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아파트단지의 야당 선호

강남구의 좌표는 한국사회의 평균적 수준보다 늘 한발쯤 앞서 있다. 따라서 이곳의 오늘날의 투표형태는 내일의 투표형태가 어떨 것인가를 예시해줄 것이다. 강남구에서, 아니 한국에서 교육 및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특정지역을 꼽으라면 압구정동 현대·한양 아파트단지를 치지 않을수 없다. 이곳은 저명인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곳이기도 하다. 2년전 연합통신 인명사전을 근거로 계산한 걸 보면 현대아파트 주민들중 인명사전에 실린 사람은 0.83%로서 전국 평균의 65배였다고 한다. 고급 공무원, 기업인,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 주류를 이루고, 경제발전의 가장 큰 수혜층이 몰려 사는 이 압구정동(유효투표 1만5천4백96)에서 민정당 이태섭(李台燮)후보는 22.3%의 득표를 했을 뿐이다. 신민당 김형래(金炯來)후보가 35.9%, 민한당 이중재(李重載)후보는 10.9%였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낙선한 민정당 후보가 강남구 출마자였고, 압구정동 에서의 李台燮후보 득표율이 강남구 전체 평균 득표율보다도 2%포인트가 낮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미국 MIT를 기록적인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의 전형, 그래서 가장 강남적인 인물이라고 일컬어진 李台燮씨 대신 압구정동의 엘리트 유권자들은 일류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지극히 비엘리트적인 신민당의 金炯來후보를 1등으로 뽑았다.

민정당의원 낙선지구에서 민정후보가 1위 득표한 투표구(서울 강남:총투표구 1백13개)


민정당의원 낙선지구에서 민정후보가 1위 득표한 투표구(대구 중'서구:총투표구 1백49개)


민정당의원 낙선지구에서 민정후보가 1위 득표한 투표구(부산 중'동'영도구:총투표구 1백54개)


민정당의원 낙선지구에서 민정후보가 1위 득표한 투표구(부산진구:총투표구 1백47)


민정당의원 낙선지구에서 민정후보가 1위 득표한 투표구(부산 동래구:총투표구 1백76개)


① 민정당 의원이 낙선한 5개 선거구의 총투표구 7백39개소 가운데 민정 후보가 1위 특표를 한 「이변 지역」은 전체의 2.84%인 21개소에 불과하다. 이것은 민정당의 득표전술이 전반적으로 잘 먹히지 않았고, 유권자들의 반(反)은 민정 성향이 소득계층, 학연, 지연, 공약 등을 초월하여 거의 획일성을 띠고 있다는 증거다.
② 민정표가 많이 나온 이변지역은 저소득층, 도시 변두리의 농촌지역, 자연부락, 특정 공약 대상지역이다.

金炯來의원은 李씨의 패인을 이렇게 지적했다. 『나는 공중전 즉 선전전으로 임했다. 조직에 의한 표밭 확보방식, 즉 육상전은 돈이 많이 들어 1억 원도 못가진 나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나에게는 가장 많이 든 선거비용이 인쇄비였다. 다섯 종류를 1백여만 부 찍었는데 내용은 모두 강남주민들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거였다. 「정치1번지 강남, 1번 뽑아 확인하자」는 것이 선전물의 일관된 모토였다. 李후보는 잘 사는 강남구민들에게 서투른 물량공세를 폈다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압구정동에서 선물 반품 소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李후보의 패배를 예측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서울 강남구 주민들의 「욱!」하는 반발이 이변을 낳았다는 해석인데 표 성향을 자세히 분석하면 단순히 「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민심의 물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징표가 여러 군데 나타나 있다. 지난 81년 선거에서 강남구의 투표율은 65%로 전국최저였다. 유효투표율도 98.1%로 서울에서 최저였다. 교육수준이 가장 높다는 강남구에서 일어난 이런 이변은 소득 및 교육수준이 높은 유권자층이 대거 기권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80.7%로 높아졌고 유효투표율은 99%로서 서울에서 최고였다. 강남구 1백13개 투표구의 개표 결과 李台燮후보는 투표구마다 줄줄이 3등을 달렸는데 그가 1,2 등을 한 「이변지역」은 불과 11개소였다. 나머지 약 90%의 투표구에선 네 후보 사이에 기가 막힐 정도의 균일한 표 배분이 한결같이 유지됐다. 이것은 비단 강남구뿐 아니라 민정당이 진 대도시의 공동현상이었다. 이런 표 흐름의 균일성은 인위적 통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이심전심에 의한 「하나의 합의」란 성격을 보였다. 민심이란 것이 개개인의 생각이 한 결을 이루는 걸 가리킨다면 강남구 등 대도시 표에 나타난 국민들의 생각은 일관된 메시지로 집약된 것이었다.

공무원 표는 어디로 갔나?

李台燮씨가 1등한 곳은 양재·내곡·세곡·일원동 등 변두리 단독주택 및 농촌 지역이었다. 대도시의 개표결과에선
①소득수준이 중상층이면 야당, 극빈층에선 여당
②나이별로는 20∼40대에선 야당
③직업별로는 소상인과 봉급생활자와 공장노동자가 야당, 대상인과 농민층에선 여당
④교육수준은 높을수록 야당
⑤거주지별로는 아파트주민일수록 야당, 자연부락에선 여당세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지지 세력은 여당지지 세력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안정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인데도 안정보다 변화쪽을 택했다는 점에서 민정당이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야의 성향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는 곳이 강남구 일원동, 이곳 제1투표구는 주로 농민들이 사는 곳인데 李台燮후보가 유효표 1천2백73표 가운데 약47%를 차지했다. 李重載 후보는 25.5%, 金炯來후보가 21.7%였다. 이 농지와 인접한 일원동 제2투표구는 대우·현대 아파트 단지다. 여기서는 金후보가 1천5백73표 중 약 40%를 얻었고 李重載(25%) 李台燮후보(24.7%)순으로 농경지 주민들과는 정반대였다. 아파트 주민들의 높은 야성은 아파트가 금품을 앞세운 선거운동이 힘들다는 특성 외에 주민들이 개인주의적 생활 습관에 젖어 있고 특히 부녀자들은 아파트 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남구에는 영남인들이 전 주민의 약50%를 점하는데 호남 후보2명을 모두 당선시켰다. 이번 도시표의 특징은 지연, 학연을 거의 무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강남구 투표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공무원들이 전체 유권자의 약 3분의2를 차지하는 개포2동 제7투표구의 결과였다. 약 6백60가구의 공무원 임대 아파트주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개표 결과는 유효표 3천1백38표 가운데 李台燮후보가 득표율36.8%로 1위, 金炯來후보가 34.3%, 李重載후보 21.6%, 고정훈(高貞勳)후보 7.2%였다. 여당 표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뿐 야당표의 합의 3분의2나 됐다.

이 결과는 이번 선거에서도 도시 공무원의 표는 상당수가 야쪽으로 갔다는 항간의 소문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서울시내 어느 구청직원의 실토-.
『선거를 앞두고 우리 구청에선 선거상황실을 운영했는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관계 자료는 몽땅 소각했다. 공문서는 보존연한이란 게 있는데….
공무원들이 구청장-총무국장-총무과장 중심으로 선거운동에 간여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구청과 관계 있는 협회나 조합 등 단체 간부들을 모아 부탁하고 택시운전사들에게 모범시민상을 남발하는 식인데, 마누라 표도 못믿는 세상에서 그런 유지(有志)중심의 운동이 무슨 효과가 있었겠는가. 동에서 예상 득표율을 올리는 데도, 웃사람들 비위에 맞추려고 신당바람의 실정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애써 민정당 후보를 1등으로 보고 하는 형편이었다. 스물 몇명의 동장들에게 총무과장이 예산에도 없는 돈으로 30만원씩 몇차례 비밀로 지급하긴 했으나 행정조직을 통한 공식적인 간여 지시는 없었다. 공무원이 뛰었다 해도 진심으로 하기보다는 민정당을 도우는 척했을 뿐이다. 개표날 밤 우리 구에서 민정당 후보가 까맣게 2등으로 떨어지자 간부들은 일시 안색이 변했으나 다른 구도 같은 형편인 걸 알고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말단 직원들은 오히려 희희낙락이었는데, 우리 과에서 민정당 후보를 찍은 것은 나와 과장님뿐임을 알고 두 번 놀랐다』

표의 질과 효율성, 부산이 1등

민정당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부산 사람들은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부산에서 택시를 타고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부산 발전에 도움이 안될 텐데』라고 떠보았더니 택시 운전사는 『발전 같은 것 안 돼도 좋아요. 요즘 손님들 참 기분 좋아합디다』라고 내뱉았다. 선거 직후의 국제상사 해체 발표를 부산에 대한 보복으로 오해한 일부 시민들은 대 놓고 『조지려면 어디 한번 조져 봐라』고 말을 함부로 하고 있었다. 『선물은 신(神)도 움직인다』고 했는데, 전국 도시중 가장 격렬한 금품의 융단폭격이 있었다는 부산에서는 「먹고도 안 찍는 민주배짱」이란 야당의 선전구호가 「똑 떨어져라!」는 유행어를 낳으면서 민정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한 집안에서 두 야당후보에 표를 갈라서 찍는 한국선거사상 유례가 없는 「집단적 모의」의 양상으로 발전, 「민정 세 후보 낙선」이란 사건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에서 가장 정치의식이 높은 곳으로 등장한 것이 부산이다. 이것은 결코 야당표가 많다는 점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야당의 득표율에서 부산은 서울 다음이지만 표의 효율성에선 단연 1위다. 서울시민들은 민정당에는 27%의 표밖에 주지 않았지만 14개 선거구에서 13명의 민정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민한당에겐 19.5%의 표를 주었으면서도 한 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해 약1백만 표가 낭비되고 말았다. 서울의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를 비교하면 신민당 14석(득표율 42.7%) 민정당 13석(27%) 민한당 1(19.5%) 국민당0(2.4%)이다. 부산은 신민당 6석(35.9%) 민정당 3(27.6%) 민한2(22.9%) 국민1(1.4%)로서 의석수와 득표율이 거의 비례, 표의 낭비가 서울보다 훨씬 적다(서울에서도 부산처럼 야당표가 신민, 민한 사이에 골고루 분산되었다면 민정후보 7명이 떨어지게끔 돼 있었다). 이런 효율성은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유권자의 집단적 의지의 산물인가가 연구대상이겠다. 여당의 당선이 제도적으로 거의 보장된 지금의 선거제도하에서 여당 후보가 떨어지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민정당이 35.3%의 표밖에 못 얻었는데도 전국에서 다섯 명만 떨어졌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5명중 3명이 부산에서 떨어져 부산만의 의석배분은 민정당이 전체12석중 3석만 차지, 소수당이 됐다. 『부산사람들이 표에 의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우스개가 나돌고 있다.

81년 선거때도 야성 수도(野性 首都)

부산의 이번 투표율은 85.8%로서 서울 등 4개 특별·직할시 중 최고다. 유효 투표율은 98.7%로서 전국에서 최고다. 부산 표가 양질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1대 선거에서도 부산에선 민정당표가 30.6%(전국 평균은 35.6%)만 나와 선거구가 하나 뿐인 제주도(23.9%)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최저였다. 전남(31%)이나 서울(34.6%)보다도 민정당 표가 적어 그 때부터 이미 「야성수도(野性首都)」의 기질을 보이고 있었다. 부산에서 30년을 생활한 본 기자가 부산에 내려가서 닷새간 취재한 결론은 「민정당 후보 3명 탈락」사건의 두가지 심정적 원인이 시민들의 「욱!」기질과 서민들의 눈물이란 것이었다. 부산 마산사람들이 타지역인에 비해 특별히 「욱!」하는 성향이 강한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다만 자유당 및 유신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된 3·15사건과 부마사태가 「욱!」기질의 구체적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두 사건은 모의나 계획에 의해 터진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 민중시위였다는 점에서 「욱!」 기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야당후보들은 부마사태를 들먹이며 시민들의 정의감을 부채질하려고 했었다. 「욱!」표는 주로 신민당으로, 눈물표는 주로 이건일(李健一.민한) 김정길(金正吉.민한) 강경식(姜慶植.국민) 등 세 후보로 나눠졌다. 이 눈물표, 즉 동정표를 영세상인들이나 주부, 또는 저소득층에서 많이 나왔다. 선거 때마다 금품공세의 주 표적이 되어 온 이 계층은 보통 때 같으면 여당성향을 띠는데 이번엔 눈물이 물욕을 가렸음인지, 야당표로 흘렀고 이 바람에 여당의 표 기반이 와해되면서 세 후보가 낙마한 것이다. 눈물표에 희생된 민정당의 세 후보는 모두 권력의 핵심에 있는 정보기관 출신(윤석순.尹碩淳), 재력이 강한 사람(김진재.金鎭載), 서민과의 접촉이 활발하지 못한 교육자 출신(구용현.具龍鉉)으로서 서민의 애환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 보여졌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당후보 낙선 위한 집단적 모의

『표를 갈라주어 민정당을 떨어뜨리자』는 생각이 집단 모의의 단계로까지 발전한 곳은 부산 중·동·영도구였다. 부산의 종로 중구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부산의 어느 선거구보다도 많은 아홉번의 합동연설회가 있었다. 이 연설회에서는 서구, 부산진구 등 인접 선거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중·동·영도구의 연설회는 「바람」을 부산시내로 전파시키는 풍차 구실을 했다. 공교롭게도 민정당 후보가 떨어진 세 선거구는 모두 동래와 중구를 남북으로 있는 간선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구에서 일어난 바람이 이 길을 따라 북상했기 때문이라느니, 이 간선도로를 따라 4년동안 지하철 공사가 이뤄지는 바람에 주변 상가의 장사가 망쳐져 상인층의 민심이 돌아섰다느니 하는 해석이 있다. 중·동·영도구의 신민당 후보 朴燦鍾씨는 공화당 시절부터 자신의 선거구였던 서·사하구에서 출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선거구의 徐錫宰의원이 민한당을 탈당, 신민당으로 옮겨오자 金泳三씨의 권고에 따라 중구로 옮겨 출마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朴씨가 중구의 신민당 후보로 추천했던 金正吉씨는 민한당에 들어가 공천을 받고 두 사람이 대결하는 입장이 됐다. 朴燦鍾씨는 연설 때마다 『민정당 후보에는 절대로 표를 주지 말자. 나를 찍기 싫거든 차라리 무효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표적을 민정당 尹碩淳씨로 한정시킨 것이다. 金正吉후보도 처음에는 朴씨의 공화당의원 경력을 들어 공격하기도 했으나 마지막 연설회에선 『민정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아빠는 朴선배를, 엄마는 나를 쩍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목에서는 굉장한 박수가 터졌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朴燦鍾씨는 그 박수를 민중의 집단적 합의로 해석했다. 연설회가 끝난 뒤 『남자는 朴燦鍾, 여자는 金正吉』이란 말이 『똑 떨어져라』는 말고 함께 서민층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朴후보는 중·동구의 젊은층과 중산층, 金후보는 자신의 거주지인 영도의 저소득층을 표밭으로 양분하고 있었다는 점도 민정당 후보 낙선의 한 요인이 됐다. 金후보는 상인, 노점상, 산동네를 발로 누비면서 『영도 다리를 두 번이나 울며 건넌 이 金正吉이가 세 번째 울고 넘도록 하시겠숩니까』라고 호소했다. 金씨는 이 선거구에서 두 번 출마, 근소한 표차로 떨어졌었다. 재산도 몽땅 날렸다. 이혼도 했다. 이혼경력은 선거에서 감표요인인데, 이번엔 동정표를 얻는 요인이 됐다. 경찰 정보나 세간의 여론은 朴燦鍾1위, 尹碩淳2위 당선을 점쳤으나 표를 깨보니 1위, 金正吉후보가 9만7천여표로 1위, 朴후보가 8만3천여 표로 2위, 尹후보가 6만7천여표로 3위 낙선을 기록했다. 朴, 金후보는 중·동·영동구의 표를 기가 막히게 갈라 가졌다. 중구는 金후보가 2백33표차로 朴후보를 앞섰다. 동구에선 朴후보가 5천7백80표 차로 金후보를 앞섰다. 영도구에선 金후보가 약2만 표차로 朴후보를 앞섰다. 중상급의 상인들이 많이 사는 중구의 부평·광복·남포동 일대에선 朴후보가 1위를 했다. 이점이 부산이 서울과 다른 점이다. 서울의 큰 시장 상인들은 상대적으로 여당후보를 많이 찍었는데 부산에선 상인들까지도 야당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런 동향은 신발·목재·해운업 등 부산의 주력업종이 붕괴돼가고 사상공단이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는 속에서 부산의 상공인들 사이에 『돈은 서울로만 빠져나가고 우리는 뭐냐?』하는, 중앙에 대한 반발의식이 확산된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이런 「중앙에 대한 지방의 반발」은 대구의 중·서구에서도 야당표로 나타났다.

눈물표 뒤엔 민정당에의 실망이

부산에서 동정표의 주인공이 된 金正吉·姜慶植·이건일(李健日)씨는 두 번의 근소한 표 낙선이란 공통경험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서민층 속을 몸으로 떼우면서 파고드는 득표전술과 뛰어난 웅변술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이 세 후보는 동정표로 당선됐다는 평판에 대해서 『9만, 10만 표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동정 하나로 그런 표를 모을 수는 없다』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姜慶植씨의 경우, 토요일엔 최고 15명의 주례를 서고 평일엔 2백명쯤의 유권자들을 만나고,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카드를 유지할 정도로 공을 들였으니 동정표로 걸렸다는 말에는 거부감을 느낄만도 하다. 이 세 후보는 잇단 선거 실패와 불우한 생활을 경험했고 수많은 서민들과 부대꼈기 때문인지 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갸날프고 여린 누선(淚腺)을 건드리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동래구의
李健一후보는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다가 일경에 잡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6·25때 전사하시고…』라면서 자신의 불우한 가계(家系)를 설명한 뒤 『아버님 영전에 금배지를 바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연설중에 그 자신도 울먹였지만 많은 청중들도 코가 시큰해져 『이번엔 저 사람을 찍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노점상인들이나 부녀자들은 모성애까지 발휘, 이들 세 후보에 대해 일종의 보호본능까지 느꼈던 것 같다. 부산 서면 일대의 노점상 아주머니들은 국민당 姜慶植씨의 선전인쇄물이 땅에 떨어지면 『돈 없는 姜씨에겐 이것도 아까울텐데』라면서 줏어 모아 돌렸다고 한다.

동정표에 대해선 유권자의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비판론도 많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왜 이런 동정표가 『신도 움직인다』는 선물공세망을 뚫고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는 이들에게 몰렸느냐 하는 , 그 민심의 심층에 있을 터이다. 姜慶植씨와 함께 당선되어 그 사이에서 민정의 具龍鉉씨를 떨어뜨린 신민당 金正秀의원은 『동정표 현상은 서민층의 민심이 민정당으로부터 이탈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고 말했다. 민정당에 대한 「욱!」하는 반발표는 뚜렷한 의지를 갖고 신당으로 몰렸으나, 눈물표는 민정당에 실망한 뒤 옮겨갈 대상을 찾아 방황하던 서민층의 부동표로서, 이념이나 정책 같은 걸 떠나 순수한 인간성의 발로로써 「불쌍한」후보들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동정표를 던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가장 많은 대답이 「불쌍해서」였다. 「불쌍해서」찍는 행위의 합리성 여부는 젖혀두고, 왜 이런 투표심리가 하나의 민심으로 물줄기를 이루게 됐는지, 왜 민정당은 동정심리를 꺽을 만한 합리적 지표를 보여주지 못했는지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