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님은 보신책을 강구하면서 수사합니까?"
군사반란죄 재판 방청記/전두환은 당당했다. 세 아들도 아버지를 철통같이 보호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전두환家의 비극>
  
  전두환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죄를 세상에 외치고 있다. 할아버지의 비자금으로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참회를 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울림이 제법 큰 것 같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기가 묻히고 싶다는 땅 속에 들어가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되어 연희동 집 서재에 놓여있다.
  
  거의 삼십 년 전 전두환 대통령이 구속되어 군사 반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재판은 하루 여덟 시간씩 삼십 회 정도 열렸다. 나는 단 한 번도, 단 한 시간도 놓치지 않고 이백사십 시간 그 재판을 방청했다. 법정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 많은 시간을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가까이서 보고 관찰했다. 지금도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몇 장면이 있다. 검사가 물었다.
  
  “전두환 피고인! 막강한 계엄사령관을 연행할 때 어땠습니까? 다른 보신책을 강구해 놓지 않았습니까?”
  
  검찰은 12·12를 군사 반란으로 단정했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수사임을 역설했다. 전두환이 검사를 쳐다보면서 되물었다.
  
  “검사님! 검사님은 수사하는 상대방이 막강할 경우 보신책을 강구하면서 수사합니까? 저는 워낙 머리가 나빠서 보신책 같은 데 착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용감하게 덤빈 거 아닙니까?”
  
  기자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용수철 같이 튀어 오르면서 소리쳤다. “전두환! 이 살인마!”
  
  그 순간 피고인 석의 전두환 뒤에 앉아있던 세 명의 남자가 럭비선수같이 순간 그 남자를 삼중으로 덮쳐 눌렀다. 전두환의 아들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당당했다.
  
  세월이 흐른 후 나는 12·12 사태의 주동인 이학봉씨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사선(私選) 변호인이었고 그가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가 됐다. 나는 그에게서 강직성과 정직을 들여다보았다.
  
  “12·12사태의 본질이 뭐라고 보십니까?”
  
  정말 그가 전두환과 함께 군사 반란을 계획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그룹을 특별히 총애했죠. 우리 역시 충성으로 보답했구요. 우리의 리더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같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돌아가신 거에요. 그 옆의 다른 방에 육군참모총장이 있었구요. 아버지를 잃은 것 같은 우리들의 분노와 복수심이 어땠겠습니까? 다혈질인 제가 전두환 사령관에게 계엄사령관을 조사하자고 했죠. 의외로 전두환 사령관이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런 과정에서 일이 벌어진 거에요.”
  
  논리적으로 그럴 수도 있었다. 수사상 확인을 하고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군검사였던 전창열 중령은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조사하고 조서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군사 반란이라면 기존체제를 무력으로 뒤엎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했다. 이학봉씨가 술을 한 잔 입 속으로 털어넣고 나서 덧붙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도 이상한 게 있어요. 그때 나는 사십대였어요. 신중하지 못하고 덤비는 성질이 있던 때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사령관은 우리보다 열 살 위인 오십대였단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말렸어야지 그렇게 하자고 한 건 신기해요. 하여튼 그때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난 후부터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져서 우리조차도 당황했었으니까.”
  
  “그러면 광주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세상은 전두환 사령관이 그 책임자 같이 말하는데 광주에서 소요가 심해지니까 전두환 사령관이 겁을 먹었어요. 서소문에 있는 보안사령부 안가에 들어박혀 사흘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그곳으로 찾아가니까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 이순자 여사도 있더라구요. 내가 전두환 사령관에게 말했죠.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된다고 말이죠. 그리고 내가 수사책임자로서 광주에 내려갔었어요. 나중에라도 정치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많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행자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라고 했죠. 연행자가 많을수록 반정부 세력이 커지는 거니까요. 그리고 사망자도 한 곳에 묘를 쓰지 말고 분산해서 매장하라고 했어요. 당시 나로서는 그 소요의 배경에 북한 등 어떤 다른 조직적인 움직임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전두환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정치자금의 통로를 전두환 대통령 하나로 통일하고 직접 돈을 받았죠. 검찰에서는 그 모두를 뇌물로 보고 추징을 하려고 하는데 민정당에 정치자금으로 보낸 돈은 빼고 계산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몇 년 후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안기부 기술국 실무자의 얘기를 사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도청팀의 실무책임자였다. 그의 말 중에서 우연히 이런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저는 도청시설을 관리하니까 지시를 받지 않아도 도청을 할 수 있었어요. 광주에서 소요가 일어날 무렵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전두환 사령관의 전화를 제 임의로 도청했어요. 전두환 사령관이 굉장히 우왕좌왕하고 주저하고 있었어요. 세상이 말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그런 건 나만 알고 있어요.”
  
  진실보다 사람들은 편을 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 같다. 손자는 정말 할아버지가 살인자라고 확신을 하는 것일까? 의문이다. 다만 비자금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대통령의 가족이 많은 돈을 쓰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 것이 맞다면 그 자금이나 소득의 출처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가난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법정에서 당당했다. 살인마라는 공격에 아버지를 철통같이 보호했던 아들들이라면 손자가 폭로한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2023-03-24, 11: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