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꿈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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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안대(眼帶)>
  
  할아버지는 억눌렸던 민중의 표본인 것 같았다. 먼지가 풀풀 이는 만주의 척박한 밭에서 일해도 일해도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만주 벌판에는 떡 같은 노란 흙이 있다고 했다. 그걸 먹으면 요기가 된다고 했다. 열네 살 때 할아버지는 러시아로 넘어가 소떼를 돌보는 목부(牧夫)를 하다가 다시 국경선을 넘었다고 했다. 평생 이주일 동안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운 게 전부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삶은 중국소설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하층민의 삶이었다.
  
  할아버지는 해방 후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에 입학시켰다. 학벌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를 의대에 입학시키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족보를 더러 말하기도 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집에서 족보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내가 소위 명문이라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때였다.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가고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전의 첫 시험 시간부터 교문 앞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미 나이 칠십이 넘은 노인인 할아버지는 손자의 시험이 끝나는 오후까지 그 자리에 얼음기둥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수험장의 밖으로 나올 때였다. 교문이 열리자마자 할아버지는 제일 먼저 달려와 나를 안고 소리 없이 내 눈치를 살폈다. 나의 합격을 알자 할아버지의 눈에서 굵고 하얀 눈물이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중학교 시절 공부를 하고 있을 때면 할아버지는 옆에 다가와 대견해 하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넌 뭘 하려고 그러니?”
  
  엄마는 의사를 하라고 했다. 가난한 동네에서 제일 존경받고 돈 많고 높은 사람이 의사 선생님이었다. 엄마는 의원 벽에 걸려 있는 의과대학 졸업 때 찍은 의사 선생의 사진을 보고 한없이 부러워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할아버지는 노쇠해서 저세상으로 건너갈 때가 된 것 같았다. 힘이 빠져 하루 종일 방에 누워있었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네 발로 기어서 공부하는 뒤에 와 앉아있었다. 손자의 뒷통수라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희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학벌과 직업 그리고 가문이라는 벽으로 꽉 막혀 있는 세상에서 그걸 뚫을 희망을 내게 걸어본 것 같았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내가 칠십 년간 살아온 세상도 겉에 입은 옷을 보고 평가하는 세상이었다. 서울대를 나왔다고 소문난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의 학벌이 문제가 됐었다. 학벌을 속이고 논문을 베꼈다고 장로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 목사는 개인적으로 나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가난해서 그랬습니다. 나도 석 달만 과외를 했으면 서울대에 합격했을 거에요.”
  
  영혼이 자유로워야 할 목사는 세상의 그릇된 프레임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직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의식도 여전했다. 아파트의 청소부가 일을 끝낸 후 그 시설 안에 있는 풀장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게 용납되는 세상일까? 그걸 본 주민이 당장 민원을 제기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명문고를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간 엘리트는 개천을 벗어나 용이 됐을까? 한 법정에서 재벌 회장은 그가 부리는 사원들이 전부 자신의 머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조상이 왕족이거나 양반 가문이었던 것에 속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조상은 왕에게 거슬리는 짓을 한 죄로 깊은 산 속에서 이백 년을 숨어 살았던 집안이다. 귀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집단 형벌이고 삶은 양반집 노비보다도 못한 신세였을 것이다. 그런 차별들은 근원적인 것 같기도 하다. 예수의 고향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마리아의 아들인 목수 아닌가? 어디서 지혜를 얻었지?”
  결국 누구의 아들이고 직업과 학벌을 따지는 것 같았다.
  
  선사가 된 마조에게 고향 할머니가 말했다.
  “대단한 스님이 오나 했더니 마씨네 꼬마가 왔네”
  마씨네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학벌, 직업, 가문의 잣대로 쟀다. 그런 그릇된 잣대가 우리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검은 안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검은 안대가 우리 곁의 살아있는 천사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했다. 우리 눈에 붙어 있는 그 안대를 제거하는 방법이 뭘까?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을 보면 안될까? 내 마음속의 작은 주인을 밀어내고 큰 주인을 맞아들여 맑은 영혼의 눈을 뜨는 건 아닐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길을 무심히 가지 못했던 내가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 2022-11-07, 06: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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