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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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4.3) 조선일보가 하는 어느 유투브 방송에서 유투버가 시청자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에서 어느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이어서 스스로 답하기를 “어느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의 ‘더라’가 가장 우리 마음을 끕니다.” 저 시인이야말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고 말하여 잘못이지 않을 것이다. 저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봄날은 간다’는 노래의 가사를 수도 없이 읽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혼자 찾아가서 명상을 하고 오거나 편히 앉아서 마음과 머리를 식히고 오는 장소를 가지는 게 좋다고 한다. 기쁠 때도 가고, 슬플 때도 가서 마음에 쌓인 회포를 풀고 오는 장소를 가진 사람이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훨씬 능숙하다고 들었다. 물론 잘 꾸며진 쉼터 같은 곳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적이 끊긴 산기슭도 좋고, 사람이 드문드문 다니는 오솔길도 좋고, 빈 들판도 좋다 다만 조용해야만 한다는 조건은 있다. 그렇다고 새소리 물소리까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장소를 가지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는 더 쉬운 좋은 방법이 있다. 좋은 문장을 외우는 방법이다. 꼭 남들도 좋은 문장으로 인정하는 문장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마음에 들면 된다. 그 자신이 시인이었던 조조(曹操)는 평소 편두통을 앓았는데 좋은 문장을 읽고 나면 편두통이 싹 사라졌다는 사실은 사책에 기록돼 있지 않은가.
  
  나는 위에서 말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구절보다 좋다고 내가 여기는 시어(詩語)를 몇 개 갖고 있으면서 만단정회(萬端情懷)가 일거나 심중소회(心中所懷)를 풀 일이 있을 때 그걸 마음에서 꺼내어 읊조리는 습관이 있다. 이러면 특히 성이 났을 때 빠르게 평상심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아무 감정이 일지 않을 때에도 해마다 이맘 때이면, 우리 동네 개울을 따라 경쟁하듯 핀 벚꽃 아래를 걸으면서, 바보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이런 것들이다.
  
  홍사용 시인의 ‘봄은 가더이다’에 있는 싯구로서,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꽃은 피더니만, 그리고 또 지더이다
  
  송(宋)나라 구백위(歐伯威)의,
  그 누가 알았으랴 반 넘어 꽃 질 적에/誰知花過半
  술 한 병 달랑 들고 찾아오게 될 줄을/纔與酒相尋
  그리고,
  말없이 봄을 보내니 봄이 혼자서 돌아가네/無語送春春自歸
  
  송나라 왕종 정부(王從正夫)의 부의 한 구절,
  몸이 한가하여 술타령하고 지내는데/身閑更得憑陵酒
  일찍 핀 꽃이어서 애석한 봄은 아니로다/花早殊非愛惜春
  
  이규보의,
  봄병이 도지니 봄술이나 한 잔 하세.도 좋고 또,
  대동강가 소녀들 봄볕 밟고 거니는데
  봄 경치 스러지니 일년 또 가버렸네
  
  어느 시인의 시어(詩語)인지도 모르는,
  봄을 당하면 봄마음으로 그녀를 생각했다
  망제의 봄마음은 소쩍새에게 맡겼도다
  
  왕안석(王安石)의 시. 야직(夜直)에서의
  봄 경치에 번뇌 많아 잠 청해도 오지 않고/春色惱人眠不得
  꽃 그림자에 옮긴 달빛 난간 위로 올라오네/月移花影上䦨干
  
  구양수(歐陽修)의,
  가득가득 채워서 술 사발 들이켜게/勸君滿滿酌金甌
  꽃 피는 때 늘상 취해 지낸다손 치더라도/縱使花時常病酒
  그것 역시 또 하나의 풍류라 할 것일세/也是風流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시,
  열다섯 살 먹은 소녀 예쁘장한 얼굴에다/十五女兒好容顔
  버들꽃 나부끼듯 발랄하게 뛰노는데/恰似楊花太劇顚
  불어난 물 위의 징검다리 건너려다/貪過吳橋新水發
  고운 옷 다 젖어도 아까운 줄 모르누나/濕着羅襦不解憐
  
  조갑제 선생의 문장을 통해 알게 된 칼라일의,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100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하나도 안 된다.
  
  이상의 것이 봄에 외우는 것이고 가을에 외우는 것은 또 따로 있다. 저런 시문(詩文)을 외우고 있을 때는 어째서 마음이 넉넉해질까? 그러다가도 운전대를 잡으면 나 이외의 모든 타인은 개라 우기고.
[ 2023-04-04, 11: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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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3-04-04 오후 8:42
어디서 이런 주옥같은 詩文들을 모아놓으셨는지요…싯귀만으로도 春興에 푹 젖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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