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밖에 또 산문(山門)을 두다니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격이다. 절만 존경해도 충분한데 산까지 존경하라면 사바세계 인간은 허리가 꺾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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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여기부터는 성지”…‘山門’이 는다》라는 기사를 며칠 동안 싣고 있었다. 이름 있는 사찰마다 산문(山門)이란 것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세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산문은 사전상 “절 또는 절의 바깥문”이다. 여태까지는 일주문이 절의 바깥문이었는데 일주문 밖에 또 바깥문을 세운다니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격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어느 큰 절에서 산문을 지어 완공하고 현판식에서 주지가 “오대산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성지(聖地), 성산(聖山)이라는 점을 생각하시고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아 산문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산문을 설치한 별다른 목적이 없다고 말한 셈이다. 여태껏 저런 역할은 일주문이 해왔다 일주문은 “대웅전에 다다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산문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나, 일주문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나 그것이 그것이다. 결국 일주문과 산문은 존재 목적이 겹친다/ 같은 목적으로 두 개의 문이 있게 됐다. 내친 김에 열두 대문도 괜찮겠다.
  
  절은 거의 산에 있고 절은 이미 거룩한 곳이다. 그러면 됐지. 절이 있는 산까지 거룩한 산(聖山)이니 거룩한 땅이니(聖地)니 할 게 뭐 있나. 절만 존경해도 충분한데 산까지 존경하라면 사바세계 인간은 허리가 꺾인다. 종교가 더욱 짐을 지우면 어쩌나. 승려들 자신이 우대받고 싶은 마음을 저런 식으로 표현한 것은 설마 아닐 것이다.
  
  요사이는 유명인사의 글씨를 집자하는 게 유행이다. 근래에 들어서 현판의 글을 집자하는 것은 교수 출신의 어느 문화재청장이 처음 시작했다. 그는 평소에도 현학(衒學)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현판의 글자를 고서(古書)에서 하나 하나 모았다는 것은 독서량이 많음을 자랑한 것이다. 저 산문의 현판의 글씨는 이름난 승려 탄허의 유묵(遺墨) 중에서 집자(集字)했다고 한다. 속세를 깨우치는 사찰이 속세의 유행을 따라서 집자한 것도 우습다. 현판을 쓴 사람의 혼이 담겨있지 않은 집자 현판을 다느니 차라리 살아 있는 주지가 직접 쓴 현판이 낫지 않겠나.
  
  “산문(山門)이 는다”는 기사 제목대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신흥사. 월정사. 봉선사 등이 이미 산문을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양반이 허세로 솟을대문을 높다랗게 지었듯이 산문도 하나같이 거창하고 웅장해서 위압감이 든다. 그 밑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억눌리는 느낌일 것이다. 일주문은 이름만 문이지 문도 없이 자그마하고, 겸손하게 서 있어 들고나는 사람에게 위압적이지 않다. 산문을 거창하게 만들어 세운 까닭은, 승려에 대한 존경심을 강제하기 위함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대산 산문의 면적이 57평이라고 하는데 모든 산문이 비슷한 크기일 것이다 일반인은 산에 57평짜리 건축물을 짓지 못할 뿐더러 국립공원 안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절은 57평이나 되는 산문을 지었다. 행여 종교를 내세워 실정법을 무시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석씨(釋氏)가 가르치는 평등의식이 아니다. 더구나 그곳은 거룩한 땅이고 거룩한 산이라면서 함부로 말뚝을 박고 기둥을 세우면 어쩌나. 타인에겐 그곳에서 마음을 추스려라 하고선 정작 사찰은 거룩한 산을 하찮게 대한 것이 아닐까.
  
  지금의 마음이 늘 옳은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산문을 웅장하고 근사하게 지어서 기분이 좋겠지만, 진리를 깨달아 아는 눈이 더 크게 뜨였을 때 어마어마한 산문을 보고 부끄러워하게 될지 모른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불사(佛事)는 정답을 찾고 나서 하는 게 낫다. 하물며 위압감이 느껴지는 불사임에랴.
  .
  조선일보도 “최근 조계종 사찰들에 산문이 늘고 있습니다”고 했다. 대찰(大刹)이나 본사(本寺)가 굉장한 산문을 지으니 작은 절과 말사도 따라 지을 것인 바 장차 모든 절간이 다 산문을 둘 것 같다. 절집이 부유하지 않으면 이러겠나. 사람은 조금 부족한 듯이 살아야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고 했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집이 가난할 때는 승려가 스스로를 빈승(貧僧). 빈도(貧道). 소승(小僧)이라 했고 처신 또한 지극 겸손했다. 이제는 없어도 되는 산문을 위압적으로 세운다.
[ 2023-10-30, 15: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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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3-10-30 오후 9:24
교회 건물의 크기로 교세를 과시하는 기독교를 보는 듯해서 씁쓸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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