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들 「아침이슬」열창

10월2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형사지법 대법정. 방청석에는 고려대 李정훈 피고인의 어머니 金英姬씨(50)와 부산에서 올라온 고려대 오태헌(吳泰憲)피고인의 어머니 이판금(李判今)씨(50)가 맨먼저 와 앉아 있었다. 둘은 가족들의 제복처럼 된, 사랑과 관용을 뜻한다는 보라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5분쯤 지나서 金民錫피고인의 어머니 金春玉씨(55)가 나타났다. 외국어 학원을 경영하는 金씨는 이 재판을 계기로 아들보다도 오히려 더 극성으로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면서 피고인들을 옹호하는 「투사」로 돌변한 사람이다.

金씨는 가방에서 까만 리본을 꺼내 먼저온 학부모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들은 옷고름에 그 리본을 달았다. 피고인석에는 서너 명의 교도관에 에워싸인 咸雲炅피고인만이 먼저 들어와 혼자 앉아 있었다. 키가 아주 작은 그의 온몸을 똘똘 동인 포승의 매듭이 등뒤에 붙어 있었다. 매듭이 어떻게나 큰지 咸군이 등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곧 다른 피고인들이 들어와 조용하게 앉았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이 그들 속에서 합창으로 울려나왔다.
교도관들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아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까지 열창을 할 수 있었다.

이어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2시를 넘자마자 수십명의 교도관들이 들어와 방청석의 앞과 양쪽에 늘어섰다. 방청석이 에워싸인 형국이었다. 『일어나십시오!』란 정리의 구령과 함께 3명의 재판부가 들어와 앉았다. 변호인석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李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러 확인한 뒤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했다. 이때 咸雲炅피고인이 발언기회를 요구했다.

재판장이 승낙, 마이크를 잡은 咸피고인은 『먼저, 교도소에서 많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긴 기간을 구형해주신 검사에게 감사드린다』고 서두를 뗐다. 그리고 재판에 「임하게」됐던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해 갔는데, 말이 느리고 조리가 약해 머리에 남을 말이 없었다. 5분쯤 듣던 李재판장은 『피고인 앉아라』고 명령, 발언을 중단시켰다.

훈계에 박수로 대답

『오늘은 이 재판부가 이야기하는 날이다. 지금부터 이 사건에 대해 훈계하겠다』李재판장은 미리 준비한 훈계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형 날에는 대소동을 벌였던 학생 피고인들도 숨을 죽이고 들었다. 훈계문이 바로 그들 자신을 겨냥한 것이었으므로 우선 호기심이 앞서 항의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낭독되는 훈계문을 정신없이 받아 적는 기자들의 볼펜 구르는 소리만이 사르륵사르륵 했다.

훈계 뒤에는 판결 이유의 요지 설명이 잇따라 낭독됐다. 쟁점이 됐던 국가 보안법 부분에서 유죄일 뿐 아니라 형량 또한 만만치 않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훈계문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 내용은 논쟁적이고 공격적이었다. 피고인들을 위에서 척 내려다보는 자세가 아니라 같은 차원에서 조목조목 따지며 나무라는 수준이었다. 별 감정 표현 없는, 차분한 낭독이 약20분만에 끝났다. 양형 선고가 시작됐다.

『함운경 징역7년, 자격정지3년, 김민석 이정훈 징역5년, 홍성영 장영승 박중하…징역3년, 전진숙 징역2년에 형집행을 3년간 유예한다』『피고인들은 앞으로 7일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는 재판장의 안내가 끝나자마자 정리가 『일어나십시오!』라고 소리쳤다. 피고인들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재판부는 박수를 받으면서 퇴정했다. 누가 보아도 비꼬는 박수였다. 40대 재판장의 훈계에 대해 20대 학생들은 박수로 대답했다. 훈계의 대상이 일반 국민들이 아니고 이들 피고인들이 틀림없다면 그 효과는 일단 실패였다. 학생들은 퇴정하면서 우리 승리하리라』를 지붕이 떠나갈 듯 합창했다. 『타도하자』등 구호도 터졌다. 절규로 시작된 1심 재판은 절규로써 막을 내렸다.

훈계문의 파문

李宰勳판사는 신문의 「훈계문」이란 표현이 좀 거북하다는 뜻을 밝혔다. 선고일에 피고인들이 출정을 거부할 경우, 훈계내용을 문서로 전달하려고 미리 타자를 찍어 복사를 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날 피고인들이 출정했으므로 그걸 법정에서 낭독하게 된 것이며, 복사해둔 것은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공판이 끝난 뒤 나눠준 것인데 「훈계문」으로 신문에 실려 본뜻이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훈계문 낭독을 놓고 한동안 왈가왈부했다. 판사의 즉석훈계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미리 준비된 체계적 훈계는 일찍이 없었다. 「훈계」란 말 속에는 피고인들을 유죄인으로 본다는 전제가 숨어있으므로 형 확정 이전의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된다 등등의 반론이 일었으나, 훈계문은 그 내용으로 비판해야지 형식문제로 따질 것까지는 못된다는 얘기가 중론이었다.

이 훈계문에는 李宰勳판사의 세계관이나 시국관, 그리고 법에 대한 생각이 아주 솔직하게, 너무나 인간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글은 법정에서 낭독됐고, 그 요지는 모든 신문에 다 실렸으므로 사적인 훈계의 범위를 떠나 공문서와 같은 자료가 됐다. 따라서 아주 엄격한 분석과 검증을 받아도 『말꼬리를 잡는다』는 불평을 할 수 없게끔 李宰勳판사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훈계문의 주요대목과, 그에 대한 조승형(趙昇衡)변호사(미국 문화원 사건 변호인단의 대표)의 비판을 나란히 소개한다.

훈계문은 변명인가?

李宰勳 : (학생들이 7월15일 제1회 공판에서 광주사태의 진상규명을 공판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한 데 대하여)정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광주사태는 그 당시의 국군통수권자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그 상황에 따라 적의대처한 통치권의 행사로서 이 재판의 심판대상이 아니다.

趙昇衡 : 학생들의 주장은 광주사태의 진상을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지 통치권 행사의 옭고 그럼을 이재판에서 결정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재판장의 답변 초첨이 틀렸다.

李宰勳 : 함운경 피고인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은 판결에 의하여 그 유무죄가 판별날 것이나, 이는 동인이 용공분자이거나 좌경된 것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북괴를 이롭게 한 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기준에서 판단될 것이다.

趙昇衡 : 재판장은 용공분자가 아니라도 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함운경 피고인이 유죄선고를 받은 것은 「북괴를 이롭게 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국 용공이란 얘기가 아니고 뭔가.

李宰勳 : (9월25일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변론제한이 심하다고 항의한 데 대하여) 광주사태에 대한 발언은 그것이 미 문화원점거농성의 동기 부분이고, 그에 따라 필요한 부분은 모두 청취하였고, 일부 변론이 제한된 부분은, 김재규에 대한 재판이 속결되어 졸속으로 집행된 데 대하여 피고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김대중에 대한 재판과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으로서 그것이 이 재판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의 신문사항은 변호인들이나 피고인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 재판과정을 이용하려 한 것으로 보아 신문을 제한한 것이다.

趙昇衡 : 재판장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김재규, 김대중 운운하는 신문사항은 재판장에게 변호인단이 미리 낸 신문사항 요지서에는 적혀 있었다. 그러나 신문할 때는 그 부분을 빼버리고 묻지 않았다. 재판장이 제한을 해서 뺀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논을 해서 빼버렸던 내용이다. 재판장은 변론 제한의 사례를 이 두가지 예만 들어 설명함으로써 변호인단의 정치적 이용을 막기 위해 제한을 한 인상을 주려 하고 있다. 대부분의 변론제한은 광주사태와 관련된 것, 「학살」「정권」등 용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고 있다.

李宰勳 : (광주사태에 대한 증거채택의 부당성 주장에 대하여) 광주 사태는 이 사건 심판대상이 아니고 동기부분일 뿐이므로 당 재판부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趙昇衡 : 양심범의 재판에서는 동기나 정상이 형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광주사태를 조사하지 않고 피고인들의 동기를 어떻게 알 것인가. 李재판장은 공판도중에 광주 사태에 관한 신문을 제한하면서 『예,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고했다. 조사도 하지 않고 알고 있다니 유죄에 예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이 재판의 최소화를 기정사실화하자는 얘기다.

『실정법만 제대로 해석해도』

李宰勳 : (미국측 증인 채택신문을 기각한 데 대해) 그들의 증언이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무죄의 판가름을 하는 것이면 절차의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조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들 및 변호인들의 법률적 주장이 추정승낙이나 사후승낙이 있었다고 본다는 것으로서 이는 정상사유에 불과한 것으로 채택하지 아니한 것이다. 치외법권 지역을 점거 농성한 것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서, 통치권의 차원에서 판단되어야지 상대국 외교관의 의견에 따라 피고인들에 대한 정상에 있어서 크게 좌우될 성질이 아니다.

趙昇衡 : 학생들이 미국 문화원 안에서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대해선 학생들의 주장 이외엔 아무 증거가 없다. 비폭력적으로 행동하면서 대화에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측에서 증인이 나와 이 부분에 대해 확인을 해 주어야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을 게 아닌가. 증인으로 나오기 힘든다면 사실 조회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주거침입죄에서는 건물 관리자의 처벌여부에 대한 의사가 형량을 정할 때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워커 대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처벌의사가 없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었다.

학생과 던롭 참사관 사이에서 작성된 「던롭 각서」는 경찰이 압수했는데, 검찰이 이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 각서는 학생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데, 이의 제출명령신청도 재판장은 기각했다. 이런 것으로 봐 학생들에게 유리한 증거는 조사하지 않고 불리한 증거만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그것은 불공평한 재판을 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사표명이기도 했다. 치외법권 지대를 점거했다고 특혜를 받아도 안되지만 특별히 나쁜 대우를 받아도 안된다. 미 문화원 점거 보다도 행동이 훨씬 과격했고, 문화원 피고인들처럼 자진해산을 하지 않고 강제연행됐던 민정당 점거 농성 피고인들도 모두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지 않았던가.

李宰勳 : (재판부에 독자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재판이나 판결은 자연법적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물이 아니라, 어떠한 범법행위에 대하여 실정법을 적용함으로써 도출되는 현상적 결론일 따름이다. 재판은 혁명이 아니다. 피고인들이 확신에 의하여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기소된 뒤에는 자신들이 부인하고 있는 그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한다. 피고인들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의사(義士)로 자처하고 있는바, 역사적으로 의사가 재판받지 아니한 예가 있던가.

趙昇衡 : 이 재판에서는 자연법 이야기가 나올 필요도 없다. 김재규 재판 때처럼 저항권 이론이 나올 곳도 아니다. 실정법 정신을 잘 살렸어도 그런 선고는 나올 수가 없다. 학생들은 의사이기 때문에 재판을 거부한게 아니고 사법부가 집권층의 시녀가 됐다고 통탄한 나머지 재판을 거부한 것이다.

『정치주장 하면 학생신분 떠나』

李宰勳 (변호인을 돌려 달라는 주장에 대하여) 변론의 막바지에 이르러 법률적 이유 없이, 피고인들을 위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특정 변호인1인에 대한 기소를 이유로 나머지 20명의 변호인 전원이 피고인들에게 선택의 여유를 주지 아니한 채 사임해 버린 것은 변호사 윤리의 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지극히 유감스러운 문제다. 국선변호인들이 다행스럽게도 피고인들의 뜻을 모두 수렴하고 있으므로 당 재판부는 이를 다행하게 생각한다.

趙昇衡 : 변호인들의 명예감정을 훼손시킨다는 이야기고 사실과 다르다. 피고인들에게 선택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날 아침 변호인들이 사임을 결의한 뒤 휴정중에 피고인 전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자네들이 우리 변호를 원한다면 사임결의를 번복하겠다고까지 했다. 피고인들이 상의를 하더니 咸雲炅군이 대표로 나서 사임해 달라고 했다.

바로 그날 나는 사건관계 서류 일체를 국선변호인 尹鍾洙씨에게 넘겨 주며 브리핑도 해 주었고, 내가 준비해둔 변론요지서도 인계했다. 尹변호사는 나와 같은 건물 안에 있어 매일 코피타임 때마다 이 재판진행 과정을 이야기 해주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일관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변론이 충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재판장의 책임이다. 재판장은 사선변호사가 사임한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오전을 구형날로 지정했다. 국선변호인들이 무슨 수로 이틀 동안 피고인들을 만나고 변론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 20명의 피고인들을 만나는데만 최소한 3일이 걸린다. 이례적으로 서둔 이런 진행이 변호권을 사실상 박탈한 것이다.

李宰勳 : (지식인은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지식인은 신분에 상응하여 행동해야 하고,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상당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어찌 학생의 신분을 가진 피고인들이 정치의 복잡성, 국가간의 상대성을 알겠는가. 정치적인 주장을 하면 이는 벌써 정치인이지 학생은 아닌 것이다. 그때부터는 학생의 신분은 떠난 것이다. 다수의 의사를 평화적으로 표출하는 시위는 우리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로서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폭력적 데모는 어떤 민주주의도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데모는 민주주의와 친하지 못하다.

趙昇衡 : 재판장은 법률을 크게 오해하고 있다. 군인이나 법관의 정치활동은 법으로 규제되지만 대학생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투표를 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정치활동인데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들에게 정치적 주장을 하지 말라니, 교수나 총장이 그러면 이해해 주겠지만, 법관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 정당법은 대학생들의 정당가입도 막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정치는 오염물질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닌가.

『重刑선고하고 훈계라니』

李宰勳 : (폭력에 대한 폭력은 정당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폭력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국권의 행사 또는 통치권의 행사가 폭력일 수는 없다. 정부를 폭력집단으로, 사법부를 그 폭력집단의 시녀로서 이를 넘어뜨리려고 부인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어찌 민주시민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스럽다.

피고인들의 이러한 성격은 과거 전제군주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국민의식의 영향으로 보인다. 임꺽정이를 의적으로서 칭송하는 일부 국민성을 바로잡아져야 한다. 관의 압박으로부터 상민계급이 해방감을 만끽하는, 정신적인 안식처나 돌파구로서 생각하면, 감상적인 사고가 법과 질서의 유지 아래서만 가능한 민주사회에서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다.

趙昇衡 : 학생들의 주장은, 침해된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국민의 마지막 저항세력으로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관(官)이라고 무조건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권이니 집권층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재판장은 정권대신 정부·여당이라고 고쳐 쓰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관까지도 억울하게 휩쓸리는 것이다.

李宰勳 : 피고인들은 기성세대와의 세대차를 너무 심화시켰다. 기성세대와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고 남의 얘기는 일체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관에 대한 저항은 용감하고 의롭다는 국민의식, 피고인들이 학생데모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 성장과정에서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소극적이고, 거부적인 교육만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반복하듯이 경력도 반복될 수 있다. 국민 모두는 제자리를 찾아 그 직분에 충실하여야 한다. 폭력 데모에 참가한 경력이 그 사람의 장래에 유리한 경륜으로 참작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피고인들 나이의 국민 대다수는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거나 군인으로서 국토방위의 임무를 행하거나 산업전선에서 산업역군으로 땀흘려 일하고 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참으로 바람직한 지성인의 행동화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법은 용서할 가치가 있는 자는 과감히 용서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엄중히 처벌하도록 요구한다.

趙昇衡 :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일방적인 나무람일 뿐이지 애정이 깔린 훈계라고는 볼 수 없다. 훈계란 일단 관용을 베푼 다음에 고마운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상상 밖의 엄중한 양형을 선고당한 사람에게 해보았자 먹혀들 리가 없다. 집시법 위반 피고인들이 대충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있는데 그 몇 배나 되는 선고를 해놓고 훈계를 하면 듣겠는가.

확신범에게는 개전의 여부로 양형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동기의 정당성 여부로 해야 하는데 李재판장은 개전을 기준으로 하겠다니 본말이 뒤집어진 것이다. 학생으로, 군인으로, 노동자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애국이고, 이 학생들처럼 민주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것도 값진 삶으로 보아야 한다.

李宰勳 : (국가 보안법 부분에 대하여) 스탈린 저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란 책자의 소지에 있어서 피고인측은 「이적의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피고인은 현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그 관철수단으로서 「전학련」과 서울대 「민민투」를 중심으로 사회단체와 연계하여 시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했으며, 그 피고인의 성향과, 그의 전공이 이공계통이고, 또 이 서적을 읽은 목적이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참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에게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족하다.

趙昇衡 : 재판부는 검찰측 증인 洪性文의 증언과 책자·선전물 감정은 선입견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진술이 유일한 유죄증거다. 이 진술에서 피고인은 행위당시(독서나 선전물 제작 등)에는 이적의 인식이 없었는데 조사받을 때 검사 말을 들어보니 이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행위당시에 이적의 목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지 그 뒤에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는 정도로는 유죄가 될 수 없다. 스탈린 논문을 읽은 것과 咸피고인의 행동사이에는 명확한 인간관계도 없고 검찰이 그 부분을 입증하지도 못했다.

그의 神은 누구인가?

문제의 훈계문에 대해선 칭송도 있었다. 어떤 언론인은 명문이라고 평했다. 어떤 시민은 학생들을 감히 꾸짖으려 할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 李판사의 배짱을 존경한다고 했다. 어떤 신문은 학생들이 정치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엔 법관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뜻깊다고 지적한 뒤 다른 법관들도 훈계를 많이 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 찬성론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비판적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훈계문에 나타난 李판사의 주장은 실정법을 중시한 것이고, 어떤 대목에선 국가지상주의의 냄새를 풍기기까지 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징역 5∼7년이면 악질적인 강도범, 수십억 원대의 사기범에게 적용되는 악형이란 지적도 있었다. 이 사건의 동기부분에 대한 심리가 충분하지 않은 데 대해 어떤 변호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본 재판을 구경했는데 자전거를 훔친 고아가 범행을 시인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그걸로 재판이 끝나고 구형이 떨어질 것이에요. 일본 법정에선 변호사가 두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했어요. 한 사람은 이 고아를 길러준 친척 아줌마, 다른 사람은 동네 노인. 이 두 증인은 고아가 왜 비뚤어지게 됐는지, 그 아이의 성격이 평소에는 얼마나 선량했는지에 관해서 증언을 해줄 사람이었어요. 재판장은 두말없이 증인으로 채택해 주었어요. 동기와 정상부분에 대해서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얘기죠』

다른 변호사는 이 재판에 나타난 소송절차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오판을 막아보려고 수 천년 애쓴 끝에 만들어낸 것이 소송절차법입니다. 그 법조문 하나 하나에는 오판으로 억울하게 사형되거나 고생한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이 스며 있습니다. 그런 귀중한 절차법을 지키지 않고 손에 넣은 판단은 아무 가치가 없어요. 절차법 가운데는 사소하고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것이 있지만 이것이 보다 크고 근본적인 대목에 걸려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사건의 성격상 공판진행의 공정성 여부가 선고의 타당성만큼이나 엄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李재판장은 훈계문에서
「당 재판부는 재판부가 소송관계인의 생명 신체 재산에 대한 전단적 권한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조사 결정하는 심판장 지위에 있음을 안다. 피고인들의 생명과 신체는 신의 의사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므로 신의 뜻에 맞게 행사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과정에서부터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종교상의 성사를 행하는 기분으로 겸허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李재판장은 훈계문의 다른 대목에서 판결은 자연법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신(神)은 실정법적 생각을 지닌 신이냐』고 반문하는 법조인도 더러 있었다.

이 선고에 대한 「역사의 선고」는?

훈계문의 필자는 재판부로 되어 있지 않고 「재판장 판사 李宰勳」으로 돼있다. 배석판사들이 훈계에 반대해서 그렇게 됐는지, 재판장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李재판장은 이번의 선고와 더불어 훈계문으로 해서도 앞으로 두고두고 법조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이 훈계문과 비교될 수 있는 「재판장의 강력한 의견 표현」으로는 79년 9월 당시 서울민사지법 합의16부(재판장 조언. 趙彦)가 내린 신민당 총재 金泳三씨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문을 들 수 있다.

이 결정문의 끝에서 재판부는 「대저, 계약과 규범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적은 허물조차도 자신의 도덕적 결함으로 여겨 자책과 은둔을 미덕으로 삼은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 및 근대민주정치의 모범국인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민주정당들이 절대적 신임을 기초로 당권을 수행하고, 극히 적은 불신임에 대하여도 모든 지위를 걸고 다시 신임을 묻는 확립된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의 법리가 법의 엄격한 적용을 이끌게 한 이 재판의 바탕이 된 것임을 아울러 천명하며, 법을 성실히 따르는 민사사법의 정의가 양당사자에게 고루 퍼질 것을 확정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하는 바이다」고 했다.

법조계에서 이 판결문은 가처분 결정 그 자체만큼이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가처분 결정이 민사소송법의 잘못된 해석임은 물론이고 판결문의 훈시부분 또한 가당찮은 얘기란 게 중론이다. 가처분이란 것은 본안 판결이 아니므로 가처분으로 인한 이익과 불이익을 잘 견주어 판단해야 하는데, 신청인 3명의 이익을 위해서 제1야당 당수의 직무를 정지시킨 것은 전혀 균형이 안 맞는 결정이란 것이고, 훈시문은 문제성 있는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재판장은 선고로써 발언해야지 그 외의 다른 설명으로 선고를 미화하거나 옹호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선 강하다.

李재판장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예상밖의 판결을 했다. 선고 형량이나 훈계문은 「전례가 없는」것이든지 「예상외」였다. 李재판장의 선고에 대해선 박수를 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난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처한 입장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주관적 판단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바탕이니까. 그러나 그가 내린 선고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그렇게 다를 수도 없고 어려울 것도 아닐 듯하다. 법이 있고, 법철학이 있고, 소송절차법이 있고, 판례가 있고, 기록이 있다. 이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가 李재판장의 선고에 대해 내릴 선고는 추상과 같을 것이다.

명판결이란 국경과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보편적 진리 위에서 빛나는 것이고, 잘못된 판결은 햇볕에 바래고 세월에 떠내려가 버린다. 李재판장의 선고가 어느 쪽일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법관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 선고로 해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고, 그의 이름 석자는 훈계문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