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새 박사로 유명해진 元중위가 朴대령에 의해 부관으로 뽑힌 것은 주번 사령을 할 때 사병들의 군기를 단단히 잡는 것을 단장이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장의 첫인상은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가까이서 지내고 보니 전혀 딴 사람이었다. 朴대령은 부하에게 손찌검과 욕을 안하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의 군에선 이것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있었다. 朴대령의 가장 큰 욕은 지휘봉으로 장교의 철모를 가볍게 두드리며 『밥통!』하는 것이었다. 元炳旿에 따르면 담대하게만 보이는 朴正熙는 의외로 소심한 면이 있어 상관들한테 브리핑을 할 때 긴장하여 손을 떨곤 했다고 한다. 담대소심-이것이 그의 성격의 일단이었다.
朴正熙 일가가 동숭동 단간 셋방에서 고사북동의 독채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은 1953년 10월말이었다. 건평이 약20평인 일본식 집이었다. 온돌방으로 개조한 구둘에는 불이 잘 들지 않았다. 방이 세칸에 현관이 붙은 이 집은 부관 元炳旿의 사촌누님 집이었다. 교장 선생인 집주인이 이사를 한 뒤 전세를 주고 있었는데, 元중위의 간청으로 세든 가족을 내보내고 朴대령 일가에게 세를 준 것이었다. 전세금을 낼 돈이 없어 朴대령은 월세를 내기로 했다고 한다.
元炳旿의 기억에 따르면 朴대령의 당시 월급은 쌀 한 가마 값에 못미치는 액수였다고 한다. 나중에 元중위의 누님은 어떤 사정으로 陸英修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했는데 陸英修는 元중위에게 『이야기를 좀 잘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한다(이 집은 지금도 남아 있다. 몇 달 전 기자가 元교수와 함께 찾아갔더니 주인은 朴대통령이 살았던 집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6사단 참모장으로 있던 김재춘(煖ㆅ?대령은 朴正熙의 고사북동 집을 찾아갔다가 생활이 형편없는 것을 보고는 우선 집이라도 한 채 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6사단 지역에는 6·25때 총·포탄을 맞아 쓰러진 나무들이 많았다. 총탄이 박힌 나무를 잘라 몇 트럭을 싣고 춘천에 가져다 놓고, 서울로 가져가기 직전에 헌병대에 들켜 압수돼버렸다. 元부관은 『어느 때 陸여사가 혼자 있을 때 집에 들렀더니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내다 팔려고 정리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그 집에 가면 국수를 자주 내놓았는데 국물에 멸치도 들어 있지 않을 때가 있었다』고 했다.
元중위의 눈에 비친 남편으로서의 朴正熙는 『아내에게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저런 남편 두고 무슨 재미로 살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朴正熙는 아내에게 애정표시를 좀처럼 하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고 귀가할 땐 『영수! 문 열어라!』고 외치며 문을 두드리곤 했다는 것이, 元부관의 말이다.
朴대령은 1953년 11월25일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그 한달 뒤 그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미 육군포병학교 유학생으로 뽑혀 육군본부로 전출되었다. 1954년 1월 朴준장은 대구에서 비행기로 미국으로 향했다. 朴준장이 미국으로 포병교육을 받으러 갈 때 특무대에서 신원 조회를 하면서 사상적 전력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元중위는 朴준장이 화가 나서 『누가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알아? 위에서 가라고 해서 가는 건데, 그 따위로 놀면 차라리 군대를 그만두겠어!』라고 내뱉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朴正熙가 미국으로 떠난 몇 달 뒤 2사단 포병단에서 일하고 있는 元중위에게 陸英修가 인편으로 『쌀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저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배고픔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陸여사가 나에게 이런 구차한 부탁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편 생각하니 나같은 사람에게 부탁할 정도라면 얼마나 다급할까 싶어 26사단 金在春 참모장을 찾아갔지요. 쌀 한 가마와 돈 1만 환을 주더군요』
포병학교장으로 포병인맥 구축
朴正熙는 미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에도 金在春에게 돈을 얻어 갔다고 한다. 朴준장은 여섯 달 동안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자주 했다. 평상시에는 애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朴준장은 술에 취했을 때나 글로써 그것을 표현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朴준장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을 때 미군 당국이 한국인 장교들에게만 식당에서 줄을 서게 하는 데 반발, 식당에 가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다.
1954년 6월27일 귀국한 그는 제2군단 포병단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를 데리고 간 것은 2군단장 張都暎소장이었다. 張장군이 9사단장으로 있던 1950년 10월에 대전에서 헤어진 뒤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 것이었다. 「하루는 군단 휼병참모가 밤에 나의 숙소를 찾아 와 朴장군은 청빈한 것이 지나쳐 가족들이 아직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집을 하나 구해 주라고 했는데 朴준장이 곧 다른 데로 떠나게 되었다. 그 얼마 뒤 서울에서 丁一權총장을 만났을 때 자리가 비게 되는 5사단장에 광주 포병학교 교장이던 朴장군을 추천했다」(「장도영(張都暎)회고록」 신동아 84년 7월호).
朴正熙준장은 1954년 10월18일 제2군단 포병단장에서 광주 포병학교 교장으로 전보되었다. 포병학교 교장시절 부교장은 鄭인완 대령(육군준장 예편·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역임), 교수단장은 육사 5기출신 최철(崔哲)중령(한인 컨트리 클럽 사장), 항공대장은 역시 5기출신 이원엽(李元燁)중령(소장 예편·감사원장 역임)이었다. 육사 8기 출신 홍종철(洪鍾哲)중령(뒤에 문공부 장관)은 학생대장, 교무처장은 이낙선(李洛善)소령(상공부장관 역임)이었다. 광주 상무대 안에 있었던 포병학교는 사단 경비행기 조종사들에 대한 교육도 맡고 있었다.
洪鍾哲, 李洛善, 李元燁 등은 뒤에 5·16거사의 핵심 멤버가 된다. 군내 朴正熙인맥은 대강 네 가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육군정보국의 비공식 문관시절에 데리고 있었던 金鍾泌 등 육사8기 출신, 그가 육사 중대장 시절에 가르쳤던 金在春 등 육사 5기 출신, 포병단장 및 포병학교 교장 때 알았던 문재준(文在駿) 등 포병장교 출신들, 동기인 육사2기 출신자 그룹이 그들이다. 이밖에 그의 직속 참모로 일했던 윤필용(尹必鏞) 등 측근 그룹이 있다. 朴준장은 일단 함께 근무했던 부하나 상관들을 자기쪽 사람으로 만들어놓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朴正熙의 사람 쓰는 스타일을 잘 보여 주는 것은 운전병과 연락병의 경우다.
인간차별을 않는 성격
이타관(李他官)하사는 포병학교장 朴준장의 운전병으로 뽑힌 뒤 10·26 때까지 25년 동안 줄곧 그의 운전수로 일했다. 朴교장은 광주시 명륜동에 있는 일본식 건물의 관사에서 살았다. 근혜, 근영 두 딸을 데리고 朴正熙부부는 모처럼 안정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李他官하사는 관사에 있는 탁구대에서 朴준장 내외와 탁구도 자주 쳤다. 朴준장은 운동신경이 꽤 발달하여 탁구를 잘 쳤다고 한다. 이때 연락병은 박환영(朴煥永)이었다.
그도 10·26 때까지 신당동 집을 지키며 대통령의 개인 심부름을 했다. 李他官은 두 사람이 그토록 오래 충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과 陸여사가 인간 차별을 하지 않고 한 가족처럼 대해주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朴장군은 술을 마시러 갈 때는 무작정 바깥에서 기다리게 하지 않고 꼭 『몇시에 다시 오라』고 배려하곤 했다는 것이다. 운전병과 연락병은 관사의 한 방에서 같이 기거했다. 陸英修가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陸英修의 음식맛은 약간 싱거운 것이 특징이었고, 朴준장은 주로 채식을 했다고 한다.
1955년 7월1일 朴正熙는 제5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朴正熙는 비로소 전투부대의 지휘관이 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사상적 의심이 어느 정도는 가셨다는 증거였다. 朴준장은 먼저 강원도 양구를 향해 떠났다. 5일 뒤 朴준장이 서울에 셋방을 얻어두었다는 기별을 보냈다. 이삿짐은 기차 화물칸에 실어보내고 李他官이 몰고 온 드리쿼터에 陸英修는 어머니(이경령)와 자매를 태우고 서울로 떠났다.
李他官은 이렇게 기억한다.
『서울에 와 보니 노량진역 앞의 셋방이 아직 비지 않았어요. 저는 노량진역에 세워둔 화물칸에서 3일 밤을 잤습니다. 陸여사는 오빠 육인수(陸寅修)씨 집으로 가서 자고요. 3일 뒤 짐을 우선 청량리 역 근처의 국민주택에 살고 있던 金鍾泌씨 댁으로 가져가 맡겨 두었지요. 5일쯤 지나서 입주를 했습니다. 김인수라는 운수업자의 집 문간방에 세들었는데 부엌이 없었습니다. 저와 연락병이 부엌을 급조했지만 아궁이가 현관 마루 밑에 있어서 솥을 걸 데가 없었습니다. 풍로를 사다가 남비로 음식을 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尹泌鏞의 증언 : 알수록 무서운 분
이 노량진 생활이 朴正熙·陸英修부부의 생애에서 가장 비참했다고 朴준장의 장모 이경령은 뒤에 회고한 적이 있었다. 『방에는 불도 들이지 않고 방바닥에서 물이 줄줄 나서…그때 군인의 비옷인 고무로 만든 장옷을 방바닥에다가 깔면 축축하게 누기가 차서 도무지 앉지도 눕지도 못하여 밤이나 낮이나 서성거리고, 밥이라고 풍로에다가 해서 끼니라고 때우고, 그때 참말로 고생을 말없이 하고요, 손녀딸 근혜는 아파서, 울곤 했어요』
5사단장 시절 朴正熙준장의 참모들 면면을 보면 부사단장 崔재홍 대령, 참모장 장태명(張泰明)대령(준장 예편), 정보참모 차규헌(車圭憲)중령(대장 예편·교통부 장관), 군수참모 윤필용(尹心鏞)중령(뒤에 수도경비사령관), 작전 참모 李근섭, 인사참모 조천성(曺千成)중령(소장예편) 등이었다. 연대장 중엔 나중에 그의 생명을 빼앗은 김재규(金載圭) 대령도 있었다. 朴준장은 고향도 같고, 육사동기이기도 한 金載圭를 끔찍이 아꼈다는 것이 李他官의 기억이다. 10·26 때 범인이 金載圭란 이야기를 듣고는 『모를 것은 사람 마음이구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朴正熙준장은 다른 부대에 있던 金載圭대령을 불러 연대장으로 두었던 것이다.
尹必鏞중령(전 수도경비사령관·도로공사사장)은 6·25발발 때부터 전선에서 줄곧 근무했다. 소대장에서 대대장까지 승진할 동안 전투지역만 따라다녔다. 1950년 여름 3사단 소속으로 포항지역에서 전상을 입고 북진 때는 참여하지 못했다. 1·4후퇴 때 5사단에 복귀했다. 朴正熙준장은 사단장으로 취임, 대대장이던 尹준령을 군수참모로 기용했다. 당시의 사단운영은 그 80%가 군수관계 업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부정의 온상이라고 비판의 과녁이 되기도 했다. 朴준장이 생면부지의 尹중령을 선택한 것은 5사단의 사정을 잘 알고, 부정에 오염되지 않은 장교라고 보았기 때문인 듯 하다.
尹중령은 朴사단장을 처음에는 너무 잘다고 보았다. 尹중령은 스케일이 큰 전임 金鍾甲사단장과 비교가 되더라고 했다. 金사단장은 숙소에서 잘 때 부하가 뛰어가 『지금 ○○연대가 무너져 후퇴하고 있습니다.』고 보고하면 『알았어, 가봐!』라고 잘라버리곤 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었다. 얼마 뒤 부하가 또 달려가 『○○연대도 무너졌습니다』고 보고하면 金준장은 작전지도에다가 빨간 줄을 죽 그은 뒤 『여기까지 후퇴할 때까지 다시는 나를 깨우지 마라』고 호통을 치고는 쿨쿨 자버리는 것이었다. 전투에 무심해서가 아니라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해버리는 결단이었다고 한다.
韓丙起의 증언 :『누가 부관이야!』
朴사단장은 매사를 꼼꼼히 따졌다. 결재서류를 갖다 놓으면 금방 사인하지 않고 한 3일 묵혔다. 답답한 尹중령이 『그 서류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면 朴사단장은 슬쩍 수치 하나를 묻는 것이었다. 적당히 대답하면 朴준장은 『그래? 내가 대강 훑어보았는데 좀 다르던데』라면서 서류를 딱 펴 놓는 것이었다 냉엄하게 보이던 朴준장에 대한 尹心鏞중령의 인상은 곧 「자상한 분」이란 인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래 곁에서 모실수록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을 굳히게 됐다. 朴正熙가 5사단장으로 있을 때, 이 부대에서도 여느 사단처럼 나무를 베어 민간인들에게 팔아넘겨 부대운영비나 장교생활비에 보태 쓰고 있었다.
정부에선 산림도벌의 엄벌을 다짐했지만 현지 관청에선 장교들의 박봉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눈감아주고 있었다. 다만 나무를 자를 때 그루터기를 남기지 않고 싹둑 잘라 흔적을 보이지 말도록 부탁하곤 했다. 朴사단장은 산비탈에 베고 남은 밑둥치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尹중령에게 지적, 『저것들을 빨리 없애버려라』고 했다. 며칠 뒤 같은 장소에 들른 朴사단장은 지시가 이행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다시 尹중령에게 지시했다. 尹중령은 이 두번째 지시도 잊어먹었다. 세 번째 그곳에 들른 朴준장은 일부러 등을 돌려 그루터기들을 외면한 자세에서 尹중령에게 전혀 다른 화제를 꺼내 이야기했다. 尹중령은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것보다도 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는 생각이 몸에 배어왔다.
사단장으로서 朴正熙의 양곡에 대한 시책은 이러했다고 尹心鏞 당시 군수참모는 증언했다.
『그때 장교들 월급은 담배값도 못 댈 정도였습니다. 장병급식용 양곡에서 쌀을 빼내가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곡이 1군 사령부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사병들한테 들어가기까지 중간중간에서 횡령되는 바람에 말단부대에 도착한 쌀 가마니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단장들은 나는 눈감아버릴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이 말엔, 만약 재수 없게 적발되면 난 모르겠다는 뜻도 들어 있는 거지요. 뒤에 7사단장을 하실 때 그분은 이 문제를 양성화했습니다. 쌀 한 가마에서 2㎏식 떼내도록 했습니다. 1㎏은 사단의 운영비나 장교보조금으로 쓰고 1㎏은 당시 병참부장이 결손낸 것을 충당하도록 했어요』
1953년 6월에 통역장교로 임관한 한병기(韓丙起.캐나다 대사 역임)는 제 5사단에 배속되었다가 사단장으로 부임한 「미래의 장인」을 만나게 되었다. 사단장 전속부관이 본부사령으로 옮겨가자 朴사단장은 韓중위를 면담한 뒤 전속부관으로 임명했다. 韓丙起는 사단장이 워낙 엄격해 처음엔 이런 분 밑에서 부관 일을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韓丙起중위는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늦잠을 자는 편이라 누가 깨워주지 않으면 지각을 하곤 했어요. 사단장 관사에서 저는 연락병과 함께 잤는데 꼭 연락병이 흔들어 깨워야 일어나곤 했어요. 어느 날 연락병이 깨우는데, 사단장이 기다리고 계시다고 해요. 후다닥 일어나 군화 끈도 안 매고 마후라는 손에 들고 뛰어나가니 사단장께서 지프차에 오르시지도 않고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디다. 저의 자리가 뒷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안 타면 사단장이 바깥에서 기다려야 해요. 허겁지겁 지프차에 타긴 했는데 송구스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뭐라고 나무라시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겠는데 그분은 한 마디도 안 하셔요. 그런데 며칠 뒤 꼭 같은 실수를 제가 했습니다. 허겁지겁 지프차에 타니까 朴장군께서는 딱 한 마디를 하십디다. 임마, 누가 부관이야!』
구상(具常)은 영남일보 주필 시절에 3군단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군단장 송요찬(宋堯讚) 중장은 구면인 具씨를 위해 술자리를 베풀어 주었다. 이 자리에는 朴正熙 준장(5사단장) 등 네 명의 장성들이 참석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가 나왔다. 朴준장은 일본의 한시를 읊었다. 옆에 있던 石모 소장이 『일본 것을 좋아한다』고 빈정댔다. 石소장이 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朴준장은 벌떡 일어나더니 具씨를 향해서 소리쳤다. 『구형! 갑시다. 이런 속물들과는 술 못 마시겠어요!』 具씨가 깜짝 놀랐다.
宋중장, 石소장 등 상관들까지 속물이라고 매도한 朴준장의 기세에 혀를 내둘렀지만, 동조할 수는 없었다. 『아니, 내 옆에 이런 미희가 있는데 내 어찌 자리를 뜰 수 있겠오』 朴준장은 휑하니 혼자 나가버렸다. 다음날 具씨는 걱정이 되어 朴준장에게 「혹시 宋중장한테서 당하지 않았나」고 물어보았다. 朴준장은 『별 일이 없었다』고 하더란 것이다. 이즈음 朴장군이 술자리에서 자주 읊었던 일본 한시가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대결전을 노래한 시인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말채찍 소리도 고요히 밤을 타서 강을 건너니 새벽에 대장기(大將旗)를 에워싼 병사떼들을 보네」(鞭聲肅肅夜渡河堯見千兵擁大牙).
具常은 5·16의 아침에 朴正熙소장이 군사쿠데타의 지휘자란 이야기를 듣고는 그가 문득 술김에 응얼거리던 이 한시 귀절이 연상되더라는 것이다. 밤을 타서 한강을 건넌 朴소장과 그 시의 내용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것을 보고는 朴장군의 가슴 속에서 자라왔던 야망과 집념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더라는 것이다.
폭설로 70여명 떼죽음
1956년 초봄에 강원도 일대를 강타한 폭설은 2∼4m의 적설량을 보인, 기록적인 것이었다. 尹心鏞 당시 중령은 『눈송이가 주먹만 했고 눈이 쌓여 쑥쑥 올라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이 폭설로 朴正熙준장의 사단에선 70여명이 떼죽음했다. 이 떼죽음은 그때의 군대 사정을 엿보게 하는 성격의 사고였다. 토치카나 영구막사에 있었던 장병들은 희생되지 않았으나 숯을 굽는다고 가건물을 지어 잠자던 사병들은 지붕이 무너져 많이 죽었다.
이 숯은 물론 장교들이 팔기 위해 시켜 굽던 것이었다. 또 다른 사고는 도망병 때문에 일어났다. 도망병이 발생하면 장교가 문책을 당하니까 장교가 상부로 보고는 하지 않고 20여명의 사병들을 데리고 나가 도망병을 붙들었다. 큰길로 오면 헌병 검문소에서 발각될 것 같아 산길을 돌아 귀대하다가 눈이 쏟아져 몰사한 것이었다. 폭설로 고생했다고 1군사령부는 3사단장 丁來赫과 5사단장 朴正熙에게 표창장을 주려고 했다.
朴준장은 『부하들을 떼죽음시켜 놓고 무슨 낯짝으로 상을 받겠나』라면서 부사단장을 대신 보냈다. 朴준장은 장교처우가 나쁜 것은 李承晩의 군 통제수단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모든 장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두면 특무대가 언제든지 잡아넣을 수 있어 이것을 약점으로 잡아 군을 손아귀에 집어넣고 있을 수 있다는 풀이였다.
그때 5사단의 미 고문단장은 존패빅 대령이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40대 장교였다. 한국인 장병들에게도 결례를 하지 않을 만큼 「사람이 된」미군이었다. 韓丙起부관에 따르면 패빅 대령은 사단장을 굉장히 어렵게 여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사단장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애쓰는 편이었지만 朴준장이 그를 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별다른 갈등 없이 잘 지낸 편이었다.
朴正熙는 양구의 사단장 숙소에서 주로 지냈고, 집에는 두달에 한번 정도 들렀다고 한다. 토요일에 나와 일요일엔 돌아가는 나들이었다. 노량진 집은 단간셋방이라 운전병 李중사는 잘 데가 없었다. 그는 집 바깥에 세워 둔 지프 차 안에서 담요를 덮고 자는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추웠다. 부엌 아궁이 곁에서 陸英修와 함께 불을 때면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 간혹 여관이나 친척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다. 순전히 陸英修의 힘으로 朴준장이 내 집을 마련한 것은 1956년 4월이었다.
충현동의 2층 목조건물. 연건평 30여 평의 낡은 일본식 집이었다. 尹心鏞중령은 陸英修가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보고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 달라고 했다. 그 뒤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도 안 주고 다 팔아 생활비를 마련할 만큼 생계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元炳旿중위가 이 무렵 충현동으로 朴준장을 방문한 어느날 朴正熙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논을 하더란 것이다. 근혜양이 다니는 국민학교에서 잡부금을 거두는데 이걸 내야 하느냐, 안 내야 하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元중위는 『교사의 사정이 오죽 어려우면 그러겠습니까. 남들과 같이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부정선거에 소극적 저항
1956년 5월15일의 3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군단에서 5사단 쪽으로 부정선거 지령이 내려왔다. 朴준장은 참모회의를 소집,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이 따위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흥분했지만 『명령은 명령이니까 복종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었다. 대세는 불복종쪽이었다. 朴준장은 이런 말로 결론을 짓더란 것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韓丙起의 증언이다. 『지금부터 선거에 관한 한 나는 사단장이 아니다』 朴준장의 이런 「비협조」가 사단에 파견된 특무대원에 의해 상부로 보고되었다.
宋堯讚군단장은 직접 5사단에 내려와 사단장 대신 예하 부대들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독려했다고 한다. 투표용지에 누구를 찍었는지를 투표소에 입회한 상관에게 보이고 투표하도록 하고, 장교가 높은 자리에서 사병의 기표장면을 감시하는 등 공개적인 부정투표가 지령되었다. 투표를 앞두고 5사단 사령부에선 모의투표를 했다. 신익희(申翼熙)후보가 90%이상을 득표했다. 尹心鏞 당시 중령은 『朴준장이 모의투표결과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분은 한번도 부정선거를 부하들에겐 지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무대에 의한 부정선거를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특무대를 사단장보다 더 무서워할 때 였다』고 했다. 尹心鏞은 『그때는 그런 소극적 방법으로 저항한 사단장은 그분 뿐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李承晩의 득표율은 99.9%정도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감시가 덜했던 사단 사령부에선 득표율이 과반수를 밑돌았다.
朴正熙는 李承晩대통령에게는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으나 이기붕(李起鵬)에게는 가끔 지독한 욕설을 퍼붓곤 했다. 1956년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온 李起鵬이 낙선했다는 뉴스가 라디오를 통해서 나오자 朴正熙는 『저 따위 ××가…』라고 거친 욕설을 하더라고 韓丙起는 말했다. 선거가 끝나자 朴준장이 무사할 수 없을 것이란 소문이 쫙 퍼졌다. 더구나 이때 5사단에서 탈영사건이 났다. 장교 한 명과 하사관 2명이 사단장 앞으로 편지를 써 놓고 달아나 버렸다. 그 요지는 「저희들은 사단장 각하를 존경해 왔습니다만 이번 선거의 작태를 보고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살 마음도 나지 않고 처자식을 볼 면목도 없습니다」는 것이었다.
朴준장은 이런저런 일로 5사단장에서 해임되고 육군대학 입교를 명령받았다. 장성급이 학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좌천성 입교였다. 朴준장의 사단장 이임식은 문책성 인사답지 않게 성대했다고 한다. 宋堯贊군단장이 참석했고, 朴준장이 1군사령관에게 이임 인사를 갔을 때는 백선엽(白善燁)대장이 준장을 데리고 사열까지 받도록 하는 특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朴正熙 준장을 달래려는 제스처 같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