청진은 뭐 이제 가보시면 알겠지만… 이 태평양 함대, 소련함대, 태평양 함대 중국사람들 일본하고 거래하는데 청진항, 호요방이 청진항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청진항, 청진항 거 지금 우리나라가 전략적 위치라고. 일본놈들도 우리나라가 이거 소련하고 무역 거래, 중국하고 무역 거래에서 우리가 지금 딱 요충지대에 있는 거요. 일본놈들도 이거 래왕해야겠고. 그래서 이 호요방이 보고 그랬습니다. 우리 개방정책 이제 하겠다, 개방정책 하겠는데 제한된 국부적인 군데만 우리 하겠다. 어디 어디 하겠느냐 그래요. 청진하겠다, 청진하고 아 강원도 일대 다 하겠다. 그럼 서해안 안하는가? 아 서해안 그런 못하겠다. 서해안은 솔직히 말하면 이 개성서부터 이 짝에 거 저 종심이란 게 뭐 그 얼마 없지 않습니까? 그래 하겠다. 그래 관광업 우리 하겠다. 그래 당신 하는가 보자. 나 약속하고 왔습니다.
{우리 사람 대여섯 붙어 다녀야지}
崔銀姬 : 동경영화제 얘기, 말씀 안하세요? 동경영화제…
申相玉 : 아 동경영화제 그걸 말씀드려야겠네요. 동경영화제 그걸 갖다가 그 집행위원인데 동경영화제를 내년도 1회에는 경쟁은 없고 신인만 경쟁이 있습니다. 신인감독. 그래서 신인감독도 우리가 하나 보내야겠는데 거 남조선도….
崔銀姬 : 그 상금이 얼마나 될까요….
申相玉 : 그 상금이 백50만불이요. 그걸 타면은 그 상금 탄 돈으로 새로운 제작을 하나 해가지고 서로 판권 노나 먹기로 이렇게 해가지고 상금 백50만불 타 씁니다. 그런데 상금 타는 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金正日 : 그런데 그 자식들, 그 자식들이 보면 우리가 거거거거 배우가 당선됐다고 뭐 주겠어 거.
申相玉 : 아니아니 그게 참가하는 게 문젭니다.
金正日 : 동경영화제 한 번 그것도 나가봐야지 않캈어….
申相玉 : 아니 나가봐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요, 저짝에 집행위원에 한 사람은 있으니까요. 우리가 여하간 참가를 해야 됩니다. 나는 요번에 가서 오지리 가서 그(불명) 정리를 하고요, 그리고 들어오고. 그 다음에 윤이상(尹伊桑) 만나가지고 서독관계를 좀 알아봐가지고 앞으로… 그렇게 좀 해야 되겠어요. 그래 제가 밖에 좀 드나들고 어쩌고 하는 것은 그 때, 그 때 저 보고를 드리겠습니다만은….
金正日 : 예, 그런데 당분간은 다닐 때는 우리 사람들이 대여섯 명 붙어 다녀야지….
申相玉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金正日 : 그놈들(남한 공안)이 그…… 하질 않아서 그렇지 만약 한다, 마음 먹고 하면 거 우리보다 더 악착하게 하니까….
{윤이상씨 한번 찔러봐요}
이날 金正日은 申相玉씨에게 그때 서독에서 활동 중이던 작곡가 尹伊桑씨와 협조해보라고 권합니다.
申相玉 : 그러고 저 문젠데요, 그래서 지금 저 윤선생을 한 번 만나면 서독관계 사항이 어드런지 좀 얘기를 들어보고…
金正日 : 아 그러니까 내 의견은 전번 전화할 때는 내 얘기 안 했는데 윤이상(尹伊桑)이도 여기 아들, 아들 그 녀석이 장가가고 그래서 저저 정신도 제 정신이 돌아왔고. 그래 지금 성당(?)에 가서 휴양합니다. 내가 그래 돌아오면 제일 좋기는 그저 한 번 만나서 한 번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이번에 와서 그런데 그 사람도 역시 고충이 있지요. 가서 그런데 한 번 물어 볼 거는 내가 그러니까 신총장이 내가 직접 지금 서부독일, 서베를린에 갈 수 있다. 얼마든지 우리 여권을 가지고도 나는 얼마든지 갈 수 있다. 갈 때, 가실 때 가는 경우에 당신이 뒤에서 받쳐 줄 수 있나 이렇게 할 번 찔러봐요.
찔러 보구 자연스럽게 서독에 가는 방법을 아마 자기가 얘기하지 않겠는가. 그래 내 의견은 서독하고 역시 잘 하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거는 우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갖고 우리가 은행구좌 가지고 있는 것도 역시 말입니다. 빈에다가 하나만 하지 말고 대개 내 구좌에다가 한 3백만불 정도 계산하고 중간중간 나가서 서독 내에다가…… 그렇게 해야지 이제 어 한 1년만 …사람이나 무슨 사람이나 거래해 보면 빠져나가는 것도 은행이야 아무 은행이나 구좌 하나 가지고 해먹는 것은 해 먹길래 그러니까 내가 그 수가 해딱 다 뒤집어져 말하자면 밑구멍 다 디다보이는 하여튼 하는 짓은 하지 말자…… 그래서 내가 자꾸 이 코스를 많이 찾아보라고 하는 긴데, 서독을 내가 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동시에 하나는 제네바, 제네바 유엔기구가 있기 때문에 그 제네바에다가 하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는 오지리, 지금 현재 하는대로 하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너 개 이렇게 하구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 나라에다가 하나 그저 하나 다 받쳐 짓구 있구. 하면 한 네 곳이면 앞으로 이 서방인물들 이렇게 끌어 당기는 데서 좀 이렇게 호기심 가지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계약하는 거는 그 저 원칙 그렇게 세워 주세요. 너 가서 숙식비, 아 우선 첫째는 안전담보, 안전담보는 우리나라 오는 경우에 첫째 조건은 그겁니다. 안전담보는 우리가 하갔다, 우선 하고 그리고 두 번 째는 뭐인가 하면 숙소하고 숙식비 그건 다 우리 부담이다. 뭐 재우는 건 우리 부담이다. 이렇게 두 가지만 두 가지 정도만 우리가 하는 조건에서 내가 보기에 오오오 오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정희 정도만 만들어주면 좋은데…}
영화광인 金正日은 남한의 텔레비전을 일상적으로 시청하면서 인기 드라마의 방영 시간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납치하려다 실패했던 윤정희씨를 비롯 김희갑, 정윤희씨 같은 배우들의 이름도 줄줄대고 있습니다.
金正日 : 누가 제일 유망해요?
崔銀姬 : 창세 동무가….
金正日 : 아니 여배우치고.
申相玉 : 여배우치고… 네 정화가 괜찮죠. 정화가 괜찮은데… 요번에 걔들을 위한….
金正日 : 그저 윤정희 정도만 맨들어주면 좋은데….
崔銀姬 : 윤정희 댈 게 아닌 아이들이 좀 있습니다.
申相玉 : 한 대여섯 명 나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문제가 아닙니다.
金正日 : 희갑이하고 저기 그 또래 배우들이 영화, 일생 영화 찍었다고 보는데 한 몇 편이나 했을 거 같애요?
申相玉 : 한 5백편…
崔銀姬 : 단역도 많이 하고 그랬을 테니까요.
金正日 : 정윤희라는 거 저 테레비 나오는 거 보니까 정윤희라는 년이 벌써 백20편 했다구 그러더래요.
崔銀姬 : 그렇게 될 겁니다.
金正日 : 그래 내가 저거 엊그저께 나온 것 같은데 저거 벌써 백20편 했겠는가 그랬지요.
崔銀姬 : 작품 수가 많으니까. 조금 팔린다 하면 그냥 사방에서 데려다 쓰니까…
金正日 : 그런데 이번에 우리 사람들 갔다 와서 얘기하는 거 보니까 싱가포르도 무대 좋다고 그래요. 허담 비서 말에 의하면 홍콩 있지 않습니까. 홍콩은 이제는 그 쇠퇴하고 몰락하는 홍콩이고 소련, 중국 몇 개 나라는 비자 없으면 못 들어오구. 우리하고 관계 좋다나니까 싱가포르가, 어떡하는가 하믄 15일 날은(15일 동안은) 거저 마음대로 들어와서 거저 마음대로 거저 돌아다니면서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그래 15일 있다가 가게 되면 앞으로 영화무대를 동남아시아에서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도 있는데… 15일 있다가 다시 옆에 나라 와 있다가 하루 있다가 다시 들어가면 또 그저 한 번 나왔다 들어가면 또 15일입니다.
崔銀姬 : 홍콩까지 나왔다가….
金正日 그래서 이제 금년도 구라파는 금년도에 내가 얘기하는 거는 구라파 뚫자는 겁니다. 구라파 저 이거처지를 갖다가 우리 명백하게 인식을 두기 위해서는 구라파구. 내년도부터는 구라파가 이제 확고하게 거처지가 인식되믄 내년도에는 이 저 신필림에서도 다른 놈들 싱가포르에도 좀 내돌리고 그래서 이 좀 세계적인 판도에서 이 좀 한번…. 지금 뭐 지금 어드래요? 지금 제일 저 외국하고 합작하고 가능한 제일 비슷한 게 거 어딥니까. 이탈리아죠?…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신이탈리아가 드디어 하나 나온다는 겁나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