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세대 법조인은 다 썩은 사람들이잖아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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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의 기억에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유학을 갔다 온 딸과 아들이 영어를 잘하는 걸 보면 부럽다. 세계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아이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표정이 굳어지고 버벅거리는 아빠를 이렇게 놀린다.
  
  “우리 어렸을 때 새벽이면 일어나서 생활영어 공부하더니 그 실력 다 어디 갔어? 차라리 그 시간을 우리하고 놀아주지 그랬어? 추억이 남게.”
  
  뼈가 들어있는 소리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죽은 후 아이들의 기억에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더 미안한 때가 있었다. 뒤늦게 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였다. 딸이 다섯 살이고 아들이 한 살 한창 귀여울 때였다. 공부하는 나에게 딸이 와서 무릎에 앉으며 조그만 입으로 종알거렸다.
  
  “아빠는 맨날 맨날 공부만 해. 안 놀아 주고.”
  
  그때 '뻑' 하고 뒤통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 보니 이제 간신히 기어다기를 그만 둔 아들이 빗자루를 들고 내 머리통을 친 것이다. 딸과 아들에게 들었던 미안한 생각이 노인이 된 지금도 남아있다. 딸은 벌써 마흔 살이 훌쩍 넘어 중학교 이학년인 사춘기를 맞은 딸 때문에 걱정이 늘어졌다. 결혼한 아들도 독립한 인격으로 자기 가족과 잘 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좀더 함께 놀아주는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죽은 아버지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오래 전 한 조폭 두목이라고 기소된 사람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를 기소한 검사는 그가 조폭 두목이라고 했다. 그 사건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이 되어 그 검사를 대통령 후보까지 밀어 올린 사건이기도 했다. 조폭 두목으로 기소된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년 시절부터 비뚤어지게 나가 주먹을 썼죠. 다른 지역의 아이들과 패싸움의 선봉장이 되기도 하고 우리들끼리 은어인 연장질도 했죠. 그러다가 잡혀서 검사실에서 최조를 받을 때였어요. 아버지가 그 젊은 검사에게 찾아오셨는데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끝도 없이 허리를 숙이면서 빌고 또 비는 거에요. 내가 알기로는 우리 아버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시골에서는 유지로 사람들이 떠받들고 지식이 많고 점잖기로 소문이 나 있는 훌륭한 분이었죠. 그런 아버지가 못난 아들 때문에 한없이 비는 걸 보니까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그때 결심을 했어요. 아버지가 더 이상 아들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나는 절대로 검사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아들을 위해 진땀을 흘리며 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아들이 미국에서 보험을 들었다가 귀국을 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한 후에 한국에 있는 아들을 상대로 사기죄로 고소를 했다. 아들이 검사실로 소환을 당했고 검찰 서기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계약을 할 당시 갚을 의사도 능력도 없었죠?”
  
  아들은 그 뜻이 뭔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했다. 서기는 처음부터 진실보다는 아예 사기죄로 꽁꽁 묶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수사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휘말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분통이 터졌다.
  
  “뭐가 갚을 능력이 없고 의사가 없냐? 내가 학비로 보내준 현찰이 아들 명의 통장에 있는데 갚을 능력이 없다고? 그리고 갚아줄 이유가 있으면 갚고 없으면 안 갚는 거지 왜 수사에서 기교를 부리고 장난을 쳐?”
  
  속으로 그저 빌 걸 그랬나 순간 후회도 있었다. 어차피 그가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여검사가 발딱 일어나며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당신 나이 세대 법조인은 다 썩은 사람들이잖아요?”
  
  검사의 응원을 받은 서기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변호사 입회라 옆에 앉혔는데 그러시면 쫓아낼 겁니다.”
  
  “아들을 사기범으로 조작하려고 하는데 어느 애비가 그대로 물러설 것 같아? 내가 여기 드러누울 테니까 마음대로 해 봐. 아들은 지금부터 묵비권 행사야. 조서에 서명도 하지 않을 거고.”
  
  여검사는 그 자리에서 치졸한 별 협박을 다 했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나였다. 칼자루를 쥔 사람들에게 빌면 무참하게 밟힐 수 있다. 그런 때는 발을 꿰뚫는 송곳이 되어야 했다. 내팽개치면 또 들어갈 작정이었다. 얼마 후 검사는 무혐의 처분을 통보해 왔다. 덤비지 않았으면 기소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죽은 후 아들은 아버지의 그 일을 기억이나 할까? 아니면 어린 시절 놀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할까.
  
[ 2022-08-09, 15: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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