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仙(신선)이 된 가수'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맘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삶 그게 이장희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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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검은 교복을 벗고 같은 반 친구들이 처음으로 성인이 되는 파티를 했었다.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그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움으로써 성인의 자유를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파티의 격을 높인다고 우리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아마추어 가수를 초청했다. 머리가 장발인 청년이 통기타를 들고 왔다. 수북한 검은 콧수염이 입 양쪽에서 직각을 이루며 아래로 떨어져 있는 특이한 얼굴이었다. 마치 목에 매는 보타이를 코밑에 가져다 붙인 것 같아 보였다.
  
  그 가수는 우리들을 보면서 어색해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눈치였다. 수줍어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우리들의 눈길에 멋쩍어 하면서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반장은 그의 이름이 ‘이장희’라고 소개했다. 우리들은 그런 가수가 있는지도 몰랐다. 칠십년대 초 대학생인 우리들은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바지 문화에 휩쓸렸다. 우리들의 모임에 초대했던 그 가수는 여러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톱가수가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팬이었다.
  
  세월의 강물이 흘렀다. 산속 계곡을 흐르는 물 한 방울이었던 우리 또래는 냇물을 따라 내리고 강이 되었다가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는 넓은 강 하류에서 빙빙 돌면서 흘러온 물줄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독도를 방문하고 이어서 울릉도에 묵었다. 차를 운전해 바다쪽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길을 올라갔다가 녹음이 우거진 수풀 속에서 빨간 페인트칠을 한 양철지붕의 소박한 단층집을 보았다. 그 집에서 문을 열고 자그마한 노인이 나와 햇빛이 내리쬐는 길 아래로 내려가는 옆모습이 보였다. 그가 칠십대 중반의 노인 가수 이장희인 것 같았다. 그 근처에 노가수의 개인 공연장과 카페가 있었다. 울릉도가 좋아 찾아왔다는 세르비아 여성 혼자 한가롭게 카페를 지키고 그 옆에는 얇은 팸플릿이 꽂혀 있었다. 가수 이장희의 삶과 생각이 담긴 간단한 수필같은 글이 들어있었다. 인기스타가 왜 노년에 귀양살이 같은 동해바다의 작은 섬에 와서 사는지를 설명하는 글 같았다. 그의 삶이 물감같이 풀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는 쉰여섯 살 때 하고 있던 모든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사업체는 물론 집까지 정리하고 천구백구십칠년경 울릉도에 와서 백년이 된 농가와 농토를 사서 정착했습니다. 꽃씨를 심어 화단을 가꾸고 바다로 흘러가는 샘물을 받아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젊어서는 순간순간 음악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감동하고 느낀 것 생각나는 것들을 가사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 가사에 따라 흘러나오는 대로 곡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입니다. 이름에 연연하고 살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캠핑을 떠나 텐트 치고 별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계곡 물소리와 촘촘히 박힌 별빛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 품었던 낭만을 노년에 동해의 섬에서 꽃으로 피운 것 같았다. 그는 어린시절뿐 아니라 인생의 짙은 어두움 속에서도 푸른 별빛을 보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대학 시절이던 천구백칠십오년경 정권은 예술 분야에도 철퇴를 가했다. 톱가수의 반열에 오른 그의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가수가 노래를 빼앗기고 무대를 잃었던 것 같다. 그는 가수를 그만두고 옷도 팔고 음식점도 한 것 같았다. 노래와 음악을 빼앗긴 예술가의 고뇌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극복하고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울릉도의 산 속에 자신의 작은 무대를 재건하고 울릉 천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세월에도 권력에도 인기에도 구속되지 않는 그는 울릉도 산속의 신선이 된 것 같았다. 글 속에 그의 삶의 화두 같은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맘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삶 그게 이장희다’
  
  
  
  
[ 2022-08-08, 09: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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