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가져야 살 수 있다』

朴대통령은 핵개발과 같은 극비사항에 대해서도 딸에게 이야기하였다. 朴槿惠씨가 아버지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사정은 대강 이러하다.

『우리는 핵을 가져야 살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1971년에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이 제기되었지요. 이런 불안감에서 아버님은 핵개발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신 것 같아요. 그러다가 포드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아버님을 안심시킨 것 같아요. 대통령이 바뀌어도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핵개발을 포기하셨지요. 그런데 카터 대통령이 집권하자 주한미군과 핵을 빼가겠다고 나왔어요. 아버님은 한번 미군이 철수하면 재개입은 어렵다고 판단하시고 다시 핵개발에 착수하신 것입니다』

朴대통은 카터 대통령이 집권한 뒤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로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槿惠씨는, 기자가 朴대통령을 『사석에서는 예사로 미국놈, 미국놈하는 생래적 반미주의자』 라고 묘사한 글을 지적하면서 『생래적이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무조건 미국에 반발하신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고맙게 해주었다는 인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주한 미군사령관과 친해지면 미국 국방장관에게 오래 좀 있게 해달라고 인사 부탁까지 하실 정도였습니다. 다만 미국이 국내의 정치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잣대로써 간섭하는 데 대해서 불만이 많으셨습니다』

『아버님은 미국이 구속자를 풀어주라고 하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한국에는 미국식 인권이 아니라 우리 사정에 맞는 인권이 있는데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불쾌해하셨습니다. 구속자를 석방하면, 미국을 믿고 또 요구하고, 그래서 문제가 또 꼬이게 되고…10·26사건 직전에 브라운 美 국방장관이 방한했는데. 그 때도 아버님께서는 미국의 간섭에 대해서 國權 침해라고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하시더군요. 金泳三씨가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한 기사가 문제가 돼 제명되셨는데, 아버님은 미국에 대해서 內政간섭을 요구하는 표현에 크게 분개하셨습니다』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朴槿惠씨는 카터의 부인 로잘린 여사와 면담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 저는 조깅에 비교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깅이 건강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하루에 10km를 뛸 수는 없다. 몸이 약한 사람이 무리하게 조깅을 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나라도 같은 것 아닌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의 사정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 해야 한다. 더구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민주주의를 실험적으로 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날 만찬 때 카터대통령이 제 옆에 앉았어요. 아내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잘 전해들었다고 합디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朴대통령은 인권탄압문제로 국내외로부터 비난을 받고 심한 고독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미국과의 갈등은 국민들에게 하소연할 수도 크게 떠들어 항의할 수도 없는 성격의 문제였다. 朴대통령은 말년에 청와대출입 기자들과 술을 마시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면서 당대의 인기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대로 하여 역사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결의를 자주 보이곤 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나도 국민의 인기를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역사는 나를 알아줄 것이다」 고 말하시더군요. 욕을 안 먹으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영원히 해먹겠다는 게 아니란 말이야. 국민소득이 2천 달러가 돼야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한탄하시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에 가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나, 하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당신의 일기에 지금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훗날에 가서는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야당 당수와 회담하면 서로 동감을 하게 되는데 돌아가서는 복잡한 黨內 사정 때문에 합의사항이 뒤집혀지는 것을 보고 답답해 하시기도 했어요』

朴대통령은 큰 일을 준비할 때는 현충사에 들려 충무공과 무언의 대화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물러나 신당동에서 살고 있는데 이순신(李舜臣)장군의 종손 집안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동동주와 고기를 갖고 오셔서 땅바닥에 묻혀 있던 충무공을 끄집어 내 밝혀주신 분이 朴대통령이라고 고마워 하시더군요. 아버님은 모함을 받고 배신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백의종군의 정신으로 나라에 충성한 충무공에 대해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난중일기」에 나타난 李舜臣의 문체와 성격은 「청와대」 일기에 나타난 고 朴대통령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李舜臣은 武人의 결단력과 文人의 섬세함을 아울러 갖춘 사람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 부하에 대한 엄격한 통제, 예의범절의 엄함. 소심하면서 담대함, 호탕하고 보다 무인적인 元均에 대한 생리적 반감… 이런 모든 복잡한 성격이 국가를 위한 집념으로 통일된 것이 충무공의 인격이었다. 무서운 승부정신과 비정한 결단력, 그러나 소녀같은 수줍음과 깍듯한 예절과 자상한 인간적 배려를 두루 갖춘 朴대통령은 국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그 중압감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충무공과 닮았다.

부모의 차중 합창 메들리

무서운 권력에의 의지로 한 시대를 이끈 朴正熙 대통령은 동시대인에게는 여러 가지 얼굴로서 새겨져 있다. 군인, 독재자, 혁명가, 교사, 후견인, 개척자, 모든 국민들이 저마다의 朴正熙상(像)을 갖고 있는 것이다. 朴槿惠씨의 朴正熙상은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이며,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槿惠씨는 1974년에 부모와 함께 현대조선소의 진수식에 참석하려고 승용차 편으로 울산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槿惠씨는 부모 사이에 끼여 앉았다.

『두분께서 노래를 부르시기 시작했어요. 두만강 푸른 물에… 황성옛터, 짝사랑 등을 합창하시는데 화음이 잘 맞았어요. 저는 가운데 앉아 있었으니 스테레오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朴대통령은 5·16전에 금오산에 대해 시를 써둔 적이 있었다. 1964년에 가수 朴모씨가 「금오산아 잘 있거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朴正熙작사·작곡의 유행가였다. 당시의 청와대 대변인 朴相吉씨는 이 레코드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대통령의 체통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곡조는 애잔했었다고 한다. 朴槿惠씨는 『청와대에서는 그 레코드를 자주 틀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고 했다. 그런데 朴대통령이 작곡한 노래는 朴대통령이 멜로디를 읊으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둘째 딸 槿英양이 앉아 악보로 옮긴 것이다.

금오산아 잘 있거라/황파에 시달리는 삼천만 우리 동포/ 언제나 구름 개이고 태양이 빛나리/천추에 한이 되는 조국 질서 못 잡으면/ 선혈 바쳐 넋이 되어 통곡하리라

영남에 솟은 영봉/ 금오산 잘 있거라/ 세번째 못 이룬 성공 이룰 날 있으리/ 대장부 일편단심 흥국일념/소원 성취 못 하오면/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대통령은 어느 날 승용차 앞자리에 志晩군을 태우고, 옆에는 槿惠양을 앉히고 지방시찰을 간 적이 있었다. 朴대통령은 무료했던지 뒷자리에 앉아 연필로 아들의 뒷모양을 스케치하더니 「지만이 뒷꼭대기」라고 써놓았다. 이 그림도 朴씨 집에, 보관돼 있다.

『1960년대 말에 우리 가족이 진해로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저도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보름달이었습니다. 志晩이 사진을 찍었는데 보름달이 나올 리가 없지요. 동생이 실망하시니까 아버님께서 그 장면을 상상하셔서 유화를 한 폭 그려 주신 게 있지요』

朴대통령은 자녀들이 바깥에서 듣고온 이야기를 물으면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그게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이리저리 그리고 놓으면서 설명을 하던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방송국 주파수를 몰라

朴대통령은 늘 꼿꼿한 자세였다고 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서둘거나 허둥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경제관계 보고회에서 놀라운 수치의 기억력을 보여 당사자들을 당황하게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비결은 해당 사항에 대해서 늘 골똘하게 생각한 때문이라고 한다. 그 대신 아예 외우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는 분야도 많았다고 한다. 槿惠씨는 『잊어먹으시는 것이 많으니까 외시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고 했다. 라디오의 방송국별 주파수를 외지 못해 KBS 주파수 자리에 KBS, MBC 자리에 MBC라고 표시를 붙여 두어야 했고 녹음기의 플레이(play). 녹음(record) 등 기능별 보턴이나 스위치의 작동법을 몰라 거기에도 표시를 해두곤 했다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헬리콥터나 자동차 편으로 워낙 國內를 많이 돌아다녀 지리감이 뛰어났었다. 고속도로변의 큰 나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지적할 정도였고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면서 地名을 줄줄 댈 수 있었다는 깃이다.

『아버님의 동상을 세우자. 대통령의 사진이 찍힌 신문지가 진흙탕에서 나 뒹굴고 밟히는 것을 막기 위한 무슨 법을 만들자 하는 과잉충성 건의도 많았지만 아버님께서는 「필요 없음」이란 간단한 사인으로써 이를 물리치시곤 하였습니다. 서정쇄신에 관한 집념은 대단하셨습니다. 어느날 총무처를 순시하시고 오시더니 「서정쇄신 연감을 만들어 부정공무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하도록 지시했다」고 하십디다. 잠시 생각에 잠기시다가 느닷없이 「그래도 부정을 저지를까?」라고 하시는데 그 표정에서 숙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崔목사가 누명 썼다

朴대통령은 사정담당직원들로 하여금 통행금지 구역을 암행 감사토록 한 적이 있었다. 돈을 주어도 통과가 안 되는 지역은 몇 안되고 거의가 통과였다. 사정반에선 통과시킨 공무원들을 징계하는 처리방안을 내놓았으나 朴대통령은 통과 안 시킨 공무원들을 포상하고 통과시킨 공무원들을 용서해주는 쪽으로 바꾸더라고 한다. 모범 공무원들을 추켜줌으로써 깨끗한 관료 풍토를 도모하려고 한 것인데. 아무리 모범 공무원들을 추천하라고 해도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부정공무원을 적발하기는 쉬워도, 모범공무원을 잘못 추천했다가는 그 뒤의 사고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고 공무원의 됨됨이를 알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 朴대통령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朴槿惠씨는 1977년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했었다. 그 전해 4월에 창설된 구국여성봉사단이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朴씨가 총재에 취임, 충효예를 강조하는 새마음 운동을 펴 나가게 되었다.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든 사람은 최태민(崔泰敏)목사였다. 그는 朴씨에게 고陸英修여사를 추모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돼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들어 총재가 됐었다. 새마음봉사단으로 바뀐 뒤에도 崔목사는 고문으로서 관계하였다. 朴槿惠양은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많이 했다. 결혼도 안한 젊은 여자가 노인들 앞에서 충효정신을 이야기한다고 비난하는 여론도 강했다. 이에 대해서 朴槿惠씨는 『나이 많은 사람이 효도를 이야기하면 자기한테 효도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지 않느냐』고 했고 『청중들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으로 안다』고 했다.

기자는 이런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 朴대통령은 얼마나 무서운 분으로 인식돼 있었습니까. 그분의 딸이 하는 일에 대해서 누가 협조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는 강제로 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지시했겠지만 경직된 관료체제를 거치면서 국민들에게 직접 닿는 손길은 사뭇 다릅니다. 윗사람의 선의도 관료체제를 통과해서 실천될 때는 악의로 변할 수도 있지요』

金載圭당시 정보부장은 崔 목사의 비행에 관한 정보를 수집, 朴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朴대통령은 검찰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검찰의 조사결과도 정보부의 그것과 거의 같았다. 金載圭부장은 이 조사파동 뒤에도 崔 목사가 계속해서 새마음 봉사단일에 관계한다고 부하들에게 신경질을 부린 적도 있었고 朴대통령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10·26사건 수사과정에서 밝혀졌었다. 이에 대해 朴槿惠씨는 『崔목사님이 오히려 누명을 쓰고 있다. 그분은 정말 사심없이 좋은 일을 하려고 했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이런 세상에서 성하게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금도 그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유대를 갖고 아버님과 어머님 추모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 조직이라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동생 志晩의 울분

槿惠씨는 동생 志晩씨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부모님을 그렇게 잃고 그 뒤의 세파가 너무나 심했습니다. 자신의 고독감보다도 아버님에 대한 난도질을 더욱 견디기 힘들어하였습니다. 鄭仁淑 사건 등 수많은 스캔덜에 아버지를 연루시키는 기사들을 읽고는 흥분했고, 과거에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던 이들의 변신을 보고는 배신감을 많이 느꼈던가 봐요. 그래서 술을 더러 마시게 되었는데 친구가 히로뽕을 권했던가 봐요. 주사를 맞은 것은 없었고. 코로 흡입하는 짓을 몇 번 했다고 합니다. 동생이 팔뚝을 보이면서 맹세코 주사를 맞은 적은 없고, 다섯 번 이상 사용한 것도 아니며 그 일은 2년 전에 끝난 것이라고 해요. 검사에게서 조사를 받는데 중독자라고 나온 신문을 지적하면서 항의도 했답니다. 조서에 부모 이름을 써야 하는데 차마 그 이름을 댈 수가 없어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槿惠씨는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괴로웠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입원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후유증은 없다고 했다. 대우그룹의 김우중(金宇中)회장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동생이 장교로 근무할 때는 金회장께서 같이 일해보자고 권유하신 적이 있었지만. 제대한 뒤에는 그런 말이 끊어진 것으로 압니다. 동생은 방배동에서 혼자서 살고 있는데,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槿惠씨는 청와대 시절의 동생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한 얼굴로 돌아갔다.

『어느날 식사시간에 志晩이가 느닷없이 아버님에게, 청와대에서 사자를 키웠으면 좋겠습니다고 조르는 거예요. 아버님 말씀이,「그러다가 잡혀 먹힐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