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노동청이 문제 해결에 앞장

도시산업선교회는 이런 여론에 호소하는 투쟁 방식과 아울러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의 노동자들 편을 들어 조합을 조직하려는 끈질긴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상공단 주물단지 안에 있는 신창금속에서 1977년 10월에 임금인상 문제를 놓고 노동자들이 회사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부 노동자들이 회사측에 아부하여 5.5퍼센트의 임금을 올려 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의 임금은 그대로인데 격분, 임금대장의 공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회사에선 거절했다. 노동자들은 봉급봉투를 모아 집계를 냈다. 그 결과 회사에서 갖가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노동자 강봉소와 그 밖의 14명은 12월 15일 부산지역 특수선교회를 찾아왔다. 그들은 또 동래지방노동청사무소에 진정서를 냈다.

12월 27일 산업선교회에선 신창금속의 모회사인 주식회사 태화사장 앞으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건의하는 서신을 보냈다. 산업선교회에선 1978년 1월 15일까지 문제해결이 되지 않으면 태화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통보했다. 1월 10일 회사에선 일부 노동자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임금을 올려준 두 간부를 징계하고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다 같이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그동안 주지 않았던 갖가지 수당의 지급 문제는 여유를 두고 연구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못 받은 시간외 잔업수당 1,600만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고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노동청은 회사에 대해 국·공휴일 수당을 지급하라고 지시했으나 잔업수당 문제에는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꾀했다. 대한노총과 금속노조 부산지부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금속노조 부산지부와 노조결성 문제를 협의, 2월 17일에 결성대회를 갖기로 했다. 그날 40명의 노동자들이 분회를 만들려고 약속대로 시 노동회관에 갔으나 부산지부 간부들은 한사람도 없고 한 직원만이 남아 차비를 주면서 '지부장이 없으니 다음에 날 받아서 하자'고만 했다. 그 뒤 노동자 대표가 몇 번 부산지부에 갔으나 도시산업선교회의 조종을 받고 있다면서 분회조직을 기피했다.

한편 산업선교회에선 회사가 잔업수당 문제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자 회사에 편지쓰기·전화걸기로 항의하자는 전단을 찍었다. 3월1일에는 노동자들이 사회에 물의가 일어나도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회사와의 대결은 임박한 것 같았다. 이때 경찰이 개입했다. 3월 2일 경찰은 하루만 인쇄물배포를 늦춰줄 것을 선교회에 요청해 왔다. 이날 경찰·선교회·회사는 3차 회담을 가졌다. 여기서 3월 10일의 2월분 임금 지급 때 회사가 잔업수당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 액수는 회사와 노동자들이 합의하여 정하기로 했다. 그날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550만원을 주었다. 기본 급료는 3월부터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조건도 힘닿는 데까지 고쳐주겠다고 다짐하여 이 문제는 매듭이 지어졌다.

선교회는 이 사건을 이렇게 분석했다.
▲잘된 점
노동자 대표들의 끈질긴 정신력과 노동자들의 단결.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잘됐고 문제의 핵심을 잘 잡음.
선교회와 협력 관계가 잘 지켜짐.
▲문제점
노동청은 경찰보다도 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투쟁함으로써 100퍼센트의 요구조건 관철은 어려움.
노동조합이 없어 시간을 끌면서 투쟁을 하기가 어려움.
노동조합이 노동자 보호에 한계를 갖고 있으며 당국과 말썽이 생길 만한 일은 기피하고 있음.

김영태 위원장에 대한 비난 유인물 세례

부산 특수선교회는 1978년 아홉 차례에 걸쳐 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한 기도회를 열었다. '구속된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신·구교 노동절 기념 예배' '구속된 조화순 목사를 위한 기도회' 등등 이기도회에서는 꼭 사례보고가 있었다. 참석 인원은 100명에서 500명까지였다. 이런 기도회는 노동자들에게 신앙의 열기를 안겨주었고 노동운동에 기독교 신앙의 순교정신의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다. 의식화를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선교회는 또 1978년에 아홉 번에 걸쳐 노동자 훈련 및 교육을 실시했다. 이 모임엔 현장 노동자뿐 아니라 대학생들과 가톨릭 노동 청년회원들도 참석했다.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토의에서부터 현장문제 보고와 현장문제전략 토의 및 한국 노동문제 강의에 이르기까지 교육내용은 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제에 집중됐다.

이들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을 털어놓고 그 해결방법을 토의하고 경험을 교환했으며 서로의 연대감을 확인했다. 참석자들은 6,7명에서 44명 정도였지만 모두 정예 실무자였기 때문에 교육을 수준과 열기는 높은 편이었다.

'……별책『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느냐』는 최초의 출판으로 숙독하여 본즉 들은 바보다 훨씬 좋은 책입니다. 근로자의 참된 복지 향상과 각 업계의 건전한 육성을 기하기 위하여 매우 유익할 뿐 아니라 산업선교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하여 산업선교라는 괴물이 여러분과 근로자들의 틈새로 스며드는 기회를 주지 말아야하겠으며……'

이것은 1978년 3월 경상남도 조병규 지사가 『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느냐』란 소책자를 각지방과 기업체에 나눠주면서 '안내말씀'으로 쓴 것이다. 그가 괴물로 표현한 도시산업선교는 1978년 2월의 동일방직 사건을 계기로 유신체제 아래에서 빌붙어 오던 어용노동운동 세력에 세찬 도전을 펼치고 있었다. 동일방직사건으로 산업선교회와 숙명적인 적대관계에 놓이게 된 당시 섬유노조위원장 김영태는 1978년 4월 10일 부산지부장 자격으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124명의 명단을 사업장과 노조분회에 보냈다.

'동일방직(인천)에 종사하는 근로자중 불미스러운 집단에 동조하기 위하여 작업장을 이탈하는 등의 소란으로 해고된 근로들의 명단을 별첨(사본)과 같이 통보하니 업무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그들의 재취업을 막으려는 속셈으로 단정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은 김형태에 반격을 가한다. 그들의 기록을 인용하여본다.

노동자의 아버지가 인자하지는 못할망정 어린 딸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우게 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조합을 사고지부로 때려 어용화시켜버린 섬유노조 본조 위원장 김영태는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다. 똥을 먹이고 124명이나 거리로 내쫓은 이렇게 악랄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의 대표로 나설 수 있을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모순됨에 분개한 동일방직해고 근로자 15명은 1978년 5월 18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일을 앞두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추송자양 외 1명은 5월 14일 밤차로 먼저 내려가 현장을 파악하기로 해서 먼저 떠났고, 나머지 13명은 15일 밤 서울에서 밤 10시 30분 특급열차를 탔다. 비장한 각오를 한 이들은 어떻게해서든지 김경태 입후보자를 당선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둠 속을 질주하는 야간열차의 소음소리에 눈을 감았으나 잠이 들기보다는 낯선 지역에 가서 큰 모험을 해야 하는 착잡한 심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새벽 5시 30분 부산역에 도착하여 JOC 본부로 전화를 해서 먼저 온 동료를 만나 JOC 사무실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아침을 먹었다. 점심때쯤 시내로 나와 김영애 선거구인 전포 1, 2, 3, 4동과 부전 1, 2동의 지역을 답사하고 한사람씩 지역을 배당받았으며 빠른 시간 안에 각자 맡은 400부의 유인물을 다 소비할 것과 다 뿌린 후에는 각자 밤차로 올라가기로 의논을 하고 JOC 사무실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몇몇 JOC 의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후 8시 30분쯤 나와 9시 30분부터 각자 맡은 지역을 찾아 집집마다 대문안으로 또는 우체함에 넣으며 떨리는 가슴을 분노로 누를 수 있었다. 상점은 피하고 국민학교 담너머로도 넣고 회사담으로 도 던져 넣었으며 김영태 후보의 벽보 아래에도 놓았다. 11시가 훨씬 넘어 급히 택시를 타고 부산역에 가서 먼저 온 동료들을 만나 우선 10명이 함께 11시 40분 서울행 특급 열차를 타고 올라왔다.

뒤떨어진 나머지 5명 중 김옥섭양과 권분란양이 현장에서 김영태의 하수인인 남자에게 들켜 15일 밤 경찰에 연행되었고 이왕 온 김에 취직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룻밤을 묵은 3명의 근로자와 함께 있은 회원 2명이 다음날인 16일 새벽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부산남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연행된 이들은 주동자를 대라는 경찰의 온갖 협박과 매도 많이 맞았고 볼펜을 손가락에 끼워 비트는 고문까지 당해 이제까지 여러 번 경찰서를 드나들던 중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똥물을 먹고 쫓겨난 이들은 또다시 선거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동료들과 멀리 떨어진 부산교도소 철창 안에서 7명은 또 기한 없는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후회하는 빛은 전혀 없고 경찰서 안에서 김영태가 당선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맥이 풀렸으나 '잘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당선되게 되어 있다. 무효는 모두 그 사람 표로 가게 되어 있다'는 취조 경찰의 귀띔에 또 다른 사회 부조리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한편 동일방직 근로자들이 부산까지 내려와 집집마다 유인물을 돌린 소식을 들은 김영태는 쇼크로 3일간 문화호텔에서 문을 걸어 잠근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조직인 각 공장에 5명씩 선정해 250명의 조직 행동대를 풀어 유인물을 회수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2500장 가량이 회수가 되었는데 지부로 보고된 것은 700부 가량밖에 안되었고 나머지는 유인물을 회수하던 조직대원들의 주머니속으로 넣어졌으니 오히려 역효과를 얻은 셈이다.

부산의 운동가들은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김광일·이흥록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맡았다. 재판때마다 부산의 운동권 사람들은 방청을 갔다. 경찰은 이들이 방청석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미리 사복 형사들을 방청석에 앉혀 자리를 빼앗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과 조화순 목사도 서울과 인천에서 내려와 방청했다. 피고인들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했다.

특수강도로 고소된 형사

1978년 10월 19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추송례에겐 징역 단기 8개월 장기 1년, 김옥섭과 권분란에겐 징역 8개월, 공인숙과 박양순에겐 징역 단기 6개월 장기 8개월, 정인숙과 장춘애에겐 집행유예가 각각 선고됐다. 방청객들이 웅성거리며 부산지법 마당으로 나올 때 가톨릭노동청년회 부산회장이 검은 승용차로 납치돼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이 돌았다. 방청왔던 박상도 일행은 회장이 기관에 연행된 것으로 착각했다.(회장은 스스로 집으로 갔던 것이다) 스무 명쯤이 마당에 퍼질러 앉아 회장을 돌려보내라고 연좌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들은 주례교도소로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면회가자고 일어섰다. 토성국민학교 앞의 버스정류소로 그들은 몰려갔다.

이런 경우가 적반하장이 아니겠는가? 지난 10월 19일 대낮에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내 주례교도소행 버스정류소 보도에서 어처구니없는 활극이 벌어졌다. 박상도씨, 조화순 목사, 유동우씨 등 20여 명이 수감되어 있는 동일방직 여성근로자를 면회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버스를 타려 하는 유동우씨가 멘 카메라를 갑자기 낚아채는 청년이 있었다. '카메라!'라고 외치는 비명을 듣고 이미 버스에 탔던 일행이 뛰어내려왔다. 박상도씨가 이 청년을 향해 '당신 경찰이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들 수십 명의 날강도 떼거리는 주먹을 마구 휘둘러대었으며, 이분들은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였다. 박상도씨가 앞장서서 대항했지만 워낙 상대가 되지 않았고 박상도씨는 길거리에 뒹굴며 '사람 살려'소리쳤다. 이렇게 난폭한 자들이 바로 사복형사들이었다. 박상도씨, 유동우씨, 박정룡씨는 속절없이 이들에게 끌려갔다. 그중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강경하게 맞섰던 박상도씨를 폭력행사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했다. 시비를 건 자도 저들이고, 주먹을 휘둘러댄 것도 저들인데 엉뚱하게 자신을 방어하고자 했던 시민이 구속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한국 권력의 진면목이다. 주례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일방직 여성근로자들은 지금까지 면회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정치범이나 긴급조치 위반자들에는 종종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자신들의 생존권 쟁취를 위해서 애쓰다 선거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갇힌 이 나이 어린 여성근로자들에게 왜 면회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가? 이 근로자들은 수사과정에서 손가락에 연필을 끼우고 비트는 등의 고문을 받았고 재판을 미루고 미루어서 이들을 지쳐버리게 했다. 대낮에 카메라 낚아채는 것이 공무집행인가? 적반하장이란 권력의 개 사복형사들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말이다.

이것은 1978년 11월 6일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낸 성명서 내용이다. 박상도가 구속되자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운동권에서 들고일어났다. 민권단체의 항의성명서가 잇따라 발표됐다. 김광일 변호사는 유동우의 카메라를 빼앗으려다가 부속품을 망가뜨린 서부경찰서 주모형사를 조화순·노경규 이름으로 서부경찰서에 고발케 했다. 죄명은 특수강도였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힘닿는 데까지 그 법을 이용하여 투쟁한다는 것이 김변호사의 방식이었다.

경찰이 정의구현사제단 모임에 참석하려는 송기인 신부를 억지로 차에 태워 빼돌리자 경찰서 간부를 불법감금 혐의로 고발하기도 한 그였다. 10월 30일에는 '구속된 박상도 총무를 위한 농성 기도회'가 중부교회에서 열렸다. '우리도 잡아가라'는 구호를 교회밖에 걸어놓고 30명이 하루 동안 농성했다. 11월 6일엔 YMCA 예식장에서 신·구교 인권강연회가 열렸다. 강사는 함세웅 신부와 김지하 어머니였다. 사례 발표를 한 최성묵·조화순 목사는 모두 박상도의 구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조화순 목사는 격앙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우리를 빨갱이로 모는 저들이야말로 빨갱이다.'고 외쳤다. 이것이 문제가 돼 그는 긴급조치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조화순 목사 석방을 위한 기도회'가 11월 27일 같은 장소에서 또 열렸다.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의 전단배포 사건은 이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이것은 부산의 민주화운동 세력을 자극하고 흥분시켰고 그들을 더욱 단결시켰다. 방청, 기도회, 사례보고 따위 등을 통해 저항의식을 확산시키는 역할도 했다.

정보기관에서 돕기도

박상도는 '앞으로는 자중하겠다'는 각서를 쓴 다음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11월말 석방됐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화순 목사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에서는 김광일 변호사에게도 손을 쓰기 시작했다. 사소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 사실로 걸어 구속하겠다고 한 뒤, 민권운동 변론을 맡지 않도록 당부했다는 것이다.

부산의 정보기관에서 '도시산업선교회의 기업체 침투 상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1978년부터였다. 관할 경찰서 정보과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부산시의 노동대책위원회는 달마다 한 번씩 노동청·경찰 관계자와 회의를 갖고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도시산업선교회 계열의 노동자 동태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웠다.

경찰과 선교회가 반드시 적대관계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보 업무 종사자들은 많은 정보를 수집,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직업의식을 떠난 입장에 서면 비교적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정보기관원과 그가 사찰을 맡고 있는 민권단체 종사자 사이엔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뢰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서로의 입장을 잠시 벗어나 자유로운 상황에서 얘기할 때는 의기투합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 담당 정보부 조정관과 기자, 반체제 목사와 정보형사들 사이에서 가끔 보이는 끈이 선교회와 정보기관원 사이에 이어져 있다고 했다. 이상할 게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이런 끈은 직무수행을 할 때는 언제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연약한 끈이다. 그런 한계는 서로가 알고 있었다. 선교회를 맡고 있는 정보형사들은 선교회가 제기하려고 하는 문제를 미리 알아내 문제의 소지를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다. 부당해고 문제가 생긴 기업체에서 '선교회가 문제로 삼으려 하니 빨리 복직시켜 주라'고 경찰이 압력을 넣는 일도 많았다. 선교회에서 먼저 담당형사에게 문제의 소재를 알려주어 경찰로 하여금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방법도 썼다.

박상도는 1978년에 부산의 정보기관에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됐다. 일부 정보형사들은 '박상도를 키워주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악덕 기업인들이다'고 말했다. 이들 악덕 기업인들은 노동청이나 부산시의 지시에는 꿈쩍도 않으면서 선교회가 개입하면 노동자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일꾼 김형기의 부산 등장

부산의 반유신 지하 학생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김형기는 전주사람이었다. 서울의 대광고교를 졸업했고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새문안교회의 청년대학부 회원으로서 여기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이 교회는 예수교장로회 통합파에 속해 보수적인 색깔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대학부는 매우 진보적이었다. 반유신 투쟁으로 구속되거나 끌려간 적이 있는 회원이 서른 명을 넘었다. 김형기는 대학에서 변론연구회란 서클을 조직했다. 과대표를 했다는 것밖에는 그렇게 드러날 만한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

1974년 4월의 민청학련 사건은 다른 수많은 젊은이들과 같이 그를 반유신의 싸움터로 몰아넣었다. 그는 민청학련의 하부조직원으로 발표됐다. 김형기는 당국의 발표가 있을 때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민청학련의 간부라고 발표된 나상기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죄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었는데 그에겐 징역 15년이란 엄청난 선고가 떨어졌다.

무거운 처벌에 걸맞는 화려한 투쟁의 경력도 없이 스스로의 깨우침에 바탕을 둔 용기있는 행동의 대가도 아닌데 도매금으로 넘어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는 당혹감은 그를 괴롭혔다. 명분있는 옥살이라면 얼마나 보람되겠는가. 김형기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감방을 나가면 반유신 투쟁에 정말 몸바치겠다고 벼르게 된 것이다. 그날은 왔다. 1975년 2월 17일 그는 다른 민청학련 관련자들과 함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감방을 나섰다. 그는 기독교 실무자 교육기관인 협동교육연구원에서 여섯 달 동안 공부하면서 협동조합운동을 연구했다.

1976년 봄 그는 기독교 학생운동의 실무지도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처녀를 아내로 맞았다. 그러니 당장 밥벌이가 다급한 과제로 됐다. 김형기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의 일에 관계할 때 친했던 차선각의 초대를 받고 그해 6월 초순 옷가지와 책이 든 트렁크만 갖고 부산에 왔다. 처음에는 작은 알루미늄공장을 한 친구와 동업으로 경영하면서 반유신 투쟁을 하는 것으로 약속돼 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잠시 후배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빈방에서 아내와 같이 빌붙어 지내는 신세가 됐다. 이런 밑바닥 생활을 몇 달째하고 있는 그를 구해 준 것은 김광일 변호사였다. 그를 서기로 채용하여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게 했다.

김형기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부산에 왔다. 부산의 학원 사회에 민주화운동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 보수교단의 영향권 안에 있는 부산의 기독청년활동을 조직화하는 것. 그는 중부교회의 대학부를 발판으로 삼았다. 이 대학부는 그때 이미 김영일, 조태원, 조성삼, 정외영 등의 활동으로 달구어져 있었다. 김형기는 중부교회의 의식있는 학생이 부산의 학원가 곧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를 재야의 반유신 운동과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조태원, 정외영 들은 많은 대학생들을 중부교회로 데리고 왔다. 이승원, 이성동, 정중근, 서연자, 이태성 등은 중부교회에서 박상도와 김형기의 지도아래 그룹스터디를 했다. 중부교회 이외에도 남부교회의 이상경, 이희섭, 부산대학교내 이념서클의 지도적 인물들인 고호석·이상록·김종세·이호철은 김형기와 유대관계를 굳혀갔다.

김형기는 천성적으로 붙임성이 있고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그는 부산의 흩어진 청년집단을 한덩어리로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특히 서울공대생 최준영이 1977년 7월 제대하여 이들과 어울리면서 청년세력은 새로운 행동방향을 찾게 됐다.

최준영은 기독교청년회 서울지구 회장을 지낸 영리하면서도 성실한 젊은이였다. 김형기는 교회나 학원을 벗어난 제3의 장소에 청년운동의 통합된 구심점을 두려고 고심해 왔었다. 술자리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탈춤연구회를 조직하여 자연스럽게 많은 계층의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방법을 짜내 보았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양서조합의 착상을 김형기가 하게 된 것은 1977년 9월이었다. 협동교육연구원에서 배운 협동조합운동 실무가 그런 착상의 뿌리가 됐다. 김형기·최준영·박상도는 14명으로 협동조합운동연구 그룹을 조직, 석 달 동안 공부에 들어갔다.

'협동조합운동은 18세기 초에 영국에서 기계파괴운동, 차티스트운동, 맨체스터폭동 같은 노동자의 비조직적이고 우발적인 투쟁이 실패로 끝난 잿더미 속에서 싹이 터 자라난 것이다. 1944년 8월 15일 근대 협동조합의 효시인 공정개척자조합이 영국에서 탄생했다. 이조합의 정신은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을 먼저 갈고 닦아 서로 돕는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이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은 영국의 그때 상황과 비슷하다. 민주회복은 시민들의 의식이 먼저 민주화 될 때만 이뤄지는 것이다.'

최준영은 그렇게 주장했다. 스터디 그룹은 양서조합을 시민 민주의식화 운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교화와 학원에서 자라난 민주의식을 사회 속에 널리 퍼뜨리는 것을 뜻했다. 민주의식 전파의 매개체로서 '좋은 책'보다 더 좋은 게 있겠는가.

사회의 민주화운동을 도모하는 양서조합 출범

1977년 11월 16일 발기인회는 부산 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의 정관을 제정했다. 이것의 초안은, 최준영이 신용협동조합의 정관을 본떠 만들었다. 이 땅의 첫 신용협동조합도 부산에서 생겼다. 1960년 부산 중앙성당의 메리 가브리엘 수녀가 '성가신용현동조합'을 조직, 교인들 사이에서 고리채를 내쫓고 돈이 아쉬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이 수녀는 탄광노동자로서 신용협동조합에 몸을 던졌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이 운동을 시작하였다. 정관과 발기문에서 최준영 등은 양서조합운동의 목표를 시민문화운동·시민의식계발·경제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양서의 판매 및 이용을 통하여 부산의 지적 문화적 풍토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병든 곳을 힘차게 개혁해감으로써 협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참다운 인간애가 넘치는 사회를 실현해 가려는 것이다'(발기문)

정관에 따르면 최초 출자금 1천 원과 가입금 1천 원을 냄으로써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조합원은 달마다 1구좌이상을 출자하고 한 권 이상의 책을 협동서점에서 사야 하는데 1구좌는 1천 원. 이 조합은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고 (문호 개방의 원칙), 출자액에 관계없이 조합원 한 명에 투표권은 하나이며(경제 민주주의의 원칙), 정치 및 종교적 중립을 지키고(중립의 원칙), 조합원 교육을 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한다(교육의 원칙)는 원칙에 따라 운영됐다.

이 조합이 창립 총회를 연 것은 1978년 4월 2일 조합이 직영하는 협동서점이 문을 연 것은 4월 22일이었다. 양서조합 이사장으로 떠받들어진 이는 감광일의 고교·대학 동문인 이홍록 변호사였다. 조합이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달마다 15만 원씩을 이 조합에 댔다. 이 조합은 놀라운 속도로 커져 갔다. 일년 반 사이에 조합원은 141명에서 572명으로 불었다. 출자금도 700만원을 넘어 독립 채산이 가능하게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조합원들의 질이었다. 창립때 회원 141명의 직업은 대학생 60명,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대학 졸업생 10명, 회사원 30명, 교수와 교사 18명, 공무원 10명, 변호사 3명, 그밖에 10명이었다. 1979년 10월 현재의 회원 572명 가운데 100명쯤이 대학생이었다. 나머지는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70퍼센트쯤은 기독교인. 남녀 반반씩.

조합은 교육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조합의 목적이 민주의식을 가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 온 조합원은 이틀동안 모두 6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를 졌다. 강사들은 부산 YMCA 강당을 빌어 협동조합의 원리와 역사를 주로 교육했다. 이 조합은 또 조합원들은 10여 개의 소그룹으로 재조직하여 갖가지 사회활동을 펴게 했다. 농촌문제연구회, 노동문제연구회, 탈춤모임, 일어반, 꽂꽂이반, 서예반……

1979년 8월 이 조합이 벌인 갖가지 활동을 보자. 먼저 제8차 새 조합원 가입 교육이 있었고 송정해수욕장에서 이틀간 조합원의 수련회를 가져 송정해수욕장에 조합이 직영한 무지개 탈의장을 두고 조합원의 여름철 이동 사교장으로 운영했다. 농촌 현장봉사 활동, 영수증 모으기 운동(실적1,100만원)이 벌어졌고 조합에선 사진현상소를 직영하여 조합원들에게 싸게 봉사하기도 했다.

양서조합은 저절로 부산의 의식있는 사람들의 복덕방이 됐다. 조합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만나고 하고픈 말들을 털어놓고 정보를 교환하며 좋은 책과 판매 금지된 책들을 바꿔보고 하는 사이에 양서조합은 어느새 정보기관의 눈에 불순분자들이 모이는 단체로 찍혀 버렸다. 조합에서 만들어 조합원들에게 나눠준 양서목록에 판매금지된 김지하의 시집이 끼여 정보기관에 체크당하기도 했다. 조합에서도 애써 정치적 색깔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부산 및 동아대학생들 가운데 김형기 및 중부교회와 긴밀하게 발 맞춰가며 학교 안의 의식화운동을 이끌고 있었던 핵심 멤버들은 일부러 회원이름에서 뺐다. 나중에 회원 정외영이 4·19 선언문사건으로 구속돼 제적되자 협동조합에서 제명시킨 것도이 조합을 비정치적인 순수 협동조합으로 보이려는 뜻에서였다.

이 양서조합은 교회와 학교와 사회에 흩어져 있던 의식 있는 청년들을 다 같이 모으는 광장이 됐다. 김형기는 이 조합이 언젠가는 시민 의식화 운동뿐 아니라 부산 청년운동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꿈꾸었다. 김형기는 부산의 청년운동이 정열과 용기의 면에선 딴 곳에 견주어 못하지 않으나 기획 및 전술면에선 뒤떨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청년운동은 행동하는 그룹과 전략을 짜는 그룹으로 나눠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는 인권재판의 방청학생들을 모을 때도 유인물을 나눠주는 학생들과 실제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그룹을 갈라놓고 움직이게 했다. 기관에 들키더라도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였다.

김형기의 조직력과 기획력은 박상도의 행동력과 짝을 맞춰 청년운동 실무진의 중핵으로서 활기를 불어넣었다. 남을 잘 부추기고 부지런하며 악발이인 양성의 박상도와 계획과 뒷마무리에 능숙한 음성의 김형기는 양서조합의 참여의식을 민중에게 널리 퍼뜨릴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부산 양서조합의 설립에 잇따라 두 해 사이에 대구·광주·전주·마산·울산·서울에도 조합들이 생겨났다.

뭔가 하지 않고는 못배길 기분에서

부산대학교 사학과 여학생 정외영은 '선머슴'같이 보이는 아가씨였다. 그러나 정외영의 마음씨는 남자의 도량과 여자의 싹싹함을 아울러 갖고 있었다. 그 활달한 행동으로 해서 중부교회내 스터디 그룹의 리더가 됐다. 이 모임의 또한 여학생 서연자는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6·25사변에서 두 다리를 잃은 1급 상이용사였다. 원호단체의 일을 보고 있었다. 부산대 의예과 학생 이성동과 재수생 전중근도 문제의식이 강한 젊은이였다. 이들은 중부교회에서 1977년 3월부터 그룹 스터디를 펴고 있었다. 1978년 4월이 다가오자 이들의 마음에는 하나의 강박관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룹 스터디를 통해 갈고 다듬은 문제의식은 필연적으로 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외영은 3월에 부대 신문사로 논문을 하나 써 보냈다. 「4·19의 역사적 성격과 그 전개」라는 원고지 30장 길이의 글이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혁명이란 것은 계속되는 것이다. 정신이 끊어지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4·19의 목적이 다 이뤄지지 못했다면 그것을 완수해야 할 의무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썼다. 이 글이 실릴 리가 없었다. 신문사에선 교정까지 본 원고를 되돌려 주었다. 정외영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

서연자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사방은 이웃에 대한 사람이었다.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이라면 거부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가오는 4·19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문을 연 사람은 스터디 그룹의 한 선배였다. 가장 먼저 이 제안에 맞장구를 치고 나선 것은 전중근과 이성동이었다. 정외영과 서연자도 반대할 리가 없었다.

네 사람은 곧장 실천에 들어갔다. 이성동과 전중근은 「부산대학교 자율화민주설천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다. 등사기와 줄판은 이성동이 구해왔다. 4월 15일 정외영·이성동·전중근은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8절지 종이 한쪽 면에 그들은 선언문을 등사했다. 다음날엔 정외영을 대신하여 서연자가 끼여 역시 여관에서 등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500장의 선언문이 만들어졌다. 네 젊은이는 부산 대학생들 가운데 의식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60명을 뽑아 이 선언문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들은 4월 19일 오전 열시를 데모시간으로 잡았다. 선언문에서 시계탑에 모이자고 써두었다.

4월 18일 그들은 부산대학교 앞 어느 여관에 모였다. 선언문을 뿌릴 시간을 다음날 새벽으로 잡아 두었기에 그들은 여관에서 잠을 자고 일찍 캠퍼스로 올라가기로 했던 것이다. 유인물 뿌리는 책임을 졌던 전중근과 이성동은 4월 19일 새벽에 캠퍼스 안의 길바닥과 강의실 칠판에 선언문의 행동강령을 썼다.
'유신철폐'
'박정권 물러나라'
'긴급조치를 해제하라'

이성동은 매직펜으로 다섯 군데에 냅다 휘갈겼다. 서연자는 아침 8시 30분쯤 이성동이 쓴 구호가 있던 장소로 가 보았다. 모두가 지워지고 303강의실 칠판에 쓴 것만 남아 있었다. 이성동과 전주근은 선언문을 도서관과 변소에 많이 뿌렸다. 둘은 오전 9시까지 계속 뿌리고 다니다가 사복 형사들에게 붙들렸다.

전날 밤엔 여관에 오지 않았던 정외영이 학교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 30분이었다. 그는 지금쯤 선언문이 뿌려져 학교 안이 어수선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도서관과 강의실의 분위기는 착 가라 앉아 있었다. 의예과 교실에 갔더니 이성동이 결석했다고 한다. 일을 벌이기는 했는데 불이 붙지 않은 것이라고 정외영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