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眞相)·윤필용(尹必鏞) 사건 - 세 당사자 尹必鏞·강창성(姜昌成)·신범식(申範植)의 최초증언

尹必鏞장군 사건은 朴正熙대통령 측근의 교체를 가져 옴으로써 한 정권의 종말을 예비하고 새정권의 씨앗을 배태했다. 이 사건의 표적은 李厚洛이었다.

<1987년 10월 월간조선>

朴정권 시대의 마지막 비화

잡지 기자들 사이에서 尹必鏞사건은 「朴대통령 시대의 마지막 비화」라고 일컬어진다. 1973년 당시 군부의 실력자로서 숱한 풍문의 대상이었던 수도경비사령관 尹必鏞소장과 그 측근부하들이 부정·부패혐의로 하루아침에 제거돼버린 이 사건은 「김형욱.金炯旭회고록」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전모나 배경이 제재로 다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尹必鏞씨 등 당사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간접 취재로는 한계가 있었다.

기자는 지난 3월부터 당사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사건의 당사자란 당시의 수도경비사령관 尹必鏞씨(60·육군소장 출신·전매공사 이사장), 尹씨를 조사했던 당시의 국군보안사령관 姜昌成씨(61·전 해운항만청장), 이 사건의 발단으로 알려져 왔던 당시의 서울신문사 사장 申範植씨(64·전 문공부 장관)다. 이 세 당사자들은 대체로 『아직 전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는 태도였다. 기자는, 金炯旭의 이야기 등으로 그 내용이란 것이 일부 알려져 있으므로 잘못된 사실이 그대로 통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써 이들을 설득하여 어렵게 이야기를 끌어내긴 했다.

이 사건의 또다른 진실을 알고 있는 朴대통령과 朴鐘圭씨(당시 대통령 경호실장)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이 두 사람과 가까왔던 측근을 통해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취재를 통하여 알아낸 尹必鏞사건은 단순한 독직사건이 아니다. 朴대통령은 개인과 그의 정권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며 제5공화국의 뿌리와도 관계가 있는 「살이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朴정권의 권력 핵심부가 교체되면서 金載圭와 車智撤이 등장할 길이 트였고 군부내 장교 집단이 재편성되면서 새 정권을 창출할 축이 생겨났다.

이 사건은 한국 군부의 정치개입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 이 사건은 한 정권과 한 장기집권자의 종말을 재촉했고 새 정권의 씨앗을 배태시켰다. 尹必鏞 사건을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재조명하는 관점도 이런 역사성에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朴正熙와 尹必鏞이란 두 사람의 숙명적인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尹必鏞사건은 2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도달한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인간, 朴正熙를 가장 잘 아는 사람/b>

尹必鏞씨는 스스로 『내가 朴正熙대통령의 측근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다』고 말한다. 물론 朴正熙의 군대시절부터 계산해서다. 1954년 朴正熙준장이 5사단장으로 부임하여 대대장인 그를 군수참모로 발탁한 뒤 1973년 3월 이른바 「尹必鏞사건」으로 구속되어 군복을 벗을 때까지, 꼭 20년간 朴正熙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것이 尹必鏞씨다. 朴正熙장군은 5사단장, 7사단장, 1군참모장, 군수기지사령관, 1관구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尹중령을 데리고 다니면서 군수참모, 참모장, 보좌관, 비서실장 등 최근요직에 앉혔다. 5·16 뒤에도 최고회의의장비서실장, 육군방첩대장, 수도경비사령관 등의 권력핵심부에 그를 두었다. 朴대통령과 직접 인연을 맺은 20년간의 군 생활 가운데 15년간은 거의 매일 朴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朴正熙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힌다. 더구나 그는 朴正熙의 인정뿐 아니라 비정까지 맛본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 朴正熙의 양면성을 절실하게 느껴 본 사람이다.

尹必鏞씨는 지난 해 8월20일 도로공사 사장직을 6년만에 물러났다가 올해 봄에 전매공사 이사장이 되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의 진흥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기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군복을 벗은 지 14년이나 흘러, 많이 변했겠지만 아직도 단순명쾌하다. 말에 조건을 단다든지, 피해 가고 애매하게 흐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일단 그의 말에는 신뢰성이 있어 보였다. 알맞은 키에 아직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청와대 집무실이든 사단장실이든 朴대통령이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 있으면 방이 꽉 차는 것 같았읍니다』면서 『朴대통령은 위대한 분이셨지만 역시 인간이었읍니다』고 했다.

『말기엔 완전히 피로하신 겁니다. 그러니 술과 여자에 빠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분은 장기집권은 안된다는 것을 그런 최후로써 보여주신 겁니다. 저도 도로공사 사장을 6년했는데 후반기 3년이 전반기 3년과 같지 않더군요』 『1월1일만 되면 제가 하는 일이 세가지 있읍니다. 맨 처음 국립묘지에 가서 朴대통령 내외분의 묘소에 참례하고, 돌아와서 차례를 올린 뒤 도고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지난번 신정에 저는 지하의 그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읍니다. 제가 불민하여 각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그렇게 돌아가시게 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요』

육사 11기생들과의 인연

尹必鏞중령은 5·16거사에는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朴소장이 쿠데타의 의지를 尹중령에게 내비친 것은 1960년 여름 군수기지 사령관 시절이 처음이었다. 부산동래별장에서 둘이서만 술을 마시는 가운데 朴소장은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북한 아이들과 직접 협상하겠다고 야단인데, 두고보자니 나라가 망할 것 같고, 내가 나서자니 하극상이 될 것 같고…』 尹중령은 이 말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朴正熙소장은 쿠데타 계획의 핵심세력으로 오랜 측근인 尹중령을 끼워주지 않았다.

그무렵 尹중령은 육군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5·16 며칠 전에야 朴소장이 육사8기 동기생인 정문순(鄭文淳) 중령을 통해 尹중령을 가담시켜 거사 전날 서울로 올라오게 했던 것이다. 5·16전날 밤 尹중령은 쿠데타군의 지휘본부로 예정된 6관구사령부로 갔다. 뒤늦게 거사에 참여, 일정한 임무가 없었던 尹중령은 탄알도 없는 카빈총을 매고 朴소장을 따라다녔다. 5·16뒤에 朴소장은 그를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 목숨을 걸고 거사에 참여했는데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어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가 미안합디다. 그래서 비서실장 자리를 박태준(朴泰俊)장군(포항제철회장)에게 내어놓고 저는 비서실장 대리로 있었읍니다. 1962년에 군으로 돌아가 25사단 72연대장을 했죠』

尹씨는 이때 나중에 尹必鏞사건에서 숙명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朴鐘圭소령과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朴소령은 朴正熙의장의 경호대장이었다. 朴소령은 의장 경호팀을 조직했는데, 車智澈대위 등 공수단 장교들과 육사11기 출신 장교들이 뽑혔다. 육사 11기 장교중 손영길(孫永吉)대위(나중에 尹必鏞 수경사령관의 참모장)는 朴正熙준장이 7시단으로 있을 때부터 총애를 받아 그 뒤 전속부관으로서 朴장군을 따라 다녔다.

이때는 최고회의 의장의 전속부관이었다. 全斗煥대위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ROTC교관으로 있다가 朴正熙의장의 직접 선택으로 최고회의 민원비서관이 되었다. 全·孫대위에 이어 노태우(盧泰愚), 김복동(金復東), 정호용(鄭鎬溶), 최성택(崔性澤) 등 육사 11기 장교들이 이때부터 최고회의와 朴대통령의 곁에서 줄곧 근무하게 되었다. 尹必鏞씨는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대리로서 미래의 한 대통령을 상관으로, 미래의 다른 대통령을 부하로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다. 11기출신들은 朴대통령이 특별히 아끼는 장교 그룹으로 떠올라 보안사, 수경사, 특전사, 경호실 등 핵심 부서에 근무하게 되고 제5공화국의 출범에는 주동적 역할을 하게 된다.

尹必鏞씨와 朴鐘圭씨는 이들 11기 그룹을 비롯한 정규육사 출신 장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승진, 배치 등 인사 때마다 이들을 후원하게 된다. 예컨대 全斗煥대위가 중앙정보부 제7국 인사과장이 됐을 때 인사기록카드 추천인란에는 장인 이규동씨와 더불어 朴鐘圭 당시 경호실장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千金成, 「황강에서 북악까지」). 육사 11기 장교들은 재학 시절부터 선배들과는 구별을 지어 「정규1기」라고 부르는 등 엘리트의식이 강했다. 이들은 또 위관시절부터 朴대통령의 주변에서 근무하게 되어 정치에 대해서도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11기 그룹의 정치에 대한 열정적 관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63년 민정이양을 앞두고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었던 金在春씨는 최근 이렇게 증언했다. 즉, 중앙정보부 등 특수 군기관에 있던 ㅅ소령 ㄴ대위 등 11기출신 장교 10여명이 증권파동을 일으킨 몇몇 최고위원 등 부정부패 관련자들을 제거하려는 모의를 했다가 적발돼 朴正熙의장의 지시로 조사를 받았으나 김재춘(金在春)부장의 선처 요망으로 무마되었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이때 이 11기출신들에 의한 거사계획사건을 수사한 이는 육군방첩대장 鄭昇和준장이었다고 한다.

金炯旭도 3선개헌에 불만

金炯旭은 이른바 그의 회고록에서 尹必鏞씨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많이 써놓았다. 尹대령이 군에 복귀, 연대장을 하다가 정보부장으로 있던 자기에게 찾아와 함께 일하도록 해달라고 했다는 기술에 대해 尹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金부장이 거절하자 尹대령이 당시 육군방첩대장을 찾아가 또 부탁을 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내가 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사전통보 없이 불려 올라와 육군본부 분석과장을 거쳐 서울지구 방첩대장에 임명되었을 뿐이다. 朴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인사인 줄 안다』고 했다. 金炯旭은 尹대령이 1965년에 준장으로 승진하면서 육군방첩부대장(뒤에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개편)이 된 것은 朴대통령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썼다.

尹준장은 방첩부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1965년 5월에 원충연(元忠淵)대령 등에 의한 쿠데타 모의사건을 적발했다. 尹씨는 『그 뒤 숱한 정치적 조작 사건이 일어나 이 사건마저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이 모의사건은 진짜다』고 강조했다. 그때 정훈학교 부교장이던 元대령은 서울 근교 탱크부대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했다고 발표되었다. 이 사건은 모의에 가담했던 李모 소령이 방첩대에 자수하여 발각된 것이었다. 방첩대의 지시에 따라 李소령은 녹음기를 품고 「최후의 결사결의」 상황까지 녹음했다고 尹必鏞씨는 말했다. 계획의 초안도 압수했다고 한다.

金炯旭은 尹방첩부대장이 이 사건 수사를 함경도 출신 장성급까지, 정치적으로 확대하려고 해서 朴대통령에게 건의, 수사를 축소시켰다고 주장했다. 尹씨의 이야기는 이와는 다르다. 『그때 함경도 출신 예비역 장성 ㅈ씨를 元대령이 찾아가 지도자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ㅈ씨가 찬동도 않고 말리지도 않았다는 것은 확인했읍니다만 뚜렷한 물증도 없고 해서 元대령 선에서 끝낸 것입니다. 그때 金炯旭부장은 수사의 기선을 빼앗긴 데다가 그의 부하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구속돼 수세에 몰려 있었읍니다』

尹必鏞씨는 『金炯旭이 3선개헌에는 반대했다고 썼는데 그말은 근거가 있다』고 했다. 尹준장이 1968년에 맹호사단장으로 임명돼 월남에 가기 전에 金부장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나도 3선 개헌엔 반대다. 각하가 이번에 물러나시면 1년이 못 돼 국민들이 또나오라고 할텐데… 그러나 그분의 뜻이 강하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다』 尹씨는 朴대통령이 주변의 나쁜 사람들 조언에 의해 3선개헌으로 치닫게 됐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3선개헌은 朴대통령 자신의 의지였고, 측근에서는 따라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尹방첩대장 밑에 있었던 정보장교들 중에는 盧泰愚·權翊鉉중령, 許三守대위 등 11, 17기출신들이 있다. 1967년 5월의 대통령 선거를 여섯달 쯤 앞둔 1966년말 尹必鏞방첩부대장은 청구동 金鍾泌공화당의장으로부터 『좀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金의장은 침통하게 말했다. 『尹장군, 나 그만두기로 했오. 당의장인 내가 金炯旭이한테 도청을 당하고, 우리집을 출입하는 사람은 일일이 체크되어 가택수색까지 받고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우리 집을 드나들면 공천길에서 멀어진다고 해요. 사흘간 골똘히 생각한 끝에 결심했어요. 각하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尹준장은 『○을 하나 더 보태 30일간만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金당의장은 『그보다도 월등히 오랜 기간 생각해왔다』면서 이미 대통령 면회신청을 해두었다고 했다. 尹준장은 金당의장 집을 나오자마자 예고없이 청와대로 갔다.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가는데 李厚洛실장 방에서 나오는 李실장 및 金炯旭부장과 딱 마주쳤다. 尹준장이 『각하께 급한 보고가 있다』고 했더니 李실장은 『아웃라인을 이야기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

JP 사퇴 결심 번복시켜

『보고 전에는 이야기 못하겠읍니다』
『혹시 김 당의장에 관한 것도 들어 있읍니까?』
『있읍니다』
『이미 그 문제에 관해서는 각하의 결심이 끝났읍니다』
『그 외에도 긴급보고사항이 있읍니다』

이래서 尹준장은 집무실에서 朴대통령과 독대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뤄진 대화를 尹씨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단다.

『선거를 앞두고 당의장을 바꾸면 안됩니다』
『종필이는 너무 옹졸해. 남을 포용할 줄 몰라. 심지어 자네까지 자르라고 하더군』
『저는 백번 잘려도 좋은데, 선거가 걱정입니다』
『이후락이는 나에게 종필이 칭찬을 많이 하는데 종필이는 이후락이 욕만 해』
『제가 두 사람이 멀어진 이유를 보고드리겠읍니다』

尹준장의 간곡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대통령은 신범식(申範植)대변인을 부르더니 『당의장 면회신청은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申대변인을 통해 金당의장에게 친서를 전했고 그 일요일에 대통령이 당의장을 골프에 초대, 사의를 번복시켰다는 것이다. 尹씨는 『그때 나는 누구 편도 아니었지만 선거를 생각하니 자연히 4인체제보다는 金씨 편을 들게 되더라』고 했다. 尹必鏞씨는 朴대통령이 金鍾泌씨를 미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고 했다. 金炯旭부장은 전과자를 고용, 金鍾泌씨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과자가 방첩대에 자수, 尹준장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종필이가 너를 그렇게 미워한다면 넌들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대통령의 신경질

尹씨는 그토록 오랫동안 모셨던 朴대통령과 금이 가게 된 계기는 「尹必鏞장군 사건」 훨씬 전이었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이 두번의 임기로 그만두신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었던 1967년 어느날에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 진언을 했어요. 후계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공약사항도 다 못 지킨 것이 있고 하니 각하께서 당 총재로서 계속 후계자를 뒷바라지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총재실을 개편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그분의 반응이 너무나 의외였읍니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으시는 분인데 벌떡 일어나시더니, 너 할 일이나 잘 해!, 하고 호통을 치시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없읍니다.

그 이튿날 다른 일로 李厚洛실장 방에 가 있는데 朴대통령께서 지나치다가 들어오셔서, 어이, 李실장, 내가 어제 尹장군에게 기합을 넣었는데, 자네가 오늘 한번 더 기합 줘! 하십디다. 저는 그것으로 그분의 분이 풀린 것으로 알았는데, 다음날부터 청와대 면회가 잘 안되더니 얼마 뒤 사단장으로 전보되었어요』 이때 朴대통령은 3선개헌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을 모르는 尹준장이 정권이양 뒤의 후견인 역할을 건의하자, 아픈 곳을 찔린 반사작용으로 그토록 화를 냈던 것으로 보인다.

尹준장은 1968년 1월8일자로 소장으로 진급했다. 육사 8기생 가운데 가장 빨랐다. 그는 진급과 함께 방첩부대장에서 일선 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사단장으로 있을 때 김성은(金聖恩)국방장관이 부르더니 『얼마 전 각하를 만났는데 尹장군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 했다. 『그토록 키워주었는데, 호랑이를 기른 격이 됐다고 말씀하시더랍디다. 저는 임기문제에 대해서 제가 한 이야기를 아직도 오해하시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런 뒤 제가 주월 맹호부대장으로 임명되어 월남에 가게 되었읍니다. 출발하기 며칠 전에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서 식사를 같이 하고 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청와대에서 단 둘이서 식사를 함께 했읍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지요. 각하는 높은 데서 넓게 보시고, 저는 낮은 데서 좁게 보기 때문에 각하께 불충한 말씀도 많이 올렸는데 용서해 달라고 했읍니다. 그분은 저의 손을 잡더니, 괜찮아, 괜찮아, 라고 하셨어요. 이것으로 오해가 풀린 것으로 알았읍니다』

尹必鏞 소장은 월남에서 귀국한 직후인 1970년 1월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사실은 그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내정돼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군내의 인맥이 서종철(徐鍾喆)참모총장 그룹과 金載圭보안사령관·韓信장군 등 2기생 그룹으로 갈라져 있었어요. 徐총장 쪽에서 저를 천거한 겁니다. 대통령께서 徐총장의 천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석연찮은 표정이었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읍니다』 尹소장은 취임 직후 모종의 사건을 적발, 수도경비사령부 내의 보안부대요원들을 내보냄으로써 金載圭보안사령관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한번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아직도 金載圭와 싸우고 있나』라는 핀잔을 했다고 한다. 『김상현이와 조연하가 저렇게 까부는 것도 내 임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럴수록 너희들이 결속해야 할 것 아닌가!』

李厚洛부장과 모의한 적 없다

尹必鏞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은 1971년 4월의 대통령 선거 뒤 朴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정략적 차원에 맡겨선 안된다. 이렇게 돈 드는 선거를 해선 국가적 낭비다. 먹고 살 정도로 돼야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뭔가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金炯旭은, 尹사령관이 유신선포 5일전에 李厚洛부장과 만나 『형님이 이제 정치를 맡으십시오. 각하를 잠시 쉬게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하고 건의했다고 썼다. 尹씨는 李부장을 만난 것은 유신선포직후에 「오진암」에서였다고 했다.

『李부장의 초대를 받아 갔더니, 박용학(朴龍學) 김창원(金昌源) 서정귀(徐廷貴) 김종희(金鍾喜) 서종철(徐鍾喆), 그리고 재일동포 정건영(鄭建永)씨들이 미리 와 있더군요. 그 자리에서 李부장에게 제가 한 말은, 앞으로 구성되는 국회에 군 출신들을 많이 천거해달라는 것뿐이었읍니다. 그 무렵 저는 李부장에게 너무 부드럽게 대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었읍니다. 나의 참모장 孫永吉준장이 李부장과 동향이고, 李부장 밑에서 감찰실장으로 있던 李모와 친했는데 이 두 사람이 서로 연락하여 저와 李부장 사이를 좋게 하려고 애썼고, 이게 무슨 작당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받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는 朴대통령이 사람을 쓸 때 그 사람됨을 훤히 알고 일정기간 쓰신 다음엔 버리신다는 것을 잘 알고 또 각오도 하고 있었읍니다. 朴正熙란 보호막이 무너진다면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은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朴대통령은 춘천에서 8기생출신 사단장들과 술을 함께 마신 뒤 이렇게 말했다는 정보도 尹소장에게 들어왔다. 『너희들이 尹必鏞이 동기생이구먼. 겁나는 것은 金大中이가 아니야. 尹必鏞이가 겁이 나』 朴대통령은 군 인사에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 尹必鏞씨는 『그때 국방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을 결정할 때는 나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尹씨에 따르면 朴대통령은 사단장급 인사만 결재했으나 연대장 인사에까지 관심을 쏟더라고 했다. 군내부에 대한 동향보고는 매일 받았다.

노쇠하시기 전에…

尹必鏞씨는 자신이 거세된 경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72년말인가, 73년초인가 하루는 朴鐘圭 경호실장이 저를 보자고 하더니 전날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읍니다』 골프 한 코스를 돈 뒤 커피 숍에서 朴대통령, 申範植 당시 서울신문사장, 朴鐘圭경호실장 등 3명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申시장이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는 것이다. 『각하께서 연만하시니 더 노쇠하시기 전에 후계자를 키우셔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李厚洛부장이 후계자로 좋다는 이야기도 있읍니다』 朴대통령은 『미친 놈들, 내가 아직 노망하려면 멀었는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세 사람은 다시 골프장으로 나갔다. 골프를 다 치고 필드를 나왔을 때 朴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申사장에게 무섭게 물었다.

『아까 그말 말이야. 누가 그런 소릴 했어? 李厚洛이가 그랬나?』 朴鐘圭의 설명에 따르면 申사장은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고 한다. 『이름을 못 대겠읍니다』 朴실장이 권총을 뽑아 『이름을 대라』고 위협했다는 것이었다. 申사장은 『尹必鏞 장군이 그럽디다』고 했다는 것이 朴실장의 설명이었다. 尹사령관은 그 말을 듣자마자 피가 역류하듯 하여 전화기를 들고 申사장을 부르려 했으나 朴실장이 말렸다. 朴실장은 『이 문제는 나한테 맡겨 주십시오』라고 했다.

『제가 형무소에 있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왜 申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어떤 추리까지 해 보았읍니다. 그때까지 申씨는 저와는 가깝고 李부장과는 아주 사이가 나빴어요. 그런데 7·4성명과 유신 이후에 李부장의 힘이 세어지니까 혹시 李부장이 후계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에서 직접 각하의 의중을 시험해 보고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무섭게 추궁하니까 다급해서 내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고…. 대통령께서도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면 가볍게 넘겨버릴 것이란 계산에서 말입니다. 그전에 申씨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노망 운운하는 이야기가 오간 적은 있었읍니다』

尹씨에 따르면 유신선포 뒤의 어느날 申씨가 尹사령관, 정소영(鄭韶永)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김시진(金詩珍) 민정수석비서관, 수경사 지성한(池成漢)대령 등을 어느 요정으로 초대하여 술대접을 했다. 이 자리에서 申씨는 대강 이런 뜻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각하께 정말로 충성하는 분이라면 각하께서 연만하셔서 노쇠하시기 전에 청와대를 물러나십시오, 우리가 모시겠읍니다, 그러면 영원한 대통령이 되십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런 말씀 하실 분은 尹장군뿐이십니다』 尹사령관은 『술집에서 당치도 않은 말씀하십니다』면서 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조사받을 때 보니 申씨가 한 말은 내가 한 말로 돼 있고, 내가 한 좋은 말은 전부 거두절미하여 오해하기 좋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尹장군이 연행된 것은 73년 3월7일, 정식 구속된 것은 3월26일, 군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것은 4월17일, 비공개공판 끝에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선고가 있었던 것이 4월28일이었다. 尹必鏞소장 孫永吉준장 등 10명의 장교들이 군복을 입은 차렷 자세로 선고를 받는 사진이 이 날짜 석간에 실리면서 그들의 「죄상」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 소스는 판결문과 국방부장관 담화문이었다. 내용은 尹장군 등의 부정·부패 사생활, 군내 사조직 운영 등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판결문은 법률적 판단을 한 내용이 아니라 「치부와 엽색행각에 치달음으로써 반유신적 죄악을 자행했다」는 식의 인신공격적인 규탄문이었다. 대한일보 사장 김연준(金連俊)씨의 수재의연금 횡령사건에 대한 수사를 尹장군이 압력을 넣어 중단시켰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 얼마 뒤 金씨는 횡령 혐의로 구속되고(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음)대한일보는 폐간되었다.

尹必鏞씨가 아직도 朴대통령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는 혐의로써 매장시켰기 때문인 듯하다. 독직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尹씨는 항소를 포기, 약2년간 복역한 뒤 1975년에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尹씨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이 사건은 결론적으로 『나에 대한 朴대통령의 신임이 철회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고 덧붙이면서 일본의 「방위연감」에 「이 사건의 진상을 아는 사람은 오직 朴대통령뿐이다」고 씌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尹씨를 수사한 강창성(姜昌成)씨는 1980년 여름 해운항만청장 자리에서 물러난 직후 모종 사건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고 나와 일본의 도오쿄 대학 초청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약 2년간 일본 군벌의 정치개입에 대해 연구를 한 뒤 귀국하여 요즈음은 모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姜씨는 수사의 발단과 경과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姜昌成씨의 증언

1972년 말쯤 朴正熙대통령과 朴鐘圭 경호실장 및 신범식(申範植) 서울신문 사장은 뉴코리아 호텔에서 골프를 쳤다고 한다. 골프를 다 친 뒤 귀빈실에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세 사람은 술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申사장은 『각하, 측근을 조심하십시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그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 듯했다. 『술 맛 떨어지니 그런 말 그만두라』고 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 다음 날 朴鐘圭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제 申사장이 한 이야기, 그 무슨 소리지? 얼마 전에 ○○○도 나한테 와서 尹必鏞이를 조심하라고 하던데 조사를 해 봐야겠어』 대강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고갔다고 한다.

1973년 3월쯤 朴대통령에게 불려간 것은 국군보안사령관인 姜昌成소장이었다. 朴대통령은 한 장짜리 보고서를 건네주면서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는 申사장의 제보(?)가 요약된 것이었다. 朴대통령은 또 『○○○에게도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물러나오는데 朴鐘圭 경호실장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경호실장 방에 들렸더니 朴실장은 대단히 흥분하여 『모조리 잡아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姜昌成 보안사령관은 수사관들에게 조사를 지시하고, 별도로 수도경비사 소속의 지휘관 몇 명을 불러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수사에 저항하지 말고 협조해달라』고 당부, 사전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수사가 진행중이던 어느날 姜사령관은 尹必鏞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한 번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육사 8기생으로 동기생인데다가 장성진급도 같은 날에 했다. 姜씨가 중앙정보부 차장보와 보안사령관을 거치는 동안 수도경비사령관인 尹소장과는 업무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姜소장은 친구 사이인 尹소장에게 수사에 착수했음을 알렸는데 尹소장은 모함이라고 펄쩍 뛴 뒤 『모든 것을 姜사령관에게 맡길 것이니 선처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姜소장은 『이 문제를 푸는 길은 각하께 찾아가 사과하는 것 뿐이다』고 말했다.

李厚洛도 잡아넣어!

보안사령부의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尹장군에 의한 쿠데타 계획은 아니었다. 尹장군이 申範植, 金詩珍 정보비서관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朴대통령의 건강과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과, 尹소장이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을 찾아가서 역시 후계자 옹립문제 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일종의 「불경죄」로 몰리게 된 것이란다. 姜사령관은 약 3주간의 수사를 마친 다음 청와대로 들어가 朴대통령에게 중간 보고를 했다. 이 자리에는 朴鐘圭 경호실장과 金정렴 비서실장이 동석했다고 한다. 보고를 다 들은 뒤 朴대통령은 노기를 띠고 『이후락이까지도 잡아 넣으라』고 했다. 朴실장도 이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姜사령관은 수사를 확대하지 않도록 건의했다는 것이다. 金실장도 거들고 해서 결국 尹소장과 그 부하들만 처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姜소장은 『각하의 측근이 모반했다는 인상을 주면 정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니 이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고 건의, 尹장군과 그 부하들을 수뢰·직권남용 등의 죄명으로 처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姜사령관에 따르면, 당시 군수뇌부에 속하는 사람들이 후배인 尹소장 집에 연초인사를 갔던 것은 사실이고, 尹소장의 핵심부하 집에서 백금으로 된 대장 계급장이 발견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尹소장을 제거하는 것과 함께 朴대통령은 尹소장을 따르던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의 사조직인 일심회(一心會 : 또는 하나회라고도 했음)에 매서운 손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군내에서는 장성급에서 중위까지 2백여명이 이 모임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朴대통령도 이 조직을 인정하고 그 활동을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一心」이란 휘호를 내리고 군도까지 선물하기도 했었다는 것. 朴대통령은 일심회 명부를 가져다 놓고 직접 ○표, ×표를 치면서 전역시켜야 할 대상자를 분류하곤 했다는 것이다. 姜사령관은 일심회에 들어 있던 장교들은 거의가 경호실, 정보부, 보안사, 수경사, 특전사, 수도 일원의 군 부대등에서 근무하거나 근무한 적이 있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장교들이었다고 했다.

이들 중엔 5·16직후부터 尹必鏞 당시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주변에서 권부에 가까이 있었던 육사 11기 출신들도 있었다. 朴대통령도 정규 육사출신들을 직접 장악하는 것이 장기 집권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던지 계통을 무시하고 이들을 가까이 함으로써 군의 질서를 상당히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영관급 장교까지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이들 장교 그룹에 대해 尹소장뿐 아니라 朴鐘圭 경호실장도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일심회 해산 과정에서 朴실장과 가까운 장교들은 거의가 구제되었고 尹必鏞·孫永吉계열은 거세되었다. 12·12사태의 주체세력 중에는 일심회 회원이었던 이들이 많았다. ㅈ소장, ㄴ소장, ㅎ대령, 다른 ㅎ대령 등등이 과거 일심회 회원이었다고 한다. 尹소장 측에 가까왔던 이들도 있었으나, 朴鐘圭실장에 더 가까왔던 이들이 많았다. 姜昌成씨는 자신이 어떤 사심이나 앙심을 가지고 尹必鏞사건을 확대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사건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애썼다고 말하고 있다. 姜씨는 尹소장이 쿠데타 모의를 한 것도, 병력동원을 계획한 적도 없었고, 다만 오해를 받을 만한 말을 한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申範植의 해명

신범식(申範植)씨는 尹必鏞사건 뒤 서울신문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2년쯤 쉬다가 두 차례 유정회 의원을 역임했다. 올해 봄에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尹씨가 사장으로 있었던 국영기업체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공사에 들를 뿐 한가하게 지낸다고 한다. 1965년 申씨는 공화당 대변인을 하다가 朴대통령에 의해 직접 지명되어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다. 申씨는 곧 비서관 중에서도 대통령을 직접 대면하는 회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신문사 사장이 된 뒤에도 대통령은 申씨를 가까이 했다. 申씨는 그때 서울신문사 사장으로서 대통령을 자주 만난 것이 아니라 골프 메이트로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朴대통령도 申씨가 오해를 받을까봐 측근들에게 이 점을 해명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申씨는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내가 무릎을 꿇었거나 박 실장이 권총을 뺀 적은 없었다. 나와 박실장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박실장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대신 전해 줄 정도의 사이였다』고 했다. 朴鐘圭씨의 측근이었던 한 인사도 『朴실장이 尹소장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申씨의 입장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말했다. 申씨는 『내 말 때문에 尹장군이 거세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골프장에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72년 10월말 쯤이었고, 尹장군이 구속된 것은 73년 3월이란 사실이다』고 했다.

73년 1월초까지 申씨는 朴대통령과 자주 만났으나 『尹장군 이야기는 더 이상 거론된 적은 없다』고 했다. 申씨는 尹장군에 대한 내사와 본격수사가 진행중일 때는 朴경호실장에 의해 대통령 면회가 금지돼 있었다고 했다. 申씨는 그러나 이 기간에 朴鐘圭실장을 통해서 수사의 진척상황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申씨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식 신문을 받은 적은 없고 姜昌成 소장에게 설명을 한 적은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의 꼬투리가 된 申씨의 말과 尹장군의 구속 사이에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어느 세력에 의해 숙성, 발효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申씨도 『尹장군이 어떤 모의를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듯이 尹장군의 혐의란 대통령으로부터 크게 한 번 꾸지람을 들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숙청의 규모로 확대된 것은 이 사건이 대통령 주변의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표적은 李厚洛부장?

당시 권부의 한 핵심인사는 尹必鏞사건은 반(反)李厚洛세력이 단결하여 李厚洛부장을 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그때 李부장은 7·4공동성명 이후 상당히 인기가 높아졌고, 이에 위협을 느낀 세력이 뭉치게 되었읍니다. 朴대통령도 李부장이 부각되는 데 대해 심기가 불편했을 겁니다. 반李부장 세력에서는 朴대통령의 이런 심기를 간파하고 尹必鏞사건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외견상으로도 朴鐘圭씨를 비롯한 여러 핵심 실력자들이 공동보조를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李厚洛씨도 최근 『이 사건의 표적은 나였다고 생각한다』면서 朴鐘圭실장 등이 사건의 기획인이었다는 투의 이야기를 했다. 李씨는 수사가 진행중일 때 朴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각하, 윤필용이가 과연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모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부내에서 윤필용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수사라고 생각됩니다만 정말 윤필용이를 자르고 처벌하실 작정입니까』 朴대통령은 아무 대답이 없더라고 한다. 이러한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朴대통령은 尹장군의 무고함을 알고도 그의 제거를 지시했던 것 같다. 그의 독특한 용인술인 「측근끼리의 상호 이간질에 의한 견제」가 이 사건에도 적용된 것이다.

姜昌成씨는 尹必鏞사건의 불씨가 李厚洛부장에게 튈 뻔했던 것을 자신이 막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수사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李부장을 불러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읍니다. 이튿날 대통령을 만났더니, 李부장을 불러, 尹장군 사건에 신경 쓰지 말고 소신대로 일하라, 고 했다고 합디다』 尹必鏞장군이 73년 3월7일에 연행된 직후 朴鐘圭 경호실장은 申範植씨에게 李부장이 곧 물러날 것이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朴대통령은 尹必鏞장군과 그 부하들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중앙정보부내의 李厚洛부장 직계 인맥을 수십명 잘랐다. 감찰실장 李모씨는 구속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 李부장에 대한 朴대통령의 신임은 눈에 뜨이게 약화되어 주요 업무보고를 金致烈차장이 대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군부내 재편성과 金大中 납치

이 사건으로 군부내 육사출신 장교들의 판도도 달라졌다. 정규 1기이기도 한 11기장교들중 진급에서 늘 선두주자였던 이들은 全斗煥 孫永吉 金復東 崔性澤 등 네 명이었다. 尹必鏞사건으로 육사 11기의 선두주자이던 孫永吉준장이 거세됨으로써(최익현.崔翊鉉대령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스스로 전역을 자청, 옷을 벗었다) 全斗煥 장군이 10·26뒤 실력자로 부각되는 길이 마련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회는 해산되었으나 그 인맥은 그대로 남아 12·12사태 뒤 이른바 개혁 주도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했던 姜소장은 몇달 뒤 관구사령관이란 한직으로 가게된다. 姜씨는 李부장이 자신을 견제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姜昌成소장이 관구사령관이 되어 대전에 내려가 있던 1973년 8월 어느날 朴대통령이 충남 도청을 방문하기 위하여 대전에 왔다. 물론 姜소장도 충남의 기관장 중 한 사람으로서 朴대통령을 환영 나갔다. 그날 밤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朴鐘圭 경호실장이었다. 『각하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朴대통령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갔더니 대통령은 정장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朴실장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대통령은 姜장군을 곁으로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그자가 김대중이를 데려오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지? 어제 그자를 불러 혼을 냈어』 그때의 감으로는 朴대통령이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李부장이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한다. 姜장군은 李부장을 퇴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金大中씨 납치사건을 李부장의 단독 결정으로 보는 측에서는 李부장이 尹必鏞사건 뒤 떨어진 신임을 회복하기 위하여(그리고 金大中씨에 대한 대통령의 신경질적 반응에 기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金大中씨를 납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측근진 교체로 10·26의 비극 배태

이 사건의 여파로 73년 12월엔 李부장마저 날아갔고, 金大中납치사건에 기인한 일본에서의 반한무드 속에서 文世光의 살의가 탄생했다. 文의 총격에 의한 陸英修여사의 죽음은 인간 朴正熙의 자제력을 약화시켜, 정권의 종말을 재촉했다. 이 사건으로 朴鐘圭경호실장마저 물러났다. 1년여 사이에 李厚洛·朴鐘圭·尹必鏞·姜昌成 등 네 핵심측근이 사라진 대신 金載圭와 車智撤이 등장하는 길이 트여 10·26사건의 기본구도가 이루어졌다. 이런 연쇄반응의 과정을 짚어보면 『내 사건 이후 그분이 급전직하했다』는 尹씨의 말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 같다.

20년 동안 자신을 충직하게 모신 부하를 말 몇 마디로 꼬투리를 잡아 거세해버린 것은 유신선포 뒤 장기집권체제에 안주하게 된 朴대통령의 신경과민적인 정신상태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형무소 안에서 朴대통령을 많이 원망했읍니다. 군복만 벗기면 됐지 옥살이까지 시키는 것은 너무 야속하십니다고요. 陸여사 피격 소식을 형무소 안에서 듣고 많이 울었읍니다. 그분을 내가 누구보다도 오래 알았고, 육여사의 나라를 걱정하고 부정을 싫어하는 착한 마음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많았읍니다. 내가 풀려난 이후, 朴대통령을 한번도 뵙지 못했읍니다. 저는 계속해서 감시를 받았읍니다. 다만, 충격받은 내 아이들을 기분전환시키려고 외국으로 보낼 때 金載圭부장이 각하와 의논하여 선처해 준 적이 있읍니다』

尹씨는 『朴대통령은 귀가 얇은 것이 흠이었고 그것을 악용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尹必鏞씨는 朴대통령의 진면목인, 소탈하고 겸허한 모습이 권위적으로 보이게 된 것은 청와대 측근들 때문이라고 통탄했다. 『제가 월남에서 돌아 와 보니 골프 치는 모습이 바꿔졌어요. 그 전에는 대통령이 칠 때는 앞 뒤로 두 홀 정도 비워 놓았어요. 그러면 朴대통령은 자신 때문에 밀린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어,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고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골프 코스로 나가시곤 했읍니다. 朴대통령의 인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겸손하고 미안해 보일 수가 없었읍니다. 그런데 월남에 갔다가 와 보니 朴대통령 근처에 사람 그림자는 얼씬도 못하게 해버렸더군요』 권력을 쥔 朴대통령과, 권력을 잡지 못한 朴장군, 두 가지 모습의 인간 朴正熙를 다같이 경험한 尹必鏞씨는 『그분이 군인으로서 일생을 마쳤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