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진정으로 사랑해 보신 적이 있나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순간순간의 일이 수행이죠">
  
  변호사인 나의 의뢰인 중에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 새벽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상가의 진열장을 박살냈다. 물건을 훔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상점에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자신도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신병 진단을 받은 환자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력이나 기술이 없었다. 지하 사우나에서 때밀이도 하고 구두도 닦으면서 살아왔다. 그는 음습한 지하의 사우나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인화성 높은 폭탄이 된 것 같았다. 그가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도 인생의 바닥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신을 비관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면서 그 영혼이 점점 어두움으로 빠져든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에는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사람도 있고 머리를 깎는 분도 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사람도 있고 청소를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맡은 일에 한정되지 않고 서른 명 가량의 직원이 함께 잔디를 깎기도 하고 공사에 동원되기도 한다. 받는 급료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실버타운의 방에 묵으면서 일을 했다. 이상한 건 그들이 모두 즐거움에 넘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신명이 들어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할까.
  
  며칠 전에 이백일호에 사는 여든아홉 살 노인의 초청을 받아 그 방에 가서 차를 마시게 됐다. 그 노인은 실버타운의 안내와 사무를 맡은 중년의 여성도 초청했다.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그 여성과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사무적이고 무뚝뚝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계선을 긋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었다. 말을 아끼던 그녀가 마음이 열리자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기 직원들은 전부 민족종교를 신봉하는 도인들입니다. 우리들은 순간순간 하는 일이 삶이고 수행이고 정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종교단체에 귀의하면서 ‘남을 잘되게 하라’는 걸 배웠습니다. 강증산 상제가 가르치신 상생(相生)이죠. 실버타운의 노인들에게 잘하는 게 복짓는 거구나 하고 깨닫고 일하게 됐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걸 단순한 임금노동으로 보지 마시고 도인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는 걸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일이 그들의 수도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덧붙였다.
  
  “새벽이 되면 우리들의 지도자가 전 도인들에게 봉투 하나씩 들고 나서라고 해요. 그러면 목욕탕이나 식당 미용실 등 파트를 가리지 않고 전체가 집합하죠. 우리들 전부 자기 파트로 가기 전에 함께 산에 가서 노인들 반찬으로 만들 나물을 뜯어와요. 식당에서 잡수시는 나물이 우리 직원들이 직접 뜯어온 겁니다.”
  
  가슴 속에서 잔잔한 감동이 피어올랐다. 실버타운의 직원들은 모두 민족종교를 믿는 도인들이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육십대 후반의 때를 밀어주는 분을 보면 서울에서 상업적으로 때를 미는 사람들과는 손길이 달랐다. 세심한 정성이 느껴졌다. 목욕탕의 이발사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을 만드는 것 같이 손님의 머리칼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면서 깎고 있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느냐고 때를 미는 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순간순간 하는 일이 도를 닦는 일입니다.”
  
  순간 그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이 든 이발사가 어느날 내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묻기도 했다.
  
  “선생님은 진정으로 사랑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내게 던지는 화두 같았다. 세상에서 그들이 있는 종교단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소리가 도는 걸 듣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도 사회와는 마음 문을 닫고 거리를 두는 것 같다. 그들은 묵묵히 일할 뿐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일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편견과 선입견의 껍질이 벗겨져 나간다고 할까. 특정종교만이 절대적이고 타종교는 배척하는 건 좁은 마음이다. 사람마다 그릇과 기질이 다르다. 어떻게 깨닫고 어떻게 닦느냐는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그들에게는 노동이 기도이고 일이 삶이고 정진이고 수행인 것 같다.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기도 하다.성경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고 있다. 사우나에서 때를 밀면서도 어떤 사람은 비관하고 거리에 나가 파괴를 하고 자살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걸 수행 방법으로 삼으면서 기뻐했다. 그들은 어떤 것이 본질적인 삶이고 무엇이 부수적인 삶인지를 아는 것 같았다.
  
[ 2022-10-31, 04: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