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도 장군의 공수여단이 서울로 진입하려면 행주대교를 건너야 했다. 그의 부대는 이 다리의 남쪽 초소를 밀어 붙여버리고 서울 쪽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이 다리의 북쪽 경비를 맡고 있었던 ○○사단의 태도가 문제였다. 박희도 사단장은 밤 10시30분쯤 직속상관인 이건영 제3군 사령관으로부터 병력을 장악하고 출동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박희도 준장의 공수 여단이 행주대교를 넘게 됐을 때 이 사단의 참모장은 서울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사단장은 자기 참모의 건의를 묵살했다. 거꾸로 보안부대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단의 행주대교 통과를 허용했다고 한다. 어떤 병력의 서울 진입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설사 그 병력이 소수라고 하더라도 서울 도심에만 들어오면 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은 5·16때 한강다리를 건넌 해병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5·16때는 해병대 병력의 도강을 저지하기 위해 헌병들이 사격까지 했지만 12·12때는 박희도 여단의 진입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안 먹히는 육본측 출동명령
장성 10여 명으로 구성된 육본지휘부는 밤9시20분쯤 수경사 사령관실에 임시 지휘소를 설치했다. 지휘부를 따라온 육군본부 보안부대장 변모 준장은 수경사헌병에 의하여 무장해제되고 감금돼 버렸다. 수경사에서도 윤성민 차장은 합수본부측과 전화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윤차장은 『사태해결을 한다고 병력동원을 하면 내란이 일어나고 그러면 김일성이 쳐내려올 것이니 절대로 병력을 동원하지 말라. 우리도 안한다』고 합수본부측에 말했다고 한다. 김진기 당시 헌병감은 『윤차장은 육본벙커에 있을 때는 태도가 강경했으나 합수본부측과 통화를 자주 하더니 누그러졌다. 즉 강경진압에서 평화적 해결책으로 선회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김진기 당시 준장은 이어서 이렇게 증언한다. 『그때 우리는 납치된 사람이 정총장 한 명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일단은 안심을 했읍니다, 병력을 동원, 총장납치세력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강경론이 있었으나, 무혈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읍니다, 합수본부측이 차라리 적군이었다면 대응하기가 훨씬 편하고, 간단했을 것입니다. 서로 병력을 동원하면 김일성이가 남침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저희들을 짓눌렀읍니다. 12·12사건 뒤 저는 두고두고 이때의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번민했읍니다. 우리가 동원할 병력이 없어서 희생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나라의 안위를 생각했고 이것이 갈림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강경한 자세를 보이며 휘하 병력을 동원해보려고 했으나 예하의 2개 경비단 병력이 이미 저쪽으로 가버려 본부병력을 제외하고는 달리 동원할 부대가 없었어요. 육군본부에서 내려보낸 명령이 병력을 실제로 장악하고 있는 지휘관들에게 먹혀들지 않았읍니다. 일선 병력을 끌고 들어오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남침을 걱정했읍니다, 밤 11시쯤 되어선 육군본부측과 합수본부측사이에 일종의 신사협정이 맺어졌어요. 서로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 사태를 해결하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신사협정을 깬 것이 합수본부 쪽입니다. 박희도의 여단, 노태우의 전방사단, 기갑 여단의 전차대대 등을 서울로 끌어들였던 거예요』11월11일 유학성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와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쌍방은 무력충돌로 야기될 엄청난 피해는 물론, 국민 불안과 국가위기상황을 자초할 것이라는 공동인식 아래 서로 자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수시간의 대치를 풀고 각기 철수했던 것이다』
신사협정 누가 깼나
12일 밤9시30분쯤 여섯 장군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러 총리공관으로 떠난 다음, 사단장 노태우 소장은 제20사단 박준병 사단장과 함께 경복궁부근의 30경비단을 지켰다. 그 곳엔 제○ 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과 제○여단장 장기오 준장, 김○○, 장세동 대령이 함께 있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노태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장소장은 ,「왜 참모총장을 잡아갔느냐, 모두 역적이 아니냐』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노 소장은 『이쪽으로 와보면 상황을 알게 된다』며 와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장소장은 『가만 두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노태우씨는 민정당원 교육장의 특강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때 수경사령관은 언론기관을 장악하고 있었고, 경복궁에 있는 장군들을 다 죽여라, 심지어는 전차로 깔아뭉개 죽이라고 명령했다. 밤8시에서 12시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노태우 총재는 이 말에 이어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자위수단으로 병력을 동원했다고 했는데, 김진기씨는『그 때는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뒤였고 육본에서는 부대출동을 시키지 않고 있을 때였다』고 반론했다.『수경사의 병력이 출동한 것은 비상이 걸리면 시내요소에 대한 조치로서 자동적으로 하는 일이고, 합수본부를 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수경사병력이 본격적으로 전투배치에 들어갔다면 박희도의 공수여단이 어떻게 시내까지 충돌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까』
박희도 여단이 행주대교를 넘은 뒤에야, 육본측에서는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군 이동상황을 파악하는 책임을 진 보안부대가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육본측 지휘소로는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서로 통신망을 끊으려고 전화선을 절단, 더욱 정보부족 현상이 빛어졌다는 것이다. 12일 자정 무렵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국방부에 와 있던 문흥구 합참본부장과 통화가 되었다. 문중장은 『국방부 장관 이하 장성들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전화기를 바꿔 들더니 정사령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장군, 박희도 준장이 공수여단을 이끌고 국방부와 육본을 치러 온다고 하는데, 당신이 막으시오』정사령관은 대답했다는 것이다. 『아니, 장관님 예하의 수사기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 시켜서 그들을 잡아 넣으십시오』박희도 장군이 지휘하는 공수여단은 행주대교를 넘어 수색을 지나 신촌로터리를 거쳐 새벽1시쯤에 육군본부 앞에 도착했다. 국방부 보안부대장 김○○ 대령은 박희도 여단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내부 병력에 손을 써놓고 있었다. 즉, 계엄군이 진주할 때는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저항하지 않도록 해두었던 것이다. 국방부와 육본의 당직장교들도 보안부대장의 부탁을 따랐다. 이때는 육본의 임시 지휘소가 수경사로 옳긴 뒤였다, 그러나 국방부 옥상의 대공초소에는 아무도 연락을 해놓지 않았다. 깜빡, 잊은 것이었다. 이 대공부대는 수경사 소속이었다.
노태우, 전방연대를 불러들이다
밤11시20분쯤 경복궁에 있던 노태우 소장은 삼청동 총리공관을 경비하고 있던 모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소장은 최규하 대통령을 만나려고 오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보
안사령관을 면담하도록 정중하게 모시도록 지시했다고 한 여권내부자료는 밝히고 있다. 12일이 13일로 넘어가고 있었던 자정 무렵, 30경비단에있던 노태우 소장은 전화로 자기 사단을 불렀다. 그는 사단 참모장 具○○ 대령에게 『즉시 1개 연대를 중앙청으로 출동시켜라!』고 지시했다. 이 사단은 3개 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개 연대는 휴전선에 면하여 배치되어있었고, 2개 예비연대는 후방에 있었다. 노사단장은 후방에 있던 2개 예비연대 중 1개 연대를 뺀 것이었다. 지난 11월 11일 민정당의원 兪學聖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 병력 동원지시는 누가 내렸는가? 노태우 사단장이 내렸는가?
『그 자리에서 의논을 하다가 내가 지시했다』
- 국방부 군수차관보가 지시를 내릴 수 있나.
『여러 지휘관이 모이면 그 최고선임자가 지휘하는 것이 상의 통칙이다』
- 9사단만은 노 사단장이 지시했을 것 아닌가?
『거기 있던 장성 모두가 협의, 내가 지시했다』兪의원의 이 말에 대해 관훈클럽토론회에서 노총재는 자기사단의 출동을 명령한 것은 「나」였다고 대답했다.
정승화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북괴 작전면에서도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적전 비행에 속하는 행위입니다. 그 때는 북괴남침이 우려되던 비상계엄령하가 아니었읍니까. 만약 적이 타이밍을 맞추어 휴전선을 돌파한다면 예비병력의 부족으로 서울까지 뚫리게 되는 거예요. 노씨가 뺀 부대는 수도권 방어에 중요한 병력이었읍니다』이에 대해 노총재는 관훈클럽토론회에서 외환도 위험하지만 내환도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었다고 답했다. 노태우 사단의 1개 연대가 서울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한 것은 새벽 0시30분쯤이었다. 이무렵 서울 북쪽을 지키고 있었던 제○기갑 여단장 이상규(李相珪)준장(중장 예편)은 서울에 있던 육사1기 선배 백운택 준장으로부터 전차부대를 중앙청으로 보내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준장은 포탄까지 실은 1개 전차대대를 몰고 서울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노태우 사단의 보병연대가 따랐다. 이 기갑여단은 서울 북쪽에 배치된 부대로서 서울 방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부대 중의 하나라고 정승화씨는 말했다.
국방부장관 지하실로 달아나다
13일 새벽 1시를 넘어 박희도 여단병력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그러나 국방부로 들어갈 때 옥상의 수경사 발칸포 대공부대가 사격을 가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 부대는 사전에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공수부대원 몇명이 피격당해 쓰러졌다. 공수부대원들은 옥상으로 돌진, 대공부대원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박희도 여단의 병력 중 일단의 장병들은 M 16을 난사하면서 국방부장관실로 돌입했다. 장관실에는 노장관을 비롯하여 김용휴 차관, 연합사 부사령관 유병현 대장, 합참의장 김종환 대장, 국방부 방위산업담당차관보 이범준(李範俊)중장 등 10여명의 장성들과 30여명의 경호헌병들이 있었다.
노장관은 경호병 1명만 데리고 국방부 지하실로 달아나 숨었다. 노국방은 미8군에서 돌아와 집무실에서 휘하 장성들과 사태를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국방측은 전두환 장군측에 대해,『이리로 와서 사태를 설명하라』고 여러 번 명령했으나 합수본부측에서 불응하고 병력을 동원하자 노국방은 일단 총리공관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국방부를 나서려는데 공수여단이 들어왔던 것이다. 이때 위컴 미8군사령관은 승용차를 타고 육군본부 앞을 질주하다가 공수부대원의 사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테나는 부러지고, 위컴은 시트 밑으로 몸을 숨겼다. 유병현 대장은 국방부에서 미8군사령부로 건너가 북괴군의 동향을 확인했다.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한 공수여단 병력은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찾아나섰다. 최규하 대통령은 12일 초저녁부터 국방부장관이 직접 와야 결재를 하겠다고 버티고 있었으나, 국방부장관의 행방은 묘연했다.
최대통령 주변의 사정
당시 최대통령의 한 측근비서관에 따르면 13일 새벽 총리공관의 상황은 대강 이러했다. 총리공관주변은 장갑차와 바리케이드 등으로 3중 차단돼 있었다. 대통령 비서들도 검문담당 장교들의 허락을 받고 출입이 허용되었다. 최대통령은 1층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최광수(崔侊洙) 대통령비서실장서리와 정동열(鄭東烈) 의전비서관 서기원(徐基源)공보비서관 등이 들락거렸다. 총리공관의 경비병력은 합수본부측에 의해 헌병에서 경호실 병력으로 교체되었으나 공관 안에 있던 총리경호원과 경찰에서 파견된 경호원 5∼6명은 그대로 있었다. 최대통령은 약간 흥분상태였다 고 한다. 그는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내부의 대치상황에 대해서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 군에 대한 지식이 약했고, 정보기관으로부터의 보고도 기대할 수 없는, 급박하고도 혼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국방부차관을 지낸 바 있는 최비서실장이 조언을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이날 공관안에서는 협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고 한다. 출입한 합수본부측 장성들도 권총을 승용차 안에 풀어놓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깥상황이 어느 쪽으로 귀착되는지에 대해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을 넘어서도 노재현 국방장관이 나타나지 않자 신현확총리가 총리공관에서 국방부로 갔다. 시내상황이 유동적일 때 신총리가 국방부로 가겠다고 나서는 것이 용감하게 보이더라고 총리공관에 있었던 한 사람은 말했다. 새벽3시쯤 신현확 부총리가 국방부장관실로 들어갔다.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도 따라 들어왔다. 이희성씨는 처음에는 합수본부측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는 입장이었으니 이날 아침 그들에게 추대되어 정승화 장군의 자리를 계승하게 된다.
특전사령관, 부하의 총을 맞다
밤11시 무렵 수경사 헌병부단장 신중령은 헌병단장 조홍 대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조대령은 이날 밤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을 시내 술집에 유인하여 술을 먹였기 때문에 수경사 헌병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보안사령부에 가 있었다. 조대령은 전두환 사령관의 지시라고 못을 박은 뒤 신중령에게 수경사에 와 있는 육본 지휘부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신○○중령(현재는 대령)은 전두환 소장이 일선 사단장을 할 때 그 밑에서 헌병대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밤11시 무렵, 전두환 소장은 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과 특전사령부의 보안부대장 김○○ 대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연행하라고 지시했다. 최준장은 13일 새벽 2시쯤 공격개시 전에 특전사령부의 참모들에게는 귀띔하여 피신하도록 했다고 한다. 합수본부측에 협조적이었던 작전처장 申○○대령에게도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사령관의 전속부관 장모 대위도 사령관을 버리고 피신의 길을 택했다.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은 이날 밤 경복궁에 있던 합수본부측 장군들과 전화 통화를 딱 한번 했다고 한다. 차규헌 중장이 그 곳에서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차중장은 정장군이 강력하게 준장 진급 예정자로 추천했던 신○○ 특전사 작전참모가 이번 심사에서 통과된 이야기를 한 뒤 『정장군도 이리로 오시오』라고 했다. 정사령관은『내가 왜 거기에 가요?』라면서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정장군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전두환 장군이 정총장을 데려간 지휘자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읍니다. 정보채널이 두절상태였거든요. 다만 경복궁에 모여 있는 장성들이 뭔가 일을 꾸미고 있구나 하는 낌새를 차렸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갈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내가 당신네들 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이었죠』
13일 새벽 2시쯤 정병주 사령관은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공수1개여단을 차출하여 수경사에 배속시킬 것」공수특전사는 일정한 전투관할지역이 없으므로 병력이 부족한 수경사를 보강하기 위해 1개 여단을 뽑아 보내도록 지시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정장군은 윤흥기(尹興基)준장의 ○여단에게 출동명령을 내려 서울로 들어가도록 하라고 작전과장에게 명령했다.『그 여단을 택한 것은 10·26사건 직후에도 서울로 출동한 적이 있어 이동절차에 익숙했기 때문이었죠. 또 여단장이 부대에 처음부터 남아 있었고요』정병주씨는 자신이 습격당한 것은 그 명령을 내린 몇 분 뒤였다고 말했다.
정부측 내부자료에는 밤9시쯤 정사령관이 윤흥기 준장의 여단을 서울로 출동시켰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합수본부측도 병력을 동원했고 윤흥기의 여단은 영등포까지 왔다가 합수본부측의 설득에 의해 회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윤흥기 여단의 서울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자위수단으로 합수본부측에서 도 병력을 동원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정병주씨는 출동명령이 내려간 것은 자신이 피습되기 직전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검토되어야 할 대목인 것 같은데 윤흥기씨(소장 예편)는『우리 부대가 움직인 적도, 영등포까지 온 적도 없다』고 말했다.
최세창 준장은 자기 여단 병력을 지휘하여 특전사령부 건물을 에워쌌다. 대대장 朴○○ 중령이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이끌고 특전사령관 비서실로 뛰어들어갔다. 비서실을 지나 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안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박중령 쪽에서는 M16으로 응사했다. 끝까지 사령관 곁을 떠나지 않았던 김오랑 비서실장(소령)이 권총으로 응사하다가 심장 부근과 배에 Ml6총탄을 세 발 맞아 숨졌다고 한다. 그의 권총에서는 일곱 발이 발사되고 한 발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정병주 사령관은 집무실 옆에 붙은 거실의 문을 걸고 안에서 권총을 쏘면서 저항했다. 그의 부하들은 Ml6으로 문고리를 쏴 부수고 들어왔다고 한다. 정소장은 왼팔에 총을 맞았다. 부하들은 그를 지프에 싣고 보안사의 시내분실 로 달려갔다. 이때가 새벽 3시쯤이었다.
그리고 정병주씨는 말했다.
『내가 피를 흘리며 태워져 어디론가 가는데 내 옆에서 또다른 한 군인이 피를 흘리며 신음을 하고 있읍디다. 저는 부관인 장대위가 다친줄 알았어요. 부대 정문에서 보초가 검문을 하니까 내 차에 탔던 장교가 「나, ○○대대장이야」하더군요, 그래서 나를 끌고 나온 부하가 박○○ 중령인 줄 알았어요. 나는 보안사 분실로 끌려갔는데 거기서 과다출혈로 쇼크 현상을 보이니까 나를 국군통합 서울지구병원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눈을 떠보니 박중령이 보입디다, 나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부관의 걱정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피신했더군요』『나는 아무런 경고 없이 습격을 받았어요. 비서실장 김소령이 죽은 것을 안 것은 내가 병원에 있을 때였읍니다』그는 덧붙여 『사무실에 예복을 걸어 놓았는데 거기에도 집중사격을 해 나중에 옷을 가져와 보니 걸레처럼 되었읍디다』고 말했다.
피살된 김오랑 소령은 사령부를 습격한 박○○ 중령과는 이웃하여 같은 관사촌에서 살고 있었다. 신혼생활중이던 김소령 부부는 12·12사건 얼마전에 부부동반으로 육사 선배인 박중령 집을 찾아가 놀다가 온 적이 있었다. 김소령의 아내 백씨는 그날 밤 관사에서 가까운 부대로부터 나는 총격소리를 들었으나 남편이 맞아 죽는 총소리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벽3시 무렵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 중령은 예하의 네 중대장을 소집하여, 50여 명의 헌병병력을 차출했다. 신중령은 10여 명을 이끌고 사령관실로 갔다. 복도에는 육본 수뇌장성들의 부관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무장해제시킨 다음 권총을 뽑아들고 사령관실로 뛰어 들어갔다. 『손들엇!』장태완 사령관, 육본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 등 수경사에 와 있던 10여 명의 육본 장군들은 간단하게 무장해제되었다. 이때 하소장은 헌병이 돌입하면서 쏜 Ml6총탄을 가슴에 맞았다. 왼쪽 허파를 관통당해 후송된 그는 긴급수술로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신중령은 장사령관을 지프에 태우고 보안사의 시내분실로 직행, 합수본부 수사관들에게 인계했다. 육군본부측에 서서 싸웠던, 특전사령관과 수경사령관, 그리고 육군본부 장군들은 내부 행동에 의해 전원이 무력화되었다. 육본측의 거점이었던 육본, 국방부, 수경사, 특전사도 하급부대에 의해 모두 점거되었다. 수경사의 이 하극상에 대해 그 자리에 있었던 김진기 헌병감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이미 합수본부측 공수여단에 의해 점거가 된 이후였읍니다. 수경사에 있던 우리장군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허탈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단 마무리를 짓자면서 잠을 청하는 장군들도 있었읍니다. 그런데 새벽3시께 난데없이 헌병들이 총을 쏘면서 돌입하여 우리를 무장해제시켰읍니다. 저항도 하지 않은 하소곤 소장은 총을 맞아 쓰러지고…』
새벽4시 국방부 안을 뒤지고 있던 공수부대원이 지하실에서 계단 밑에 숨어 있던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찾아냈다. 노장관은 신총리와 함께 총리공관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4시30분쯤 최규하 대통령은 정승화 총장에 대한 연행재가 서류에 사인했다. 10시30분간에 걸친 12·12사건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노재현 국방도 물러나다
12월13일 육군본부의 분위기는 참담했었다고 김진기씨는 말한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이럴 수가 있느냐』고 개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합수본부측에 서서 정총장 연행에 가담했었던 성환옥(육군헌병대 기획과장)대령은 간밤에 해병대원들에 의해 버스안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 김진기 준장한테 오더니 『죄송하게 되었다』고 사과하더라고 한다. 이날 정병주 장태완 문흥구 장군에 이어 이건영 3군사령관이 국방부장관실에 잠시 들렀다가 보안사로 가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육군본부의 참모들은 신임 이희성 총장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총장이 말려 그냥 근무하게 됐다. 김진기 준장만은 12월20일에 사표를 던지고 전역을 자청, 군복을 벗고 말았다.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13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박정희 대통령시해사건과 관련, 군수사기관이 체포하고 정부는 새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육군대장(중앙정보부장서리)을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노장관의 특별담화에 따르면 군 수사기관은 12일 저녁7 시경 대통령시해사건의 주범 김재규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김이 숨기고 있던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그 진부를 확인하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동, 정총장을 연행조사 중인데 그 과정에서 공관 경비병과 충돌이 있었으나 정총장의 신상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노장관은 시해사건에 관련된 일부 군장성도 구속 조사중이며 13일 새벽2시 국방부청사에서 증가배치된 계엄군과 초병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고 발표하고 수도권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 계엄군이 증가배치된 곳도 있다고 밝혔다.
노장관은 현재 군은 새로운 지휘체제를 확립, 추호의 동요도 없이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13일 오전 11시30분 중앙청 국무회의실에서 신현확 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이희성 중장을 대장으로 진급시키고 육군참모 총장에 보하며 계엄사령관에 임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김성진 문공, 이용희 통일원장관 등이 불참했고, 이중장 진급문제 등 안건만을 의결한 뒤 2분만에 끝났다. 이 자리에서 신총리는 이날 아침의 노국방장관 담화내용을 설명하고 사태는 진정됐다고 전제, 국민이 불안해 할지 모르니까 기회있는대로 이해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황선필 문공부 공보국장은 이날 회의에서 작금사태의 경위에 대한 보충설명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편 최규하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서지원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최대통령이 공관에서 관계장관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사항을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육군수뇌부에서도 대이동이 있었다. 참모차장에 황영시 1군단장이 들어오고, 윤성민 참모차장은 1군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합수본부측에 맞선 육군본부측의 선임자였던 윤중장이 장태완, 정병주, 이건영, 문흥구 장군들과 함께 거세되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윤중장이 12·12사건을 타협적인 자세로 해결하려 한 점이 그에 대한 인사에 반영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국방부차관보 유학성 중장은 3군사령관으로, 차규헌 수도 군단장은 2군사령관으로 옮겼고, 정호용(鄭鎬溶) 소장이 지방의 사단장에서 특전사령관으로 올라왔다. 노태우 소장은 수도경비사령관이 되었다. 경복궁팀이 요직을 차지한 것이었다. 이들 중 정호용 소장은 12·12사건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최규하 대통령은 14일 오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이한빈 아주공대학장을 기용하는 등 새정부의 조각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이 조각발표는 원래 13일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12일의 사태로 하루가 늦어진 것이었다. 하루 사이에 유임하기로 돼 있었던 노재현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주영복(周永福)씨가 후임으로 결정돼 버렸다.
계엄사 등의 발표문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인 이희성 대장은 18일 오전 담화문을 발표,「군의 기본사명은 국토방위에 있으며 정치는 군의 영역 밖의 분야이기 때문에 군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며 정치는 애국심과 양식있는 정치인에 의해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군의 소망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취임 후 처음 발표한 담화문에서 이사령관은 『지난 12일에 있었던 사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게 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전제, 『그 진상은 이미 국방부장관 담화문으로 1차 발표된 바 있으나 보다 자세한 사실은 수일내에 밝혀질 것이며 금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 군은 시종 헌정 질서를 문란시킴 없이 합법적인 절차에 따랐음은 물론 특히 북괴가 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온갖 신속한 조치와 정상상태 회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함으로써 군의 단결 및 전력면에는 추호의 헛점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12·12사태에 대한 수사결과를 12월 24일 오전 9시반에 발표했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1980년1월19일,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 구속 수사중이던 정승화(54) 전 육군참모총장을 1월18일에 내란방조(형법87조 및 32조) 혐의로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정 전 총장은 박대통령 시해사건에서 김재규 등의 범행에 묵시적으로, 동조한 혐의를 받았으며, 12월12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에 의해 총장공관에서 연행돼 12월 30일에 구속됐었다. 정 전 총장은 연행 다음날인 13일 해직됨으로써 자동 예편됐다. 김진기씨는 군복을 벗은 뒤 보안사에 연행되어 며칠간 조사를 받고 나왔다.
그는 계엄사의 12·12사태 발표와 정승화 전 총장의 고무신 신은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는 『며칠 동안 잠을 이를 수 없었다』고 한다. 김진기씨는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라고 부를 때 가장 괴롭습니다. 힘의 뒷받침 없이는 정의가 구현될 수 없다는 것, 즉 힘없는 정의는 선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아프게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권력을 차지하지 그랬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은 참기 어려워요. 우리는 권력투쟁을 하다가 거세된 것이 아니라 우리 국군을 정치로부터 깨끗이 보전하려다가 당한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태우 총재는 관훈클럽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 일은 역사 앞에서 자신이 있고 정의의 편에 서서 했다. 쿠데타란 3권을 장악하는 것인데 우리는 12·12 뒤에 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지 않았던가』 이 상반된 시각에 대한 판단은 역사와 국민들이 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