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청와대의 권력암투

金부장도 車실장 통해야 출입

金桂元씨는 10·26사건의 성격을 金載圭에 의한 정권장악 기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차지철(車智澈)에 대한 金載圭의 원한과 울분이 폭발하면서 그 불티가 車실장을 싸고도는 대통령에게까지 튄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10·26의 비극을 배태한 것은 1979년에 들어와서 심화된 金-車의 불화였다. 이 불화를 방조한 것은 오랫동안 측근을 이간질시킴으로써 권력의 안전을 도모해 온 朴대통령의 통치술수였고, 이 술수는 결국 그의 묘혈이 되고 말았다.

- 車智澈의 월권행위가 극심하여 당시 정계 일부에서는 그가 대권에 야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金장군께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으셨읍니까?

{그렇게 보인 점도 있었읍니다. 문제는 오만한 그의 태도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었읍니다}

- 비서실장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읍니까?

{내가 각하께 보고하러 가면 차 실장이 무슨 보고인가를 하고 있어 기다린 적은 있읍니다만 나에게만은 조심하는 듯했어요}

이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었던 모씨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979년 들어서 박 대통령의 집무방식에 작지만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어요. 청와대의 일과는 오전 8시30분의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각 수석비서관들은 그 날의 보고사항을 이야기하고, 비서실장은 이를 메모하여 오전 9시30분에 박 대통령이 2층의 침실에서 1층 집무실로 출근하면 맨 먼저 들어가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때 비서실장은 각 치안·정보기관에서 올리는, 봉투에 밀봉된 보고서들도 함께 가지고 들어갑니다.

박 대통령은 이 봉투를 가위로 잘라 읽어보고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은 뒤 그날의 국정 방향을 감 잡고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김계원 실장 취임 이후, 비서실장의 아침 정례 보고가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밀리는 경우가 잦아졌읍니다. 차 실장이 비서실장보다도 먼저 들어가 정보 보고를 하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더러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통령에게 누가 먼저 보고를 하느냐 하는 것은 파워 게임에서 중대한 변수가 돼요. 꽉 찬 일정에 쫓기는 대통령은 일단 먼저 받은 보고에 따라 선입관을 갖게 되어 그 뒤에 다른 사람(예컨대 비서실장)이 들어와서 같은 건의 보고를 하면 짜증을 낼 수도 있지요}

金桂元씨는 {나도 정보부장을 한 사람인데 내가 비서실장이 되고 보니 김재규 부장이 박 대통령을 바로 만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아주 놀랐다}고 했다. 金부장은 車실장의 허가를 얻어야 대통령을 만나게 되어 있더란 것이다. 그래서 金부장을 도와주기 위해 그가 金부장을 비서실장 방에 불러 놓았다가 金부장을 데리고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게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金載圭, 車에 밀려 불만 축적

이상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金桂元, 金載圭, 車智澈 등 3명의 측근 가운데 대통령에 대해 가장 확실하고 빠른 접근권을 확보해둔 사람은 車실장이었음이 분명하다. 金실장은 전임 金正濂 비서실장과는 달리 국내정세에 어두워 車실장을 견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이때 車실장은 별도의 사설정보기관을 운영하면서 金載圭가 대통령께 올리는 보고를 뒤집는 방향으로 정보를 수집, 보고하여 더욱 金부장의 원한을 샀다고 한다. 이 사설정보기관의 책임자는 예비역 육군준장 李모씨였다. 5·16 뒤에는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그가 사건조작의 낚시밥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떠돌고 있다. 5공화국 때에도 그의 이름은 여러 스캔들과 관련하여 신문지상을 크게 장식한 바가 있었다.

1979년 10월 3일 박준규(朴浚圭) 공화당의장, 태완선(太完善) 유정회의장, 金桂元 비서실장, 金載圭 정보부장은 신라호텔의 한 객실에 모여 金泳三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하는 날로 받아둔 다음날의 전략을 의논했다. 太씨의 회고담―. {김계원 실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읍니다. [오늘 아침 모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김총재의 제명을 재고해 달라는 부탁이었다]면서 [우리 네 사람이 각하에게 지금 올라가 재고를 건의하자]고 했어요. 네 사람은 쉽사리 동의했읍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차실장이 나타났읍니다. 차 실장은 펄펄 뛰었읍니다. [방금 각하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각하의 뜻은 절대로 제명 쪽이다]고 했읍니다. 그래서 청와대행은 포기됐어요}

이 자리에 있었던 朴浚圭씨는 {차실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아무도 반론을 펴지 못했다. 특히 김재규 부장이 아무말 없이 잠자코 있는 것이 좀 답답하게 보였다. 10·26 뒤에 생각해 보니까 김부장은 그런 식으로 불만을 가슴 속에 꾹꾹 다져 넣고 있었던 것 같다. 중장출신으로서 대위출신과 어찌 말다툼을 하겠는가 하는 군인 특유의 오기와 자존심도 작용해서 묵묵히 참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 아닐까. 그때 여권에서는 김 부장을 좋아하는 편이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金桂元씨는 {신라 호텔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김영삼씨 제명은 차실장이 개입해서 된 것이 아니고 박대통령의 결심이었다. 그 분은 자기에 도전하는 사람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 있었다}고 했다. 1979년 8월 金載圭 정보부장은 롯데호텔에서 육사2기 동기생 2명과 식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모 예비역 장성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기분이 찜찜했다}고 말했다. 金載圭가 車 실장뿐 아니라 朴대통령에 대해서도 감정이 좋지 않은 듯한 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정보부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꼭 車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을 불러 배석시킨다고 합디다. 김재규의 보고가 끝나면 대통령은 김재규가 보는 앞에서 차 실장이나 수석비서관에게 [어떻게 생각해?]하고 코멘트를 구하기까지 한다고 흥분하더군요. 더구나 대통령이 김 부장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면 차장을 통해 보고하라]고 말하더라는 거예요. 우리 동기생 둘은 그때 김재규가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읍니다}

육군총장 인사에도 간여한 車

車智澈이 金載圭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 인사에 간여한 증거는 많다. 대위출신인 그는 장성출신이나 현역 장성들에 대해 묘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車실장은 육사11기 입학시험에 응시, 낙방한 경험이 있어 더욱 그런 성향을 띠게 됐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경호실장이 되자 민간인 신분인 실장이 경호목적이라면 수도경비사령부 병력까지 지휘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을 고쳤고 경호실을 확장, 경호실차장에 엘리트 3성장군을 임명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격상시켰다. 경호실 차장 밑에는 준장(나중에는 소장)급 차장보까지 두었다.

차장이나 차장보를 거쳐 군으로 나간 사람들에게는 승진·보직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車실장이 朴대통령의 후계자를 목표로 군내에 집권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1979년 1월 군내에서 큰 변동이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李世鎬대장이 인사관계 사건으로 옷을 벗었다. 李대장은 車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李대장이 물러남과 동시에 육사 8기출신의 보안사령관도 경질되었다. 그는 李대장 및 車실장과는 사이가 먼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車실장은 후임 육군총장에 자기 사람을 앉히려고 애썼다고 金桂元씨는 말한다.

{그때 盧載鉉국방장관은 육군총장의 인사의 건을 車실장과 상의한 모양이에요. 車실장은 ㅂ장군을 밀었어요. 그 한 사람만 추천하라고 강권했던가 봅니다. 어느 날 대통령 집무실에 내가 앉아 있는데 盧국방장관이 들어왔어요. 육군총장 인사의 건이라고 해서 저는 일어서 나오려고 했어요. 비서실장은 인사문제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는 게 관례였거든요. 박 대통령이, [김 실장 어디 가? 그냥 앉아 있어]라고 하십디다. 장관은 ㅂ장군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대통령께서는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듯해요. 그래서 제가 포병 후배이기도 한 국방장관에게 [각하께 복수로 추천해서 선택하도록 해야지 왜 그래요]라고 했더니 다른 서류봉투 하나를 주섬주섬 꺼냅디다. 복수추천을 하려고 가지고 왔다가 車실장의 말을 듣고 하나만 꺼내놓았던 것이지요. 대통령은 뒤의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사람이 좋겠군]하시면서 한 사람을 찍었는데 그 사람이 鄭昇和장군이었죠. 정말 순수한 군인이고,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있고요}

그런데 [鄭昇和증언](월간조선 9월호)에 따르면 車실장은 李在田경호실차장을 시켜서 鄭신임총장에게 되려 盧국방을 헐뜯는 이야기를 전하더란 것이다. 즉 盧국방이 신임총장 후보로 한 사람만 추천했는데, 朴대통령이 직접 인사기록 카드를 꺼내더니 鄭장군을 지명했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다. 金桂元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車智撤은 자기에게 협력해준 盧국방을 매도하면서까지 鄭총장을 가까이 하려고 했다는 얘기가 된다.

朴대통령과의 인연

金桂元씨와 朴대통령은 같은 포병 출신이라는 인연이 있다. 나이가 朴대통령보다 여섯살이 아래인 金씨는 배재중학교를 졸업, 연희전문에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뒤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다가 해방 뒤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승진은 朴대통령보다도 빨랐다. 金씨는 1951년에 준장으로 진급, 육군포병사령관이 되었고, 朴正熙대령은 1953년에 보병에서 포병으로 전과하여 준장이 되었다.

{박대통령과 각별히 친해진 것은 1960년에 제가 소장으로서 육본 정보참모부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그때 박소장은 군수기지 사령관(뒤에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金　一참모차장과 사이가 나빴어요. 저는 두 사람과 다 친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화해를 붙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더군요} 金桂元씨는 1960년 4·19직후 육군대학 총장으로 임명되어 부총장이던 金載圭준장과 만나게 된다.

{육대총장시절 이런 사고가 났지요. 당시 해군 통제부사령관이던 이희정 제독이 해군참모총장으로 발탁돼 이틀 뒤 서울로 올라가게 돼 있었어요. 李제독이 나와 김재규 준장을 마산의 어느 술집에 초대했읍니다. 술을 마신 뒤 진해로 돌아오는데 술에 취한 이 제독이 김준장을 태운 채 직접 몰고가던 지프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졌어요. 내가 절벽아래로 내려가 두 사람을 끌어올려 해군병원으로 보내 목숨을 구했지요. 최경록(崔慶祿)육군총장은 나와 金준장을 문책하려고 했으나 다행히 나의 친구인 김형일(金炯一)참모차장이 중간에서 수습을 잘해주어 무사했어요. 김재규는 이일로 해서 더욱 더 나를 따르며 고맙게 생각했던가 봐요. 내가 대만에서 대사를 하고 있을 때도 지나는 길이면 꼭 들러가곤 했어요}

金桂元소장은 대전지역 관구사령관으로 있을 때 5·16을 맞았다. 그는 쿠데타군의 편이 아니었다. 논산훈련소장이던 최홍희(崔泓熙)소장이 쿠데타군의 편에 서서 대전지역을 장악할 병력을 보냈는데, 金소장은 이를 단호하게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며칠 뒤 군의 태도가 쿠데타 지지로 기우는 바람에 金소장의 입장도 지지로 바뀌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6·3사태로 확대되어 서울지역에 비상계엄령이 퍼졌을 때 金載圭소장은 서울에 진주한 계엄군의 사단장이었고, 金桂元중장은 육군참모차장이었다.

{그때 육군참모총장이 閔기식대장이었어요. 계엄관계 지휘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만 나오기에 제가 말을 꺼냈어요. [시국이 지금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과 군이 충돌하는 유혈사태를 빚게 된다. 정국의 수습책을 논의하자] 이렇게 해서 의견이 모아진 것은 김종필 공화당 의장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런 의견을 가지고 총장과 제가 박 대통령을 찾아가 진언을 했지요. 대통령께선, 글쎄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필자 주 : 김종필씨 측)은 괜찮대, 라고 하십디다. 결국은 군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김종필씨가 외유를 떠나게 되었지요}

1966년에 육군참모총장이 된 金대장은 1969년에는 김형욱(金　旭)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전역한 뒤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사람과 함께 강릉으로 여행길에 올랐는데 도중에 각하께 불려가 정보부장 임명 통보를 받았읍니다. 저의 성격에는 안 맞는 일이라고 고사했읍니다만…} 金부장은 결국 적성이 안 맞아 이듬해에 정보부장 자리를 이후락(李厚洛)씨에게 물려주고 주중(駐中)대사로 떠나 8년간이나 일했다. 金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천성이 양순하고 신사인 그에게는 정치공작 같은 일이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金씨가 1978년 12월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한 신문의 프로필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얼핏 외모로는 중앙정보부장, 육군참모총장에 4성 장군을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의아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골풍 이라기보다 얌전한 선비 타입이다] 金씨는 朴대통령이 임명통보를 할 때 {각하, 왜 이러십니까. 저는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고 돈을 3천만 원이나 썼읍니다. 정보부장 일도 제대로 못했는데 비서실장은 도저히 역부족입니다}고 사양했다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아무것도 안해도 돼! 나하고 같이 다니기만 하면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陸여사 대신한 車智澈

- 1979년에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 대해 직언을 하신 적은 없읍니까.

{저는 감히 할 수가 없었어요. 국내 사정에 어둡기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내가 어떤 건의를 하면 [김실장은 그 문제를 자세히 몰라서 그래]라고 잘라버릴 때가 있었거든요. 사실 그때는 정부의그 어떤 장관보다도 대통령께서 훨씬 많이 아셨지요. 그토록 오래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국정을 총괄하셨으니까 1∼2년 장관한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을 겁니다}

- 陸여사의 서거로 홀아비 신세가 된 朴대통령에게 재혼을 건의하신 적은 있다면서요?

{그랬더니 내 딸이 시집을 가야지…라고 하십디다. 청와대의 대통령 일과는 2층 침실에서 1층 집무실로 출근하면 시작이고 오후 5시쯤 2층으로 퇴근하면 끝이에요. 비서실장이 된 며칠 뒤 각하께서, 김 실장, 내 방 안 봤지, 하시면서 2층으로 데리고 가서 보여주십디다. 넓은 방에 침대만 하나 놓여 있는데 분위기가 썰렁하더군요. 역시 남편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아내 아닙니까. 여사가 사라지니 청와대에 온기가 없어진 것 같았어요. 저는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살림집을 별채 건물로 지어야겠다고 건의한 적도 있읍니다. 그래야 출퇴근하는 맛도 날 것 아닙니까. 말년에는 박 대통령의 접촉범위도 상당히 좁혀져 있었읍니다. 옛날에는 학교 동창 등 부담 없는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곤 했던 모양인데 말년에는 주로 차 실장이 일과 후의 상대역이었읍니다}

- 대통령의 사생활에서 陸여사를 대신하게 된 이가 車실장이었던 셈인데 車실장의 교양은 어느 정도였읍니까?

{한 마디로 무뚝뚝한 사람이었어요. 화제도 많지 않고 화술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상식도 풍부하지 못했고…. 마지막 자리에서도 [탱크로 싹 깔아뭉개버리겠읍니다]고 했지만 탱크를 좋아하긴 좋아했어요. 청와대 주변에 탱크를 배치한 일도 있는데 제가 각하께 건의해서 치워버렸읍니다}

- 일과후의 술자리가 잦았다는데?

{궁정동 그 자리에 있었던 네 사람끼리만 주로 마셨읍니다. 저와 대통령은 주량이 비슷해 대작하는 관계였고, 김 부장과 차실장은 거의 마시지 않았어요}

- 과음해서 박 대통령이 업혀서 돌아가곤 했다는데요?

{제가 업어다 모신 적은 없읍니다}

- 시바스 리걸을 좋아했읍니까?

{궁정동에서 술을 할 때는 그것만 마신 것 같군요}

생가에서의 마지막 막걸리

10·26직전 朴대통령은 이승의 생활을 정리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10월6일 지만 육사 생도를 데리고 경북 구미시 상모동 선영을 찾아 성묘를 했다. 朴대통령은 이날 갑작스런 귀향을 반기는 주민들의 인사에 일일이 답례하고 생가에 들러 주민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朴대통령은 마을 어귀에 세워진 노인정을 찾아 바둑을 두고 있던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저도 수행했읍니다. 박 대통령은 생가의 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드셨어요. 대통령이 고향 동네에 들어서니까 동네 노인네들, 아낙네들이 나와서 서로 인사를 하는데, 조금도 격의가 없이 꼭 서울에 나가 살던 고향사람을 반기듯 합디다. 담 너머로 바라보면서 웃는 사람, 부엌에서 금방 손 씻고 나와 인사하는 아주머니…참 보기 좋은 장면들이었죠. 박 대통령은 노인정에 들러 금일봉을 전했는데 노인들이 숙원사업으로서 상모동에 고등학교를 하나 세워달라고 합디다. 먼곳에 고등학교가 있어 다니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각하께서 [검토해 보라]고 지시할 줄 알았는데 나무라시더군요. [여기보다 더 어려운 데가 얼마나 많은데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학교를 세워서야 되겠읍니까. 저는 국민학교를 매일 40리씩 걸어서 다녔읍니다]고 하시더군요}

朴대통령은 10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계곡에서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자연보호운동을 벌였다. 朴대통령은 {그동안 자연보호운동으로 자연 경관이 많이 깨끗해졌으나 자연보호운동을 하는 날만 깨끗해서는 안되며 평소에도 항상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朴대통령은 이날 자연보호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목에 허술하게 세워진 방법초소를 지적, {예산을 지원해서 잘 지어주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평소의 그의 세밀함을 나타내었다.

10월11일 저녁엔 이례적으로 주한 외교사절들을 경주 보문단지로 초청, 만찬을 베풀었다. 이것이 한국 주재 외국 외교관들과의 하직 인사가 됐다. 12일 오후 朴대통령은 그의 역사의식이 담겨진 경주 통일전을 참배하고, 화랑교육원을 시찰했다. 朴대통령은 통일전을 나서면서 누렇게 물결치는 논 사이로 훤히 일직선으로 뚫린 신작로를 내려다 보며 경내의 조경 상황을 치하하고 앞으로의 관리 등에 관해 지시했다. 이어 화랑교육원에 들린 朴대통령은 정문 앞에 도열한 교직원들을 일일이 악수로 격려하고 대강당에서 마침 연수 수강중인 영남대학교 학생들의 책상 사이로 들어가 교과서를 펼쳐보며 학년과 학과 등을 물어보고 잠시 강의광경을 지켜봤다.

김형욱(金炯旭) 회고록으로 골치

金桂元실장은 부마사태에 대해 金載圭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부마사태는 김영삼이가 일으킨 것도, 신민당원이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민심이 돌아선 것입니다}

- 金載圭가 그날 결행하기로 작정한 것은 정부요직의 개편으로 자신이 물러나게 돼 있었다는 것을 알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만….

{그때 인사개편이 임박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런 낌새를 채지 못했읍니다}

- 혹시 비서실장이 모르는 데서 추진되고 있었던 일이 아닌지요?

{글쎄요? 비서실이 아니면 당 쪽인데, 당은 그때 그렇게 세지 못했어요. 다른데서 추진되어도 제가 알 만하지요}

- 金실장께서 농수산부장관에 趙모 지사식으로 추천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그것도 낭설입니다. 저의 위치 때문에 단순한 잡담도 그렇게 와전될 수가 있지요. 저는 그때 국내사정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청와대 살림도 제대로 모르는 형편이라서 그런 인사 추천을 할 입장이 되지 못했읍니다}

- 10·26사건 직전에 있었던 金炯旭 실종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김재규부장으로부터, 김형욱 회고록을 출판하지 못하도록 협상을 하고 있는데, 김형욱이가 30만 달러인가, 5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읍니다}

26일 아침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金桂元비서실장은 부산·마산을 다녀온 박승규(朴升圭)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현지시찰보고를 받았다.

{공수부대원들이 과잉진압을 하여 민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박 비서관에게, 내일 각하께 보고할 때 車실장과 金부장 사이의 불화에 대해서도 함께 보고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어요. 박수석은 그때 박대통령의 가족관계 일도 맡아보는 등 대통령의 신임이 아주 두터웠어요. 박 비서관이 27일에 그런 보고를 한 뒤 제가 들어가서 불화의 해결책을 건의하려고 했어요}

10·26사건으로 건의할 수가 없게 돼 버린 해결책이란 車실장을 정보부장으로, 金부장을 경호실장으로 자리를 맞바꿔 버리는 내용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