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본부측 군인들에 의해 시내의 보안사 분실로 연행된 정총장은 2층 방으로 끌려갔다. 사복한 중년 남자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 중 한 사람이 『총장님이 여기에 오신 것은 김재규 사건으로 조사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라며 비교적 공손하게 말을 건네고는 준비된 책상 앞 나무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간단한 외출 때 잘 입는 콤비를 입은 채로 끌려온 그는 사복 차림의 30∼40대로 보이는 두 수사관과 함께 나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두 조사관은 10월 26일 저녁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김재규로부터 초대받은 데서부터 소상히 질문하였다. 정총장은 그 때까지도 최대통령이 오해하여 조사를 허가한 데 따른 합동조사팀의 조사인 줄 알았다고 한다.
몹시 언짢았지만 여기 온 이상 조사에 응하여 사실대로 설명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순순히 수사관의 질문에 답하되 생생하게 아는 대로 설명해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사받기를 수 시간 지나 아마도 13일 새벽 3∼4시경이나 되었을까 할 때였다, 그가 조사를 받고 있는 방에는 경비병인 듯한 20대의 젊은 감색 잠바 차림의 사나이(당시 청와대 경호원들이 입고 있던 짙은 감색 잠바를 그들은 모두 입고 있었다)가 2시간마다 교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사관 2명과 그뿐이었는데, 사복 차림의 40대 전후의 사나이 둘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몸집이 좀 크고, 또 한 사람은 조그마한 몸집이었다.
두 사람은 그가 나무의자에 앉은 자세로 조사관의 질문에 태연한 자세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등 너머에서 한참 바라보는 듯 했다. 두 사람은 정총장 앞에 있는 조사반원들과 눈짓을 하는 듯하더니 한 사람이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거 조사 받는 태도가 왜 이래. 누가 이 따위 복장으로 조사 받으라고 그랬어. 이거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모양이구먼』두 사나이는 그의 등 뒤에서 웃 옷깃을 잡아당기며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이 옷 벗고 이것 갈아입기지 못해!』둘은 정총장을 밀치고 당기고 하며 위협을 하더란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인가』하고 정총장은 꾸짖었다.
『이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래? 지금도 참모총장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지. 죄인이 조사받는데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잔소 리야!』
『화끈한 맛을 좀 봐야 알겠어!』그래도 조사를 직접 맡은 두 사람은 그냥 쳐다만 보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두 사람이 그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가지고 온 꼬깃꼬깃한 전투복을 입혔다. 웃도리는 맞는 편이었으나, 아랫도리는 허리가 작아 단추도 끼어지지 않고 바닥에 끌릴 만큼 길었다. 허리띠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 두 사나이는 정총장의 시계를 포함한 소지품 전부를 가지고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총리공관의 경호병력이 교체되다
정승화 총장이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보안사령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그날 밤 역사가 바뀌고 있었다. 12일 오후 6시 직전에 허, 우 두 대령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낸 전두환 본부장은 그 길로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갔다. 전본부장은 보안사 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본부 수사국장인 이학봉(李鶴捧) 중령(육사18기·준장예편·현 안기부차장)을 데리고 갔다. 전본부장이 대통령을 만나러 간 뒤 여권내부자료에 의하면 노태우 소장은 청와대 경호실의 작전담당관을 전화로 불러 『전본부장이 지금 총리공관으로 들어가셨으니 그에 대한 안전 조치를 해두라』고 일렀다는 것이다. 작전관은 전화를 받자마자 무장을 하고 총리공관으로 달려갔다. 공관 주변은 육군본부 헌병장이 보낸 헌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김진기 육본헌병감에 따르면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주하기 전에 늘 육본측 헌병의 경호를 받기를 원했다고 한다.
작전관은 경호실 소속 병력을 출동시켜 총리공판 경비를 맡고 있던 구정길(具正吉) 중령(예편) 등 헌병들을 감금해버리고, 전두환 장군 편인 경호실 병력으로 경비임무를 맡게 했다. 최대통령은 결국 병력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 셈이었다. 12월 11일의 진급 심사에서 이 작전관은 준장진급 후보자로 뽑혔으나 정총장이 차규헌 심사위원장에게 특별히 그를 지적, 누락시키도록 했었다. 정총장은 『그가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차규헌 심사위원장에게 직접 탈락시키라고 지시했었다. 차중장은 「그래도 똑똑한 장교입니다」 고 변호했으나 나는 듣지 않았다』고 했다. 결과론적인지는 몰라도 이날의 사건에 가담한 장교들 중에서는 우경윤 대령처럼 진급에서 탈락된 장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최대통령의 거절, 전군에 비상령
최대통령은 전두환 본부장을 총리공관의 1층 접견실에서 맞았다. 전본부장은 박대통령 시해 사건에 정총장이 깊이 관련되었으니 조사할 수 있도록 재가해 달라고 했다. 이에 최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의 얘기를 들어보고 결재하겠으니 장관과 함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전본부장은 박대통령 때도 수사기관의 장이 보고하면 그대로 허락했다면서 윤필용, 박임항 장군사건의 경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최대통령은 결재는 하겠으니 국방부 장관을 오라고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본부장은 시해사건 수사에 국방부장관은 나중에 보고만 받으면 되는 것이며 최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는 것이다(여권내부자료). 한 시간 동안 계속된 두 사람의 대화는 평행선이었다.
최대통령의 성격을 잘 아는 한 측근은 이때 최대통령이 결재를 거부한 것은 오랜 관료생활에 몸에 밴, 절차를 중시하는 습관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최대통령은 군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어두워 노국방의 조언을 듣지 않고는 중요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 접견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학봉 수사국장은 여기서 자신에게 온 전화를 받았다. 허삼수 대령이었다. 허대령은 이 전화로 총장을 연행한 사실과 우대령이 중상을 입은 것을 알렸다, 이학봉 수사국장은 대통령과 대화중인 전본부장에게 다가가 귓엣말로 전화내용을 알렸다, 오후 7시 30분경이었다 고 한다. 잠시 후 총리공관의 여러 곳에 설치된 벨이 크게 울렸다, 비상벨이었다. 전군에 비상이 걸리는 신호였다. 「대령 두 사람이 와서 총장을 납치해갔다」는 보고를 받은 육군 참모차장 윤성민 중장이 지체없이 전군에 비상을 내린 것이었다.
요정으로 수경사령관 등 유인
12월 12일 오후 정병주(鄭柄宙) 특전 사령관은 사령부에서 단위 대장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정사령관은 오후 6시 직전에 이 회의를 끝내고 서울 연희동의 어느 요정으로 향했다. 요정에 가보니 장태완(張泰玩) 수경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우국일(禹國一) 보안사 참모장,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趙洪) 대령이 나와 있었다. 정병주 사령관은 이날 발표된 장군 진급예정자 명단에 조대령이 끼여 있었던 것을 알고 『조대령, 진급했더군』이라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김진기 육본 헌병감도 조흥 대령에 의해 안내되어 이 술자리에 합석했었다. 조대령은 11일에 『보안사령관이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하니 갑시다』라고 했던 것이다. 김진기 준장은 다음 날인 13일로 예정된 육군 재경지역 지휘관 회의를 위한 브리핑 자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얼른 갔다 오겠다』고 부하에게 말하고는 연희동 요정으로 향했던 것이다.
약속시간인 저녁 7시까지 기다려도 정작 전사령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국일 준장이 전화를 걸더니 『오늘 급한 일이 생겨 못 오시는 모양입니다』고 말했다. 식사를 시킨 지 몇분 뒤 김진기 헌병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육본헌병감실의 한 장교가 다급한 목소리로 『총장공관에서 총격사건이 난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확실하게는 ,모르겠는데 총장께서 납치되신 것 같습니다. 전군에 비상이 걸렸읍니다』장태완 사령관도 거의 동시에 전화를 받더니 총장이 납치되었다고 하니 돌아가야겠다고 일어섰다. 정병주, 장태완 두 장군이 술에 취하여 이날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나왔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들은 술판이 시작되기 전에 비상이 걸린 부대로 돌아갔던 것이다. 김진기 준장은 육본으로 돌아오는 차중에서 무전으로 계속 상황을 물었다. 『공관에서는 총성이 계속 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준장은 정치테러나 개인적 원한에 의한 납치라고 짐작했다. 그는 육본 벙커로 직행 했다.
육본 벙커에는 10월 26일 밤처럼 군수뇌들이 모여들었다. 윤성민 참모차장을 비롯하여 김용휴(金容烋) 국방부차관, 하소곤(河小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이 나타났다. 그들은 누가 정총장을 납치했는지, 상황파악을 하느라 분주했다. 모두가 『가만 둘 수 없다』고 흥분하고 있었다고 한다. 노재현 국강장관도 곧 육군본부 벙커에 나타났다. 노장관은 바로 옆에 있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성이 나자 담을 뛰어넘어 피신했다가 벙커로 온 것이었다.
밤 8시 넘어서 정총장을 납치해 간 두 대령이 권정달, 우경윤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육군본부에서는 두 대령을 지명수배했다. 권정달 대령은 국군보안사령부 정보처장이었다. 이날 허삼수 대령은 정보처장을 가장하여 총장면담을 신청했던 것이다. 두 대령이 합수본부 소속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뒤에 있는 세력이 밝혀졌다. 김진기 헌병감은 『도대체 총장을 부하가 영장없이 멋대로 납치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아연 실색했다』고 했다. 육군본부 벙커에 모인 장성들의 반응은 「아연실색」,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육군참모총장은 강제연행되었으나 국방장관, 차장, 작전참모 부장으로 이어지는 군통수계통은 지하 벙커에 살아 있었다.
제3부 육군본부 대 합수본부
특전사령부의 비상
특전사 작전과장 박모 소령과 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金五郞) 소령은 부대 뒤에 있는 간이주점에서 소주를 마셨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밖에서 교육과 선임하사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들은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상황실로 달려갔다. 밤8시를 조금 넘어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연희동 요정에서 부대로 돌아왔다. 그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하 부대를 통해선 전혀 정보가 올라오지 않았다. 누가 납치해 갔는지를 우선 알 길이 없었다. 몇몇 장군들의 평소 정치성향과 관련하여 어떤 느낌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정사령관은 답답해서 특전사 보안 부대장 金○○ 대령을 불렀다. 김대령은 중령시절 정병주 소장이 사단장을 할 때 같은 사단에서 보안부대장으로 근무했었고, 정소장이 특전사령관이 된 뒤에는 일부러 김대령을 보내달라고 했을 만큼 친밀했었다. 김대령에게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캐물어도 머뭇거리기만 했다고 한다. 『빨리 알아서 보고해 달라』고 했더니 김대령이 나가려고 했다. 『나가지 말고 여기서 전화를 걸면 될 게 아닌가』라고 하면서 붙들어두려고 했으나 김대령은 나가 버렸다.
밤 8시를 조금 지나서 서울 근교의 공수특전사 장교관사에 살고 있던 김오랑 소령의 아내 백영옥(白榮玉)씨는 전화를 받았다. 김소령이었다. 『여보 미안해, 오늘 집에 못 들어가게 됐어. 아니, 아마도 오랫동안 못 들어갈지도 몰라. 정말 미안해』김소령은 일방적으로 다급하게 말을 쏟아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 거는 곳이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에 횝싸여 있다는 것을 배경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오래 못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더구나 김소령은 10·26사건 뒤 거의 집에 돌아오지 못했지만 한번도 전화를 걸어주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김소령은 술을 마시다가 비상소집이 되어 특전사령관실로 돌아간 직후, 아내에게 이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육본, 예하 부대 장악에 고심
모든 돌발사태가 다 그러하듯 일으킨 쪽에서는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당한 쪽에서는 산상 파악에 시간을 소비하며, 그러다가 호기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12월12일, 그 날에도 그러하였다.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 집결한 군수뇌들은 정총장이 끌려간 것이 어떤 성격의 사태인지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김진기 헌병감은 이 연행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육군본부 수뇌와 국방부쪽으로 연락을 취했으나 그런 연행 허가가 내려간 적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총장을 누가 연행했고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알길이 없었다고 한다. 육군본부는 일단 전군에 비상을 건 다음, 하소곤 작전참모부장 등이 지휘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예하 부대를 철저히 장악하고 육본 명령 이외의 지령에 흔들리지 말도록 지시했다.
합수본부 소속의 두 대령이 정총장을 연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합수본부측이 그 배후세력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황영시, 유학성, 공수여단장 등 수도권 지휘자들이 경복궁에 모여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 뒤였다. 최규하 대통령이 아직 연행재가 요청서에 결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육본측에 알려졌다. 일부 육군본부 측 장성들은 최대통령에게 정총장의 연행은 육군의 전체 의사가 아니라는 뜻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최대통령이 의외로 이날 밤에 오래 버틴 것은 육본측 장성들의 생각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밤9시 무렵까지 육본 벙커에 있었던 노재현 국방장관, 김용휴 차관, 윤성민 참모차장 등 군수뇌부의 생각은 일단 정총장의 신병을 원상회복 시키고, 정총장을 연행한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이 자리에 있었던 한 장군은 말했다. 육본벙커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선임자는 국방장관이었지만 군 지휘계통상의 책임자는 윤성민 참모차장이었다. 윤차장은 합수본부측과의 대화창구였고 상대역은 경복궁에 모인 장성들 중 ,선임자인 유학성 차관보였다고 한다. 윤차장은 『정총장을 빨리 원상회복 시키고, 이쪽으로 와서 상황을 설명하라』고 재촉했으나 육본측으로 올 리가 없었다. 이런 부대별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수도권의 두 군단장과 세 공수여단장, 그리고 두 사단장이 합수본부측에 합류해 있음이 밝혀졌다. 육군수뇌부에서는 『부대를 동원, 실력으로 이들을 체포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文洪球 합참본부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이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밤9시쯤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 지휘소를 설치했던 참모차장 윤성민 중장은 군수뇌부와 함께 지휘소를 수도경비사령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이날 방의 대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명적인 결정이 되고 말았다. 지휘소 이동 결정은, 합수본부측에 수도권 주요부대의 지휘관들이 합세한 것이 밝혀져 위협을 느낀 육본측이 자체 병력이 많은, 안전한 곳을 원한 때문이라고 김진기씨는 증언했다. 정승화씨는 『육군본부 벙커에서는 적의 직접 공격을 당해도 상당 기간 버틸 수 있어요. 그런데 경솔하게 옮긴 것은 큰 실책이었읍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육군본부에서 수경사로 지휘부를 옮기기로 결정한 데 대하여 김진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총장은 그 결정을 비판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수경사가 안전하다고 보았어요. 10·26 이후 육군본부를 방어하기 위하여 불러다 놓은 공수여단 병력은 공교롭게도 그 며칠 전에 돌아가 버렸어요』밤9시 육군본부 지휘부가 수경사로 옮겨갈 때 노재현 국방장관은 미8군 영내로 갔다. 뒤에 이 처신이 비난받기도 했으나, 부하들의 권유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부하들은 장관이 전두환 소장 등 합수본부측 장성들을 미8군 영내로 불러 경위를 보고받도록 꾸미기도 했으나 이쪽으로 올 리가 없었다. 김용휴, 유병철, 김종환 등 군 수뇌부는 국방부로 가야할 문흥구 중장은 육본, 즉 지휘부와 함께 수경사로 갔다.
최대통령에게 두번째 건의
경복궁 제 30경비단 단장실에서는 장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권내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대통령을 만나러 간 전본부장이 쉬이 돌아오지 않아 조금은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7시 15분,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가 받았다. 정총장의 연행 사실과 총격 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전군 비상발령 소식은 여기에도 전해졌다. 그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대통령을 만나러 간 전본부장이 재가를 받아오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밤 8시 40분쯤, 전두환 본부장이 나타났다. 전본부장은 대통령의 재가가 나지 않았다는 것과 『국방부 장관을 대동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고 한다. 노국방장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전본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자 한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이 잘못되어 유혈사태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뒤 『여기 있는 지휘관들은 행동을 통일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1군단장 황영시 중장은 그 곳에 있는 장성들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러 가보자고 전본부장에게 제의했다.
황영시 군단장과 전두환 본부장 등 여섯 장군들은 곧 총리공관으로 갔다, 최대통령은 신현확 국무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신총리는 조각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밤 8시에 공관으로 왔던 것이다. 황영시, 유학성, 백운택, 전두환 등 여섯 장군들은 총을 모두 차에 두고 와 비무장 상태였다. 유학성 장군이 먼적 최대통령에게 재가를 해달라는 말을 했다.
참석자들은
『시간이 지연되면 큰일납니다』
『정총장의 혐의는 분명합니다』
『총장을 그대로 두면 군의 지휘체계가 흔들립니다』
『이것은 수도권 지휘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니 재가를 해주십시오』라고 돌아가면서 말했다고 한다. 최대통령은 계통을 밟아야 결재하겠다고 말하며 국방부 장관을 찾도록 했다. 이때 어떻게 해서 노재현 국방장관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10시 20분쯤이었다. 장관 집무실에 있던 노장관은 최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했다고 한다(이때 노장관은 미8군으로 피신했다가 집무실로 돌아와 있었다). 『빨리 와 보라』는 최대통령의 말에 이어 한 합수본부측의 장군이 저간의 사정을 간단히 요약해 보고했다. 그러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장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진기 헌병감에 따르면, 노국방이 총리공관으로 갈 경우 연행을 합법화할 것 같다고 해서 부하들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한편 비상발령과 함께 수경사소속의 병력은 시내 언론기관 등에 진주했다.
공수여단에 제지명령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요정에서 사령부로 돌아온 뒤 먼저 수도권의 예하여단을 점검했었다 고 한다. 서울근교에 있는 제○여단의 윤흥기(尹興基) 준장(소장예편)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윤준장은 정규육사 출신이 아니었다. 정병주씨에 따르면 그는 『아까 노태우 소장이 전화를 걸었는데 부대출동을 부탁했읍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희도 여단의 제○여단은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정사령관은 ○여단의 부여단장에게 엄명을 내려 『누구의 출동명령도 따르지 말라. 절대 병력을 움직여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 뒤 정사령관은 부사령관과 헌병 장교 2명을 이 여단으로 보냈다. 박희도 여단장에게 엄중 경고하라는 말과 함께 말을 듣지 않으면 여단장을 체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박여단장은 경복궁에서 아직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었다. 정병주 사령관은 밤늦게(아마도 밤11시쯤) 바로 옆에 있는 부대인 ○여단의 최세창 여단장을 사무실로 불렀다. 이때 최준장은 경복궁에 있다가 부대로 돌아와 있었는데 정병주 사령관은 최세창이 경복궁에 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정총장이 납치되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 혹시 무슨 정보가 있느냐?』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최준장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사령관은 끝내 최준장으로부터 시원한 얘기를 못 듣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부대가 출동해야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준비하라. 차량을 보내겠다』고 했다. 정사령관은 자신의 이 말이 몇시간 뒤의 피습에 한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12·12사건 뒤 정부측에서 만든 내부자료에는 이때 최세창 준장이 경복궁에서 있었던 모임과 정총장의 연행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신중히 행동할 것을 정사령관에게 건의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정병주씨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정사령관은 육사9기 동기생인 윤성민 참모차장의 육성명령을 여러번 받았다. 맨처음 윤성민 장군은 『참모총장이 유고이시니 지금부터 내가 육군을 지휘한다』고 했다. 이건영 3 군 사령관도 정병주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부하들은 점검해보니 내 예하의 1군단장 황영시 중장과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이 행방불명이오. 정장군이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잘해주시오』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라!』
수경사 병력은 이날 밤 늦게 시내 언론기관과 방송국, 검문소 등에 진주했으나 예하의 2개 경비단이 합수본부측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동원할 수 있는 실병력에는 크게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 강남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은 사단장인 박준병 소장이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는 바람에 주인 없는 병력이 되고 말았다. 육군본부측은 감찰감 권모 소장을 이 사단으로 보내 육군본부의, 명령 없이는 사단장의 명령이 있더라도 병력을 동원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 두었다. 합수본부측은 장세동 대령의 경비단 병력과 보안사 및 대통령 경호실병력에 의존하며 경복궁 일대를 확보하고 있었다.
밤 11시쯤, 두번째로 총리공관으로가 연행재가를 최대통령에게 요구하던 전두환 장군 등 여섯 장군들은 소득없이 보안사로 돌아왔다. 이때 이들 장군은 최대통령의 재가에 의존하려던 방법을 바꾸고, 실력으로써 대세를 결정지은 다음 정총장 연행을 기정사실로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유학성씨의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이와 같은 급박한 정황을 두고 정씨의 측근들은 「납치」 운운하면서 수도경비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와 경복궁 등을 포위하고 관계 장성과 수사요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으며 탱크까지 동원, 발포하라고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합동수사본부는 이에 대처하여 각급부대의 지휘관들에게 급히 연락, 사건내용을 설명하고, 국민불안과 사회혼란을 감안하여 자제해 줄 것을 거듭부탁하는 한편, 수도권인접 일부부대에서 제한된 규모의 예비병력을 출동시켰다』
합수본부측에선 보안사령부 상황실을 본부로 잡고 통신망을 이용하여 육군본부의 명령을 받고 있던 부대의 핵심 지휘관들과 참모들을 설득,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병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으로 나섰다고 한다. 이들 부대에 나가 있는 보안부대장들이 그런 설득임무를 맡기도 했고, 보안사령부의 참모 들이 동기생, 선후배 등 자신들의 인맥을 찾아 설득을 하기도 했다. 보안사 비서실장 許和平 대령, 보안처장 정탁영(鄭棹永) 준장 등이 이런 설득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육군본부의 한 장성은 『일부 정규 육사출신장교 들 사이의 선후배 관계가 지휘계통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특히 전두환 장군의 직접 설득이 주효하였다. 정규육사 그룹의 지도자로서 전장군이 그동안 군내에 쌓아두었던 인맥과 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이 12·12사건이 전장군의 승리로 귀결된 원인이었다.
이날밤 육본측의 명령을 따른 장군들은 12·12뒤에 거의가 물러났고, 보안사의 지시를 받은 지휘관들은 중용되었다. 밤11시쯤, 경복궁에 있던 박희도 공수 1여단장은 전두환 장군의 명령에 따라 귀대하여 부대를 장악하기 위해 지프차에 올랐다. 시내에는 장태완 장군이 지휘하는 수경사 병력이 깔려 있었다. 박준장은 수경사 병력을 피해 아직 통제되지 않고 있던 행주대교를 건너 자정 무렵에 자기 여단에 도착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부사령관인 이순길 준장 등 세 참모를 박희도 여단으로 보내 병력 이탈을 막아보려고 했다. 박희도 준장이 자기 여단에 도착하자마자 합수본부측은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장악할 것을 명령했다. 박준장은 이순길 특전사 부사령관의 간청을 묵살하고 자기 여단 병력을 차에 태운 뒤 자신이 왔던 길을 거꾸로 밟아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전장군은 경복궁에 있다가 그전에 귀대한 ○여단장 최세창 장군에게도 특전사령부를 장악할 것을 명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