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미 1984년에 남한과 경쟁에서 졌었다
對南 수재(水災) 지원용 특급입쌀을 남한 계측원이 쌀가마를 푹 찔러 보더니 "이거 1979년産이구만요"

이민복(대북풍선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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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적어도 1984년에 남한과 경쟁에서 져 있었다.
  어제 북한 농수산 세미나에서 뵈웠던 황형덕 박사의 체험담이다.
  1984년 당시 통일부 직원으로 북한의 수해지원 물자를
  인수하기 위해 인천항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본래 2일 내에 짐을 부리게 되어 있었지만 20일 걸렸다고 한다.
  북한 배는 컨베이어로 하역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전부 인력으로 짐을 부리다 나니 이렇게 끌어졌다고 한다.
  그 통에 북한 하역자들과 장시간 접촉하게 되었다.
  하역자들을 보니 양말을 신고 있는 자가 없었다.
  특식으로 먹는 사과를 보니 너무 작은 것들이었다.
  
  이와 관련 북한농업과학원 연구원 출신 필자로서 해석을 드리게 된다.
  북한에서는 과일 먹기가 참 힘들다.
  식량난으로 알곡 생산에만 치우쳐야 하기 때문에
  과일 생산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그 남아 생산되는 과일들은 작을 수밖에 없다.
  한편 운반과 저장 시설이 미비하여 다 썩어 버리게 된다.
  이런 속에서 과일을 먹는 하역자들은 특대우 받은 것이다.
  
  남측에서 북측 하역자들에 매일 간식과 선물 꾸러미를 전했다.
  낮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날을 새고 보면 다 없어졌다. 밤새 다 가져간 것이다.
  
  1984년 당시 남한도 지금에 비하면 잘살 때가 아니었다.
  북한보다도 못 살지 않은가 했는데 정작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가 그랬는데 지금에 보면 북한은 아무 것도 아니다.
  북한은 남침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어 못한다.
  전두환 욕을 많이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지도력이 있다.
  북한의 실정을 꿰뚫고 군인 출신 지도자답게 결단하여
  대남 수재 지원품을 받게 한 것이다.
  통상적인 대남선전을 했다가 전두환에게 된통 당한 것이다.
  가난한 북한 주제에 지원품을 준비하느라 혼쭐이 났다.
  
  이에 대해 북한에 당시 있었던 필자로서 코멘트한다.
  제가 있던 농업과학원에서 관여했던 대남수재 지원에서 담당은 쌀 분석이었다.
  그 결과 쌀의 눈 부위에 농약이 많이 검출되어 비상이 걸렸다.
  북한이 그래도 비료와 농약을 제대로 치던 시기는 1970년대이다.
  이때 생산한 쌀이니 농약 성분이 나타났던 것이다.
  농약이 검출된 쌀눈 부위를 깎아내 백미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모두 투덜거렸다.
  우린 강냉이밥도 못 먹는데 남조선에 특급 입쌀을 보내다니…
  하지만 그렇게 고급 쌀을 보냈는데 정작 남한에서는 맛이 없어
  짐승에게 주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1984년 판문점의 대남 수해 물자 인수식을 북한에서도 생방송 중계하였다.
  통제가 되지 않은 생중계에서 우리가 놀랐던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남한 계측원이 북한 쌀 가마를 푹 찔러 보더니
  <이거 1979년산이구만요>
  당시는 1984년이니 5년 전에 생산한 쌀인 것이다.
  전쟁 대비 비축 미까지 털어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제 우월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려던 북한은
  생생한 현물로서 톡톡한 망신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지원품 운반 자동차는 주로 4톤짜리 <신태백산>호였다.
  주체조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내장은 일본 닛산 엔진이다.
  이 차들도 모자라는지 소련제 <질> 화물차까지 동원되었다.
  정작 주력 순국산차인 <승리>호 2.5톤, <태백산>호 4톤 차, <자주>호 10톤 차는 한 대도 동원되지 않았다. 엔진이 나빠 시커먼 매연이 나는 데다가 자주 고장나서 운전수들의 <자주>호라고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세미나 참가 이명훈 팜엔씨드 연구원장의 2002년 북한방문 체험담이다.
  농업 전문 방문단임에도 평양의 전시거리와 건물만 주로 보여준다.
  농업 연구 기관을 방문시에도 실내를 그렇게 보자 해도 수리중이라며 거절한다.
  보여줄 수준이 안되는 것이다.
  김일성에게 흠모한 세계인들이 선물로 바쳤다고 전시한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까지 고속도로라고 한다.
  하루 이틀 달려보아도 지나다니는 차들이 몇 대 없다.
  고속도로라고 해도 남한의 지방도로보다 못했다.
  방문 기간 공포스러웠다.
  호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왜 아파트들에 불이 없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 다음날 저녁에는 일제히 환하게 켜져 있더라고 한다.
  중얼거린 말도 녹음이 되어 다음날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함께한 슈퍼 옥수수 김순권 박사에게 월북한 가족 찾기를 부탁했다가
  당장 취소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이런 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북한 사람들이 참말로 불쌍하다.
  
  
  
  
  
  
  
  
  
  
[ 2023-11-10, 09: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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